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16
116. 막간의 데이트
나는 내 손을 꼭 잡은 이노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약간의 화장술과 옷으로 신분을 숨긴 이노의 모습.
수수한 옷차림과 천연에 가까운 화장으로도 그녀의 미모를 가릴 순 없다.
어느덧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그녀의 외모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고 청순하다.
아리아나 아스카, 앨리스처럼 말도 안 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 질리지 않고 계속 빨려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이든, 이 고자 새끼는 이런 여자를 놔두고 왜 수도에서 지낸 거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나와 이노가 만들어 가는 끈적하고 붉은 분위기.
아마 오늘은 그녀와 더더욱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 시내만 아니었다면 입맞춤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루카스 교수님!”
그리고 그렇게 익은 분위기를 못 견디겠는지, 누군가가 나와 이노 사이에 끼어든다.
“카론을 암살할 거면 최대한 빨리 죽여 주세요!”
아리아였다.
경박한 모습의 딸을 본 이노의 눈썹이 엄해진다.
“아.리.아.”
뭔가를(?) 방해받은 이노가 엄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꾸짖는다.
“농담과 진담은 구분할 줄 알아야지. 아무리 미워도 지금 삼왕자는 로니, 아니, 루카스 교수님의 제자야.”
그런 이노의 모습에 아리아가 살짝 움찔한다.
“물론 나도 너 못지않게 체스카드 왕실을 증오한단다. 하지만 군주의 일은 늘 차갑고 계산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상비군을 늘리고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참고로 아리아 또한 시선을 끄는 미모를 가리기 위해 약간의 변장을 한 상태다.
“그러니 인내해라. 군주란 부모의 원수를 마주하고서도 웃으며 식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왕실에서 오는 사신과 마법 통신을 일절 씹는 그녀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지만…….’
물론 절대 입 밖으론 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1순위의 적은 폰테임이다. 체스카드는 2순위일 뿐이야.”
“…….”
이노의 말에 아리아는 뭔가 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그러니 방금 루카스 교수님이 한 말은 농담으로 한 얘기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농담은 아니었는데…….’
이노가 내 말을 재밌는 농담 정도로 받아들였나 보다.
아리아에게 한소리 한 이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아리아에게 보였던 엄한 눈과는 달리, 나를 향한 눈빛에는 부드러운 꿀이 뚝뚝 떨어진다.
“말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삼왕자를 어떻게 했다간, 일이 어느 방향으로 번질지 예상이 힘들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폰테임의 경우 알렉스까지, 체스카드는 국왕은 힘들더라도 카론까지는 어찌 해치울 수 있다.
둘 다 원작의 주요 빌런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후폭풍이 문제다.
‘괜히 마리아가 하지 않는 이유가 있지.’
이렇게 왕도의 시내를 함께 걸으니, 마리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만약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심정이려나?
“…….”
“뭘 그렇게 보십니까, 총장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키엘 교수님.”
루키엘과 함께 교재를 조사할 겸 시내로 나온 마리아는 빙긋 웃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루키엘의 눈에 지금 마리아는 뭐랄까, 굉장히 감동적인 연극을 보고 온 귀족 영애 같았다.
“아아…… 잠깐 전에 보았던 슬픈 연극이 떠올라서.”
“와! 총장님도 감성적인 부분이 있긴 하셨군요.”
“……??”
마리아는 지금까지 이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노와 함께 이렇게 데이트를 한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과거 이노와 만났어도 저택에서 만남을 가졌으니까.
“정말 잘 어울리는 부부십니다. 가운데는 따님이신가 보군요.”
“참 보기 좋습니다. 뭐랄까, 굉장히 부럽네요…….”
들르는 식당, 상점마다 나와 이노 그리고 아리아를 보기 좋은 가족으로 보는 듯했다.
나는 크게 부정하지 않고 웃어 넘겼고, 이노는 난감해 하면서도 은근히 행복해 했다.
참고로 아리아는 창피해 죽으려 했다.
“저기, 나는 그냥 따로 놀면 안 될까……요?”
견디다 못한 아리아가 내게 물었다.
아리아의 질문에 나는 이노를 슬쩍 보았다.
이노를 보는 나와 아리아의 눈빛이 은근히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안 돼. 요즘 같은 시국에 위험하게.”
하지만 이노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이노의 눈에도 약간의 아쉬움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결국 이노의 무언의 기세에 나는…….
“그래, 아리아. 위험하니깐 어쩔 수 없겠구나. 불편해도 네가 참으…….”
금방 항복하고 아리아에게 포기하라고 얘기하려던 찰나.
“허억!”
급히 이노와 아리아를 데리고 근처 상점 안으로 숨었다.
“무슨 일인데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이노가 어떨떨해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품에 안겨서 그런지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저것들이 왜 왕도에 있는 건데?”
내 말에 이노와 아리아가 내가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
“…….”
두 여자도 표정이 굳었다.
‘아스카, 제인, 로지, 앨리스 그리고 카론…….’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섯 명의 소년, 소녀들이 시내를 걷고 있었다.
“아리아, 아스카랑 제인은 이번 주말에 오스카에 잠깐 갔다 온다고 하지 않았니?”
“……맞아요.”
“근데 왜 여기에 있지?”
“그건 저도 모르죠! 어떻게 하죠? 만약 이렇게 셋이 있는 것을 들키면, 저는 쪽팔려 죽을지도 몰라요.”
“쪼, 쪽팔려? 아리아!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이 와중에도 자식 교육에 철저한 이노의 추궁에, 아리아가 나를 쳐다본다.
“…….”
“야! 내가 언제?”
황당해서 따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몇 번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교수실에서 아스카와 얘기할 때 종종 그런 말을 쓰긴 했다.
“아악!”
이노가 내 옆구리를 꼬집는다.
“이,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노.”
“이따가 봐요.”
나와 이노 그리고 아리아는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는 다섯 사람을 주시했다.
“앨리스 쟤는 왕도에 있는 저택에 머문다고 했는데? 로지는 기숙사에서 데이지와 있겠다고 했고.”
내 혼잣말에서 로지와 데이지가 함께 언급되자, 아리아의 어깨가 움찔한다.
나는 속으로 아차! 하면서도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그나저나 카론, 지금 가장 바쁘실 왕자님이 왜 저기 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상황.
“얘네 설마 이 상점으로 오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문제는 저 다섯이 이쪽으로 점점 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변장을 했다고 해도, 제인, 아스카, 로지, 앨리스에겐 금방 들킬 터.
이상하게도, 전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쿵쿵거린다.
“진짜 여기로 오잖아요!”
아리아가 작게 비명을 질렀고, 이노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지 심호흡을 한다.
‘어떻게 하지?’
나는 짧게 고민했고, 저들이 마침내 상점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순간.
“가랏! 아리아!!”
“에? 꺄악!”
나는 아리아를 상점 문밖으로 밀었다.
나로 인해 아리아가 상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 아리아?”
들어가려던 상점에서 갑자기 아리아가 튀어나오자, 제인과 아스카가 놀라면서도 그녀를 반가워한다.
“여긴 어쩐 일이야?”
“하하하하…… 아, 안녕?”
“아리아, 너 오늘은 다른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소녀들이 꺄르르 하면서 아리아의 합류를 환영했다.
처음 내 행동에 뭐 하는 짓이냐며 놀라던 이노 또한, 어느새 딸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멍하니 볼 뿐이다.
“아아,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 그나저나 다들 어디 가는 길이야?”
“곧 학기 말 시험이잖아? 관련 교재가 있는지 찾고 있었지.”
“지금은 이 서점에 괜찮은 게 있나 하고 들어가려던 참이었고.”
“그렇다면 여긴 없어. 내가 방금 보고 왔거든.”
제인과 아스카의 말에 아리아는 지혜롭게 임기응변을 보였다.
“아리아는 임기응변이 뛰어난 여공작이 되겠어.”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른 서점으로 가 볼까?”
아스카가 말했다.
“식사는 했니, 아리아?”
제인이 물었다.
“아니, 아직 안 했어!”
거짓말이다. 분명 나와 이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만,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평소처럼 편히 먹지 못했을 뿐.
아리아가 아직 식사를 못 했다고 말하자, 가만히 있던 앨리스가 제안한다.
“그럼~ 가기 전에 샬롱에서 디저트 어때? 생크림 케이크가 새로 나왔다고 해.”
“좋아!”
“나쁘지 않네.”
“입가심으로 차와 케이크는 진리지.”
앨리스의 제안에 소녀들이 모처럼 동의했다.
“디저트? 너희 방금 전에 식당에서 몇 인분을…….”
황당해 하는 로지의 목소리도 들렸고, 카론은 그저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말없이 볼 뿐이다.
“뭐래? 식사용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거든?”
아스카가 그런 로지에게 한마디를 날렸다.
“그나저나 아리아, 변장까지 하고서 시내를 돌아다닌 거야?”
뒤늦게 아리아가 변장을 했다는 것을 알아챈 제인이 물었다.
“응, 난 앨리스처럼 남정네들의 시선을 즐기는 취미는 없거든. 변장 안 하고 혼자 다니면 굉장히 피곤해.”
아리아가 자신을 언급하자, 앨리스가 웃으면서 대꾸한다.
“후훗, 어차피 나중에는 지겹도록 받을 시선과 관심이야. 그냥 나처럼 미리미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
“시끄러워.”
이제 여섯이 된 소년, 소녀들이 저편으로 서서히 멀어졌다.
“휴우……!”
“하아…….”
그렇게 모두가 사라지자, 나와 이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스카도 있으니까 크게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저번에 보니까 아리아도 꽤 실력이 오른 것 같고요.”
내 말에 이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긴, 대마도사의 제자인데…….”
“대마도사의 제자이기 전에 이노, 그대의 딸이기도 하죠. 그래서 뛰어난 거고요.”
나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아리아도 계속 불편해 했는데 이렇게라도 돼서 다행이라고 봐야죠.”
은근한 내 말에 이노가 얼굴을 살며시 붉힌다.
어쩌면 나와 그녀 둘 다 속으로는 내심 원했던 상황이 이뤄진 것일지도 모른다.
‘수도에 있는 렌슬렛 저택에서 머물까? 아니지, 거긴 좀 위험해. 안 좋은 소문이 돌 수 있어.’
렌슬렛의 저택에선 여주교와 저택 사용인들이 배려해 준다고 하지만, 여기는 렌슬렛이 아니다.
언제든 폰테임과 체스카드에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세작을 심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세상은 아직 렌슬렛과 이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애초에 그녀가 이곳에 온 것도 딸의 안위를 명분 삼아 억지로 온 것이다.
현재 극소수를 제외한 렌슬렛의 모두는 이노가 렌슬렛의 수도 저택 안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급 여관은 신분을 까다롭게 확인해. 그렇다고 허름한 여관은 안 되고. ……차라리 그랑블루 위에서?’
―키야악!!
문득 그랑블루의 당황한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가 사라졌다.
두근, 두근, 두근.
나와 이노의 심장 소리가 똑같은 리듬으로 울린다.
‘아직 해가 중천이긴 하지만…… 지금부터도 상관없으려나?’
나는 이노의 눈을 보았고, 이노도 고개를 올려 내 눈을 본다.
“크흠, 루카스 교수님?”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상점 안에서 들렸다.
“……!!”
나와 이노가 태엽 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마리아 총장과 루키엘이 멍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