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3
123. 아흐마흐 유적지(2)
붉게 상기되고 몽롱한 앨리스의 눈.
‘이 표정,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로니아드는 그녀의 얼굴에서 데자뷔를 느꼈다.
‘아스카가 꼭 저런 표정을 하고 나면 유독 태도가 살가워졌지.’
이윽고 그 표정의 기원을 떠올린 로니아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아, 이젠 이곳에서의 모든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 봐.”
“네…….”
앨리스가 부끄러움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는 단순한 유적 발굴지가 아니에요.”
로니아드는 앨리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집중했다.
“이곳은 제국의 모든 분열된 세력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곳이에요!”
입을 연 앨리스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가장 조심해야 하는 존재가 마침 건물 내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릿, 그 여기사를 경계하세요.”
아흐마흐 유적지, 현재 대륙에 남아 있는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황금시대의 유적이다.
이 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300년 전, 과거 제국이 왕국이었던 시절.
아흐마흐에서 나온 수많은 황금시대 유물과 기록은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 문명을 진보시켰다.
사실상 은의 시대를 연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마법사들과 고고학자들은 아흐마흐 유적지를 이렇게 불렀다.
황금시대의 방주.
실제로 유적에 적힌 기록들을 살펴보면, 황금시대 후기에 일부 마법사들이 만약을 대비해 당시의 지식과 유물들을 보관한 것이 이 유적의 시발점이었다.
그것이 황금시대 말기 즈음에 거대한 방주 도시가 된 것이다.
아흐마흐 유적이 발견된 지 300년, 그동안 아흐마흐 유적은 거의 다 발굴되었다.
아직 이 유적에서 나온 수많은 마법 기록과 유물을 완전히 해독하지 못했지만, 발굴하고 챙길 수 있는 것은 다 챙겼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랬던 것이 최근 바뀌었다.
아흐마흐 유적 외곽에 새로운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은근하게 퍼졌다.
제국의 패권을 노리는 고위층에게만 은밀히.
앨리스의 말을 들은 로니아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단순한 유물 탐사는 아닌 것 같긴 했는데, 이렇게 스케일이 클 줄이야…….’
고트 아카데미에서도 보안을 위해 초청 공문에는 유적에 대한 얘기를 전혀 쓰지 않았다.
로니아드가 학술 교류의 정체가 새로 발견된 유적 탐사라고 알게 된 것은 제국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이었다.
“제가 왔던 세계에서 아흐마흐 유적에서 새로운 것이 나왔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마리아는 나를 불러 유적지에 관한 얘기를 해 줬다.
그녀는 제국이 고트 아카데미와 유적지를 통해 뭔가를 하려 한다는 추측은 했었다.
‘아무리 나로 인해 나비효과가 태풍이 되었다고 해도, 없던 유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상하지.’
마찬가지로 내가 읽었던 원작에서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와 율카네스, 루키엘 등을 동원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불안하죠.”
“속는 척, 가 보자는 겁니까?”
“네, 혹시 모르죠. 제로니어드가 깨어남에 따라 영원히 묻혔을 유적이 진짜로 발견된 것일지도.”
아흐마흐에서 우리도 모르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왜 터졌는지 알 수는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불확실하고 위험한데 왜 공문을 게시하려 했던 겁니까?”
“제3자들이 가능한 한 많아야 그들이 엉뚱한 짓을 덜 할 테니까요. 그것이 트로이 총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저도 이에 동의했고요.”
아카데미의 교직원과 학생을 인질로 삼아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앨리스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지만.
‘하지만 마리아 또한 이곳이 제국이 꾸민 거대한 전장이 되리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듯해.’
한마디로 스케일 계산에 실패한 것이다.
포털을 타고 유적지에 막 도착했을 때, 마리아가 보였던 살짝 굳은 표정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본래라면 고트 아카데미 교직원들이 마중을 나와야 했다.
하지만 실제론 고트 아카데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황궁 사람들이 보였으니까.
‘정황상 새로운 유적은 거짓이거나 과장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앨리스 또한 이를 증언했다.
새로운 유적지가 거짓이거나, 발견되긴 했지만 굉장히 과장되어 알려진 것 같다고.
그리고 이 소문을 누군가가 은근히 일부로 퍼트린 것 같다고.
본래라면 유적 발굴 사실은 한동안 황실과 고트 아카데미의 이사회만이 알고 있어야 했지만, 이상하게 제국 내의 주요 세력들이 이 소식을 알고 있었다고.
“한마디로 여기는 제국 내의 여러 세력을 낚으려는 거대한 미끼라는 것이군?”
“네, 맞아요.”
보통이라면 아흐마흐 유적을 관리하는 제국 황실에서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하지만 황권은 약화됐고 이 소문은 은근히 퍼지기 시작했다.
‘황금시대의 유적, 아흐마흐에서 또 새로운 엄청난 무언가가 발견됐다!’
설령 이것이 함정이고 미끼라고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악마의 유혹이다.
잘 뽑은 유적 하나로 일개 왕국이었던 라-고이트 왕국이 대륙의 중부와 남부를 통일한 대제국이 되었다.
심지어 황금시대의 기록을 이용하여 무적이었던 서서히 교단을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다.
제국을 세우고, 문명을 진보시키고, 신성마저도 정당하게 모독할 수 있는 유적.
황금시대의 방주, 아흐마흐 유적지.
본래 이것의 주인이어야 할 황제는 이제 막 간신히 눈을 떴을 뿐이다.
거동이나 언행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세상에 알려져 있다.
끝내 제로 대제를 알현하지 않은 야심가들에게는 이것이 판을 엎을 만한 절호의 기회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세력은 누가 있지?”
“현재까지 제가 알기론 대표적으로 네 곳이에요.”
앨리스는 이곳에 온 지 3일째지만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세피로스 옆에 있어서 고급 정보를 많이 얻은 걸까?’
한편으론 딱히 전력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 아이를 왜 이런 곳에 데려온 것인지 의문이었다.
“충성파, 대공파, 국교회, 귀족파, 이렇게 네 개 세력이 유적 인근에 진을 치고 있어요.”
어찌 되었든 앨리스의 입에서 나온 정보를 취합하면 이렇다.
충성파: 악황제 제로 대제를 끝까지 모시는 충신들의 세력이다. 재상인 폰셔 백작과 황녀 이소레타가 여기에 속한다.
대공파: 황제의 부활을 여전히 의심하는 세력으로 아직까지 노선이 분명하지 못하다. 타르타트와 이카본이 여기에 속한다.
국교회: 제국 국교회다. 황제가 쓰러졌을 때 열심히 세력을 모았고, 다시 황제가 부활하려 하자 이를 막거나 황제를 억압하려 한다.
귀족파: 황제의 부활을 끝까지 부정하는 세력이다. 현자의 탑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거짓 황제를 몰아내려 한다. 현재 국교회와 동맹을 맺었다.
“그 외에 중립파가 있어요. 하지만 중립파의 경우에는 이곳에 관심도 가지지 않아서 제외했어요.”
“중립파라면 사천왕 중 한 명인 헌스터와 야만 군단을 말하는 건가?”
“네, 그들은 여전히 라-고이트 장벽과 야만의 땅을 아우르며 지내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가?’
헌스터는 거인족 출신으로, 제국의 야만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이다.
정치적인 부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직 악황제의 말만 듣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런 헌스터가 악황제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장벽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많은 의혹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원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군대가 헌스터의 야만 군단이었지.’
원작에서 히로인 이소레타와 아우레를 죽인 것도 이들이었으니까.
“그럼, 데이지와 로지는 대공파에 소속된 거야?”
“네, 그런 거 같아요. 처음 여기 왔을 때 타르타트와 함께 있던 것을 봤으니까요.”
세피로스가 타르타트의 제자니까 세피로스의 동생인 앨리스도 인사차 타르타트를 볼 수 있었겠지.
“그런데 보아하니 너와 세피로스는 폰셔 백작, 그러니까 충성파에 속한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세피로스가 대놓고 스승을 배신한 걸까?
“지금 상황이 애매하거든요. 국교회와 귀족파가 손을 잡은 상황이라서 대공파와 황제파 또한 전략적 동맹을 맺어야 할지 의논 중인 거 같아요.”
“네 오라비 세피로스는 두 세력 사이를 오가는 전령 같은 거야?”
“……뭐, 비슷해요.”
앨리스의 말에 로니아드는 내용을 정리했다.
악황제가 쓰러진 후, 제국은 오랜 내전을 겪었다.
그러다가 악황제가 깨어났다.
하지만 많은 의혹을 지닌 부활이다.
호랑이가 사라진 숲에서 자유롭게 놀던 이리들은 이 상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깨어난 황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아흐마흐 유적지에서 거대하고 엄청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나약해진 황제와 황실은 이 유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지, 이 소문이 제국 각지로 은근히 퍼졌다.
즉, 이 유적을 얻기만 하면 제국, 더 나아가 대륙의 패자가 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불씨 하나만 붙어도 큰 폭발이 일어나는 거대한 화약고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유적에 관한 소문을 일부러 퍼트린 것이라면?’
그 가정이 맞다면 이 연극의 감독은 뻔했다.
“악황제, 그의 계획인가?”
“…….”
로니아드의 혼잣말에 앨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던 것이야?’
아까 살짝 굳은 얼굴을 보니까 이 중 일부는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듯싶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고트 아카데미로부터 은밀히 들었다고 했다.
아마 그녀도 이 소식이 이렇게 널리 퍼졌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랬으니 순진하게 제3자 어쩌고 하면서 아카데미에 공고문을 붙였겠지.
‘미래에서 오면 뭐 해? 순 허당인데.’
“그나저나 아까 너와 함께 있던 여기사, 이스릿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건 무슨 말이야?”
로니아드의 물음에 앨리스는 굉장히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스릿 그 여기사의 진짜 정체는 바로 황녀 이소레타예요. 힌미르의 어린 정통.”
“그래. 평범한 여기사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황녀였구나.”
“안 놀라세요……?”
여기사의 정체에 너무나 덤덤한 로니아드의 반응.
살짝 김이 빠질 정도였다.
“뭐, 제국의 재상이라는 작자가 마중까지 나온 상황에 황녀쯤이야. 그럼, 그 황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건…….”
로니아드의 질문에 앨리스가 막 대답하려 할 때였다.
“그것은 내가 그 모든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야.”
앨리스를 반쯤 안고 있던 로니아드의 등 뒤에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폰셔도 나를 오래전부터 노려 왔고.”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가 아닌, 찬송가 부르던 성녀의 목소리와 맞먹는 미음.
화들짝 놀라는 앨리스를 뒤로하고 로니아드는 몸을 돌려 붉은 기사 제복을 입은 여기사를 응시했다.
“호랑이도 아니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옛말이 떠올라 혼잣말을 했다.
“호랑이? 뭔지 모르지만 용으로 수정해 줘.”
굳이 비유하자면 용으로 하라는 이소레타의 대답.
이소레타의 은색 눈동자가 로니아드의 안경 쓴 붉은 눈동자를 응시한다.
몇 초의 적막 이후, 이소레타가 입을 열었다.
“그대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평기사, 비서관, 용병왕, 재림, 화신, 약탈 제독 그리고 평교수.”
“……평교수라고 부르시죠.”
“내 정체를 알면서 당당한 모습, 신선해.”
로니아드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이소레타는 특유의 짤막하고 감정 없는 말투로 이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나만의 세력을 만들려고 해. 나를 보좌할 능력 있는 인재가 필요해. 싸움도 잘하고 처세술과 사무 능력도 뛰어난. “하지만 제국 내에선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겠어. 그래서 무리하게 트로이 총장에게 부탁했어.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니 평교수 당신. 나의 신하가 되지 않겠어?”
황녀의 짤막한 말들은 뜬금없었다.
“갑자기 신하라니, 너무 뜬금없지 않습니까?”
“신하는 싫다는 뜻이야?”
“네, 전혀 생각 없습니다, 황녀 전하.”
그녀의 말에 내가 반발하자, 이소레타는 눈을 빛냈다.
“그럼 나와 결혼하자. 내 부마가 되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