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09
109. 원작에서 좋은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1)
그녀의 물음에 나는 순간 벙쪘다.
‘이 여자 뭔데? 차원 이동 막 그런 거야? 설마 나 말고 지구에서 빙의한 사람이 더 있던 거야?’
지구라고 해도 한국 사람일 것이다. 이 소설이 해외로 출간했다는 얘긴 못 들었거든.
그러면서 해외여행 중 한국 사람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추상적으로 떠보자.’
괜히 지구에서 왔냐고 먼저 말했다가 다른 얘기면 난감해지지.
무엇보다 나를 떠보는 것일 수도 있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제가 태어났던 고향을 말하자면 회색빛이 인상적이었던 곳이었죠.”
마리아 총장의 회색빛 머리카락을 보고서 떠올라 한 말이었다.
‘난개발로 동네 전체가 콘크리트 회색빛이긴 했지. 미세먼지로 하늘도 회색이었고.’
틀린 말은 아니다.
‘렌슬렛도 북부 도시라서 회색빛이 좀 많은 편이었지.’
나는 말을 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내 말에 마리아는 뭔가 눈치챘는지 눈을 빛낸다.
그런데 그 눈빛이 반가움보다는 경계 그 자체였다.
최근 앨리스를 통해 보았던 그 눈빛이다.
‘왜 저렇게 경계해?’
같은 지구 출신이라면 반가워야 하는 거 아닌가?
“제 고향을 얘기해 줄게요.”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이 세계에서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먼 곳에서 왔어요.”
그쪽에서 먼저 패를 보여 준다면 나야 고맙지.
“그 세계는 회색으로 가득했죠. 종말을 목도한 세계였어요.”
마리아의 말을 듣던 나는 속으로 ‘지구 얘기 안 꺼내길 잘했다’라며 크게 안도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가 멸망의 나팔을 불던 세계. 그 존재는 드라센이라는 해골용을 탔고, 사천왕이라는 괴물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거대한 회색이었어요.”
“……?!”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예사롭지 않은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필연의 종말. 그 존재의 회색 날개가 세상을 잿빛으로 물들였죠.”
말을 하는 마리아의 두 눈에 아득함과 절망이 공존했다.
“은발이었던 제 머리는 회색빛이 되었고, 보랏빛 눈동자는 흑색이 되었죠.”
마리아의 말을 들을수록 내 표정은 굳어져 갔다.
“저항군이었던 저의 스승은 그 세계의 마지막 남은 대마도사였죠.”
마리아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든지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당시 저는 전투 중에 커다란 폭발에 휘말렸어요.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었는데, 스승님께서 큰 희생을 치르시고 저를 살려 주셨죠.”
설마? 농담이겠지?
그녀의 말이 계속될수록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멸망을 목도한 세상은 살아남은 자에게 더욱 가혹했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세계에 희망이 없다고 확신했어요. 그리하여 남은 인류는 도박에 가까운 시도를 했고, 저는 모두의 염원을 안고 간신히 이 세계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상에 젖었던 마리아의 눈이 현실로 돌아온 듯하다.
“과거로. 모든 것을 되돌려 놓기 위해.”
그녀의 말에 나는 마리아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 그렇다면 설마?”
거의 확신에 가까운 내 물음에 마리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네, 저의 원래 이름은 아리아드네 폰 렌슬렛입니다.”
마리아 교수의 정체는 원작 소설에서 죽은 줄 알았던 메인 히로인, 아리아였다.
원작의 완결 이후의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죠. 추상적으로 회색빛이라고 답변하셨던데. 로니아드, 당신도 미래에서 온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난감해졌다.
‘원작의 완결까지는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이세계는 나와 그녀가 알던 원작과는 차이가 크게 벌어졌어.’
내가 지구에서 왔다고, 여기가 소설 속이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애초에 믿지도 않을 테고.
‘당장 이 여자가 미래에서 왔다는 말을 냉큼 믿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물론 나는 원작의 내용을 아는 빙의자다.
따라서 속으로는 신빙성 있다고 생각한다.
‘속으로만.’
짧은 시간,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저보고 당신이 미래에서 온 아리아 학생이라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연기하는 것인가요? 이거, 실망이네요. 저는 나름 저의 치명적인 패를 공유한 것인데…….”
마리아가 인상을 구기며 내게 말했다.
“율카네스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마리아의 태도를 본 나는 행동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
만약 마리아가 진짜로 미래에서 온, 원작의 완결 이후의 세계에서 온 존재라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 맞다.
“마리아 총장님, 당신의 말이 맞다고 쳐도, 저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왜죠?”
“그게…… 실은 제가 과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체스카드-폰테임 반정 때 이전의 기억이요.”
“처음 고향에 대해 회색빛이라고 얘기한 것은?”
“잃어버린 과거 중에서 그런 일부분만 짧게 기억이 납니다. 자세히는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정도죠.”
내 말에 마리아의 눈썹에 힘이 들어갔다.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짜였나요?”
“네, 진짜입니다.”
“흐음……. 차원 이동 중에 기억을 잃은 걸까?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던 건가?”
마리아는 혼잣말로 뭐라 중얼거렸고, 그런 마리아를 보면서 나도 질문을 했다.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네, 말하세요.”
“제가 미래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내 질문에 마리아는 확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 기억에, 렌슬렛에 로니아드 칸브라만이라는 공작 부인의 비서관은 없었어요.”
마리아는 살짝 웃었다.
“다른 것은 제 기억과 전부 일치했어요. 오직 당신의 존재와 당신으로 인해 바뀌는 사건들만이 톡톡 튀었죠.”
“본래 마리아 총장님이 알던 역사는 어땠습니까? 그러니까…… 종말 이전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내 물음에 마리아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리고 멍하니 창밖의 정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이든에 의해 어머니 이노가 죽고, 왕녀 제인은…….”
그녀의 입에서 내가 알던 원작의 설정이 나왔다.
‘100퍼센트군.’
이제 의심할 것도 없다. 물론 이를 무조건 믿는다고 티를 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나는 기억을 잃은 놈이니까.
“일단 마리아, 당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해 보죠.”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미래에서는 혼자만 오신 겁니까?”
“미래에서는 저 혼자만 왔습니다. 시간 이동은 대마도사인 스승님조차도 저 하나만 간신히 보낼 정도로 어려운 마법이었거든요. 도착한 시간대는 로니아드 당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반정 당시입니다.”
“반정 당시 아르미다츠 왕궁에 도착했다는 겁니까?”
“아니요. 안타깝게도 제가 도착했던 장소는 요정의 숲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궁금하다. 원작의 완결 이후의 세계가.
분명 여지없이 폭사로 죽었던 아리아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지금의 아리아와 전혀 다른데? 변신 마법의 흔적도 없고.’
그러다 떠오른 생각 하나.
‘설마 마법 인형?’
아리아의 영혼을 마법 인형에 부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마법 인형이야 타르타트의 전매특허지만, 율카네스라면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어.’
대마도사, 그것도 미래의 율카네스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대충 마리아의 상황을 추측한 나는 그녀의 존재 정의부터 구분 지으려 했다.
“그나저나 아리아보다는 마리아 총장님이라고 계속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제가 과거로 온 순간부터 아리아와 저는 전혀 별개의 존재니까요.”
“알겠습니다, 마리아.”
어느덧 나와 마리아는 데이지의 교수실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구석에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데이지와 로지스트가 있었다.
“걱정 마세요. 마법으로 좀 더 깊이 재웠으니까요.”
내가 중간중간 힐끗 그들을 보자 마리아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안심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저야 기억을 잃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당신은 힘과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시간 여행을 온 것 아닙니까? 중간중간 개입은 안 하셨습니까?”
“기억은 가지고 왔지만 힘은 아니었어요. 차원 파동이 달라 초기에는 개입도 불가능했고요.”
마리아는 그때를 떠올리는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현 차원이 저의 존재를, 제가 가진 영혼의 파동을 인정해 줄 때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마디로 제약이 많았다는 얘기다.
“요정의 숲에서 2년, 현자의 탑에서 8년, 북부에서 지금까지 제가 본격적으로 힘을 쓸 수 있게 된 때는 고작 3년 전부터예요.”
3년 전이면 내가 막 렌슬렛 공작령에 빙의해 이노와 썸을 타고 있던 때였다.
“어느 정도 힘을 찾고 제약이 사라졌을 때, 저는 가장 먼저 어머니, 이노를 구하려 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이든, 그 아버지라 불릴 자격도 없는 인간을 쥐새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죠.”
지켜보고 있었겠군.
“비록 다른 차원에서 온 나지만, 불우했던 과거를 고작 각성 따위를 위해 재연하고 싶진 않았어요. 아리아의 각성이야 제가 다른 방법으로 인도해 주면 됐고요.”
마리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눈으론 나를 계속 응시했다.
“하지만 뭔가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저 말입니까?”
“네, 당신의 존재. 제가 알던 기억이나 어떤 역사에서도 당신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존재했다고 해도 일개 평기사였겠죠.”
나를 보는 마리아의 두 눈에 다시금 경계가 서렸다.
“제약 때문에 어떤 개입도 하지 못하고 10년간 숲과 탑에 박혀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건 다 똑같은데 이 부분만 바뀌었다? 말이 안 됐죠.”
마리아의 검은 눈동자와 나의 붉은색 눈동자가 맞닿았다.
“고민 끝에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어요. 당신도 미래에서 온 존재라고.”
“하지만 시간 여행은 굉장히 힘들다고…….”
“그래요. 하지만 미래의 ‘그 존재’도 자신의 파편 하나 정도는 과거로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지구에서 봤던 어떤 영화가 떠올랐다.
‘이거 완전 〈터미네이터〉잖아?’
“하지만 로니아드 당신은 기억을 잃었죠. 그런 당신에 의해 무려 3년 전부터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거, 상황이 각종 오해와 추측으로 난잡해지는 것 같다.
“3년 전은 제가 힘을 되찾고 아리아와 완전 별개의 존재로 차원의 인정을 받은 때였어요. 그리고 당신 또한 비록 기억을 잃었다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죠.”
“하지만 제가 미래에서 온, 그 존재의 파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부 추측 아닙니까?”
“네, 추측이긴 합니다.”
당장 나도 이런 식으로 내 과거를 알게 되면 곤란해진다.
힘을 못 찾는단 말이다.
‘무엇보다 세레나데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 그녀가 살짝 언급했던 것과 지금 마리아가 얘기하는 나의 존재는 이질감이 커.’
정황상 소름 돋을 정도로 짜임새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추측이 쌓이자, 저는 원래 당신을 죽이려고 했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당신에 의해 행복해 하는 어머니와 아리아를 보았을 때…… 저는 당신을 지켜보기로 했죠.”
마리아의 말에 나는 속으로 뜨끔하는 심정이 들어 물었다.
“지켜봤다면 어디까지 지켜보신 겁니까?”
“거의 다요. 당신이 오스카에서 재림이니 화신이니 활약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드라센을 잡고.”
순간 마리아의 눈빛이 따갑게 변했다.
“세이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도.”
“…….”
어째 한기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