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03
103. 포식의 계절(1)
기분 나쁘다. 차라리 몬스터의 살기를 받아 내고 말지.
내 생각 하면서 침 흘리기만 해 봐라!
나를 보면서 상기된 얼굴로 침까지 흘리는 것을 보니 살짝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아스카, 쟤 때문에 수업 더 못 하겠다…….’
한계다. 버틸 수가 없다!
마침 점심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평소보다 수업을 일찍 끝내기로 했다.
“크흠, 수업은 이쯤 하고, 다들 조용히 있다가 식사하러 가도록.”
“와아아아!”
내 말에 학생들이 다들 좋아한다.
심지어 모범생인 제인까지도 꺅꺅 좋아한다.
어느 세계를 가나, 수업 일찍 끝나는 것은 다들 반기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학생들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왔다.
‘오늘은 뭘 먹을까나?’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끼면서, 아카데미의 교수 식당으로 향했다.
“저어…… 루카스 교수님?”
뒤에서 이젠 그만 좀 들었으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데자뷔를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또 뭔데?”
이제는 정까지 드는 아서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식사하러 가십니까?”
“……어.”
그렇게 물어보는 아서에게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풍긴다.
“그……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그런데 같이 식사라도…….”
“하아, 그래 가지.”
어디서 봤나 했더니 직장이나 학교에서 보았던 아싸의 기운이 아서에게서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녀석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어서 승낙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늘 교수실에서 혼자 밥 먹는 게 힘들었거든요.”
역시나인가?
근데 왜 혼자 밥 먹는 것을 싫어하지?
혼자 먹으면 남들 밥 먹는 속도 맞춰 줄 필요도 없고, 메뉴 선택도 눈치 안 봐도 된다.
밥값 내는 것도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지구에 있을 때, 나는 오히려 혼자 밥 먹는 애들이 부러웠는데.
이 궁금증을 입 밖으로 냈다간, 아무리 아서라도 성질 낼 것 같아 본능적으로 참았다.
“루키엘 교수님이 먼저 와 계시는군요.”
식당으로 향하니 루키엘이 식당 구석에 앉아 있었다.
녀석도 마법사라서 그런지 혼자 밥 먹는 거에 큰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그나저나 혼자? 데이지는 어쩌고?’
나는 혀를 차면서 루키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벌써 차였냐?”
“무, 무, 무, 무슨 소립니까아!!”
격하게 반응하는 루키엘.
“그랬군. 임무 실패인가?”
“아니거든요!! 그냥 쉬고 싶다고 해서 여교수 숙소로 안내해 주고 온 길입니다!”
“그래, 알았어. 힘내.”
“아오오오!! 진짜 안 차였다니까요!!”
진심으로 억울한 루키엘이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 아닌가?
억울한 루키엘과 달리 정황상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음식을 시키고 루키엘과 나, 아서가 식당에 앉았다.
루키엘은 겨울 사과가 들어간 북부식 닭구이 샐러드를 시켰고, 나는 지구의 돈가스와 비슷한 불꼬리 흑돼지 튀김을, 아서는 어울리지 않게 크림 파스타처럼 생긴 하얀 소스가 들어간 면 요리를 받아 왔다.
“그래서, 나에게 할 말이 뭔데?”
첫 번째 고기를 음미하면서 아서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아서가 포크에 면을 감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직 학기 초지만 지금부터 시험 문제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세계의 아카데미는 중간, 기말고사 대신, 방학 한 달 전에 치르는 대대적인 시험이 있다.
필기와 실기 시험 등이 있기 때문에, 교수들 대부분은 학기 초부터 미리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걸 네가 왜……?”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너, 전공이 행정이었냐?”
“지금까지 모르고 계셨습니까?!”
아서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흠! 알고 있었어. 그냥 장난쳐 본 거야.”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럼 이따 행정학부 학부장님을 찾아뵙고서 의논하자.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렸네.”
내 말에 아서가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관심 없는 것도 능력이지…….”
옆에 있던 루키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서가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행정학부 학부장이 접니다만?”
“……?”
아서의 입에서 나온 말.
“……!”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 정도 걸렸다.
“……네가 아카데미 행정학부 학부장이라고?”
“에휴…….”
내 물음에 옆에 있던 루키엘이 나직하게 한숨을 쉰다.
“허허허허……. 하아…….”
아서도 그런 나를 보곤 반쯤 해탈했는지, 허허 웃다가 한숨으로 변했다.
‘그래서 처음 만나자마자 도발한 거구나?’
낙하산에 싹수없어 보이는 후배 교수 길들이기였다, 이거지?
이제야 첫날 아서가 왜 나한테 그렇게 무작정 시비를 걸었는지 알 거 같았다.
그나저나 행정학부 학부장이라니.
“……이제 와서 존대 받을 생각은 맙시다. 그러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왔어.”
“기대도 안 했습니다…….”
5분 전의 아서와 지금의 아서는 뭔가 달랐다.
‘저 모지리가 학부장이라니? 여기, 북부 최고의 아카데미 아니었어?’
무엇보다 룬-아르미 아카데미의 수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시험 준비는 보통 어떻게 하고 어떤 식으로 시험을 보는데?”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아서에게 시험에 대해 물었다.
‘늘 시험을 치러만 봤지, 시험 문제를 내 본 적이……. 아, 인사팀에 있을 때 몇 번 있긴 했구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음에도 지구에서의 기억들이 꿈속 얘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득한 기분을 느끼는 사이, 아서가 시험에 대해 설명했다.
“뭐, 별거 없습니다. 실기 시험이랑 필기시험 그리고 논문, 이렇게 세 가지를 봅니다. 당일 날 그 자리서 보는 것은 필기시험뿐이고. 실기랑 논문은 주제를 던져 주고 기한 내로 받는 과제 형식입니다.”
‘재밌겠는데?’
아서의 말에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옥이겠지만.
“그럼 보통 지금부터 어떤 식으로 준비하지?”
“역대 시험들을 사례집으로 모아 놓은 게 있습니다. 그걸 참고해서 냅니다.”
‘여기도 족보 같은 게 있나?’
“이번 주말에 다른 행정학 교수들과 미팅을 가질 생각입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뭐, 상관없어. 그때로 하지.”
주말에 렌슬렛에 가서 학부모 상담 핑계로 이노와 데이트나 하려 했더니만, 다음 주로 미뤄야겠다.
* * *
하루가 저문 늦은 밤, 부유한 학생들을 위한 특급 남자 기숙사.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를 정점을 찍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로지의 방이었다.
개학 첫날부터 로지의 방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분위기가 풍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났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이 방문 앞만 지나가면 누구나 소름 돋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이 기숙사의 하인들은 로지의 방을 청소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흑마법을 익힌 학생이다, 악마의 방이다……와 같은 괴소문이 개학한 지 며칠도 안 돼 퍼진 상태였다.
하지만 기숙사의 사감은 이런 모든 상황을 외면했다.
처음에 로지를 손봐 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고학년 남학생들도 벼르기만 할 뿐이다.
최근 로지를 안 좋게 보던 귀족 학생 넷이 크게 다쳐 입원한 사건 때문이다.
단순히 입원만 한 게 아니라, 그들의 가문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로지가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있다.
그래서 다들 로지를 안 좋게 보면서도, 분노 조절은 아주 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닥쳐!”
방음 인챈트가 안 되어 있었다면, 기숙사 전체를 울렸을 외침이 로지의 입에서 나왔다.
―–●○◆○○■■–■■.
하지만 그런 로지의 외침을 놀리기라도 하듯, 그의 머릿속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가 울렸다.
“시끄러워!”
로지 또한 지지 않고 그 목소리, 그 기운에 저항했다.
“이번에야말로…….!”
낮에는 의욕 없이 피곤한 모습을 보이던 로지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의 얼굴, 몸, 목소리, 기운이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힘이 넘친다.
그럴수록 머릿속의 목소리도 더 커지고 괴성을 질렀다.
―!!–●●●●-○◆○○■■–■■—?!!!
로지가 발광하면 할수록 그의 몸에서 불길한 검은 기운이 풀풀 풍긴다.
“커억, 끄윽……! 끄아아아!!”
로지의 입에서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고성이 나왔다.
그렇게 고성을 뱉는데도 목이 안 쉬는 게 신기할 정도.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이 흘렀을까?
달도 기울고 새벽닭이 목청을 가다듬을 때, 그의 몸에서 환한 빛과 함께 검은 기운이 파앗! 하고 소멸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허억, 허억, 허어…….”
로지의 얼굴이 다시 평소처럼 변했다. 의욕이 없는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입이 진하게 웃고 있다는 것이다.
로지의 소리 없는 웃음은 새벽의 고요함과 묘하게 잘 어울렸고, 그러다 동이 틀 무렵이 되었다.
우두두둑.
지지지직.
로지의 몸에서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거북한 소리가 났다.
닭이 하루의 출발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냈고, 그와 동시에 로지의 앞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등의 날개뼈에선 녹색 깃털로 된 커다란 한 쌍의 날개가 돋았다.
송곳니가 창끝처럼 뾰족하게 커졌고, 꼬리뼈에서도 녹색 비늘로 감싸인 단창 길이의 꼬리가 자랐다.
손톱과 발톱 또한 라이칸슬로프의 손발처럼 크고 위협적으로 자랐다.
머리에 난 뿔, 등에 난 날개, 손과 발의 발톱 모두 녹금색 빛을 발광했다.
―크르르르…….
로지의 입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그릉 소리가 새어 나왔다.
청염으로 활활 타오르는 로지스트의 두 눈은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만 같다.
그의 시선이 해가 비치는 창문을 향했다.
그때 창문을 비추던 햇빛이 인영에 가렸다.
“드디어 각성에 성공하셨군요.”
그 인영의 입에서 감탄 섞인 말이 나왔다.
―황녀와 재상에게 감사한다고 전하도록.
“직접 하시지 그래요? 저는 학교 일 때문에 바쁘거든요.”
―담임도 아니면서 뭐가 바쁘다는 거지?
각성한 로지스트의 위협적이고 성스러운 얼굴에 비웃음이 잠깐 드러났다.
“루카스, 그 인간이 안 주는 걸 어떻게 해요?! 무엇보다 내 실프를…….”
―실프가 뭐?
“아니에요. 아무것도.”
실프를 빼앗긴 일을 생각하자 데이지는 울컥 눈물이 솟는 것을 간신히 눌렀다.
‘도대체 그때 그건 뭐였을까?’
루카스가 데이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데이지는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
‘너무 깨끗하고 따듯했어.’
몸과 영혼이 정화되어 소멸될 것만 같았다.
그 순수함에 본능적으로 실프가 소환됐고, 결국 실프를 빼앗겼다.
―여하튼 루카스, 그자를 잘 감시해. 유혹하면 더 좋고. 미인계는 그쪽 전문 아닌가?
로지의 말에 데이지는 속으로 ‘그건 힘들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저도 시도는 해 봤는데, 안 넘어와요……. 조교수 자리와 부담임까지 제안했는데 거절하더군요. 그것도 무례하게.”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린 데이지는 말하면서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하긴, 어지간한 유혹은 통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최선을 다해 봐.
자존심 상해 하는 데이지를 보며 로지가 피식 웃었다.
‘내 누이가 괜히 반한 게 아니지.’
루카스나 로니아드라는 것은 로지도 첫날부터 눈치챘다.
로니아드, 객관적으로 봐도 괜찮은 남자다. 훗날 누이의 부마로 인정해도 괜찮을 정도로.
물론 여공작과의 관계가 걸렸지만, 여공작이야 공식적으론 이뤄질 수 없는 사이 아닌가?
‘문제는 그자의 과거야.’
아직도 의심스러운 로니아드의 정체만 아니라면, 제인과 로니아드, 둘의 관계를 응원해 줬을 것이다.
“그나저나 수업에 안 가요?”
데이지가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오늘 하루는 빠져야지. 할 일이 있어.
로지는 기숙사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에 시선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