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8
128. 유물과 황녀 그리고 황비
이소레타의 말이 이어질수록 우리가 앉은 자리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황제는 대마도사에게 과거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그 외에 자잘한 오해들도 풀었지.”
“오해는 어떤 오해?”
“들어 보니 별거 아니었어. 과거 타르타트와 대마도사 그리고 악황제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소레타는 기억을 떠올리는지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오해로 대마도사가 아끼던 사람이 죽었는데, 알고 보니 죽은 사람이 무리하게 욕심내다가 그렇게 된 거라는 사연이랄까?”
앞의 내용이 워낙 세서 그런지 그 뒤의 사연은 확실히 관심이 적어졌다.
“흐음, 차원의 거울이라.”
나는 원작의 내용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태초의 대악마? 심연의 괴물?”
마찬가지로 루키엘 또한 이소레타가 했던 말의 여운을 곱씹고 있었다.
“…….”
그중 특히 앨리스는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에 언급된 폰테임 가문의 행동 때문일 것이다.
‘원작의 폰테임에서 내전 당시 사용했던 마인.’
본래는 폰테임에서 흑마법을 통해 얻은 산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과거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노획한 존재들이었던 건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테이블에 올라온 차는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차게 식어 있었다.
유일하게 우리 중 가장 많이 말을 했던 이소레타의 찻잔만이 바닥을 보인다.
반정 당시의 일을 대충 머릿속으로 정리한 나는 이소레타를 불렀다.
“그런데 부……인…….”
물론 그녀가 원하는 호칭으로.
“그래, 국서.”
그러자 이소레타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한다.
“이곳에 새로운 유적이 발견됐다는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이야?”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됐어도 굉장히 과장 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 취합한 정황이다.
“일단 새로운 유적이 발굴된 것은 사실이야. 또 그 유적에 봉인된 유물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도. 황제가 그 유물의 소문을 고의로 알린 것도 사실이야.”
나와 앨리스의 대화를 황녀가 대부분 듣고 있었나 보다.
“봉인된 유물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응, 황금시대의 유물 중 하나인 차원의 거울이라고 하던데?”
황녀의 평온한 말에, 나와 루키엘, 앨리스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반쯤 일어났다.
“그게 또 있다고?”
“그렇다고 하더라.”
“설마 또 악마 문을 열려는 것은 아니지?”
“그것까지는 나도 몰라.”
확실히 대단한 발굴이긴 하다.
“순수하게 악마 문이 열리는 것도 문젠데, 최악의 경우 과거와 같은 심연의 문이 열려 버리면…….”
에르카네 여왕이 역소환되었기에 이제는 어떤 악마 문도 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반복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상하게 저들이 차원의 거울을 얻게 되면, 과거와 같은 짓을 할 것만 같았다.
‘악황제는 그 거울을 어떻게 하려는 거지?’
단순히 그가 거울을 봉인하거나 파괴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한다면?’
간신히 악황제의 몸속에 봉인된 존재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것만 질문하고 어서 유적이 있는 곳으로 가 보자.’
나는 이 의문을 끝으로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부인의 상황이 위태롭다 들었는데, 그것은 또 왜 그런 것이지?”
제대로 된 세력 하나 없는 황녀가 독립해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다고 한다.
거슬릴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위협이 되긴 할까?
‘악황제가 깨어난 지금, 황녀에게 충성할 세력이 어디에 있다고?’
왜 사천왕부터 귀족파, 교단까지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이소레타가 황궁에서 각종 위협에 시달렸던 이유도 악황제가 쓰러져서지.’
황궁은 법과 도덕이 무시되는 약육강식의 뱀 굴이다.
이소레타는 생모가 황궁에서 일하는 몰락한 가문의 시녀였다.
어떤 세력도 없는 그녀는 당연하게도 가장 큰 위협을 받아야 했다.
‘황좌가 비자, 다른 힌미르의 적통들 간의 황권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지.’
어찌나 노골적으로 이소레타를 죽이려 드는지, 보다 못한 사천왕이 알게 모르게 이소레타를 도와줬을 정도다.
오죽하면 원작에선 폰셔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유배 형식으로 장벽이라는 사지로 보냈을까.
‘그러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이 여자도 보통은 아니라는 것이지.’
이소레타가 숨기고 있는 진짜 힘은 아마 사천왕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부인이 지금까지 황궁에서 많은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황제가 없었기에 그런 거 아니었나?”
“백염궁에서의 위협은, 제법 재밌었지.”
“……아무튼, 제로 대제가 깨어난 작금에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는 게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이소레타는 살짝 씁쓸함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황제를 제외한 유일한 힌미르의 적통이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유일한 적통이라고? 다른 적통들이 더 있지 않았나?”
내 말에 이소레타가 작게 미소 짓는다.
방금 지은 씁쓸한 미소는 온데간데없다.
“몰랐어? 최근 일주일 사이에 5황자를 마지막으로 전부 죽었어. 신기한 것이 하나같이 미라가 되더니 먼지처럼 부서졌다는 거야.”
“그거…… 설마?”
황녀가 말한 적통들의 죽은 모습.
그녀의 말에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말할 순 없어. 그저 심증만 있을 뿐.”
모두의 머릿속에 용의자가 좁혀진다.
심지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떠올랐다.
하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긴 힘들었다. 특히나 이곳 제국에선.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
“미안하지만, 이것도 아직 말하지 않을게.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 괜히 혼란만 줄 거야.”
황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감히 강요할 수는 없지.
‘어찌 되었든 다들 황녀를 노릴 수밖에 없구나.’
죽이든 납치하든, 그녀에게 좋은 일은 없었다.
누군가는 허수아비 황제를 새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잡아……먹기 위해?
“그런데 말이야,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느 세월에 세력을 모으려고?”
상황이며 과거도 어찌어찌 알았다. 이제 문제는 미래다.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말이다.
“일단 눈앞의 믿음직한 반려를 얻었으니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
“…….”
“나는 수락한 적 없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 입으로 그녀에게 부인이라는 말까지 해 버렸으니…….
“현재 제국에 남아 있는 기타 세력을 흡수하려고? 예를 들면 헌스터의 야만 군단같이.”
하지만 속으로 ‘야만 군단’은 정치나 통치할 때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야만 군단은 아직 내가 품을 수 있는 세력이 아니야.”
이소레타는 고개를 저으며 내 물음을 부정했다.
“우선 나는 북부로 갈 거야.”
“북부?”
“응, 북부의 룬-아르미 아카데미로 가서 그곳 지하에 봉인돼 있는 환상 군단을 손에 넣을 거야!”
이소레타의 말에 나와 앨리스, 루키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환상 군단은…….”
“환상 군단은 마누스의 적통만이 지휘할 수 있을 텐데?”
“무엇보다, 황녀님은 룬-아르미 아카데미 학생도 아니잖아요?”
“마누스의 적통이 유리하긴 하지만, 용의 힘을 물려받은 적통이면 누구나 가능해.”
자신만만한 황녀의 미소.
그 미소를 보니 어쩌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말로는 뭘 못…….”
다시 정신을 차리고 뭐라 한마디 하려 했다.
쿠웅, 콰아악!
“……뭔 소리야?”
밖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갑자기 숙소 1층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마리아가 나타났다.
“여러분~!”
그런데 마리아의 몰골이 이상했다.
입고 있던 옷은 자잘하게 찢어지고 더러워져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들이닥친 마리아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네 사람을 보더니, “튀어요!!”라고 소리친다.
그녀의 외침을 듣자마자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숙소 밖으로 뛰었다.
콰앙, 퍼어엉!
“진격하라!”
“와아아아아!”
“크오오오.”
숙소 밖,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규모 군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시력에 마나를 주입해 보니, 군대의 깃발들이 다양하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어안이 벙벙한 내가 마리아에게 물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떡밥에 달려드는 물고기 떼?”
“유물의 봉인이 풀린 겁니까?”
“네.”
급히 전장을 봤는데 악마 문이나 심연의 괴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하던 찰나.
“황녀가 저기 있다!”
“황비 후보도 함께 있다!!”
전투를 치르던 군대 중 일부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뭐라 소리친다.
귀에 마나를 담아 그들이 뭐라 외치는지 들었다.
“황녀는 그렇다 치고, 황비는 뭔데?”
황녀야 이소레타를 뜻하는 것일 테고, 황비는 도대체 뭐지?
내 말을 들은 앨리스가 마리아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에 황비 후보가 있다고요?”
“응? 앨리스 학생, 모르고 여기에 온 건가요?”
“……뭐가요?”
“앨리스 학생은 악황제의 새로운 황비 심사를 받기 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요?”
“……?”
마리아의 뜬금없는 말에 앨리스의 얼굴이 싹 굳는다.
“후작 영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대는 내 부마의 첩이 되기로 한 것이 아니었나?”
앨리스를 향해 이소레타가 묘한 눈으로 말했다.
경쟁자가 줄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남자도 모자라 아버지 황제까지 탐내는 희대의 요녀(?)를 질타해야 할지 모를 눈이다.
“무, 무, 무, 무, 무, 무슨 소리예요!!”
앨리스가 경악해 소리 질렀다.
“세피로스가 말 안 해 줬어요?”
대충 눈치챈 마리아가 짠하다는 듯 앨리스를 보았다.
“세피로스, 이 미친 새끼가! 날 속이고 팔아먹어?!”
자신의 의자와 다르게 납치(?), 인신매매(?)를 당한 앨리스는 충격과 분노에 역정을 냈다.
“그곳에서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순간 세피로스가 여기 오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청난 힘이 황비의 이야기라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알렉스 같은 놈도 아닌 세피로스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벌이다니!
“설마, 아버지도 이걸……!”
그녀를 아카데미에 보낸 이후 정략결혼에 대한 것은 잠시 미뤄 두나 싶었더니, 자신도 모르게 뒤에서 세피로스와 함께 이런 수작을 벌이고 있었나 보다.
“알렉스가 잠잠해지니, 이젠 다른 놈들이 내 운명을 구속하려 해!”
앨리스의 모습은 잔혹한 시련 앞에 선 가녀리고 선량한 여주인공 같았다.
“앨리스, 너도 전에 아리아를 팔아넘기려고 했었잖아?”
내가 그런 앨리스에게 과거 그녀가 했던 짓을 작게 말해 주었다.
“…….”
그나마 양심은 있는지 못 들은 척 외면한다.
“부마여, 저런 지조 없는 여인은 첩으로도 들이지 마라. 아주 난잡하도다.”
이소레타가 은근히 내 왼쪽 팔을 안으며 속삭인다.
“누가 난잡하다는 거야!”
앨리스가 그런 이소레타에게 소리 지른다.
“저런, 성격도 조신하지 못하네.”
“그런데 루카스 교수님?”
그때, 나와 앨리스, 이소레타의 삼자 대화에 마리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황녀가 지금 말한 부마랑 첩은 또 뭐죠? 혹시…….”
“……일단, 여기서 벗어난 후에 얘기하죠.”
마리아의 말을 중간에 끊은 나는 당장이라도 달릴 준비를 했다.
저 앞에 수백의 제국군이 각 진영별로 편을 갈라 이곳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마리아의 의문까지 답해 주기엔 상황이 다급했다.
“잡아라!”
“황녀와 황비 외에는 전부 죽여도 된다!”
우르르르 몰려오는 무수한 군대.
그들이 우리에게 내뿜는 살기에, 내 다리가 절로 뛸 준비를 했고, 마찬가지로 이소레타도 안고 있던 내 팔을 풀고는 뛸 준비를 한다.
“마리아 총장님? 어디로 튀어야 합니까?”
루키엘의 질문에 마리아가 웃으면서 전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유물이 있는 곳으로요!”
그녀의 손가락이 전장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