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00
100. 제국에서 돌아온 새하얀 하프 엘프
다음 날 아침.
이세계의 신문은 1주일에 한 번씩 발행된다.
나는 체스카드 왕국의 유일한 신문, ‘아르미의 아침’에서 발행한 호외를 읽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역병으로 초토화된 가문들.
―네 가문 모두 수도에 거주 중인 귀족들. 영지는 방계가 대리 관리.
―말단 시종부터 가주까지 모두 역병에 당하다.
―흑마법의 창궐인가? 암흑 제국의 야욕인가?
―왕실은 당황, 폰테임은 침묵
―교단 ‘흑마법 흔적 명백. 교국에서 사절 방문할 것.’ 사절에 이단 심판관도 포함되나?
호외에는 어젯밤 있었던 일들이 소란스럽게 게시되어 있었다.
‘치료실에 있는 애들도 황당하겠군. 일어나 보니 가문이 망해 있을 테니.’
가문이 망했으니 학비를 못 낼 테고, 그렇다고 가문을 제외하면 특출난 재능을 가진 애들도 아니다.
아마 회복하게 되면 퇴교할 것이다.
놈들이 딱히 불쌍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읽던 호외를 소파 위에 던졌다.
“수업이나 가자.”
그리고 교수실에서 나와 수업 준비를 위해 교실로 향하던 중.
“나 아니라고오! 이 새끼들이 진짜!! 세상에 나만큼 흑마법을 증오하는 사람이 어딨는데?!”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율카네스였다.
“정말 아니십니까?”
“이 새끼들이 개구리로 변하고 싶어?!”
“끄응……. 저도 감히 대마도사에게 이렇게 따지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단에서…….”
“그 제르다쟁이 새끼들을 그냥!”
정황상 의심을 받고 있는 듯했다.
하긴, 듣기론 당시 입원한 녀석들의 부모들을 위협(?)했다고 하던데.
진짜 범인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율카네스가…….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자업자득이야.’
고소했다.
‘명색이 대마도사인데 교단의 의심에서 잘 살아남겠지 뭐.’
딱히 그를 도와줄 필요는 못 느꼈다.
나는 실랑이를 벌이는 그들을 무시하곤 수업을 위해 교실로 향했다.
“루카스 교수님…….?”
그때 조심스레 나를 부르는 징그러운 목소리가 뒤통수에 꽂혔다.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아서 교수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혹시 어제의 일…… 교수님이?”
관련이 아예 없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긍정하는 순간, 율카네스에게 쏠린 어그로가 내게로 온통 향하겠지.
“뭔 개소리야? 일개 행정학 교수가 어떻게 대귀족 네 가문을 하룻밤 만에 멸문시키냐?”
“그, 그렇죠?!”
아서는 내 말을 수긍하는 듯싶으면서도 뭔가 의구심이 드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얘기 들었습니까? 장기 파견 갔던 정령학 교수가 오늘 갑자기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래?”
내가 알기로 그 정령학 교수는 제국의 고트 아카데미로 장기 파견을 간 상태였다.
‘이번 일 때문에 복귀한 건가? 하지만 굳이? 무엇보다 그 콧대 높은 제국에서 순순히 보내 줬다고?’
이것도 병일까? 별게 다 의심스럽다.
‘이 정령학 교수가 원작에선 언제부터 등장했지?’
일개 말단 조연 중 한 명이었던 정령학 교수, 그녀의 등장 시기까지 기억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정이 있진 않았다.
‘원작에선 그렇게 큰 비중은 없었는데.’
기껏해야 다른 교수들이랑 함께 패키지로 몇 번 등장한 정도?
‘그래도 희소성 있는 직업에 특이한 캐릭터라 기억에는 남았어.’
그런 인물이 복귀한다.
“그래서?”
나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래서라니요!”
아서가 오히려 이해 안 간다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룬-아르미의 정령학 교수는 자그만치 하프 엘프입니다!”
“그래, 정령사니까 엘프의 피가 흘러야 유리하긴 하겠지.”
세이렌의 여왕과 뼈가 녹을 정도로 수많은 밤을 보낸 나다.
진짜 엘프도 아니고 겨우 하프에 호들갑을 떨면 자존심이 상하지.
“구경 안 가실 겁니까?”
“하프 엘프가 무슨 희귀동물이냐? 구경을 가게.”
참나, 아무리 이종족 비율이 제로에 가까운 북부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가려면 혼자서 가. 난 수업 준비하러 가야 해.”
저거 분명 혼자 보러 가기 부끄러우니까 나를 끌어들이는 거다.
무슨 부끄럼 타는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생긴 건 징그러운 사내놈이.
내가 아서를 버리고 교실로 향하자, 아서가 축 처진 어깨로 아카데미 외곽으로 향한다.
“야! 교수실은 반대 방향이야.”
저딴 놈에게 신경 쓰는 나 자신이 싫지만 말해 줄 건 말해 줘야지.
“……정령학 교수는 지금 외곽에 있습니다. 오자마자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정령의 기억을 본다고 해서요.”
“!!”
아서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사건이라면 이번에 너랑 우리 반 애들이 당한 그 사건?!”
“네.”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뻐억!
그리고 녀석의 뒤통수를 갈겼다.
* * *
뒤통수를 맞아 낑낑거리는 아서와 함께 아카데미 외곽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제법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는데,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제법 보였다.
호기심과 호감이 담긴 눈빛들.
‘동물원 원숭이보단 연예인 보는 눈빛에 가깝군.’
당장 옆에 있는 아서만 해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프 엘프 교수를 본다.
‘그나저나, 아서 이 녀석은 전공이 뭐였지?’
생각해 보니 원작에서도 아서의 전공은 딱히 설명되지 않은 거 같은데?
이따가 시간이 되면 물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다시 앞을 보았다.
앞에는 엘프보단 작고 인간보다는 크고 뾰족한 귀를 가진 여성이 서 있었다.
금빛이 살짝 도는 갈색 머리에 고집이 세어 보이는 인상이다.
미모는 그냥저냥 예쁜 편이다.
반지를 뺀 아스카와 세레나데를 통해 한없이 높아진 내 눈이다.
그런 내가 예쁜 편이라고 평가했으면 보통 사람에겐 굉장히 아름다울 것이다.
“저 여교수 이름이 뭐라고?”
“데이지 아프릴레입니다. 이름도 예쁘지 않습니까? 나이는 서른, 미혼입니다. 하프 엘프라, 마법사처럼 평범한 인간과는 나이 기준이 다릅니다.”
내 질문에 아서가 먼저 답했다.
“키는 172로 큰 편이고, 몸무게는 49~51 사이로 추정, 볼륨감 있는 몸이 특징입니다. 연애 경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미는 독서와 명상. 좋아하는 음식은 딸기 케이크입니다.”
이어서 반대편 옆에 있던 학생이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가 제법 유명한 여자 용병이었는데, 제국에서 의뢰를 수행하다 남자 엘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엘프와 눈이 맞아 태어난 것이 바로 데이지 교수님이죠.”
학생의 말에 아서가 질 수 없다는 듯 추가 설명을 한다.
“물과 땅의 정령을 쓰는데, 물은 하급, 땅은 중급 정령까지 부린다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정령술은 땅의 중급 정령으로 대지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죠.”
아서의 추가 설명에, 학생도 지지 않겠다는 듯 데이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한다.
“요정의 숲에도 몇 번 갔다 왔고, 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왕실로부터 남작의 작위도 받았다고…….”
“…….”
뭐야, 이 사람들 무서워…….
난 고작 이름 하나만 물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아서를 포함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내게 설명한다.
‘사생팬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질린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당신들, 설마 렌슬렛 영애나 폰테임 영애도 그렇게……?”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아리아드네 학생은 키 160에 좀 까칠함, 좋아하는 음식은 북부식 꿀 푸딩이고…….”
“폰테임 영애는 키 157에 왕국 최고의 가문, 즐겨 찾는 샬롱은 왕도의 크림 샬롱으로…….”
‘미친 사람들 아냐, 이거?!’
이건 사생팬을 넘어서 그냥 미녀 오타쿠잖아!
더 이상 들었다간 정신 나갈 거 같아 귀를 닫았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더 흘렀을까?
“정말? 알았어…….”
정령학 여교수인 데이지의 입이 열리더니, 정령에게 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 옥음이다, 옥음이야!”
“녹음 아티팩트를 못 가져온 것이 한이야…….”
주변의 남자들이 요란을 떤다.
이들 중 오직 나만이 차가운 눈으로 저 하프 엘프를 노려볼 뿐이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느새 데이지 곁에 다가온 루키엘이 물었다.
“굉장히 강한 존재의 짓이에요. 땅의 정령들이 겁을 먹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그렇군요. 노고 많으셨습니다. 먼길 오시자마자 이렇게 일부터 시키니 송구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식사를 대접…….”
그렇게 말하는 루키엘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
머리 스타일은 힘을 준 듯 올백으로 넘겼고, 로브도 처음 보는 비단으로 만든 로브였다.
“저 새끼가!”
“저 교수, 누구야?”
“감히 신입 교수 주제에…….”
“밤에 힘도 못 쓰는 마법사 나부랭이가 감히!!”
그런 루키엘을 향해 남자들의 엄청난 살기가 집중되었다.
저 살기와 욕만 먹어도 인간보다 수명이 길다는 하프 엘프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듯싶었다.
‘루키엘 저놈은 왜 저렇게 호들갑이야?’
다른 수컷들은 몰라도 루키엘은 반지 뺀 아스카와 세이렌을 보면서 나름 단련(?)된 놈이 아닌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가?’
마치 여자 친구가 있어도 야동을 보는 현상 같은 걸까?
‘아랫도리가 뇌를 지배하면 저렇게 비참해지는구나.’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자리를 뜨려 했다.
저 정령사의 수준이 낮아 아스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일단 그걸로 된 거다.
남은 건, 로미오와 쥬스피테 패거리의 입단속만 남았다.
그거야 뭐, 일단 녀석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와야 해결될 문제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내가 자리를 뜨려는 중에, 데이지가 루키엘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루키엘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뭐가 아쉬워, 멍청아! 만약 저 여자가 승낙했으면 넌 바로 죽었을지도 몰라!’
저 미련하고 딱한 존재를 어찌할꼬.
“하긴, 갑작스러운 여행에 피로하실 테니까요. 그나저나 데이지 교수님께서 보시기엔 누가 범인 같습니까?”
루키엘은 데이지와 어떻게든 몇 마디 더 나눠 보려고 안간힘이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아프릴레 교수라 부르지 않고 데이지라는 이름을 부른다.
“아마도 고위 마도사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네요.”
루키엘의 물음에 데이지는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놓고 퉁명스레 답한다.
하지만 루키엘은 그런 데이지가 튕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고위 마도사라……. 설마.”
루키엘은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는 듯한 태도를 대놓고 보였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
귀찮다는 듯 퉁명스레 굴던 데이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루키엘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루키엘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그녀의 가슴이 루키엘의 팔꿈치에 살짝 닿았다.
‘저거, 아주 여우네?’
엘프답지 않게 자신의 장점을 잘 써먹는 여자다.
어머니의 영향이려나? 굉장히 드문 여자 용병 출신이라면 보통 성격이 아니었겠지.
“크흠, 이 정도 실력을 지닌 마도사라고 하면, 이번에 새로 취임하신 율, 크흠! 카, 크흠! 네…… 흐음!”
“그렇군요……. 취미로 사람을 개구리로 만든다는 악명이 과장된 게 아니었어요.”
“안 그래도 어제 일 때문에 아침부터…….”
고작 가슴이 팔에 닿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대스승을 팔아먹는 마법사 놈이 루키엘이다.
‘마법사는 절대 믿을 것이 못 된다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루키엘의 눈을 보았다.
혹시나 무슨 목적이 있어 저렇게 추근대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키엘 도일의 붉은색 눈동자를 보았다.
‘뭔가 있군.’
역시나 녀석의 눈은 차가웠다.
‘하긴 세이렌까지 경험한 녀석이 하프 엘프에 저렇게 빠진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만약 진짜였다면 자존심에 상처 입은 세이렌들이 루키엘을 죽이려 들 거다.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대충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진짜로 자리를 뜨려 했다.
이대로 여기 계속 있다간, 남자들의 살기 가득한 질투에 숨 막혀 죽을 거 같거든.
그 대상이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하며, 뒤돌아 교수실로 가려 할 때였다.
“아! 마침 저기 있군요, 루카스 교수!! 당장 이쪽으로 오시오!”
루키엘 녀석이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무시할까?’
찰나의 순간, 뒤돌아볼지, 그냥 무시하고 갈지에 대해 숱한 고민을 했다.
“루카스 교수!!”
다시 한번 루키엘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후회할 것을 알면서 뒤돌아봤다.
역시나 숨 막히는 수컷들의 시선이 나를 압박한다.
“제 후배 교수인 루카스 교수입니다. 저자가 데이지 교수님을 안내해 줄 겁니다.”
‘뭐, 이 새끼야?’
내가 죽일 듯이 루키엘을 노려보자, 루키엘이 제발 눈치껏 따라 달라는 눈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