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38
138. 또 신화의 재림
다크 스타의 존재로 체한 듯 막혔던 전세가 뚫렸다.
다크 스타를 상징하는 결계 한쪽이 터지면서부터다.
“놔라! 당장 지원을……!”
이소레타는 탈골된 어깨를 맞추면서 전장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빌어먹을! 헌스터와 로니아드가 저 안에 있다. 당장 구해야 해!”
테노바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다려요. 아직 위험해!”
마리아가 두 사람을 말렸다.
“앨리스, 무리하지 마세요!”
눈과 코 그리고 귀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앨리스에게도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눈먼 화살이나 마법이 이곳으로 날아오지 못하게 방어막을 펼쳤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로니아드 그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
보다 못한 루키엘이 한소리 했다. 그렇게 말하는 루키엘 또한 무리한 공격 마법으로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야? 이 양반은…….”
마력을 회복하느라 멍하니 전장을 보던 루키엘이 중얼거린다.
딱히 걱정된다는 투는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궁금하다는 어조.
“루키엘은 로니아드가 걱정되지도 않아요?”
태연한 루키엘을 보면서 앨리스가 비난하듯 물었다.
“듣기로 오스카 때부터 함께해 온 사이 아닌가요?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아카데미 밖이라 교수님 칭호는 진즉에 버린 후작 영애다.
“로니아드, 그 양반이 걱정되냐고요?”
앨리스의 물음에 루키엘이 뚱한 얼굴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로니아드 걱정입니다.”
루키엘은 확신했다.
“오스카 때도, 드라센 때도, 리바이어던 때도, 늘 괴상한 방법으로 살아남은 양반입니다.”
앨리스를 보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루키엘을 뒷말을 삼켰다.
“보세요. 놈들이 전열이 이상합니다. 단체로 겁을 집어먹은 모양인데요?”
그러더니 다른 말로 주제를 돌렸다.
‘무엇보다 로니아드 그자는 진심으로 신의 축복을 받고 있거든.’
하려던 말은 속에 담아 두었다.
입 밖으로 내려고 보니 실없어 보였거든.
‘신의 축복이라…….’
흔히 그것을 행운이라고 한다.
그리고 로니아드는 그 행운에 엄청 강했다.
실제로 순백 달에서 제르다와 아한이 교대로 축복을 내려 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쩌면 저 양반의 과거는…….’
루키엘 또한 로니아드가 과거의 기억을 잊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다.
아마 불가사의한 그의 능력과 말도 안 되는 행운은 봉인된 과거와 관련된 것일지도.
‘거기에 세이렌, 오스카, 황녀, 엘프, 후작 영애, 여공작, 왕녀까지…….’
그가 생각한 신의 축복. 행운은 단순히 위험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다. 복합적이다.
이제는 질투조차 들지 않았다.
코에서 피가 조금씩이지만 여전히 나고 있었다.
마력 과부하로 마법을 한동안 쓰기 힘들다.
대신 뭐라도 도울 게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방어 마법을 펼치고 있는 마리아에게 향했다.
회색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
20대면 20대, 30대면 30대, 또 어쩔 때는 10대 같은 느낌도 든다.
나이를 추정하기 힘들지만, 분명 젊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대마녀다.
10여 년 전 갑자기 나타난 천재 마법사. 로니아드처럼 과거가 철저히 봉인된 대마녀.
일반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선 수년 전부터 유명했던 여자다.
‘딱히 로니아드 그 양반이 부럽지도 않고.’
힘들게 이 여자, 저 여자 사이에서 스트레스받는 로니아드보다 자신이 나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루키엘?”
“아닙니다. 그냥 되게 멋있어 보여서.”
“……?”
마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했다가, 루키엘의 미소를 보고는 마찬가지로 피식 웃었다.
“코피나 닦고 말하세요.”
“이따가 다 끝나면 마리아가 닦아 주시죠?”
“……그러지요. 그때까지 무리하지나 마요.”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루키엘와 마리아 사이에서 묘한 분홍빛 기운이 느껴진다.
“참나……!”
앨리스가 기가 막혀 한다.
야만 군단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만한 전열을 갖추지 못했다.
숫자만 많았고, 아군끼리 부딪치고 밟혔다.
공포와 충격, 혼란으로 통제가 안 됐다.
이를 보는 엘프들도 혼란스러운 반응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어…….”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저 검기와 마법 속으로 뛰어들자고?”
“설령 끼어든다고 해도 도움이 되긴 할까?”
그렇다고 엘프 측에서 역공세에 나서기도 힘들었다.
여전히 다크 스타의 영향 때문인지 시공간의 원소 배열이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저 싸움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번쩍, 콰아아.
적진 한복판에서 여러 번의 거대한 마법이 작렬한다.
하나하나가 그들이 준비하던 광역 정령술 수준이다.
그뿐일까? 다른 한 손에선 검기가 쉬지 않고 날아다녔다.
검기 한 번에 수십의 몸통이 가로로 두 동강 났다.
남색 머리에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진 인간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쉬지 않고 행했다.
“저게 인간이 맞아?”
“저들이 만약 우리의 적이었다면…….”
“셀테라네 여왕이 부활하지 않는 한 절대 상대할 수 없어.”
시력이 좋은 엘프들이 로니아드의 무용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그 옆에 있는 거인족 대장로도 파괴왕 그 자체로군.”
로니아드의 위용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봉인이 풀린 헌스터도 만만치 않다.
“거신갑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방어력을 낼 수 있는 거야?”
야만 군단도 나름 발악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로니아드의 마법 방어막에 튕겨 나갔다.
헌스터는 마법 대신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피부에 화살과 마법을 맞아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거신갑이 없는 상태에서도 저럴진대 거신갑을 입은 상태였다면?
‘결국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황제가 보호해 줬기 때문이었어…….’
아우레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과거 제로 대제가 칙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가 쓰러진 후 그 칙령은 서서히 무너져 가긴 했다.
용병같은 인간들이 결계를 벗어난 엘프를 노리고 종종 접근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제국의 정규군은 요정의 숲에 오지 않았다.
황제의 칙령 때문이었다.
‘불과 100년도 안 돼서 어떻게 저리 성장할 수 있는 걸까?’
단순히 로니아드만 생각한 게 아니다.
헌스터와 거인족 그리고 야만 군단은 본래 제국의 온전한 군대였다.
‘우리는 너무 안일했어.’
엘프들은 늘 여유롭고 느긋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긴 시간을 너무 남용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변모했다고 생각했는데, 터무니없이 부족했어.’
치열함이 없다.
그래서 바깥 세계의 변화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바깥 세계로 나간 동족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하지만 진짜 한심한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었다.
‘극단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내 대에서 멸종한다.’
절망적인 확신이 아우레의 가슴을 쳤다.
그녀는 말없이 동족들을 보았다.
‘부디 저들도 이번 기회에 뭔가를 깨달았으면.’
고리타분한 장로들은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있는 젊은 엘프들이라도 깨달았으면 했다.
“여왕이시여, 명을 내려 주시죠.”
문득 장로 한 명이 아우레에게 말했다.
아우레는 말없이 고개로 엘프들을 가리켰다.
“아…….”
그녀의 턱이 가리킨 엘프들을 본 장로가 망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 또한 졌군요.”
아우레와 함께 이 싸움을 지켜보는 엘프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파수꾼들은 화살을 날릴 생각도 하지 못했고, 엘븐 나이트와 전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팔의 힘을 뺐다.
정령들이 놀라 전율하자, 정령사들도 들고 있던 정령석 지팡이를 내려놨다.
엘프들은 모두 다른 의미로 전의를 상실했다.
“대장로의 봉인이 풀렸어……”
그러나 큰 키와 뛰어난 시력으로 자신들의 대장로를 보고 있던 거인들은 반대였다.
“우오오오오오!”
“싸우고 싶다!”
“대장로의 봉인이 풀렸다!”
“끝없는 전투, 전쟁이다!!”
거인들은 대장로의 봉인이 풀렸다는 말들을 하면서 흥분해 날뛰었다.
“아직 치료가 다 안 끝났다고!”
“막아, 땅의 정령들로 저 거인들을 붙잡아!!”
거인들을 치료하던 엘프 정령사들이 날뛰는 그들의 발과 손을 묶느라 곤욕을 치렀다.
“거인들을 공격해도 좋다. 기절이라도 시켜서 진정시켜!”
일부 하이 엘프들이 거인을 공격하려 했다.
“저들은 왜 또 저러는 거야?”
멀리 있던 아우레도 이 난리를 보았다.
“장로들은 나와 함께 거인들을 진정시킨다.”
보다 못한 아우레가 직접 나서려 할 때였다.
번쩍!
하지만 거인들의 난동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섬광과 함께 멈췄다.
쿠우우우.
화아아악!
섬광으로 멀어졌던 시야가 회복될 때쯤.
―크아아아아!!
이 장소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으로 상위 존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크 스타……?”
이 정도의 포효는 다크 스타가 아니면 상상하기가 어렵다.
―맞다. 어둠의 정령왕의 울음소리다.
세라핌이 아우레의 추측에 화답한다.
“무찌른 겁니까? 다크 스타를?”
―역소환되지는 않았다. 명색이 본신을 그대로 드러낸 붉은 달의 대정령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존재에게, 생각지도 못한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방금의 대폭발로 야만 군단 중심부가 훤하게 증발했다.
이쯤 되자, 야만 군단 전체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크 스타가 잡고 있던 정신 조종도 본능적인 공포를 이기진 못했다.
그들 중 일부가 요정의 숲으로 가는 게 보였다.
일부라고 해도 군단의 일부다. 무시할 정도의 숫자가 아니었다.
“이런, 놈들이 요정의 숲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라!”
아우레가 급히 엘프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패퇴한 적이 요정의 숲으로 몰려왔다.
“우리의 숲을 지키자!”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엘프들이 어느새 전의를 회복했다. 그리고 각자 조를 이뤄 요정의 숲으로 흩어졌다.
“부군!!”
이소레타가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그를 부르던 호칭이 부마에서 부군으로 상승했다.
“대장로를 맞이하라!”
거인들 또한 흥분하여 헌스터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 일부 엘프들과 이소레타, 마리아 일행, 그리고 거인들이 신화의 업적을 재연한 영웅에게 달려갔다.
“오오……!”
“헌스터가 왜?”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본 것은 무릎을 꿇고 로니아드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고 있는 헌스터였다.
그리고 로니아드는 이를 곤란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곤란하군.’
로니아드는 곤란함을 느꼈다.
분명 방금까지의 모든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했으나,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
싸우면서 헌스터와 나눴던 대화도 자신의 입으로 한 것이나, 그의 생각대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일단 그대의 마음만 받겠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평범한 육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황제라는 칭호는 듣지 않은 것으로 하지.”
“이런,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위대한 존재. 드래곤이나 드래고니안을 칭하는 칭호다.
“위대한 존재도 아니다. 그냥 로니아드 님이라고 불러라.”
아까 자신이 했던 광오한 말투를 최대한 흉내 내어 헌스터를 상대했다.
“대장로가 충성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뭐, 대장로의 봉인을 풀어 줬으면 저분이 새로운 황제인가 보지.”
“다들 뭐 하고 있어? 대장로가 무릎을 꿇었는데 우리도 꿇어야지.”
거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쿠르르르, 쿵.
“충성을 바칩니다!”
“전장의 선봉을 맡아 주십시오!”
“우리 일족을…….”
너도나도 로니아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충성 맹세를 한다.
거인들이 그러자, 엘프들이 웅성거린다.
“이게 무슨…….”
“우리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 아니지?”
엘프들이 여왕과 장로들의 눈치를 본다.
‘하지 마라!’
아우레가 애써 손짓으로 따라 하지 말라고 다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