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33
133. 요정의 숲(2)
“네놈은 뭐야?!”
“너도 사냥꾼이야?”
“여긴 우리 구역이야.”
엘프 사냥꾼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경계하면서 위협했다.
“엘프 사냥꾼은 아니지만…… 저기 있는 엘프에겐 관심이 있어서.”
남자는 곤란한 얼굴을 하다가, 우리에 갇혀 있는 테노바를 보았다.
테노바의 분홍 눈동자와 남자의 붉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뭐지, 저 인간은?’
지금까지 느꼈던 더러운 눈빛과는 달랐다.
뭔가 호감이 가고 위로가 느껴지는 눈빛.
테노바는 호기심 반, 경계 반의 눈빛으로 로니아드를 보았다.
“역시 경쟁자였군!”
“저 엘프는 우리 거야. 결계 밖으로 튀어나오는 엘프가 어디 흔한 줄 아나?”
“피 보기 싫으면, 셋 셀 동안 당장 꺼져!”
사냥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로니아드는 검을 빼 들고는 저벅저벅 걸었다.
“미친놈, 혼자인 주제에 우리와 싸우겠다고?”
“얘들아, 준비해.”
사냥꾼들이 뭔가 눈짓을 보냈다.
‘위험해!’
테노바는 저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눈치챘다.
‘그 이상한 물건을 쓰려고 해’
저 남색 머리의 남자에게 뭐라 경고를 해 주고 싶었지만, 구속구 때문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본데.”
엘프 사냥꾼 넷은 로니아드를 포위했다.
“검 한 자루 믿고 나댄 것을 후회하게 해 주지.”
각자 들고 있던 구슬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가동시켰다.
“어?”
“이거 왜 안 돼?”
……가동시키려 했다.
사냥꾼들이 준비했다던 아티팩트들은 어쩐 일인지 발동되지 않았다.
“흑마법 아티팩트는 나한테 안 통해.”
“자, 잠깐!”
“으아아악.”
로니아드의 검이 네 명의 목을 순식간에 잘랐다.
깔끔하고 빠르고 망설임 하나 없는 움직임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테노바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를 멍하니 보았다.
카앙, 처컹.
그녀를 가두던 우리가 잘렸고 구속구도 잘렸다.
“안녕?”
남자가 테노바를 향해 인사를 한다. 어색하긴 하지만 엘프 언어였다.
“…….”
테노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난 로니아드라고 한다.”
“테노바…….”
“테노바, 괜찮다면 엘프들의 도시 클라메니크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우리 터전은 왜?”
로니아드가 자신들의 터전으로 가려고 하자, 테노바가 경계하며 물었다.
“그건, 으윽!”
그때 로니아드가 작은 신음을 냈다.
머리와 가슴에서 통증을 느꼈는지 한 손은 관자놀이에 다른 한 손은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댄다.
“괜찮아?”
테노바가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아아, 고질병 같은 거라서.”
로니아드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놈의 고질병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누구를 만나려고?”
“셀테라네라고, 엘프 여왕께 여쭈어 볼 게 좀 있어서 말이야.”
로니아드의 입에서 테노바의 어머니이자, 전대 여왕이 언급되었다.
“그분은 2년 전에 세계수의 일부가 되셨어.”
테노바가 살짝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수의 일부가 됐다는 게 돌아가셨다는 뜻이야?”
“응, 인간의 용어로는 그렇게도 표현하지.”
“이런…….”
테노바의 말에 로니아드가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지금 엘프 여왕의 자리는 공석인 거야?”
“아니, 셀테라네의 장녀 아우레가 새로 여왕으로 즉위했어.”
테노바는 자신과 여왕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다.
아직 눈앞의 인간 남자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아우레라는 새 여왕을 내가 만나 뵐 수 있을까?”
“아우레 여왕도 지금 요정의 숲에 없어.”
답을 하면서 테노바는 ‘왜 내가 이 남자의 물음에 이토록 순순히 답해 주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목숨의 은혜를 입었는데.’
그리고 자기 합리화로 이 이상한 기분을 넘겼다.
“하아, 현 여왕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현 여왕도 요정의 숲에 없다고 하자, 로니아드가 한숨을 쉬며 다시 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절박해 보이기도 했다.
“어둠의 숲으로 다크 엘프들을 징벌하러 가셨다.”
“하아, 어둠의 숲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한데? 중간에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원정을 나가긴 했지만 얼마 걸리지는 않을 거다. 다크 엘프 정예들은 지난번 전투에서 다 섬멸했거든.”
“얼마 안 걸린다고? 흐음, 그럼 요정의 숲에서 잠시 신세를 져도 될까?”
당시 로니아드가 생각했던 ‘얼마’와 테노바가 말한 ‘얼마’는 기준이 달랐다.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야. 일단 그대를 우리의 터전으로 안내는 할게. 그곳에서 장로들의 허락을 받아 봐.”
“고마워.”
“은혜에 답례할 뿐. 안내까지는 해 주겠지만 그 뒤로는 나도 몰라.”
사실 테노바는 로니아드라는 남자를 결계 안으로 안내하면서도, 이 남자가 엘프들의 도시 클라메니크에서 머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엘프 장로들의 깐깐함은 같은 엘프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외부인을 결계 안으로 데려왔다고 꾸중 들을 각오까지 했던 테노바는 오히려 흔쾌히 로니아드를 환대하는 장로들을 보면서 벙쪘다.
“종족의 은인이시군. 여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머물러도 좋소.”
“감사합니다.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아니오, 그대가 숲 바깥의 인간 무리들을 전부 죽여 줬으니 그걸로 되었소.”
듣자 하니, 그가 요정의 숲으로 오기 전에 일을 하나 했었나 보다.
숲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엘프 사냥꾼 무리들을 상당수 무찔렀다고 한다.
‘그러면 결계 안에서 헤맬 때 좀 도와주지.’
장로들의 환대에 로니아드는 감사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론 투덜거렸다.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무엇보다 어린 하이 엘프까지도 구해 주었으니, 감사는 우리가 표해야 하오.”
엘프 장로 중 한 명이 로니아드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테노바를 보며 말했다.
‘한동안 근신이겠군.’
테노바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테노바의 근신과 별개로 엘프 장로들과 로니아드의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신, 클라메니크에 머무는 동안 우리와 함께 외부의 위협을 막아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감사하오. 안 그래도 일족의 정예 전사들이 대부분 숲을 비워서 힘들었거든.”
“전대 여왕님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오.”
“다크 엘프놈들이 인간들에게 여왕의 부고 소식과 클라메니크에 전사가 많이 없다는 것을 흘렸소.”
“심지어 흑마법으로 숲 주변에 몬스터들을 대규모로 유인하기도 했지.”
“몬스터에 인간에 다크 엘프 잔당에…… 수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모두 현 여왕께서 어둠의 숲으로 원정을 간 후에 벌인 짓이오.”
“테노바가 결계 밖으로 몰래 나갔다가 잡혔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지.”
엘프 장로들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로니아드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이렇게 클라메니크가 위태로우면 우리 원정군이 회군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지!”
“나중에 여왕께서 돌아오시거든 꼭 사례하도록 하겠소.”
그렇게 로니아드는 엘프들의 도시 클라메니크에서 일정 기간 거주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테노바는 근신해야 했지만, 무료하거나 심심하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배에서 뛰어 내린 다음에 죽어라 헤엄쳤지.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로니아드가 테노바가 근신 중인 집의 바로 옆집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니아드는 테노바에게 대륙을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화들을 얘기해 줬다.
“로니아드! 제국에 살고 있는 엘프들은 어떻게 생겼어?”
“너희랑 비슷해. 대신 좀 더 계산적이고 적극적이랄까?”
“한번 만나 보고 싶다.”
테노바 뿐만 아니라, 클라메니크의 어린 엘프들이 로니아드의 이야기를 들으러 매일매일 방문했다.
깐깐한 장로들도 이를 막지 않았다.
“으음…….”
“또 통증이 온 거야?”
테노바의 기억 속의 로니아드는 늘 아팠다.
굉장히 강한 인간이었지만, 알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1주일에 두세 번 정도 두통과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아아, 괜찮아. 그래도 요정의 숲이라서 그런지 통증의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어. 원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증이 왔어야 했는데…….”
“흥! 그렇게 엄살 피운다고 해서 봐주지는 않을 거야.”
“걱정 말고 덤비기나 해, 엘프 누님.”
“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너, 나이 200살이라며? 그럼 누나지.”
“인간과 엘프의 나이 개념은 많이 달라! 그리고…….”
‘당신에게 연상 소리 듣고 싶진 않아.’
테노바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근신 중인 테노바지만 집 앞 공터까지는 거닐 수 있었고, 테노바와 로니아드는 늘 늦은 밤이 되면 달빛 아래서 대련을 즐겼다.
‘어떻게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이런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로니아드로부터 바깥 세계 이야기를 듣고 로니아드와 대련까지 하면서, 테노바는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로니아드라는 인간 검사, 실력이 굉장하더군.”
“검술에 마법까지 쓰는데 어지간한 정령 검술을 능가해.”
“나도 그에게 검술이라도 배워 볼까?”
종종 로니아드와 함께 몬스터 사냥과 엘프 사냥꾼 토벌을 갔다 온 전사들도 그의 무력을 칭찬했다.
‘좀 더 성장하려면 바깥 세계로 가야 해!’
그럴수록 인간 세계를 향한 테노바의 갈망은 커져만 갔다.
물론 인간 세상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았다.
하지만 제국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제국에는 엘프 일족들도 인간들과 제법 섞여 지낸다고 들었는데…….
‘로니아드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그때쯤의 테노바는 로니아드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는 상상을 밤마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로니아드.”
“……갑자기 분위기를 왜 잡지? 또 사고 쳤냐?”
로니아드와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한 테노바는 그에게 진지한 부탁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언니가 클라메니크로 귀환하면…… 언니를 만나고서 북부로 간다고 했잖아.”
“그랬지. 렌슬렛이라고 북부 제일 끝에 있는 곳이야.”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너도?”
“응, 나 바깥에선 너를 세계수처럼 모시면서 말도 엄청 잘 들을게!”
로니아드가 뜬금없는 말을 한 테노바를 말없이 쳐다본다. 그의 붉은 눈동자를 보면서 테노바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절대 너한테 피해를 주지 않을게. 맹세한다!”
“……북부는 이종족이 없다시피 한 곳이야. 함께 가기 힘들어.”
‘완전한 거절은 아니다.’
로니아드의 말에 테노바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언니에게 인간으로 변신하는 황금시대의 아티팩트가 있다고 들었어! 그것만 있으면 되는 거지?”
“아우레 여왕께서 허락한다면?”
기대 가득한 테노바의 말에, 로니아드가 조건부로 승낙했다.
테노바의 얼굴이 환해졌다.
“약속하는 거야! 꼭 날 데리고 가기로!”
“……크윽!”
그런데 로니아드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니, 왜 하필이면 지금 아픈 건데!”
그런 로니아드의 모습을 자주 봐 왔던 테노바는, 로니아드가 자신을 놀리려고 연기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로니아드가 이런 식으로 약속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겁이 났다.
“약속하는 거다!”
로니아드에게서 기필코 약속을 받아 내려 했다.
로니아드는 고통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테노바는 철없는 아이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약속을 받아 냈음에도 로니아드는 여전히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렸다.
“로니아드? 진짜 아픈 거야?”
로니아드의 상태가 평소보다 더 아파 보였다.
“많이 아파? 잠깐 기다려! 장로님을 모셔 올게!”
그리고 그것이 테노바가 보았던 로니아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