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1
121. 제국에서 제국으로
“그, 제국이라는 곳이 그렇게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제국 고트 아카데미에서 학술 교류차 우리 교수진과 학생들을 초청했잖아요?”
“이 시국에 말입니까?!”
데이지와 로지가 어떤 이유로 먼저 제국으로 떴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제국을 비롯한 이카디아의 모든 국가들로부터 높은 자치권을 가진 조직이 셋 존재한다.
하나는 마탑이고, 두 번째는 아카데미이며, 세 번째는 교단이다.
마탑은 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영토 내에 있지만 사실상 교단의 신전처럼 치외법권이다.
특히 대륙의 마탑 중 가장 으뜸이 제국의 현자의 탑이다.
현자의 탑은 제국의 황제와 황실 마도사 타르타트도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런 이유로 현자의 탑은 제국 내부에 있음에도 제국과 북부 왕국들과 교류를 이어 갈 수 있었다.
한편, 각 나라의 주요 아카데미 뒤에는 마탑과 교단, 대상인, 대귀족이 국가를 뛰어넘어 얽혀 있다.
이런 이유로 아카데미는 마탑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꽤 높은 수준의 자율권을 보장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다.
고트 아카데미에서는 룬-아르미 아카데미에 교수와 학생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룬-아르미 아카데미의 총장인 마리아는 그들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당장 아카데미가 속한 나라의 수도에 제국발로 의심되는 테러가 두 번씩이나 터졌음에도 말이다. (실상은 앨리스와 마리아의 짓이었지만.)
“그런데 학생 교류는 로지스트 학생만 응했어요.”
“제국에 정식으로 갔다 오는 것은 굉장히 드문 기회인데 지원자가 없단 말입니까? 평민들도요?”
“지금 제국은 악명이 높다 보니 귀족가는 물론 평민 학생들도 지원을 하지 않더라고요.”
‘배가 불렀군.’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것이라면 제국의 고트 아카데미가 낫다.
제국은 북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이종족들도 옆집 아저씨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그간 제국은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악황제가 깨어났다는 소문도 돌아서 덕분에 전운도 감돌고 있으니, 세상 어느 가문에서 소중한 자기 자식을 적지로 유학 보낼까?
‘그나저나 난 이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애초에 홍보가 제대로 되긴 한 건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마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해당 내용을 게시판에 걸어 놨었는데 읽지 않은 건가요?”
“……게시판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게시판에 그런 공고문은 본 기억이 없었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지원자가 없었다 했더니, 누군가가 치운 건가?”
마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나 해서 공고문을 걸어 놓은 게시판으로 가 봤다.
“총 다섯 군데에 걸어 놨는데 전부 없어졌네요…….”
누가 이 게시물을 치운 것일까?
“로지나 데이지가 아닐까요?”
“흐음…… 그래서 내가 직접 말한 교수들만 신청을 했던 거구나.”
“저와 총장님 외에 누가 가는 겁니까?”
“늘 함께하던 사람들이요. 루키엘, 율카네스요. 데이지와 로지스트도 있지만 두 사람은 먼저 갔으니까 이렇게 넷이서 공간 이동을 하겠네요.”
“뒤늦게라도 재공고를 올릴 건가요?”
“아니에요. 이미 고트에는 이 인원으로 통보해 버렸어요. 그리고 어차피 아카데미는 위장용이었으니, 차라리 이게 낫겠네요.”
“예?”
“정확한 얘기는 출발 전날에 알려 줄게요. 나름 기밀이라.”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은 언제 하나요? 저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해서…….”
“학기가 완전히 끝나는 다음 주에 출발할 예정이에요.”
“시간은 넉넉하군요.”
“그냥 조금 위험한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면 돼요. 제국도 다 사람 사는 곳이에요.”
‘조금 위험한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혀 안심이 안 되지 않을까?’
확실히 빈말이라고 해도 현재의 제국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제국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마침 이소레타의 근황도 살펴야 했으니.’
어차피 조만간 제국에 가긴 해야 했다. 제국에는 이소레타가 있으니까.
‘걔가 지금 황궁에 있나? 아니면 장벽으로 유배됐으려나? 둘 다 아닐 수도 있겠군. 워낙 내용이 바뀌어서 모르겠어.’
그렇다고 마리아에게 괜히 이소레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다.
괜히 이상한 의심 사는 것은 피해야지.
‘방학 동안에 로지는 감시할 수 있어서 다행인데……. 문제는 앨리스란 말이지. 얘도 은근 사고뭉치라…….’
정 안 되면 아스카에게 앨리스랑 방학 동안 좀 놀아 주라고 부탁이라도 해야겠다.
* * *
우우우웅. 환한 빛이 사라지고 사방이 처음 보는 조형물과 사람들로 바뀌었다.
대마도사 율카네스의 공간 이동은 아스카가 했던 공간 이동보다 더 빠르고 편안했다.
“고트 아카데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도착한 우리를 맞이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트로이라고 불리는 고트 아카데미의 총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트로이 총장님.”
“마리아 총장님, 늦었지만 총장이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저게 수인족인가?’
기억에 있긴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트로이 총장은 곰과의 수인족이었다.
털은 흰색으로, 북극곰을 떠올리게 했다.
곰과에 어울리는 거대한 근육질과 덩치.
그런데 두 눈에는 작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묘하게 어울린다.
“오랜만이에요, 트로이 총장님.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시군요.”
“하하하, 마리아 총장님도 그사이 더 젊어지신 거 같습니다.”
“오랜만이군, 트로이.”
“율카네스 님! 30년 만인가요? 펠리오의 손주분들 소식은 들었습니다. 참 유감입니다.”
“유감은 무슨, 지들이 멍청해서 그렇게 된 것을.”
뻔뻔하고 무뚝뚝한 율카네스와의 대화가 끝나고, 루키엘이 앞으로 살짝 나와 트로이와 인사를 나눈다.
“루키엘이라고 합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트로이 총장님.”
“오오! 대륙에서 가장 촉망받는 천재 마법사를 보게 되어 기쁘군요.”
마리아, 율카네스, 루키엘 순으로 차례차례 트로이 총장과 인사를 했다.
마리아와 율카네스는 그와 안면이 있던 모양이고, 루키엘과 트로이 또한 서로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나 보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카스 브라만 교수입니다.”
나는 뻘쭘함과 어색함을 가지고 트로이 총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쿠오오오오오!!”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트로이는 거대한 북극곰의 몸을 푸드덕거리며 포효했다.
그 위압감에 순간 아공간 가방에 있는 검을 집을 뻔했다.
“감사합니다, 마리아 총장님. 제 부탁을 들어 주셔서!”
그러나 트로이 총장의 표정은 굉장히 기뻐 보여서 결국 검을 뽑진 않았다.
기쁨(?)에 포효하고 이를 황당해 하는 나를 보면서, 마리아가 장난기 담긴 어조로 말했다.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네요.”
인신매매라도 당했나, 싶어서 그랑블루를 소환해 탈출극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루카스 교수님이 쓰신 행정학의 정석은 고트 아카데미에도 큰 가르침을 줬습니다. 특히 그래프와 표라는 개념은…….”
내가 썼던 책이 제국에도 퍼졌나 보다.
‘정식으로 제국까지 발행됐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인쇄료는? 불법 복제판 같은 건가?’
나는 약간의 찝찝함을 느끼며 트로이와 악수를 했다.
“너무 과찬이십니다. 고작 책 하나 낸 것 가지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카데미 교사 정도를 하려면 보통 업적으론 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총장이면 그가 쓴 책과 논문만 해도 방 한쪽을 가득 채울 터.
하지만 트로이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루카스 교수님의 업적이 세간에 너무 적게 알려져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면서 작고 은근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교수님께서 렌슬렛에서 비서관으로 행했던 업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알고 있었구나.
내전과 황제의 부활로 정신없어도 챙길 정보는 챙기는 듯싶었다.
“자,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앞으로 머물 숙소와 일정 등을 안내해 드리죠.”
트로이의 커다랗고 하얀 덩치가 쿵쿵 땅을 울렸다.
일행을 따라가면서 나는 호기심에 주변을 둘러봤다.
대표적으로 엘프, 드워프, 수인족 등이 인간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물론 비율은 인간이 많다. 인간이 7이라면 이종족 전체는 3 정도?
다양한 이종족이 모인 제국이다 보니 건물의 양식 또한 북부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어떤 부분은 유난히 컸고, 또 어떤 부분은 유독 작았다.
“고트 아카데미는 아직 방학을 안 했나요? 아카데미에 사람이 많군요.”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져나간 룬-아르미 아카데미를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하하하하, 당연히 저희 아카데미도 방학입니다. 지금 이것도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겁니다.”
트로이가 내 질문에 호탕하게 답해 준다.
‘학생이 다 빠져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아카데미의 기능뿐만 아니라 연구소의 기능도 하는 건가?’
나는 고트 아카데미 호기심에 둘러보다가 이내 흥미를 접었다.
‘어차피 한 달 동안 지낼 곳은 아카데미가 아니니까.’
그렇게 제법 걸었을 때, 트로이가 멈춘 곳은 고대 유적으로 보이는 게이트였다.
전혀 숙소처럼 보이지 않는 장소.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는 의아해 하지 않았다.
‘이게 그 황금시대의 포털?’
오히려 신기한 감정으로 유적을 볼 뿐이다.
“가장 유명한 황금시대 유적을 직접 보다니! 감동적이군요.”
루키엘은 감격에 찬 눈으로 이 유적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마리아와 율카네스는 전에도 제법 봤는지 덤덤해 보였다.
유적 앞에 선 트로이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마법 지팡이에 달린 보석을 유적 가운데에 있는 홈에 꼈다.
“숙소는 이 포탈 너머의 아흐마흐 유적지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과 함께 게이트에서 푸른색의 포털이 생성된다.
“그곳으로 가면 황궁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분을 안내할 겁니다.”
“응……? 방금 황궁이라고 그랬나요?”
포탈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리아가 트로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트로이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아, 일단 알겠어요.”
자세한 것을 묻고 싶은 마리아였지만 포털 유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두 번째 공간 이동을 해야만 했다.
고대 황금시대의 공간이동 유적은 대마도사 율카네스의 공간 이동보다도 더욱 효율적이었다.
공간 이동 후 늘 찾아오는 멀미와 눈부심도 없어서 편했다.
마치 방문을 열고 옆방으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다.
“유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포털을 막 빠져나온 우리 앞에 제국, 그러니까 황궁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몇몇이 마중을 나왔다.
“…….”
그런데 마중 나온 자들을 본 마리아와 율카네스의 표정이 굳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눈썹을 찌푸렸다.
“화신도 아닌 본체인가? 이런 곳까지 나오고. 제국의 재상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가 보군?”
“반대로 이곳이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소, 대마도사여.”
율카네스가 제일 앞에 선 뚱뚱하고 키 작은 남자에게 말했다.
“세피로스, 이젠 대놓고 폰셔와 함께 움직이나?”
“오해입니다, 오해.”
마리아는 세피로스에게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그리고 내가 물었다.
“어, 어…… 그게…….”
“설마 게시판에 있는 공고 치운 게 앨리스, 너였냐?”
“흠흠! 어머! 루카스 교수님, 여긴 어떻게 오신 건가요? 행정학 전공이 이곳이 있을 이유는 없는데…….”
앨리스는 내 질문을 피하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너였군.”
“…….”
내 말에 앨리스가 시선을 피한다.
게시판의 공고를 없앤 이의 정체를 마침내 알았다.
‘로지와 앨리스, 가장 우려했던 인물들을 이렇게 관리하게 되어 다행인가?’
안도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피곤해질 것만 같다.
“옆에 있는 여기사는 누구야?”
그러다가 앨리스의 옆에서 조용히 서 있는 여기사를 발견했다.
금발에 은색 눈동자. 여성치고는 큰 키. 제국 황실 기사를 상징하는 붉은색 기사 제복을 입은 여기사였다.
외모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앨리스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미모다.
같은 여기사인 카디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
“이스릿.”
여기사가 짧게 자신의 이름만을 말했다. 차갑고 어떤 호의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여기사의 은색 눈동자가 내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루카스 브라만이다.”
무례하게 느껴지는 이스릿의 소개에 나도 비슷하게 대꾸했다.
내 태도에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원래 그런 성격인 듯이.
나는 그런 이스릿을 보면서 그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이 정도 외모와 분위기, 성격 그리고 깊이를 알기 힘든 실력.
‘이소레타?’
드디어 원작의 마지막 메인 히로인을 만나게 되었다. 의외의 장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