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39
139. 숨 고르기(1)
거인들의 충성을 받는 로니아드는 신화 속의 영웅 같았다.
그의 머리 위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고, 광오한 표정과 분위기가 공기를 짓눌렀다.
“아아…….”
앨리스는 경외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로니아드를 우러러본다.
‘더욱 과감하게 다가가야겠어. 이러다가 엘프들도 달라붙을 거야. 단둘이 있을 때 바로 고백을 하자.’
앨리스는 로니아드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대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의 부마로만 있을 그릇이 아니다.”
이소레타도 크게 상기된 얼굴이다. 로니아드를 자랑스러움과 사랑이 담긴 눈으로 응시한다.
그러다가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기사의 예법에 맞춰 로니아드에게 경례를 올렸다.
그 경례는 많은 것을 포함했다. 부군을 향한 경례. 강자를 향한 경례. 그리고 새로운 황제를 위한 경례.
“오히려 내가 당신의 황후가 되는 게 이치에 맞을지도.”
로니아드와 함께 세계를 경영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온몸에 열이 났다.
“다들 일어나라.”
로니아드는 여전히 광오한 눈빛과 말투를 유지했다.
‘제길,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데?’
속으로는 곤란해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그런 로니아드의 모습을 당연시했다.
심지어 테노바와 일반 엘프들도 로니아드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일 뻔했다.
마리아, 루키엘, 아우레처럼 극히 일부만 평정을 유지했다.
“이제 막 첫 번째 전투가 끝났을 뿐이다.”
너무도 자연스레 모두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다들 전장을 정리하고 다음을 대비하라.”
‘아니, 엘프의 여왕은 난데…….’
로니아드의 지시에 아우레가 황당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녀도 보았고 정령왕들도 본 로니아드의 이적이다.
정령왕들도 그런 로니아드를 보며, 그의 정체를 멋대로 추측하고 있었다.
―잠들었다가 유희를 나온 드래곤 아닐까?
―저자가 마누스나 힌미르라는 말인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다른 드래곤이겠지. 둘은 아니다.
―맞아, 마누스와 힌미르는 신성 시대 때 너무 무리했지. 깨어나려면 2,000년은 더 있어야 한다.
―남색 머리라면 블랙이나 블루 계열인가?―
―눈동자가 붉어. 레드일지도?
―드래곤 대륙에서 유희를 나온 용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순백 달에서 내려온 대천사일지도 모르지.
―그러기엔 마나가 너무 탁해.
―맞는 말이다. 천사의 마나는 신성의 마나처럼 순백이어야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마나는 회색이다.―
―그렇다면 설마……? 마왕급의 마족?
―제약을 뚫고 온 마왕이나 고위 마족이 저 정도 힘을 낸다고? 그랬다면 순백 달에서 가만 안 있지.
―태초의 대죄는 아니겠지?
―태초의 대죄는 지금 힌미르의 반쪽짜리 후손에게 있지 않나?
―그 일부일 수도 있지.
―그러기엔 마찬가지로 마나가 너무 밝아.
세라핌을 비롯해 본신의 10분의 1, 어쩌면 100분의 1 정도만 현신한 정령왕들이 무거운 입을 놀렸다.
그들이 저렇게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아우레와 마리아는 정신을 집중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에는 꽤 중요한 내용이 많았다.
“다들 요정의 숲으로 돌아가라.”
정령왕의 수다와 함께 로니아드의 연설도 끝났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헌스터가 로니아드 앞에 무릎 꿇고는 허리와 어깨를 낮췄다.
‘살다 살다 파괴왕 헌스터의 어깨에 앉을 줄이야…….’
속으론 심장이 쫄깃했지만, 로니아드는 사양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완전히 빠져 도저히 걷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요정의 숲에서 몬스터들을 잡아먹고 있을 그랑블루를 부르려 했지만, 방금 연설을 하면서 그랑블루를 외치기도 힘들었다.
“그래.”
로니아드는 짤막하게 응하고는 당연하다는 듯 헌스터의 어깨에 앉았다.
싸움이 끝나고 클라메니크의 모든 엘프들이 총출동하여 전장을 정리했다.
숲속으로 기어 들어온 야만 군단 병사들과 몬스터들을 처리했고, 널려 있는 시체들 사이에서 언데드가 퍼지지 않게 정령들을 이용해 묻고 정화했다.
“또 온다고?!”
테노바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평소라면 그런 테노바를 나무랐을 여왕과 엘프 장로들도 뭐라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테노바와 똑같이 경악했으니까.
“그렇다. 너희들이 본 야만 군단은 실제 군단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헌스터가 몰랐냐는 듯 다시 그들의 물음에 확인해 줬다.
“야만 군단의 가장 무서운 점이 줄지 않는 군세라더니, 정말이었군.”
아우레가 관자놀이에 손을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야만 군단과 헌스터를 대할 때의 아우레는 덤덤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을 겪고 나니, 그녀 또한 뭔가 변화를 보이는 듯싶었다.
“심지어 보급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니, 이보다 더 완벽한 군대는 없지.”
헌스터가 자랑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이제는 적이다.”
“비록 적이 되었지만 인정할 것은 해야지. 무엇보다. 다크 스타만 무찌르면 다시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네.”
헌스터가 씨익 웃는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엘프 여왕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이 재밌었나 보다.
“…….”
이마에 난 아우레의 힘줄이 더욱 선명해진다.
“아마 다크 스타는 더욱 철저히 준비해서 재침공할 겁니다.”
대마녀 마리아가 조언하자, 아우레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최대한의 전력을 짜낸 것이다. 여기서 더는 힘들다.”
그러면서 헌스터와 로니아드를 보았다.
비굴한 기분이지만 희망과 기대를 담아 보았다.
“대장로와 로니아드…… 님 두 분이 다시 한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동등 또는 하대하였던 것이 존대로 바뀌었다.
여왕은 결국 인정해야 했다. 그들과 자신들의 힘의 차이를.
일부 엘프 장로들이 잠깐 표정이 굳었다가 펴졌다.
그들도 전장에 나와 정령사로 참전했기에 둘의 무용을 익히 알았다.
그렇기에 순응한 것이다.
“문제는 놈들이 언제 오냐는 것이지.”
한참 회의를 지켜보던 로니아드가 입을 열었다.
모두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나는 한 달 후 환상 군단과 선악검을 구하러 가야 해.”
로니아드가 떠난다는 말에 아우레, 특히 테노바의 눈이 흔들렸다.
“선악검을 얻더라도 그 검의 검집과 검 손잡이는 세계수의 뿌리와 가지로 만듭니다.”
요정의 숲을 버리고 얻은 선악검은 반쪽짜리라는 아우레의 말이었다.
분명 협박으로도 들릴 법하다.
‘하지만 사실인걸.’
말하면서도 아우레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우리가 놈들을 공격한다.”
로니아드의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다크 스타라 했나? 놈이 대비하고 더 철저히 준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해 다크 스타를 잡는다.”
로니아드의 말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맞습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고 최고의 공격은 공격이죠.”
회의에 참석한 헌스터와 거인들만이 로니아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물론 두 분의 무용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우레와 엘프 장로들은 로니아드의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다크 스타만 잡는다고 해도 그 존재가 나 홀로 있지 않다.
분명 엄청난 군세를 장벽으로 삼아 숨어 있을 거다.
헌스터의 말에 따르면 야만 군단의 본대에는 방금 전투에서 보지 못했던 무기도 꽤 있다고 했다.
아무리 둘이 대단하다고 해도 분명 한계가 있다.
실제로 로니아드는 요정의 숲에 도착하자마자 꽤나 지친 기색이다.
헌스터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을 정도다.
‘적어도 둘과 거인들을 지원해 줄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싸울 수 있는 모든 엘프들이 참전해야 할 터.
‘하지만 원정은 힘들어. 세계수의 가호를 받는다고 해도 힘겨운 싸움인데, 세계수의 가호 밖에서 싸운다고?’
요정의 숲에는 세계수가 있다.
그 세계수 가까이서 가호를 받으면서 싸우는 것과 세계수의 가호 없이 싸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클라메니크 전체가 망할 수 있다.’
아우레는 과거 아둠의 숲 원정에서 세계수의 가호 없이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다크 엘프의 정예가 죽은, 사실상 빈집털이였다. 그럼에도 꽤 많은 사상자가 났었다.
그때, 아우레는 방어가 아닌 공세의 입장에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특히나 세계수의 가호에 익숙한 엘프에게는 그것이 더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바깥 세계의 엘프들과 달리 세계수의 가호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승리하더라도 피해가 너무 큽니다. ”
“엘프 여왕, 그대의 우려는 잘 안다.”
로니아드는 이제는 입에 익어 버린 말투로 아우레에게 말했다.
아우레도 로니아드의 말투에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마리아와 루키엘 정도만 여전히 적응 안 되는지 오글거려 할 뿐이다.
“아무리 나와 헌스터가 있다고 해도 넓은 전선을 맡는 것은 한계가 있지.”
로니아드의 시선이 헌스터와 거인들에게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거인들이 커다란 충견처럼 눈을 빛낸다.
“묻겠다, 거인들이여.”
“뭐든 물어보소서!”
“거신갑을 입은 그대들은 무적인가?”
“거신갑만 입는다면 일당 만도 우습지요.”
“거신병이 된 거인들은 사실상 무적입니다.”
거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으로 웃음을 짓는다.
‘실제로 제국의 거신병을 상대하는 교리는 별로 없었지.’
과거 로니아드는 렌슬렛의 기사로 있으면서 읽었던 몇몇 병법서를 떠올렸다.
병법서에도 거신병을 상대하는 방법은 마력석이 재충전될 때까지 피하거나, 땅을 크게 파서 거신병의 이동을 제한시키는 수준이었다.
‘판타지 기갑물의 타이탄 같은 존재야.’
비록 기술적 한계로 거인들이 입는 소환 갑옷으로 되어 있지만, 위력은 무시 못한다.
그런 게 100기가 넘는다면 야만 군단쯤이야.
“거신갑의 어디가 문제인 거지?”
로니아드는 거신갑을 수리해 볼 생각이었다.
‘정 안 되면 율카네스라도 불러야지.’
일단 마리아와 루키엘에게 부탁해 보고, 까탈스럽지만 율카네몽도 있다.
“내 거신갑 벨트를 가지고 와라.”
헌스터가 자리에 있던 거인에게 명했다.
“그걸 왜 나한테 시키는 거유?”
헌스터의 명령을 받은 거인이 뚱한 표정이다.
전투가 아닌 상황에선 굉장히 수평적인 거인들의 문화다.
“로니아드 님께서 원하신다!”
“…….”
어느새 그들에게 가불기가 된 로니아드.
거인이 구시렁거리면서 만찬장 구석에 쌓아 놓은 커다란 마석 밸트를 들고 왔다.
‘생긴 게 챔피언 벨트처럼 생겼군.’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크기는 거인의 허리에 두를 정도로 컸다.
“평소에는 이렇게 허리에 두르고 있다가 싸움이 일어나면 거신갑을 소환합니다.”
“휴대성까지 완벽하군.”
“네, 괜히 제국의 최고 보물이 아니죠.”
‘무슨 특촬물 변신 같네.’
속으로 짧게 감상을 마친 로니아드가 거신갑 벨트를 만지작거렸다.
“뭐가 문제지?”
“이 거신갑은 리치 타르타트가 만든 아티팩트입니다. 당연히 흑마법이 일부 인챈트되었죠. 그래서 평소에는 야만 군단의 다크 엘프 마법사들이 정비했습니다.”
대충 왜 그랬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다크 스타가 소환되고 놈의 세뇌를 받은 다크 엘프들이 우리들의 거신갑 벨트를 못쓰게 만들었죠. 놈들은 어둠 정령왕의 마나로 모든 거신갑의 마나 핵을 폭주시켰습니다.”
“마나 핵만 바꾸면 된다는 건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헌스터가 뒷머리를 긁었다.
마법에 문외한인 거인족이 알 리가 없지.
물론 로니아드도 마법 이론은 거의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엔 높은 마법 지식을 보유한 인물들이 있다.
“두 사람도 한 번…….”
로니아드가 마리아와 루키엘에게 제안하려고 했다.
“폭주하면서 마나 핵뿐만 아니라 회로 같은 게 훼손된 거 같네요.”
마리아가 탐구하는 눈으로 거신갑 벨트를 살폈다.
“이게 제국 마도 공학의 정수!”
루키엘을 황홀한 눈으로 거신갑 벨트를 만졌다.
“……이미 하고 있군.”
이미 거신갑 벨트는 어느새 마리아와 루키엘에게 분석되고 있었다.
므우우우!
그때,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요정의 뿔피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