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40
140. 숨 고르기(2)
“뭐지?”
“설마 벌써 재침입한다고?”
다들 표정이 굳었다. 회의장 전체가 술렁인다.
“여왕님! 큰일 났습니다.”
비슷한 타이밍에 외부 경계를 담당하는 파수꾼 엘프가 회의장에 왔다.
“무슨 일이냐!”
아우레가 다급히 물었다.
“침입자가 왔습니다.”
“침입자?”
“예, 두 명의 침입자입니다.”
두 명이라는 말에 아우레를 비롯한 회의장의 모두가 안도한다.
“고작 둘인데 왜 침공의 피리를 분 것이지?”
한편, 아우레가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
“그게…….”
경계를 담당하는 파수꾼 엘프는 난감한 기색이다.
“그건 우리의 얼굴을 본다면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 파수꾼 엘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언제?!”
파수꾼 엘프가 경악했고, 그런 엘프를 무시한 한 채 두 침입자, 혹은 방문객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카본, 타르타트?”
“우리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어 기쁘오, 여왕.”
이카본이 피식 웃는다.
여왕도, 회의장의 다른 사람도 왜 침공의 피리가 울렸는지 알 수 있었다.
“…….”
그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고, 주변 엘프들은 어찌해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저거 설마 거신갑?”
한편, 타르타트는 회의장에 놓여 있는 무언가를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이…… 이……!”
타르타트의 눈에 루키엘과 마리아가 만지고 있던 거신갑 벨트가 보였다.
“내 역작들이…… 이 빌어먹을……!! 폰셔어, 세피로스으, 다크 스타아아아!!”
사실상 처음 보는 타르타트의 순수한 격노.
“…….”
옆에 있던 이카본도 순간 움찔할 정도였다.
타르타트는 2,000년을 넘게 산 리치다.
하지만 전투 쪽에는 천부적이라 할 정도로 재능이 없다.
오죽하면 아무리 희대의 천재라지만 새파랗게 어린 율카네스에게 밀릴까?
하지만 2,000년하고도 수백 년의 경험과 기억, 노하우는 대륙 최고다.
그의 마도 지식은 악황제의 후원과 아흐마흐 유적을 통해 빛을 발했고, 은의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마법 통신부터 키메라, 마법 포, 마법함 개조 등 리치를 숨기며 살았던 수십 세기 동안, 타르타트가 제국과 대륙에 끼친 영향은 셀 수 없다.
일반적인 타르타트의 이미지는 사악하고 음흉한 흑마도사지만, 그건 그가 리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생긴 편견이다.
율카네스에 의해 리치라는 것이 폭로되기 전, 그가 수십 세기 동안 신분을 바꾸며 활동했던 마도 활동들을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흑마법만 익힌 리치로 보지 않았다.
타르타트에게 리치와 흑마법은 그가 가진 자잘한 마도 지식 중 비중 있는 일부일 뿐이다.
“여기에 있는 핵이 어떤 핵인데…… 이걸, 이걸……!”
그런 타르타트가 격노하고 진심으로 아까워한다.
리치라지만 인간으로 변신한 그의 눈이 저 구석에 쌓여 있는 거신갑 벨트에까지 박혔다.
“어떻게……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이따위로 파괴하다니!”
그만큼 거신갑은 타르타트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도 병기라는 뜻일 거다.
“거신갑에 있는 마력 핵이 도대체 어떤 거길래 그런 거죠?”
마리아가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타르타트에게 물었다.
“100년 전, 아흐마흐 유적지에서 발굴한 최상급 마력 핵입니다……. 그 마력 핵을 쪼개고 쪼개서 만든 것이 거신갑이고요.”
타르타트가 힘없이 말했다.
“지금 시대에선 감히 구하기도 힘든 것이거늘…….”
격노했던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여왕 아우레를 비롯한 엘프 장로들이 다짜고짜 난입한 타르타트와 이카본을 굳은 얼굴로 보았다.
“여왕이시여, 저들을 어떻게 할까요?”
뒤이어 두 불청객을 쫓아온 파수꾼 엘프들이 아우레에게 물었다.
본래라면 잡거나 제압해야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인들과 비슷하게 처우해라.”
타르타트를 보며 인상을 굳히던 아우레가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여왕이시여, 흑마법을 고도로 익힌 리치입니다. 세계수와 숲의 정령들에게 악영향을…….”
하이 엘프 장로들이 우려를 표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세계수도 이해해 주실 거다. 숲의 정령들도, 감수해야지.”
여왕의 말에 장로 엘프들이 한탄의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황금시대에도, 암흑시대에도, 이렇게 움츠렸던 적은 없었거늘.”
“전대 여왕님의 유언에 맞춰 열심히 변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부족했다니…….”
장로들의 한탄에 아우레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제 변해야 한다. 은의 시대에 맞는 엘프로 말이야.”
“은의 시대의 엘프 말입니까?”
“그래. 황금시대의 엘프들이 현재 제국 엘프의 선조들이고, 암흑시대의 엘프들이 지금 다크 엘프의 선조다. 그리고 여기 클라메니크에서 세계수를 수호하는 우리들은 신성 시대의 엘프다.”
황금시대, 암흑시대, 신성 시대.
각 시대에 맞춰 엘프들은 변화했다. 정확히는 분화했다.
그리고 세상은 은의 시대를 맞이했다.
“봉인되고 금지되었던 지식의 일부를 부활시킨다.”
“!!”
“…….”
일족에서 금기시되었던 지식들. 황금시대와 암흑시대의 잔재들은 위험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더더욱 위험하다.
이제 은의 시대에 맞는 엘프가 되어야 했다.
“봉인된 지식들이라 하면 어디까지를 말입니까……?”
“당장 쓸 수 있는 것부터, 전부.”
엘프 장로들도 속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 뿐.
“그것이 세계수의 뜻이라면.”
하지만 여왕이 이렇게 대놓고 의중을 나타냈다.
의외로 대부분의 장로들이 이에 동의한다.
“여왕의 뜻은 곧 세계수의 뜻. 따르겠나이다.”
“지금 당장 세계수의 사서들에게 명을 내리겠나이다.”
여전히 일부 장로들은 반대하는 표정이다.
그걸 본 아우레는 착잡한 심정이다.
‘과연 이번에는 변화로만 끝날 수 있을까?’
또 추방되어 실버 엘프 같은 걸로 분화되지만 않았으면 한다.
일부 난색을 표하던 장로들도 얼마 안 가 고개를 숙였다.
“일단은 여왕의 뜻대로 하소서…….”
그들 또한 대안이 없기에 감히 의견을 내지 못했다.
변화와 종족의 보존 중에 정하라면 후자가 더 중요하니까.
“제일 먼저 저 거신갑, 저걸 연구해 보지.”
아우레와 장로들의 시선이 타르타트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신갑 벨트로 향했다.
“알겠나이다.”
늘 평온하고 차갑던 엘프들의 눈동자에 열망이라는 것이 피어났다.
그렇게 아우레와 장로들이 구석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 로니아드는 타르타트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 거지?”
“이렇게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그래, 인사 참 빨리도 하네.”
“다짜고짜 인사도 없이 소란을 피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애초에 댁들에게 예를 받을 기대는 하지도 않았어.”
로니아드는 이카본을 보았다.
이카본도 로니아드를 보았다.
“첫 만남부터 검을 휘두르지 않는 게 어디냐.”
과거 롱페리우스의 일을 회상하며 한 말이었다.
“상황만 아니라면 다시 한번 그대와 검을 섞고 싶군.”
“난 싫은데?”
로니아드가 바로 반대했다.
“호승심도 없나?”
이카본이 인상을 찌푸린다.
“어이, 꺽다리! 로니아드 님과 대련을 하려면 나부터 상대해라!”
그때, 로니아드 뒤에 기립하고 있던 헌스터가 나섰다.
“로니아드 님……? 이 멍청한 덩어리가 그새 주인을 바꾼 거냐?”
헌스터가 로니아드를 황제 대우하듯 하는 걸 보자, 이카본이 어이없어 했다.
“킁, 멍청한 덩어리에게 한번 당해 보려고?”
“거신갑도 없는 네놈은 한 손으로도 충분하다.”
“과연 그럴까?”
헌스터와 이카본이 서로를 노려본다.
“저것들은 변함이 없군. 악황제가 괜히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게 아니야.”
타르타트가 둘의 신경전을 무시하곤 물었다.
“대화가 잠시 딴 길로 흘렀군요. 거신갑을 복구하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고 했던가요?”
“그래.”
“마나 회로나 자잘한 인챈트는 손만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 근원이 되는 마력 핵이 완전히 파손됐어요.”
“마력 핵만 있으면 된다는 건가?”
마력 핵이라……. 그가 알기로 마력 핵과 마석은 비슷한 거였다.
“마력 핵이 마석을 가공한 것을 말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타르타트의 말에 로니아드는 아까부터 생각난 것이 있었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마석과 그 부산물들.
‘리바이어던 그리고 드라센.’
과거 드라센의 레어에서 챙긴 황금시대의 유물 중에는 높은 등급의 마석들이 있었다.
그리고 리바이어던을 잡고 건진 마석은 또 어떤가?
‘이걸 줘도 될까?’
헌스터와 거인들은 로니아드의 편이 되었다.
거인들의 전력이 올라가면 로니아드에게도 유리하다.
문제는 타르타트다. 이 귀한 걸 주었다고 율카네스보다 더 음흉한 리치가 그에게 협력이라도 할까?
잠시 갈등하던 로니아드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내게 마침 적합한 것이 하나 있는데…….”
‘아끼다 똥 되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본래라면 율카네스를 부려 먹을 때 사용하려던 것이었지만.
‘드라센의 유물도 있으니까.’
아공간 가방에서 리바이어던의 마석과 부산물을 찾아 타르타트에게 건넸다.
“이거면 되나?”
“!!”
타르타트의 얼굴이 놀람과 감격으로 변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런 타르타트를 본 이카본은 헌스터와 신경전을 벌이던 것도 멈췄다.
“저 해골 녀석 면상이 저렇게 다양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야.”
수백 년간 함께했던 오랜 친우가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보이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으니까.
“리치, 거신갑을 살릴 수 있는 건가?”
헌스터도 이카본에게서 신경을 돌려 타르타트를 보았다.
“가능해 보이는군요. 로니아드, 당신 덕분입니다.”
“뭐, 쓸 데 써야지.”
“로니아드 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타르타트가 거신갑 수리가 가능하다고 하자, 헌스터를 비롯한 모든 거인들이 로니아드를 향해 감사의 절을 올린다.
“황제 앞에서도 안 하던 짓을……! 미친놈들.”
이카본이 혀를 쯧쯧 찼다.
요정의 숲, 세계수를 보호하는 엘프들의 도시 클라메니크.
도시의 분위기는 얼마 전까지 전운이 감돌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전투가 끝나고 여전히 위협은 남아 있으나, 지금 요정의 도시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기대, 우려, 희망.
굳이 따지자면 이렇게 세 가지 감정이 공존한달까?
세계수의 사서들이 봉인된 지식들 중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선별해 가져왔다.
“여기에는 우리의 정령술이 더 효과적이겠군요.”
“이건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호오, 괜찮군요.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었지만 그땐 여의치 않아 흑마법으로 했던 것인데.”
엘프 사서들과 마리아, 루키엘, 타르타트가 머리를 맞댔다.
처음 단순히 복원 수리를 하려던 것이 업그레이드로 방향이 잡힌 상태.
“거신갑은 거인들만 쓸 수 있는 건가요?”
이를 지켜보던 아우레도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했다.
“본래 인간에 맞추려 했으나, 인간의 육신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신경과 심장이 견디지를 못하더군요.”
“마나를 다룰 줄 알아도요?”
“마나를 다루면 어찌어찌 입을 수는 있지만 효과가 낮았습니다. 결국 거인들을 위한 무기가 되었죠.”
“거인들은 심장이 세 개라 들었어요. 그 때문인가요?”
“네, 거인들은 큰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심장이 세 개지요. 그것이 그들이 거신갑을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우레가 지원해 준 것도 제법 되어서 그런지, 타르타트는 공손히 여왕의 질문에 답했다.
본래 엘프들이 흑마법을 꺼린다는 점 때문에, 리치인 그가 더욱 예의를 차리는지도 모르겠다.
“타르타트는 왜 거신갑 수리에 열심인 거지? 헌스터와 그쪽은 동맹 관계는 아닌 듯한데.”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로니아드가 이카본에게 물었다.
타르타트에게 직접 물어보려다가 말았던 질문이기도 했다.
“거신병은 저 리치놈의 역작이야. 그런 역작이 어처구니없이 망가졌으니 저럴 만도 하지.”
‘공돌이 성향 같은 건가?’
헌스터에 의해 대련 시도가 막히자, 그는 무료한 듯 로니아드 옆에서 거신갑 개조를 구경 중이었다.
“그리고 겸사 겸사 폰셔의 수작도 막고 헌스터를 도와서 동맹 관계로 맺으면 더더욱 좋고.”
이카본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게 가장 큰 이유겠어.”
이카본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대 때문에 헌스터의 봉인이 풀렸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카본이 반대로 로니아드에게 질문했다.
“뭐, 그렇다고 하던데?”
“혹시 조상 중에 드래고니안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