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18
118. 나사 빠진 4차원 성녀
근래의 사건들 때문에 학기 말 시험은 대체적으로 이론 위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와 아서는 지금까지 준비했던 시험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
“꺄아! 끝, 났, 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온다.
다들 이보다 상쾌할 순 없다는 표정.
“드디어 끝났군.”
학생들을 보는 나 또한 개운함을 느꼈다.
“첫 학기였는데도 수고 많았습니다, 루카스 교수님.”
옆에서 아서가 마찬가지로 해방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수고 많았어요, 아서 학부장님.”
시험 준비 때 아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그를 존중하는 말투가 나왔다.
“하하하, 그냥 평소처럼 대해 주세요.”
내 태도에 아서는 오히려 공포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사색이 되었다.
“어쨌든, 많은 도움이 됐어, 고마워.”
“휴~ 아닙니다. 저도 루카스 교수님 덕에 많이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니까요.”
이제야 안도하는 아서다.
“여름 방학 때 교수들은 보통 어떻게 지내?”
“보통은 연구나 공부를 하면서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편입니다. 물론 보름 정도는 휴가를 즐기는 편이죠.”
“그렇군.”
‘한 달 정도는 최소한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해야겠지?’
아서의 말에 나는 방학 때의 계획을 간략하게 짜 봤다.
물론 나에게 다음 학기 준비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요주의 인물들의 관리 및 감시다.
‘아스카는 오스카에 박혀서 밀린 여왕 직무나 할 테고. 제인과 아리아는 오스카와 렌슬렛을 오가면서 제왕학을 준비한다고 했고. 앨리스는 폰테임에 있으려나? 무엇보다 로지 그 녀석이 제일 걱정되는데?’
오늘내일 중으로 로지와 앨리스의 방학 계획이나 조사해 봐야겠다.
“……카스 교수님? 루카스 교수님?”
어느새 상념에 잠겨 있던 아서가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아아,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고.”
“하하하, 루카스 교수님도 기분이 싱숭생숭한가 보네요? 하긴 저도 그런데요, 뭘.”
“뭐, 그렇지.”
이상하게 오늘따라 아서 교수가 어른스러워 보인다. 역시 짬은 무시 못 하나 보다.
“그럼, 제 얘기를 어디까지 들으셨나요?”
“그래도 보름 정도는 휴가를 즐기는 편이라고……까지?”
“……다시 말해야겠군요.”
내가 상념에 빠진 사이 아서가 뭔가를 말했었나 보다.
“아까 마리아 총장님께서 루카스 교수님을 찾으시는 거 같았습니다.”
“나를……? 왜?”
“그거야 저도 모르죠. 아까 교수실을 나올 때, 마리아 총장님이 루카스 교수님의 교수실 앞을 잠시 서성이시더군요. 마침 루카스 교수님은 교수실에 없었고요.”
“그래? 바로 총장실로 가 봐야겠군.”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다음 학기 때 뵙겠습니다.”
아서와 헤어진 나는 곧장 마리아가 있는 총장실로 향했다.
‘이 여자는 평소에는 소리 없이 잘만 나타나더니만.’
성큼성큼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마리아의 총장실로 향했다.
아카데미의 가장 중심부, 총장실의 문이 으리으리하면서도 귀중한 예술작품처럼 나를 압도한다.
“루카스 교수님이십니까?”
총장실 앞에 도착한 나를 문 앞에서 경비를 서던 경비병이 반겼다.
“그렇소. 총장님을 만나러 왔네만.”
“총장님께서는 잠시 외출하셨습니다.”
“그런가? 그럼 이따 다시 오지.”
“아닙니다. 안 그래도 총장님께서 혹시 루카스 교수님이 오시면 안으로 안내하라고 하셨습니다.”
경비병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총장실 안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됩니다. 총장님께서는 30분 내로 오실 겁니다.”
“알겠네.”
경비병은 다시 총장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홀로 커다란 총장실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그림이 많네?”
마리아가 가져다 놓은 것일까? 아니면 이전 총장 때부터 있던 것일까?
‘정말 잘 그렸다.’
그림 하나하나가 예술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무슨 신전도 아니고 제르다를 그린 그림이 유독 많네?’
총장실에 걸린 그림 중 절반 이상이 암흑시대 말기에서 신성 시대 초기를 그린 그림들이다.
몬스터와 마족의 군대와 싸우는 신성 시대의 영웅들.
제르다, 테오스, 마누스, 힌미르, 셀테라네, 젠휘스 등등…….
그리고 늘 그런 영웅들을 축복하는 천사 아한.
그림만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없던 신앙심이 생기는 기분이다.
‘어떻게 된 게 그림에 등장하는 구도나 등장인물은 늘 같을까?’
그런데 신기한 건, 이렇게 똑같은 구도와 등장인물을 그렸음에도 그림 하나하나가 질리지 않고 신선하다는 점이다.
‘간만에 눈 호강을 하는군.’
나는 마리아를 기다리는 동안 그림들을 하나하나 감상했다.
전부 예술작품 이상이라 지루할 틈도 없었다.
내가 정신없이 그림을 감상하던 그때.
“제10차 성전을 그린 그림이군요.”
“!!”
옆에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을 못 느꼈어.’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기척 없이 등장했길래 마리아인줄 알았더니, 전혀 처음 보는 여성이 내 옆에 서 있었다.
“……누구시죠?”
“서열 14위 마왕 이브라삭스의 군대와 싸우던 전투였죠.”
그녀는 맹하지만 빛나는 눈으로 그림에 대해서 마저 얘기했다.
“사제……십니까?”
여자가 입은 옷으로 나는 그녀의 신분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데 꽤나 고급진 사제복이다.
최소한 상급 이상의 성직자 되시겠다.
“네, 제르다를 모시는 미천한 제르디언, 미샤라고 합니다.”
‘씨X…….’
여자의 입에서 미샤라는 말이 나오자 목구멍에서 욕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사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종교가 여전히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대다. 귀족이나 왕족은 몰라도 성녀를 사칭하는 자는 없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어쨌든 미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한-제르다.”
성녀도 답례로 내게 성호를 그려 줬다.
“그쪽은 누구시죠? 마리아 총장님은 아닌 거 같은데?”
“저는 아카데미에서 행정학을 가르치고 있는 루카스 브라만 평교수입니다.”
“그렇군요.”
내 소개를 듣자,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녀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경비병님이 들여보내 주시던데요?”
‘여기 보안 왜 이래?’
나는 문밖에 서 있는 경비병을 원망하며 미샤를 보았다.
별처럼 빛나는 성녀의 눈동자, 맹하고, 순수하며, 정의로우며, 천진난만하다.
미샤의 성격은 그런 그녀의 눈동자와 대체로 일치한다.
외모는 성녀답게 아리아나 아스카 수준이다.
‘매번 정의를 외치는 성격 때문에 원작에서 발암 3대장이었지. 종종 4차원 돌발 행동도 보였고…….’
굳이 비교를 하자면, 흉악범의 인권도 소중하다 말하는 인권쟁이들을 보는 느낌.
적을 죽이면, “살인은 나빠요.”
상황이 급박해서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는 때에는, “포기하면 안 돼요! 모두 구할 수 있어요!”
흉악한 빌런을 만났을 때는, “폭력은 나빠요. 우리, 대화로 해결해 봐요.”
피치 못하게 적을 죽였을 때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면서 즙이란 즙은 다 짜던 서브 히로인.
딱 봐도 발암이 아닌가?
‘빌어먹을…….’
마리아를 기다리는 입장인지, 미샤는 총장실을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성녀와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아까 봤던 그림을 그녀와 또 다시 감상해야 했다.
“이 작품! 여기에도 걸려 있었군요…….”
“이 그림, 저도 참 좋아해요. 좀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그녀가 가리킨 작품의 이름은 구원.
암흑시대에서 신성 시대로 넘어가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시체와 절망, 어둠이 짙은 왼쪽, 희망과 부활, 빛이 강조된 오른쪽.
제르다가 가장 선두에 있고, 그 주변에 마누스, 힌미르, 테오스 등의 신화 속 영웅들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런 제르다와 영웅을 하늘에서 로브를 쓴 한 천사가 헤일로로 축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르다 님은 잘 알아도 대천사 아한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어요.”
그림을 보던 미샤의 눈동자가 후광으로 영웅들을 비추는 천사에게 향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림 속 천사의 정체는 새벽녘의 대천사 아한이다.
“새벽녘의 대천사 아한을 말하는 겁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이…….”
당장 성호 그을 때도 아한-제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말에 미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말을 정정한다.
“정확히는, 새벽녘의 대천사 아한에 대해서 알긴 알지만, 제르다 님보단 한참 아래로 두죠.”
새벽녘의 대천사 아한.
당연히 원작에선 직접 등장 안 했다.
하지만 다양한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종종 언급된 존재다.
지금 미샤가 언급하는 것처럼.
“‘아한-제르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성호죠. 이 성호만 봐도 아한이 먼저고 제르다가 두 번째예요.”
‘그게 뭐 어쨌다고?’
“아한은 새벽과 시작, 창조, 구원을 뜻하는 천사예요. 어쩌면 제르다 님은 아한이 이 땅에 내려왔기에 구원을 집행할 수 있었던 거죠.”
‘아한이 정하면 제르다가 행한다, 뭐 그런 건가? ……잠깐.’
미샤의 말에 문득 떠오른 소름 끼치는 생각.
‘이 여자가 지금 여기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게다가 당신, 성녀잖아!’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외람되지만 성녀님, 방금 그 발언은 이단인 제국 국교회의 주장과…….”
성녀에게서 제르다의 전지전능을 부정하는 말을 듣다니,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이거 함정이나 시험 같은 것은 아니지?’
혹시 몰라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딱히 특이 사항은 없다.
‘마리아야, 빨리 좀 와라. 이러다가 화형당하게 생겼다…….’
창조와 구원, 희망을 상징하는 새벽녘의 대천사 아한, 아한의 선포를 수용하고 집행하는 제르다.
흔히 이단이자 멸칭으로 아한교라고 불리는 제국 국교회의 교리다.
아한은 일개 천족이고, 오직 제르다만을 전지전능하다고 여기는 북부의 제르다교. 반대로 제르다와 아한을 이위일체로 보는 제국의 제국 국교회.
이세계 빙의 n년 차인 나도 익히 아는 얘기다.
“저, 성녀님, 그런데 이 말을 왜 저에게 하시죠?”
나는 굳은 얼굴로 미샤에게 물었고, 미샤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예전에 교황 성하께 이렇게 얘기했다가 크게 혼났거든요. 벌로 방에서 보름간 근신당했어요…….”
해맑게 웃다가 다시 살짝 풀이 죽는 모습.
“그러니깐 이런 위험한 말을 왜 저한테……?”
너는 성녀라서 근신이지만 나는 통구이라고!
“하지만 아무에게 얘기 안 하니깐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건 답답한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여기서 몰래 말한 거예요.”
‘내가 대나무 숲이냐!!’
“성녀님께서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제가 퍼트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퍼트린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고, 당장 성녀를 욕보였다고 이단 취급 당하겠지.
내 협박(?)을 들은 미샤는 ‘헉’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내게 작게 속삭이면서 윙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