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37
137. 파괴왕 헌스터와 야만 군단(3)
라-고이트 장벽.
제국의 동부와 남부 전체에 이어진 거대한 성벽이다.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를 나누는 선이기도 하다.
라-고이트 장벽의 북쪽에는 요정의 숲과 어둠의 숲이 있고, 동쪽에는 야만의 땅이, 남쪽에는 열사의 사막이 있다.
이 장벽과 맞닿은 지역 중 무려 세 곳이 대륙의 8대 마경에 속해 있다.
그래서 악황제가 쓰러지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국 내에서 별별 내전과 사건이 터져도 누구도 이 장벽에 허튼수작을 벌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면, 장벽과 그 장벽 앞에 있는 야만 군단으로 향하는 모든 보급 마차는 안전했다.
내전 중인 귀족들도, 돈에 환장한 용병들도, 떠돌아다니는 산적과 난민들도, 장벽으로 향하는 보급 마차만은 절대 건들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제국을 증오하는 북부 왕국들과 교국 또한, 제국에서 장벽을 지키기 위한 지원을 요청하면 말없이 건네준다.
물론 제국에서 북부에 지원을 요청한 적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그 정도로 라-고이트 장벽은 제국을 넘어 이카디아의 모든 문명을 수호하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런 라-고이트 장벽의 중앙.
장벽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부 성채에 눈부신 빛과 함께 두 존재가 순간 이동 했다.
“누구냐!”
“마법 경보는 멀쩡했는데?”
경비를 서던 기사와 마법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존재를 향해 무기를 빼 들었다.
장벽, 특히 사령부의 중앙 성채에는 각종 방어 마법이 인챈트되어 있다.
요새용 마법 포도 수십 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 경비를 뚫고서 이렇게 쉽게 순간 이동을 하다니.
눈부신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두 존재의 정체가 드러난다.
“무기를 치워라.”
순간 이동을 마친 둘 중 한 명이 차갑에 입을 열었다.
“혹시 이카본 대공이십니까?”
검을 빼 들었던 기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제국에서 이렇게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자가 요즘엔 흔한가 보죠?”
뒤에서 타르타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병사, 당장 사령관님께 보고드려.”
신원을 확인한 기사가 옆에 있던 수인족 병사에게 명했다.
“알겠습니다!”
개과의 수인족 병사가 헐레벌떡 사령부로 뛰어가려 했다.
“아니, 그럴 거 없다.”
하지만 수인족 병사는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이카본의 차갑고 무거운 말이 명령처럼 병사의 두 발을 묶었기 때문이다.
“앞장서라.”
이카본은 기사에게 명했고.
기사는 벌벌 떨면서 두 사람을 사령부로 안내했다.
잠시 후.
콰아아앙, 퍼엉.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령관이 머물고 있는 사령실이 터졌다.
“습격이다!”
“무슨 일이야?!”
“사령관님과 장교들은?”
기사와 마법사, 병사가 혼비백산했다.
폭발의 연기 속에서 이카본과 타르타트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폰셔와 세피로스가 재밌는 짓을 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크 스타라니……”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거지?”
“고치 상태로 있는, 황제인지 모를 존재에게 다크 스타만큼 좋은 영양제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아흐마흐 유적에서 소환을 했어야지.”
“다크 엘프가 많은 야만 군단과 어둠의 숲 정도는 되어야 다크 스타를 소환할 수 있겠죠. 그것도 본신체 그대로.”
타르타트는 하늘 위로 떠오른 두 개의 달을 올려다봤다.
“겸사겸사, 가장 거슬리는 헌스터와 거인들 그리고 요정의 숲도 처리하고요. 뭐, 저 같아도 그렇게 했겠어요.”
“빌어먹을 놈들, 아무리 힘에 미쳤다고 해도 정도껏 해야지.”
이카본은 이 모든 일을 벌인 원흉 폰셔와 세피로스를 떠올렸다.
“타르타트, 네놈은 제자 하나 관리 못 하고 뭐 한 것이냐!”
타르타트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세피로스 말입니까?”
타르타트는 왜 그걸 나한테 따지냐는 투다.
“그 녀석은 원래 제 제자가 아닙니다. 그저 검은 알을 핑계로 서로 거래를 한 것일 뿐.”
“처음부터 폰셔의 수하였다는 거야?”
“어쩌면 그 존재의 수하일지도요.”
의미심장한 타르타트의 말에, 이카본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음흉한 흑마법사 놈들이란……. 오면서 봤지만 야만 군단이 통째로 증발했더군.”
“방금 죽인 총사령관의 말대로라면 헌스터와 그의 일족들은 지금 위험합니다.”
“헌스터가 위험하다고?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데?”
“거신갑이 없고 봉인도 못 푸는 헌스터는 무적이 아닙니다.”
타르타트의 말에 이카본은 어깨를 으쓱한다.
저 리치가 위험하다고 하면 진짜 위험한 것이겠지.
“요정의 숲이라고 했나?”
“네, 그쪽으로 군단이 이동했다고 하더군요. 하아, 엘프 여왕이 저를 무척 싫어하는데…….”
“세상에 리치를 환영하는 곳은 없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 후, 북쪽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과 같이 환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 * *
“저 결계가 무엇이냐!”
로니아드와 헌스터를 가둔 거대한 검은 결계를 본 아우레가 다급히 물었다.
“확실한 것은 시공간과 원소의 흐름이 뒤집어졌다는 겁니다.”
“힘들게 준비한 모든 정령술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진행했다간 아군 진영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장로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여왕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지금 저기 펼쳐진 검은 장벽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령왕까지 소환해 준비한 광역 정령술도, 그리고 광역 정령술 이후에 계획된 엘븐 라이더들의 차징도 말이다.
“모든 원소의 정령왕들이 꺼린다고? 저게 어둠의 정령왕 다크 스타라도 된다는 것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아우레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다시 놀라 정면을 응시했다.
―엘프들이여, 그대들만으로는 위험하다.
그때, 아까부터 소환되어 있던 빛의 정령왕 세라핌의 목소리가 아우레를 포함한 장로들의 머리에 울렸다.
“다크 스타인 것입니까?”
―그렇다.
다크 스타, 어둠의 정령왕.
“하지만 세라핌이여, 빛의 정령왕인 그대라면 충분히…….”
―문제는 저 다크 스타를 소환한 의식이다.
“다크 엘프들의 인신 공양 의식 말입니까?”
―그래, 놈들은 굉장히 많은 제물로 다크 스타를 본신 그대로 이 세계에 현했다.
세라핌이 왜 자신 없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본신의 10분의 1도 이곳에 현하지 못했어. 나를 그대로 현하려면 그대들은 최소한 세계수 뿌리 중 3할을 바쳐야 한다. 하지만 세계수는 모든 정령들의 놀이터. 나도 그렇고 어떤 정령왕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구나.
“…….”
세라핌의 말에 아우레를 비롯한 엘프 장로들이 망연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봤다.
얼마나 많은 적을 베었는지 모르겠다.
로니아드가 입고 있던 회색의 평기사 제복은 몬스터의 피와 본인의 피로 검붉은 색이 되었다.
제복에 인챈트된 마법은 전부 깨진 지 오래다.
등과 허벅지 등에서 화살과 단검 등이 박혀 있었다.
헌스터는 그런 로니아드보다 더 처참하게 피투성이였다.
“쿨럭……! 나 때문에 자네까지 죽게 되어 미안하군.”
헌스터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아쉽고 분해 보이기도 했다.
“거신갑…… 하다못해 봉인만 풀렸어도!”
반쯤 송장이 되어 버린 작은 인간이 거인의 눈동자에 밟혔다.
그런 헌스터의 시선을 느꼈는지, 로니아드가 피식 웃는다.
아직 웃을 기력이 남아 있다고? 그 상태로?
“웃음이라. 그대는 진정한 전사요. 최후를 맞이하는 자네의 모습. 죽어서도 잊지 않겠네.”
“……왜 벌써부터 죽을 생각을 하시지, 야만 군단장?”
놀랍게도 로니아드의 목소리는 멀쩡했다. 그의 몸 상태와 완전 반대다.
좋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로니아드는 이상하게 자신 있었다.
이미 몸의 통제권을 잃은 상태다.
오래전에 이미 의식을 잃었어야 했다. 아니,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로니아드의 의식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다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 뿐.
“오랜만이군.”
그는 과거에 오스카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물론 난이도는 지금이 더 높지만, 그때와 달리 뒤에는 이 포위망을 뚫으려는 강력한 아군이 있다.
무엇보다 그사이에 로니아드 또한 놀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쿠오오오오!
“……?!”
로니아드의 오른손에 들린 검에서 회색의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왼손에는 진짜 번개를 응축시켜 놓은 것 같은 번개 조각들이 지지직, 번쩍였다.
그동안 로니아드는 드래고니안과 겨뤄 봤고, 마리아를 통해 다른 세계의 미래를 알았다.
마인을 죽여 봤고, 성녀의 찬송가를 바로 앞에서 들었다.
그리고…… 악황제도 직접 보았다.
“근래 무료했지.”
심장이 두근거렸고, 흥분되었고 설렜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붉은 달 리린의 색처럼 탁하면서도 황홀하게 빛났다.
늘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의 본능은 이런 순간을 강렬히 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를.
“…….”
헌스터가 멍하니 입을 벌려 그런 로니아드를 보았다.
저 작은 인간의 몸에서 후광이 빛나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났다.
거인 대장로는 쉬지 않고 움직이던 양팔마저 멈췄다.
대장로 거인은 그렇게 잠깐 멍하니 있다가 대소했다.
“크, 크하하하하핫!”
주변에 있던 적들이 거인의 웃음에 움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래, 이거야! 이게 얼마 만인가! 황제와 함께 전장을 휘저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군.”
그리고 과일의 취기를 해소했을 때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크아아!!”
투두두둑, 투둑.
기합 한 번으로 몸에 박힌 수십 발의 화살과 도끼, 단검, 창 등을 튕겨 냈다.
뽑혀 나간 상처 부위에서 피가 추르르르 뿜어져 나왔지만, 몇 초 되지 않아 피가 멈추고 상처가 아물었다.
“내게 새겨진 봉인을 풀 수 있게 해 준 양반은…… 제로 대제 이후로 그대가 처음이오.”
동시에 헌스터의 몸에 새겨진 문신 중 일부가 사라졌다.
“만약 살아서 나가게 되면, 그대를 나의 새 황제로 모시겠소.”
헌스터의 맹세에 로니아드가 광오하게 웃었다.
힘을 개방한 로니아드의 웃음소리, 그 웃음이 마나의 기운을 크게 받아 헌스터의 머릿속을 울렸다.
―내가 아닌, 이소레타에게 힘을 실어라.
아까와 전혀 다른, 광오한 로니아드의 말투.
―황제라는 필멸자의 감투에 내가 혹할 거라 생각하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머릿속에도 동시에 울리는 고차원의 언어.
“그렇다면, 충성이 아닌 신앙을 바치겠나이다.”
―그건 허하마.
하지만 헌스터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헌스터가 거인의 방식대로 공손히 예를 올렸다.
촤아아앗, 지지지직.
로니아드의 왼손에 응축된 번개들이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퍼버버벙, 콰르르륵.
번개가 쏘아진 곳은 탈출해야 하는 요정 숲 방향이 아닌, 적들이 모여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에 있는 최소 수백의 야만 군단들이 비명도 못 지르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두 사람을 통제하려던 다크 스타의 결계 주술도 찢어졌다.
헌스터가 흥분이 뒤섞인 얼굴이 되었다.
―함께하겠는가?
“물론입니다!”
헌스터가 경외 가득한 눈으로 로니아드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