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7
127. 같은 짓을 반복한다
거신병들이 가장 가까이 있던 심연의 괴물들을 거대한 워해머로 후려쳤다.
“마법병단 진격!”
거신병의 뒤를 이어 제국의 마법 병단도 포털을 넘었다.
“끼에에엑! 크아아앍!”
그들은 키메라 부대를 이용해 전투에 참전했다.
“폐하를 지켜라!”
“제국을 위해 전진하라!!”
마지막으로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우르르 참전했다.
거대한 지하 홀이 어느덧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심연의 괴물들은 비록 무시무시했지만 적어도 숫자에서만큼은 인류가 압도했다.
쿠오오오.
하지만 그때였다.
―◇◆○, ●■–▲!!
마침내 엠마누엘의 모든 피와 힘을 다 마셨는지, 라이오스의 몸을 차지한 존재가 거대하게 포효를 터트렸다.
파스슷.
난자당한 것도 모자라 피까지 전부 빨려 미라가 된 왕비의 사체가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 ●■–▲!!
태초의 대악마의 포효는 필멸자들의 신체를 넘어, 영혼까지 뒤흔들었다.
“끄, 끄아아악!!”
“아아악!”
“머리,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라이오스의 포효에 지하를 가리던 건물의 모든 천장이 펑 하고 파괴되었다.
그것도 자갈처럼 잘게 부서져 파괴됐다.
보통이라면 건물 자재에 깔려야 했지만, 대악마의 거대한 염력으로 모든 건물 자재가 밖으로 터졌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아아아, 아아!”
이제 우리가 있는 곳은 더 이상 지하가 아니었다.
그 말인즉, 이 최악의 존재들이 세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기다!”
“저게 뭐야?!”
“국왕 폐하……!”
“그리핀 나이츠는 전부 저 괴물들을 죽여라!”
하늘 위로 아르미다츠의 그리폰 나이츠가 찬란한 빛을 뿜으며 날아오는 게 얼핏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모든 것들을 숨어서 지켜봐야 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일 것이다.
저 존재의 피어에 이성이 함락당해 조종당하지 않아야 했다.
이를 위해 모든 심력을 다해서 정신줄을 잡았다.
“크어어어…….”
“키에에엑!!”
“흑마법사들이 미쳤다!”
“모두 등 뒤를 조심해!”
“키메라와 흑마법사들에게서 떨어져!”
수준이 낮은 흑마법사들과 그들의 키메라가 이성을 잃고 방금까지 같이 싸우던 전우들을 공격한다.
“허억, 허억, 우욱……!”
그들을 막아야 할 타르타트는 나와 비슷하게 숨을 헐떡이며 마찬가지로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구석에 숨어 애쓰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평화로웠던 왕궁이 지옥 중의 지옥으로 변해 간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헷갈린다.
“아악!”
“밀키웬 경! 젠장, 제국놈이 밀키웬 경을 죽었어!”
“×발! 제국군이 우릴 공격한다!”
이성을 빼앗긴 일부 제국군이 아르미다츠 왕국군을 공격했다.
“제국군은 우리 편이라고 하지 않았어?”
“알 게 뭐야! 전부 죽여! 이 괴물도, 제국군도!!”
그걸 본, 뒤늦게 합류한 아르미다츠 왕국군이 심연의 괴물을 상대하던 제국군의 뒤를 찌른다.
“끄아악!”
“왕국군까지 조종당하는 건가?!”
“제압은 불가능하다! 공격해 오는 모든 것을 죽여라!”
멀쩡한 제국군이 자신들을 공격해 오는 왕국군을 베었다.
―■◆!
―키에에에!
“이 괴물은 도대체 뭐야?!”
“입고 있는 어떤 아티팩트도 통하지 않아!”
곧 다시 심연의 괴물이 힘을 잃은 필멸자들을 포식했다.
싸움은 어느덧 왕궁 전체로 퍼졌다.
그러던 중이었다.
푸슈욱!
라이오스의 가슴에 무언가가 꽂혔다.
―◇……? ▲!
―편히 쉬도록, 친우여!
어느새 접근한 제로니어드가 라이오스의 심장에 손톱을 쑤신 것이었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위중하시다!”
회심의 일격을 선보인 제로니어드의 상태는 심각했다.
온몸은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입고 있던 옷과 아티팩트는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악황제가 우리의 주군을 찔렀다!”
“악마 같은 제국 새끼들! 전부 죽여 버려!!”
뒤늦게 몰려온 아르미다츠의 기사들은 더욱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우스 경, 어디에 있소!”
지금 이 미친 상황을 중재할 수 있는 아르미다츠의 인물을 찾아야 했다.
“율리우스 경, 당장 마나의 외침으로…….”
다급히 폰셔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발! 빌어먹을…….”
이 모든 오해를 풀어 줘야 할 율리우스를 비롯한 초기의 기사들은 심연의 괴물과 싸우다가 전부 전사하고 만 것이다.
“오해다! 너희의 군주는 이미 오래전에…… 끄악!”
“닥쳐라! 폐하의 복수를 하자!”
“쿠오오오!!”
“끄아아아악!!”
“어쩔 수 없다! 왕국군도 우리의 적이다! 전부 죽여!!”
제국군과 왕국군 그리고 괴물들의 삼파전이 시작됐다.
꼬리를 문 뱀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먹어 치웠다.
“그 존재를 해치운 것이 아니었나? 어째서 저 문은 닫히지 않은 것이지?”
폰셔가 일그러진 얼굴로 심연의 악마 문과 라이오스를 번갈아 노려봤다.
라이오스의 심장에 제로니어드의 손톱이 박혔을 때 그 존재는 잠시 주춤거렸을 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악마 문에서는 아까보다 더 많은 심연의 존재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구해라!”
아직까지 운 좋게 살아 있던 제국군 사령관 게이츠버그가 외쳤다.
게이츠버그를 비롯한 일부 결사대가 심연의 괴물들과 왕국군을 뚫고 황제에게 달려갔다.
“폐하!”
“위대한 제로 대제시여! 저희가 왔습니다.”
그들의 주군 제로 대제는 라이오스의 심장에 손톱을 찌른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황제 폐하! 괜찮으십니까?”
간신히 제로니어드에게 다가간 게이츠버그가 주군의 안부를 물었고.
“사령관! 폐하에게서 떨어져!”
좀 떨어진 곳에서 심연의 괴물을 잡고 있던 이카본이 게이츠버그를 보더니 그에게 외쳤다.
“대공, 그게 무슨 말입니까? 폐하께서 위중…….”
게이츠버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말을 하던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푸우욱!
“쿨럭…… 폐, 폐하……?”
멍하니 서 있던 제로니어드가 순식간에 게이츠버그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좋지 않군.”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던 헌스터가 중얼거렸다.
라이오스에 이어 자신들의 황제마저 몸을 빼앗긴 듯싶었다.
촤라라락!
제로니어드의 몸에서 촉수처럼 검은 줄기가 뻗어 나왔다.
방금 잃은 힘을 복구라도 하려는지, 촉수에 닿은 모든 것들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라이오스와 게이츠버그의 시체 또한 그 촉수에 닿아 흡수되었다.
―◇○, ●■-■▲
어느 정도 다시 힘을 회복한 존재는 하늘로 붕 떠올랐다.
순백에 백염으로 가득하던 힌미르의 적통은, 타락한 용처럼 검게 변해 흑염을 발했다.
암흑시대에나 볼 법한 마왕의 모습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용에 누구도 감히 공격할 엄두도 못 냈다.
어느덧 악마 문은 하늘에 떠 있지 않고 땅에 스며들어 전체로 퍼졌다.
그리하여 왕궁의 모든 땅이 검어졌고, 땅에서 튀어나온 심연의 괴물들이 드넓은 왕궁 곳곳에서 사람들을 학살했다.
붉은 달에서도 보지 못했던 심연의 지옥이 펼쳐지기 직전!
나는 떨리는 눈으로 이 모든 지옥을 보아야 했다.
‘나 때문에…… 그냥 역소환이나 당할걸…….’
죄책감이 들었다.
물론 차원의 거울을 손에 넣은 제로는 자신이 아니었어도 언젠간 악마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마음을 놓고 최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거대한 섬광이 제로니어드의 바로 위에서 번쩍 터졌고, 엄청난 폭발과 함께 왕궁 전체로 섬광이 퍼져 나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던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후 내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깨어나고서 내가 처음 본 광경은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왕궁이었다.
웃긴 것은 그 와중에도 포탈은 아직 가동 중이었다는 것이다.
‘괜히 황금시대의 유물이 아니군…….’
살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제국군도, 왕국군도 모두 증발했거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훼손됐다.
살아서 이 자리에 서 있는 존재는 모두 여섯.
사천왕, 제로니어드 그리고 나였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천왕은 의식을 잃은 제로니어드를 안고 다급히 포탈로 넘어갔다.
“생존자들을 찾아라!”
“수상한 것은 절대 만지지 말고 지시를 기다려!”
저 멀리,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깃발을 보니 폰테임 후작가였다. 그 후작가의 사병들이 후작가 기사들의 지휘를 받으며 왕궁을 수습 중이었다.
폰테임 병사의 수는 최소 수백이 넘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후작 가문이 왕도에 저렇게 많은 사병을 데려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텐데?
“여왕님, 일단 저희랑 가시죠? 이 포탈도 곧 꺼지려 하고 있습니다.”
의문을 제대로 품기도 전에 폰셔가 내게 말했다.
하루도 안 된 사이에 뚱뚱하던 재상의 볼이 반쪽이 되었다.
나는 폰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과 함께 포털에 몸을 실었다.
내가 포털에 들어가자마자 위태롭게 유지되던 황금 액자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날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나 에르카네이자, 마족명 엘카란은 아직도 그날의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와 우리는 너무 오만했다.
그 대가로 소중한 인연을 모두 잃었다.
세상은 혼란에 빠졌고, 나 또한 그때의 후유증으로 몸의 붕괴가 더더욱 급속화됐다.
여전히 의문점은 있다.
도대체 그날, 왜 그런 끔찍한 악마 문이 열렸던 것일까?
절체절명의 순간 터졌던 섬광은 무엇이었을까?
폰테임은 어떻게 그토록 빨리 대응할 수 있었을까?
곧 역소환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끝내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 * *
“…….”
말없이 일기장을 덮은 로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은 내용이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이것은 보통 일기장이 아니다.
고위 마족의 기억을 담은 일기장이다.
읽을 때마다 글쓴이가 당시 느꼈던 장면과 감정이 그의 머릿속으로 생생히 전달됐다.
‘우리 필멸자의 어리석음은 끝을 모르고 같은 죄악을 반복한다.’
제르다교의 경전에 있던 문구가 떠오른다.
유적에 왔을 때부터 종종 떠올랐던 구절이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이 경전의 구절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과연 악황제의 말이 맞는 것일까?’
악황제는 그 존재를 몸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기억 또한 일부 공유하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악황제는 말했다. 아흐마흐 유적지에는 당시 차원 거울과 같은 유물이 하나 더 있다고.
그리고 그 유물로……,
“로지, 유물을 찾았다고 하네요!”
멀리서 데이지의 외침이 들렸다.
평소라면 하도 들이대서 귀찮았던 목소리가 이번엔 반가울 정도다.
‘황제, 당신의 말은 틀림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거짓일 경우 어떻게 될지는 악황제 본인이 더 잘 알겠지.
‘내가 그 존재의 일부를 분담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황제.’
로지는 속으로 되뇌이며 유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데이지를 비롯해 이카본, 타르타트, 율카네스, 마리아 등. 무시 못 할 존재들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