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
12. 누구냐, 넌?!
절박하게 울고불면서 이노에게 비는 중급 행정관과 서기관을 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했다.
“그, 로니아드라는 평기사도 동의한다면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하라.”
이노 또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헤헤, 로니아드 평기사도 하던 일은 마저 하고 복귀하고 싶다고 합니다.”
“오오~ 처치 곤란했던 행정 업무들이 사라지고 있어!”
“조만간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아!!”
“만세! 마님을 찬양하라!!”
“서류의 신, 만세에!!”
중급 서기관과 행정관은 이미 로니아드의 답을 받은 상태였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40대의 나이에 탈모와 백발이 온 두 중년, 둘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노와 로니아드를 찬양했다.
* * *
‘미련한 남자 같으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찾아오라고 했더니 찾지도 않고!’
모든 일이 정리된 늦은 밤.
눈이 퉁퉁 부은 아리아를 재운 이노는 외출복을 입고 로니아드를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공작성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호위 기사와 수행 시녀 몇이 동행했다.
‘기사인데도 행정 업무가 탁월하다고? 치안대장이 쓴 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있긴 했다만.’
전에 치안대장이 올렸던 보고서를 떠올리던 이노는 이내 수긍했다.
‘어쩔 수 없이 좌천 보낸 아까운 인재야. 이번 일을 명분으로 다시 불러와야지.’
문득 치안대장을 생각한 이노는 다시 로니아드에 대해 고민했다.
‘그의 행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 딱히 이상하진 않아.’
이노는 최근 로니아드의 과거를 알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현재는 토너먼트 기사지만 원래는 왕실 근위 기사단 소속이었으니, 분명 룬-아르미 아카데미를 나왔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10년 전에도 왕실 근위 기사는 허들이 높았다.
무조건 왕도에 있는 룬-아르미 아카데미 기사 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기면 내 기억에도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입학하기도 전에 졸업한 건가?’
이노 또한 룬-아르미 아카데미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던 학생이었다.
비록 정략결혼 때문에 중퇴했지만.
‘나이와 전혀 맞지 않은 외모, 숨겼던 실력, 뛰어난 행정 능력 그리고…….’
아리아로부터 로니아드가 치료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해 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검사까지! 도대체 당신은 정체가 뭐죠?’
까면 깔수록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존재다.
그렇게 심란한 생각을 하던 중 어느덧 행정부 건물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늘 그랬던 것처럼 야근 중인지 창문에는 불빛이 환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이노가 작고 엄중한 목소리로 명했고, 시녀와 호위 기사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한발 물러섰다.
이노는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접근했다.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먼저 창문을 통해 내부를 보았다.
내부에는 로니아드가 기사 제복을 입고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서류를 처리 중이다.
잘생긴 청년 기사가 서류에 집중하는 모습은 이노로 하여금 잠시 여기에 온 목적을 잊게 만들었다.
문득 공작성에서 그에게 안겼던 일이 떠올랐다.
두근두근.
알 수 없는 가슴의 떨림에 이노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이노의 손에는 전에 공작성에서 로니아드가 주었던 녹색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이노! 그냥 가서 심심한 위로와 함께 손수건을 돌려주면 되는 거잖아?!’
로니아드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자자, 나머진 내일 하고 어서들 퇴근합시다. 이러다 통금 시간 지나겠어요.”
건물 안에는 로니아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검은색 머리에 유약한 인상을 한 하급 행정관이 퇴근을 외쳤고, 그 외침에 건물 안에 있는 수 명의 사람들이 서류를 덮고는 자리에 일어섰다.
로니아드도 하던 서류를 마저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님도 어서 가시죠!”
“간만에 술 한잔할까요?”
“기사님~ 기사님도 같이 가요~!”
로니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건물 안에 있던 하급 행정관과 서기관들이 로니아드를 반겼다.
불과 며칠 사이에 굉장히 적응을 잘한 모양이다.
그렇게 이노가 망설이는 사이에 로니아드를 포함한 건물 안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이노는 그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 횃불이 켜져 있는 건물 안은 여전히 밝았다.
이노는 조심스레 로니아드가 앉았던 책상 앞에 섰다.
그리고 방금까지 그가 작성하던 서류들을 보았다.
“!!”
수려한 필체에 꼼꼼하면서 정확한 계산들. 처음 보지만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각종 서류 양식들이 그녀를 충격에 빠트렸다.
서류의 결재선과 날짜를 보아하니 3일 후쯤에 자신의 책상으로 올라오게 될 서류다.
‘이런 방식은 아카데미에서도 배운 적 없어.’
렌슬렛이 아무리 변방에 자리 잡은 허울뿐인 공작가라 해도, 이노는 늘 수도에 상단을 보내 최신 문물들을 수용하는 편이다.
그런 문물들 중엔 당연히 학문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보는 것들은 아카데미는 물론 수도의 최신 학문에서도 본 적이 없다.
‘행정관과 서기관이 그렇게 난리 친 이유를 알겠군.’
지금까지 이 세계서 가장 일반적인 서류나 보고서는 금액과 인원, 날짜 등을 나열하는 식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하지만 로니아드가 작성한 서류는 달랐다.
쓸데없는 미사여구 없이 바로 본론부터 시작되었고, 생전 처음 보는 여러 개의 사각형을 그려 놓은 다음에 그 안에다가 용어와 숫자를 적었다.
‘왕국은 확실히 아니야. 펠리오나 제국에서 사용하는 방식일까?’
이노는 결정해야 했다.
그가 수상하다는 것은 이제 두 번째 문제다.
로니아드의 재능을 본 순간, 오히려 그가 자신의 적이 될지, 아니면 아군이 될지가 더 큰 관건이었다.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어찌 되었든, 이노는 로니아드를 가까이 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로니아드는 저택 중앙으로 발령받았다.
공작 부인 이노의 비서관이자, 호위 기사가 된 것이다.
* * *
운석을 소환하는 마법사와 검에 마나를 둘러 강철을 베는 기사가 사는 세계.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그들도 먹고 입고 자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마법도 검술도 아닌 예산이다.
어느 차원이든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법이다.
예산으로 소드 마스터도 살 수 있고 대마도사도 부릴 수 있다.
심지어 예산으로 시간도 조율 가능하다.
그리고 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다.
전생에서도, 지금에서도
‘……가 아니라 여기서만큼은 기사였는데?’
향긋한 꽃내음이 나비를 따라 창문 안까지 넘나들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카페 안의 화이트 노이즈처럼 들리는 고풍스럽고 아늑한 방.
‘유목민도 아니고 뭔 놈의 발령이 이렇게 자주 있는 것인지.’
나는 기사 제복을 입고는 어제와 다른 곳에서 근무 중이다.
공작 부인 이노가 앉아 말없이 서류를 넘긴다. 넘기던 중 내가 전에 작성했던 서류가 보였다.
이노가 내가 작성한 서류의 체크 된 부분을 유심히 보는 듯했다.
“그 서류 같은 경우 이 부분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단순 계산 실수인지, 의도된 수작인지는 해당 상단의 결산표를 요청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이노에게 가까이 다가가 서류의 부분을 지적해 줬다.
그런 나의 행동에 이노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으나,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그녀만의 방법으로 서류를 분류한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엽기도 하다.
‘어색해!’
하지만 귀여운 걸 떠나서 지금의 나는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공작 부인이랑 하루 종일 집무실 안에 같이 있으면 또 이상한 소문이 날 거 같은데.’
단순히 호위 기사 신분이라면 집무실 입구에 서서 멍 때리고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호위 기사에 비서관의 직무까지 수행 중인 상태.
지금까지 늘 공석이었던 비서관 감투를 받았다.
그래서 사실상 호위 기사보단 비서관의 일을 더 많이 한다.
‘뭐, 나의 행정 실력을 눈여겨본 것까지는 이해해. 근데 무슨 의도로 하루아침에 이렇게 가까이 둔 거지?’
나는 어색한 이 분위기를 참으며 눈앞에 있는 귀부인의 뒤통수를 말없이 보았다.
‘나는 지금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해 죽겠는데, 우리 공작 부인께서는 어떤 기분이려나? 그쪽도 딱히 편해 보이진 않는데.’
눈앞의 이노 또한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아 보기 딱했다.
‘어색해!’
이노는 자신이 너무 섣부르게 로니아드를 발령 낸 것을 후회했다.
‘비서관이 늘 공석이라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어.’
지금 비서관의 위치에 맞는 집무 용품을 주문했지만 오려면 최소 이틀은 소요될 예정이다.
‘계속 뒤에서 날 쳐다보는 느낌이야.’
그렇다고 명령을 보류하거나 바꾸기도 체면이 서지 않아 애써 이렇게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옆에 있으니까 도움이 되는 거 같아.’
이렇게 어색함에도 로니아드를 치우지 않는 이유는 체면 문제도 있지만, 확실히 그가 자신의 업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처 못 본 부분을 다시 확인해 주었고, 오기된 계산식도 바로바로 확인해 준다.
또 중구난방으로 자신에게 올라오던 서류를 그 자리에서 처리하기 편하게 세세히 분류해 주었다.
아까 얼핏 집사와 시녀장에게 자신의 스케줄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보면, 내일부턴 일정 조율도 해 줄 것 같다.
‘이래서 귀족들 사이에 전속 마법사는 안 둬도 비서관은 둔다는 말이 생긴 거구나.’
비서 업무를 맡길 만한 눈에 차는 인재가 없어 늘 공석으로 두었던 자리가 비서관이었다.
정확히는 공작 부인의 비서관 자리다.
왕도의 공작에겐 아카데미 출신의 비서관이 무려 셋이나 딸려 있으니까.
‘어색한 것만 없어지면 다신 비서관 없이 살 수 없을 거 같아.’
첫날인데도 이 정도다. 몇 달만 지나면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서로 간의 어색한 분위기가 한창일 때, 집무실 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호위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님, 아리아 아가씨가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방문에 이노는 반가움과 의아함이 들었다.
‘저 기사 때문인가 보군.’
자신의 뒤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체크하고 있는 로니아드를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리아가? 들어오라고 하라.”
이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가 들어왔다.
뒤에는 그녀의 전속 시녀로 보이는 여자를 대동하고서.
“어머니~ 저 왔어요~.”
“무슨 일이니?”
“그냥 뭐 하시는지 궁금해서.”
아리아는 그렇게 들어오더니 힐끔힐끔 이노 뒤에 서 있는 로니아드를 훔쳐본다.
‘저 시녀가 아리아의 전속 시녀가 되었구나.’
하지만 로니아드는 자신을 훔쳐보는 아리아 대신, 아리아 뒤에 서 있는 시녀에게 시선이 갔다.
그런 로니아드와 아리아 그리고 아리아와 함께 온 시녀를 번갈아 본 이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제인도 같이 왔구나. 내 딸아이가 말썽 같은 건 안 부리고?”
“네, 영애께서는 똑똑하고 밝으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리아도 왔으니 잠시 밖에서 다과라도 하지, 로니아드 경?”
이노의 말에 로니아드는 바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는 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녀장에게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원래라면 그냥 제인을 시키면 되겠지만, 이곳 구조도 알 겸 제인과 함께 갔다오세요.”
나는 이노의 말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 후, 절도 있으면서 부드러운 동작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제인, 제인? 제인?!’
하지만 내 머릿속은 방금 이노의 입에서 나온 저 시녀의 이름만이 가득하다.
생각해 보니 저 시녀의 이름을 이제야 듣게 되었다.
아리아가 그런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길래 예의상 눈인사를 해 줬다.
아리아는 그런 내 행동에 티가 나도록 기뻐한다.
‘제인? 저 시녀가 원작의 그 제인이라고?!’
하지만 나의 머릿속은 평온하고 철저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흥분과 충격이 어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