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12
112. 한번 빌런은 영원한 빌런(2)
아리아는 근래 마음에 드는 일이 별로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가던 로지는 동아리 담당 교수와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 중이었고, 경계 대상인 폰테임의 영애는 뭔 생각인지 뻔뻔하게 자신에게 들이댄다.
그리고 오늘은…….
“소개한다. 좀 늦었지만 오늘부로 입학한 카론이다. 뭐, 다들 누군지는 알 테지만.”
체스카드 왕실의 삼왕자인 카론이 입학한 것이었다. 심지어 같은 반이다.
과거 삼왕자의 아버지인 현 국왕에게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아리아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 카론 학생. 자기소개하고서 저기 빈 자리 중 아무 데나 가서 앉아라.”
로니아드, 여기서는 루카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담임 교수가 다른 학생들 대하듯 카론을 대한다.
“어…… 카론이라고 한다.”
삼왕자는 왕족인 자신에게조차 거침없이 대하는 루카스 교수에게 당황한 듯 보였다.
아리아는 당황하는 왕자의 모습만은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
방과 후, 아리아는 오늘도 평소처럼 늘 모이던 일행끼리 외출을 나왔다.
일행이라고 하면, 제인, 아스카, 앨리스 그리고 로지다.
“그…… 삼왕자께서는 왜?”
그런데 교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마치 아리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게, 내가 아카데미에 처음이라서 말이다. 혹시 불편하지 않다면 함께 다녀도 괜찮겠는가?”
불편하지, 당연히 불편하지.
삼왕자 카론의 말에 아리아를 비롯한 제인, 로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스카는 크게 신경 안 쓰는 모습이다.
“그럼요! 삼왕자 저하, 안 그래도 저희 일행에 늘 남자가 부족했거든요.”
반면, 앨리스는 본가로부터 뭔가 지시받은 게 있는지 웃는 얼굴로 카론을 환영한다.
아무리 껄끄러운 사이라도 상대는 왕족이다.
거기다 반장이기도 한 앨리스가 흔쾌히 허락까지 해 버린 상황.
다들 어색한 기분을 풀풀 풍기며 카론을 맞이했다.
특히 그런 카론을 보는 로지의 분위기가 유독 다크하다.
“아아, 너무 나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 또한 이 아카데미에서는 그대들과 똑같은 학생이니.”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체스카드 왕실 특유의 철면피인지, 카론은 서글서글 웃으며 대놓고 그를 불편해 하는 아리아, 제인, 로지에게 인사를 했다.
왕도 룬-아르미의 제일가는 고급 레스토랑, 정오의 축복.
본래라면 늘 가던 살롱에 가서 가벼운 디저트와 차를 마시려 했다.
하지만 간이 사교계라 불리는 살롱에 앨리스와 삼왕자가 함께 있다간 어떤 소문이 퍼질지 몰라 레스토랑으로 온 것이다.
“저기 설마 폰테임 영애랑…… 삼왕자 저하?”
“어머, 어머, 정말이야! 렌슬렛 영애도 있어!”
물론 여기도 그냥 넘어가긴 그른 것 같지만.
아무리 최근 연이은 현 국왕의 실정으로 왕권이 바닥이라 해도. 왕족은 왕족이다.
반정 직전에도 왕가의 방계로 대귀족의 지위를 누리고 있던 체스카드였다.
“이거 괜히 그대들의 시간을 뺏은 느낌이 들긴 하는군.”
카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
삼왕자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딱히? 아리아, 앨리스랑 다닐 때도 비슷하게 받던 시선이라서.”
조심스러워하는 카론을 향해 아스카가 말했다.
그런 아스카를 카론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왜? 뭐? 아카데미서는 그냥 똑같은 학생이라면서?”
카론의 시선을 받은 아스카가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아스카의 질문에 카론은 피식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폰테임 영애와 함께 다니는데 평범할 리가 없겠지.”
작게 중얼거린 카론은 밝게 웃으며 식탁에 앉은 모두를 둘러본다.
“나도 말투부터 고쳐야겠군. 아니, 고쳐야지.”
카론을 안 좋게 보던 세 사람은 속으로 ‘굳이 안 바꿔도 되는데?’라고 동시에 생각했다.
“스카이, 제니, 로지, 앨리스 그리고 아리아, 다들 불편해하지 말고 편하게 해, 편하게.”
그의 입에서 각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누구는 흠칫하고 누구는 불쾌해 하며 또 누구는 관심 없어 했다.
정작 앨리스 또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기색이다.
그럼에도 카론은 초인적인 뻔뻔함으로 그들을 대했다.
‘국왕으로부터 뭔가 지시를 받은 건가?’
아리아는 카론의 눈물 나는 분투를 보면서 왕자 노릇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지시를 받은 거지? 현재 왕국에서 가장 큰 경쟁자인 폰테임 때문에 앨리스에게 접근한 걸까?’
제인도 카론의 이런 행동을 나름 추측하고 있었다.
‘뭔가 다들 상태가 흥미진진한데?’
아스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짜증 나는데 죽여 버릴까?’
로지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그냥 폰테임 왕국을 세우지, 뭐 하러 귀찮게 차기 국왕으로 삼왕자를 세우려는 거지?’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웅, 우웅.
그때, 앨리스의 파우치에 있던 소형 마법 아티팩트가 조용히 진동한다.
이것은 가문에 일이 생겼을 때 울리는 소리.
서둘러 본가의 집사에게 무슨 일인지 마법 통신을 해야 할 듯싶었다.
“잠시 화장실 좀.”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앨리스가 사라지자, 카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삼왕자의 그런 태도에 다들 의아한 얼굴이다.
“내가 이렇게 무리를 해 가면서 그대들에게 접근한 이유는 폰테임 과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지.”
어느덧 카론의 말투는 이전의 거리감 있는 말투로 바뀌었다.
“사실상 폰테임과 우리 왕실은 오래전에 끝났어. 지금은 제국과의 관계보다도 더 적대적이야.”
앨리스가 사라지자 본격적으로 폰테임 가문을 까는 카론.
“나는 렌슬렛 영애, 당신과 협의를 하고 싶어 이렇게 접근했소.”
“저 말입니까?”
카론의 눈이 아리아의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물론, 과거 그대 가문과 우리 왕실, 정확히는 아바마마와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카론은 아리아의 차가운 눈빛을 받으며 꿋꿋이 말을 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드물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하지만 아리아 영애는 그사이 성숙해졌고, 더 이상 아바마마의 취향이…… 크흠! 이건 잊어 주시오.”
카론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여하튼 렌슬렛과 우리 왕실은 현재 공동의 적을 두고 있소. 바로 폰테임이지. 나는 렌슬렛 영애, 그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렇게 아카데미에 온 것이오.”
카론의 말에 아리아는 얼이 빠진 얼굴로 물었다.
“가까워지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죠?”
“예를 들어 나와 그대가 약혼이라도 맺…….”
삼왕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리아의 몸에서 나온 살벌한 기류가 그를 압도한다.
“크윽! 그렇게도 싫은가?”
카론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아리아의 태도를 흘려 넘겼다.
“말이 약혼이지, 그대가 원한다면 실제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되오!”
“그런 말은 렌슬렛 여공작이신 저희 어머니께 하세요.”
“그쪽은 아예 우리 쪽 사신은커녕 마법 통신도 안 받아 주니까 그렇지!”
“그딴 제안을 하는데 당연히 무시하겠죠!”
“아니!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나? 폰테임이 안 없어지면 렌슬렛도, 왕실도 끝이야!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자는 뜻이잖아!!”
카론은 아리아의 기세에도 밀리지 않고 할 말을 이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생각하시오, 렌슬렛 영애. 그렇게 감정적이어서 어떻게 차기 여공작이 되겠소?”
“그렇게 나오시니 더더욱 할 말이 없군요.”
아리아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나가고 싶은지, 반쯤 일어난 자세를 취했다.
“만약 대업이 성공하면! 왕실은 렌슬렛이 공국으로 독립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겠소!”
“흥! 공국이요? 차라리 마족의 말을 믿지, 폰테임이 사라지면 바로 우리 렌슬렛을 칠 생각인 거 모를 줄 아나?”
“진짜 답답하군! 원한다면 마나의 맹세도 해 줄 수 있소!”
삼왕자의 입에서 마나의 맹세까지 언급됐지만, 아리아는 전혀 솔깃하지 않았다.
아리아는 슬쩍 로지를 보았다.
혹시나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로지는 그저 카론을 노려볼 뿐이다.
카론이 그런 아리아와 로지의 관계를 잠깐이지만 유심히 보았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저희 렌슬렛은 변두리에 위치한 보잘것없는 영지예요. 현재 폰테임과 힘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이름뿐인 공작령이죠. 그런 저희와 동맹을 맺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거 같나요?”
아리아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진심인가? 영애는 본인의 영지가 가진 가치를 전혀 모르는군.”
아리아의 물음에, 카론은 지금까지 지었던 표정보다 더 황당한 얼굴을 했다.
“렌슬렛과 동맹을 맺으면 폰테임은 왕실 직할령과 렌슬렛 사이에 끼게 되네. 양면에 전선을 깔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렌슬렛은 현 체스카드 내에서 가장 발전한 영지네. 비록 인구가 적고 재물이 미약하나, 적은 인구와 부족한 재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렌슬렛의 행정력과 정책들은 마치 제국의 행정을 보는 느낌이야.”
기껏해야 “렌슬렛에는 대마도사가 있지 않나?” 정도의 답을 기대했던 아리아는 카론의 입에서 의외의 말들이 나오자 살짝 흥미를 보였다.
“무엇보다 렌슬렛에서 보유 중인 상비군, 그게 가장 큰 장점이네. 왕국 내의 어떤 영지도 수천 이상의 정예화된 상비군을 보유 중이지 않아. 심지어 그 상비군은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면서 실전 경험도 풍부하지.”
카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이 말랐는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수천의 상비군이라니 너무 저희를 과대평가하시는군요.”
“과대평가라고? 과소평가겠지.”
실제로 렌슬렛의 여공작 이노는 여공작이 된 후 하루도 빠짐없이 군사력을 늘리고 있었다.
그녀가 공작 위에 오르기 3년 전만 해도 기껏해야 1천을 간신히 넘었던 상비군이 지금은 예비대까지 합치면 1만이 넘었다.
매년 영지 1년 예산의 5할, 거기다 영약 사업으로 얻는 수익을 그대로 군사비에 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군대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옛 왕실의 왕녀.”
그 말에 알게 모르게 제인의 어깨가 움찔한다. 더불어 로지 또한 눈을 찌푸린다.
“렌슬렛에서 보유한 옛 왕실의 왕녀는 엄청난 정통성과 명분이지. 다들 알다시피, 귀족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옛 왕조를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꽤 많거든.”
어떻게 보면 체스카드는 이 부분을 노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리아는 생각했다.
‘정통성을 지닌 왕족과 두 번째 정통성을 지닌 현 왕실이 힘을 합친다. 거기에 대대로 개국 공신 가문이었던 공작 가문까지.’
이렇게까지만 된다면 평소 백성들 사이에서 음흉한 소문만 돌던 폰테임은 명분과 백성들의 지지에서 완전히 밀린다.
“일단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군. 뭐, 대마도사가 있다는 점도 있지만, 그 전력이야 뭐…….”
카론의 말을 들은 아리아는 생각보다 그와 왕실이 렌슬렛의 가치를 제대로 보고 있다고 여겼다.
‘누구지? 현 국왕은 아닐 테고.’
아리아는 눈앞의 삼왕자 카론을 다시 보았다.
‘체스카드 왕족 중 그나마 왕재에 적합하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어.’
아마도 눈앞의 삼왕자의 계획이 아닐까 했다.
“사실 과거에도 한 4년 전이었나? 이런 렌슬렛의 잠재력과 가치를 알고 아바마마께 말씀드린 적이 있지.”
삼왕자는 한숨을 쉬었다.
“당시 나는 렌슬렛이 옛 왕실의 왕자와 왕녀를 어떻게든 숨기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거든.”
그리고 아까보다 목소리를 조용히 깔았다.
“내가 어렸는데도 어쩐 일인지 아바마마께서는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 주셨고, 원래라면 4년 전에 영애와 내가 약혼을 해야 했소.”
이건 또 뭔 소린가?
“근데 그걸 눈치챈 폰테임에서 중간에서 개수작을 벌이더군. 덕분에 그대의 정략혼의 대상이 나에게서 아바마마로 바뀌었었지.”
너였냐!! 제인과 아리아가 속으로 카론에게 외쳤다.
당시 아리아와 현 국왕 카실의 정략결혼, 그 사건의 기원이 눈앞의 삼왕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다들 아는 지금 같은 상황이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