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01
101. 담임을 내놔라. 정령을 내놔라
루키엘 녀석의 애원(?)에 못 이겨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어디까지 안내하면 됩.니.까?”
“하.하.하. 1학년들 정령 친화력을 검사한다고 하시니, 교실로 안내하면 돼
“알겠습니다. 좀 이따 뵙시다. 루.키.엘. 교.수.님. 까드득…….”
“…….”
루키엘이 내 시선을 피해 먼 산을 본다.
‘이 어그로 어쩔 건데?!’
순식간에 루키엘에게 쏠려 있던 관심(?)이 내게로 몰렸다.
“일단 가시죠, 아프릴레 교수님.”
“흠흠! 혼자 갈 수 있는데…….”
내 말에 이 모든 일의 원흉이 감히 튕긴다.
저런 밀당하는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니란 말씀.
“그럼 이 인파를 뚫고 홀로 가시든가요.”
그녀의 예상과 달리 내가 흔쾌히 받아쳤다.
“흐음?!”
그녀는 당황했는지 잠시 멈칫했다.
“……흥! 안내나 하시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이쪽으로.”
속으로 루키엘을 욕하면서 데이지를 옆에 두고 앞장섰다.
많은 인파가 나와 데이지를 노려본다. 하지만 감히 앞으로 나서서 막진 않았다.
길을 막을 명분도 없거니와, 전에 아서를 개 패듯 팼다는 소문이 이럴 땐 도움이 되었다.
“같이 가요~ 루카스 교수님!!”
내 기분도 모르는지 아서가 신나게 내 뒤를 쫓는다.
제법 걸었을까?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심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지, 걷기만 했는데도 진이 다 빠졌다.
“도착했습니다. 어느 반부터 도실 겁니까?”
내 말에 시큰둥하던 데이지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알트 반부터 시작하죠.”
“그거 잘됐군요. 알트 반은 제가 담임을 맡은 반입니다. 같이 들어가면 되겠군요.”
“……당신이 알트 반 담임이라고요?”
“예, 무슨 문제라도?”
“알트 반에 로지 학생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렌슬렛 영애도, 제니라는 학생도, 폰테임의 영애도 알트 반이죠?”
“예, 맞습니다.”
데이지의 말을 들으니 새삼 내가 맡은 반의 구성이 어마무시하다.
‘괜히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흐음……. 그렇단 말이죠?”
내 말을 들은 데이지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찌푸린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팔짱 낀 그녀의 상체에 시선이 간다.
팔짱을 끼니까, 그녀의 D컵 가슴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아서, 이 새끼 때문에 괜히 의식하게 되잖아!’
그딴 말을 괜히 들어서!
‘세레나데와 세이나는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주말에 그랑블루를 타고 방문해 봐야지.’
이 여자의 흉부보다 더 공격적인 흉부도 본 나다.
나는 드라센 제도에 있을 그녀들을 그리며 애써 참았다.
“알트 반이 부담스럽다면 저희 반부터 들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와 데이지 사이의 기류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일까? 아서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학생들 모두가 아프릴레 교수님을 열렬히 환영할 겁니다!”
마치 “기회는 이때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됐어요.”
아서의 외침이 무색하게 데이지는 차갑게 거절했다.
“네! 네…….”
바로 시무룩해지는 아서.
그가 시무룩하든 말든 데이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올려다본다.
여자치곤 키가 크지만 180 중후반인 내 키에 비하면 작다.
즉, 나와 시선을 마주하려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매너 다리로 눈높이를 맞춰 줄 정도로 착한 놈은 아니다.
‘이노나 제인, 세레나데 정도라면 해 주겠지만.’
나는 어떤 동요도 없이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은 기분 탓일까?
“흠흠!”
데이지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더니 헛기침을 했다.
“알트 반의 담임 자리, 저한테 넘기세요.”
그리고 헛소리를 내뱉었다.
“대신 저의 조교수 자리를 줄게요. 추가로 알트 반의 부담임 자리는 인정해 드리죠.”
자기 딴에는 꽤 매력적인 제안이라 생각하나 보다.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담임 자리는 교수들끼리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총장님과 학부장님 그리고 아카데미 이사회를 거쳐……라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1안.
“뭐라는 거야?”
그냥 거절해 버리는 2안.
고민할 것도 없이, 뇌의 필터도 거치지 않고 2안이 나와 버렸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후딱 친화력 검사나 하세요.”
주머니에 소금이 있었다면 당장 면상에 뿌렸을 것이다.
“뭐, 뭐?!”
루카스 교수의 말에 데이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말했는지 생각했다.
‘잘못 전달된 말은 없어.’
남들은 하고 싶어 안달인 자신의 조교수 자리다.
그것도 모자라 부담임 자리까지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하루 중 절반을 아름다운 미녀 교수와 붙어 있을 수 있다.
또 자신의 인맥은 어떠한가? 잘만 하면 왕실이나 고위 귀족과 연을 틀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거절하는 것도 모자라 이토록 무례하다니!
보통 남자들이라면 헤헤거리면서 최대한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례한 남자는 몇 안 됐다.
“당신, 감히 이러고도!”
데이지의 얼굴이 분노와 치욕에 붉어졌다.
그런 데이지를 보면서 나야말로 기가 찼다.
‘뭔 자신감이지?’
그딴 제안을 내가 받아 줄 거라 생각한 건가?
“아프릴레 교수님! 담임 자리가 필요하시면 저희 반 담임이라도…….”
그때 아서가 또 눈치 없게 끼어들었다.
데이지는 그런 아서가 안중에도 없었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
나도 슬슬 이 귀찮은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너는, 너희 반에 가서 수업이나 진행해!”
빠악!
“끄악!”
가장 먼저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리고 옆에서 씩씩거리는 데이지를 뻐엉, 하고 발로 찼다.
“그쪽도 그만 씩씩거리고 반에나 들어가시고.”
“꺄악!”
내 발길질에 그녀의 몸이 닫혀 있던 알트 반 문과 부딪쳤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딪친 문이 열렸다.
그렇게 데이지가 알트 반으로 넘어지다시피 들어가 버렸다.
이대로 뒀다간 학생들 앞에서 추하게 넘어지게 될 터.
꽈악!
그런 데이지의 로브 뒷덜미를 급히 잡았다.
“끄악!”
덕분에 완전히 넘어지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학생들 앞에서 뒷덜미가 잡힌 꼴이 되었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옷을 놓았고, 데이지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는 연단에 섰다.
“…….”
학생들 앞이라 내게 뭐라 대들지도 못하는 그녀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노려보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다.
그러든 말든.
“제국에 파견 가셨던 데이지 아프릴레 교수님이 오늘 막 오셨다. 전공은 정령학이다. 너희들의 정령 친화도를 검사한다고 하니까 협조하도록.”
내가 데이지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크흠, 흐음! 데이지 아프릴레라고 해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가 표정을 싹 바꾸고는 학생들에게 인사한다.
정령 친화력 검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당 1분 정도?
유독 로지와 제인을 검사할 때는 5분 정도 소요된 것 같았다.
검사가 끝나고 데이지가 복도로 나왔다.
나 또한 그래도 배웅은 해 줘야 할 거 같아 함께 복도로 나왔다.
“우리 반에도 정령 친화력이 있는 애들이 있소?”
어느덧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투는 존대에서 하오체로 바뀐 상태다.
“…….”
내 물음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씹힌 건가?’
데이지는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거긴 나가는 방향인데? 베이 반은 이쪽이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데이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히익!!”
내 손이 그녀의 몸에 닿자, 그녀가 갑자기 몸을 크게 떨었다.
‘뭐지? 누가 몸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나?’
“아, 실례했…….”
그녀의 격한 반응에 내가 사과하기도 전에, 데이지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다.
“실프!!”
소환된 바람의 정령은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한 투명한 정령이었다.
“바람의 칼날로 저 사람을 베어 버려!”
데이지가 실프를 향해 발작하듯이 공격을 명했다.
“이 여자가 하다, 하다…….”
고작 어깨에 손 닿았다고 이딴 반응을 보이다니.
이쯤 되면 이걸 명분 삼아 복수(?)를 하겠다는 것으로 봐야겠지?
‘원래 이런 캐릭터였던가? 하긴, 원작은 학생인 로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됐으니…….’
이 정령학 여교수는 원작에서는 큰 비중도 없던 인물이다.
얼마나 비중이 없었으면, 좀 예쁘고 능력만 있어도 서브 히로인 타이틀을 주는 원작에서도 서브 히로인이 되지 못했을까?
그저 가끔 다른 교수들과 함께 등장하는 미모의 여교수 정도였다.
‘학생들 앞에선 아까처럼 필사적으로 연기를 했었나 보군’
어쩌면 내가 이 여자의 본성을 아는, 아카데미의 몇 안 되는 사람일지도?
나는 실프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 마법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프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실프, 공격해! 공격하라고!!”
하지만 실프는 데이지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복도에 데이지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만약 창문과 문이 방음 인챈트가 걸리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볼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저게 실프야? 하급 정령은 귀엽게 생겼네?’
전에, 세레나데가 물의 정령을 소환하는 것은 본 적 있다.
바람의 정령도 본 적 있다.
하지만 그때 본 정령들은 하나같이 중급 이상의 우락부락한 정령들이다.
이렇게 작고 등급 낮은 정령은 처음 본다.
“안녕, 이름이 뭐니?”
나는 나를 전혀 공격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실프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실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주인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니?”
실프가 나와 눈도 못 맞추면서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무서워하는 거야, 부끄러워하는 거야?’
여하튼 주인과 달리 적의는 없어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정령을 만진다고?!”
데이지가 나와 실프를 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데이지의 얼굴을 보니 좀 더 골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럽게 웃으면서 정령에게 물었다.
“저 성질 괴팍한 주인 버리고 나에게 올래?”
분명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끄덕, 끄덕.
‘어?!’
놀랍게도 실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이내 쓕! 하고 사라졌다.
“무슨 짓이야! 내 정령에게 무슨……!”
데이지가 경악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든다.
나는 갑자기 사라진 실프에 의아함을 느꼈다.
“실프……?”
조심스레 실프를 불렀다.
―부르셨어요, 주인님!
내 목소리와 함께 실프가 다시 슉! 하더니 소환됐다.
“!!”
데이지는 물론, 나도 깜짝 놀랐다.
‘분명 드라센에 있을 때는 실패했었는데?’
드라센에 있을 때, 세이렌들이 부리던 정령들을 보곤 나도 호기심 삼아 정령과 계약을 해 봤다.
그랬지만 실패했다.
세레나데 말로는 정령들이 부담스러워한다나, 뭐라나?
그랬는데…….
‘그럼 얘는 내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건가?’
나는 내 머리 주변을 슝슝 떠다니는 실프를 보았다.
그리고 데이지는 내게 빼앗긴 실프를 보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실프? 실프! 응답해, 실프으!!”
데이지가 실프를 계속 불렀으나 실프는 끝내 소환되지 않았다.
“내 정령! 내 정령을 돌려줘!! 이 나쁜 자식아아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반쯤 실성한 데이지가 내 옷깃을 붙잡고 엉엉 울며 매달렸다.
“으아아아앙!! 실프! 내가 잘못했어……. 돌아와!!”
어찌나 크게 우는지 방음 처리된 각 교실의 창문과 문이 걱정될 정도다.
“뭐든지 할게! 내 정령을 돌려 줘……. 제발!!”
데이지는 장난감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 뿐이다.
그녀는 땅의 정령도 소환할 수 있지만, 그랬다간 또 뺏길 거 같아 소환하지 못했다.
“내가 돌려주고 싶어도 실프가 싫다는데? 그치, 실프?”
내 말에 실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실프의 태도에 데이지가 더더욱 충격받은 모습이다.
“이건…… 이건…… 꿈이야……. 아아……!”
충격을 받은 데이지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비틀비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으으응…….”
바닥에 주저앉은 데이지는 이윽고 실신해 버렸다.
“…….”
나는 말 없이 한숨을 쉬고는, 실신한 데이지를 오른쪽 어깨에 짐짝처럼 들었다.
그리고 교수실로 향했다.
그런 내 뒤를 실프가 졸졸 따랐다.
―마스터, 내 전 주인 어떻게 하게요? 덮치게요?
실프가 데이지를 들고 방으로 가는 나를 보며 순진하게 물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정령에게 뭘 가르친 거야? 이러니 하급 정령에게 버림당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