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42
142. 의무 방어전
로니아드는 자신을 향해 사랑한다고 용기 있게 말한 앨리스를 보았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던가?’
렌슬렛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앨리스의 나이가 열다섯이었나, 열여섯이었나?’
어느새 숙녀가 되었다. 실제로 이 세계 기준에선 숙녀의 나이이기도 했다.
은의 시대가 되어, 귀족들 사교계에선 열일곱이 성인으로 인식되는 추세다. 결혼도 그때부터 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사람들은 그 전부터 성인으로 취급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내가 굳이 이세계에서 지구의 나이 개념을 따질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찝찝한 것은 찝찝한 것이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고 성숙하다고 해도…….’
게다가 그녀의 나이뿐만 아니라, 지금 그녀를 연인으로 맞는다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열다섯 된 애랑 깊게 연애하는 것은 뭔가 찝찝하단 말이지. 거기에 지금 얘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복잡하고.’
앨리스의 고백에 로니아드는 뜸을 들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고상한 척하는 것도 웃기고.’
앨리스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녀는 엄청난 미녀이자 히로인이다.
과거 악연이 좀 있었지만 어떠한가? 엄청난 미녀인데.
지금의 복잡한 상황만이 걸릴 뿐.
‘앨리스가 성인이 돼서까지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상관없겠지.’
그때쯤이면 이 복잡한 상황도 대충 정리가 될 테고 말이다.
앨리스의 고백에 대한 대응 방침이 점차 윤곽이 잡힌다.
“로니아드,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앨리스가 떨리는 눈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의 대답을 재촉한다.
‘무엇보다 여기서 괜히 찝찝하다고 거절했다간, 얘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앨리스는 아름답다. 하지만 인성은 아름답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지금 그녀의 인성은 소시오패스로 설정된 처음에 비해 많이 변했다.
하지만 이럴수록 애가 빡 돌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로니아드는 일단 그녀가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너, 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거 알고도 그러는 거야?”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로니아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상황에선 과부하인데.’
앨리스가 자신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어렴풋이 받긴 했다.
하지만 이토록 예고 없이 적극적이었을 줄이야.
‘일단 받아 주고서 나중에도 변함없으면 그때 진지하게 관계를 가져 보자.’
로니아드는 결심을 굳혔다.
“너의 마음은 잘 알았어.”
“……!!”
결심을 굳힌 그는 생각한 바를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나도 네가 싫지 않아.”
로니아드는 상체를 그녀의 키에 맞춰 숙였다.
“어떻게 보면 좋아하는 편이지.”
그의 얼굴이 앨리스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앨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의 입술이 앨리스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
로니아드가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것이다.
“어, 어어…….”
로니아드의 행동에 머리가 하얗게 변한 앨리스가 어버버한다.
“일단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자. 더 깊은 관계는 나중에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서, 그때도 너의 마음이 변치 않으면.”
‘좀 쓰레기 같지만 어쩔 수 없지.’
로니아드는 연애 관계에서 가장 쓰레기 소리를 듣는 방법을 택했다.
단호한 거절도, 완전한 승낙도 아닌 애매한 방법.
여지를 주고, 썸을 유지하고, 희망 고문을 하는 것.
‘지금 상태서 얘까지 받아들였다간 정말 복잡해진다.’
현재 로니아드의 여자관계는 과부하 상태다.
지금까지 그와 관계를 가진 여자들도 보통 여자들이 아니다. 심지어 가벼운 관계도 아니고.
거기에 지금 고백한 앨리스도 보통 여자가 아니다.
‘이노와 제인에게 앨리스와 후작가는 원수에 가까워. 이게 가장 큰 문제지.’
단순히 여자 하나와 더 관계를 맺는 수준이 아니란 말씀.
‘나도 힘들고 상황도 여의치 않아.’
이소레타 때문에도 머리가 복잡하다. 그런데 거기다 앨리스까지?
로니아드의 뇌는 과부하 되어 터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제3자의 시각에선 뇌가 아닌, 아랫도리가 과부하되어 터질 거라고 하겠지만.
‘거절은 아니다. 다만 좀 미룰 뿐이지.’
상황과 별개로 ‘미녀’ 아닌가?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고 보니! 얘는 나랑 악연도 좀 있잖아?’
문득 앨리스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친다.
‘과거 렌슬렛에서 율카네스 꼬드겨서 나 뒤통수 친 거랑, 오스카와 펠리오 사이 수작질해서 힘들게 한 거, 롱페리우스에서 귀찮게 한 거…… 그 외 기타 자잘한 거 몇 가지 더. 생각해 보니 복수를 해도 되겠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어장 관리 하는 것에 딱히 미안함이 들지는 않았다.
‘더더욱 여지를 주고, 더더욱 밀당을 해서 아주 마음고생 시켜 주마!’
로니아드는 앨리스에게 말했다.
“일단 너의 마음만 받을게. 하지만 관계만큼은 지금처럼 유지하자.”
“……좋아요! 기다릴게요.”
그런데 앨리스는 로니아드의 애매한 대답에 오케이다.
“지금 상황이 안 좋긴 하죠.”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거야?’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 그대로다.
사랑에 빠져 얼굴이 상기되고 푸른 눈이 달빛을 받아 몽롱하고 아름답다. 흑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갑자기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사랑하는 이를 보는 표정이, 웃음이, 눈빛이, 지금껏 봐 왔던 어떤 얼굴보다도 아름다웠다.
“…….”
이 순간만큼은 로니아드도 작게 입을 벌리고 앨리스를 멍하니 보았다.
“그런데 ‘모든 일들이 끝나고’라고 했는데, 기준이 어디까지죠?”
하지만 앨리스가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구체적인 기준을 파악하려는 두뇌는 있는 듯했다.
“……나중에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작금의 모든 혼란이 끝나고, 그때까지 너의 마음이 변함없으면.”
로니아드가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저의 마음은 절대 변함없어요!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이 언제 끝날 줄 알고?”
앨리스가 그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 외쳤다.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은 절박한 얼굴로 변했다.
“돌아가면 바로 아카데미 자퇴할게요. 그리고 가출해서 세피로스처럼 가문에서 제명될게요!”
앨리스의 눈에 이제는 광기가 돌았다.
“밤도 왔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앨리스는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앨리스가 고백한 장소는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이다. 도시와 숲의 경계 부근.
“지금 바로 첫날밤을 치러요, 우리. 식은 돌아가서 나중에 간소하게 올려요!”
앨리스가 떨리는 손으로 입고 있던 옷의 끈을 풀려고 한다.
‘위험하다!’
“너무 급발진하진 말고.”
로니아드는 급히 그녀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고, 몸을 살짝 낮추고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댔다.
“정략결혼 때문에 걱정돼서 이러는 거야?”
세피로스와 폰테임이 그녀를 악황제에게 시집보내려 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정략결혼 때문에 지금처럼 다급해진 면도 있다는 거네?”
“…….”
앨리스가 말이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출해. 그리고 바로 나에게 와.”
붉은 눈동자 속에 푸른 사파이어가 담겼다.
“내가 보호해 줄게.”
푸른 눈동자 속에 붉은 루비가 담겼다.
“내가 널 지켜 줄게.”
앨리스의 입술이 은근슬쩍 뽀뽀하는 모양으로 변한 것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발가벗으려던 앨리스의 손이 멈췄다.
다급함에 벌벌 떨던 그녀의 몸도 진정된 거 같다.
쿵쿵쿵쿵.
다만, 그녀의 심장은 오히려 더 심하게 요동쳤다.
쿵쿵거리는 앨리스의 심장 소리에 로니아드는 아직 그녀가 완전히 안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일단 급발진된 앨리스를 안심시키자.’
그녀의 붉은 입술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생각 반, 본능 반.
‘가벼운 입맞춤 정도로 매듭짓자.’
로니아드는 앨리스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쿠쿠쿠쿠쿠쿵.
이상하게도 앨리스의 심장 뛰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으읍?!”
하지만 그녀에겐 첫 키스라서 그런가?
‘서툴군.’
“!!”
앨리스가 움찔한다.
두 혀는 마치 무도회에서 춤추는 남녀처럼 춤을 추었다.
무도회 경험이 많아 춤에 능숙한 신사와 오늘 처음 무도회에 나와 춤에 익숙지 못한 레이디.
신사는 매너 있게 레이디의 서툰 발에 맞춰 템포를 탄다.
하나, 둘, 셋, 넷.
레이디는 신사의 리드에 감화된다.
황홀함에 힘을 쭉 뺀 레이디는 신사의 템포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렇게 순백 달의 빛 아래서 두 남녀가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
시간이 느긋하지만 빠르게 흘렀다.
거인들은 엘프들의 식량을 까먹었고, 타르타트와 마리아, 루키엘, 아우레 등은 거신갑 업그레이드에 정신이 없었다.
이소레타와 테노바는 서로의 검술과 정령술을 공유하느라 시선을 다른 데 두지 못했고, 이카본은 원작 설정에서도 취미가 ‘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종일 잠만 잤다.
앨리스는 로니아드와 전처럼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바쁜 일에 심취해 있을 때, 나는 헌스터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시던 황제가 어찌 되었든 살아 있는데, 충성의 대상을 바꿔도 상관없나?”
내 의문에 헌스터가 씁쓸히 웃었다.
“사실 그날, 아르미다츠에서 이미 느꼈습니다. 내가 친우로 여기고 충성했던 제로니어드는 죽었다는 것을.”
본능, 하면 헌스터다. 이카본, 타르타트보다 더 헌스터가 본능에 더 특화되어 있다.
“타르타트와 이카본은 제 말에 동의하고 제로니어드의 몸속에 있는 존재를 억압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의 본능적 판단은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폰셔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기보다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겠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제가 알던 친우이자 충성을 바치던 군주는 이미 죽고 없습니다.”
이걸로 헌스터의 의중은 확실해졌다.
‘과연 진실일지는 모르겠지만, 헌스터가 모략을 짤 성정은 아니니.’
헌스터와의 대화를 마친 후, 로니아드는 장소를 옮겼다.
클라메니크에 마련된 엘프들의 연무장이다.
과거 빙의 전의 로니아드도 이곳에서 테노바와 함께 종종 검을 휘둘렀었다.
“실력이 좀 늘었군.”
“…….”
“…….”
“다음은 정령검으로 나를 공격해 봐.”
이소레타와 테노바와 대련해 주려 했다.
“……왜 둘 다 검을 멈춰?”
그런데 대련 중에 이소레타가 검을 멈췄다.
“궁금한 게 있다.”
“뭔데?”
마찬가지로 테노바도 검을 멈춘다.
“요즘 유독 기분이 좋은 거 같아.”
“맞아. 분홍색 냄새가 느껴져.”
“뭔 소리야? 나 말이야?”
“아니, 다른 애.”
로니아드는 갑작스러운 두 여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니면 앨리스를 말하는 거야?’
앨리스의 고백은 그때 딱 딥키스까지로만(?) 끝났다.
‘티가 나나? 그 후 함께 있던 적도 거의 없었는데?’
앨리스와 로니아드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흐음…….”
“…….”
하지만 여자들은 그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진척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부군.”
“어?”
“그대의 예비 첩과 무슨 일이 있었어?”
“앨리스 말이야?”
“맞아.”
“응.”
이소레타와 테노바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 엘프도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낀 모양.
로니아드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도 앨리스는 보이지 않는다.
“없었는데?”
로니아드는 그때의 좋았던 달빛 아래의 키스를 떠올리며, 뻔뻔하게 말했다.
“……흐음.”
“…….”
이소레타도 테노바도 로니아드의 답변에 마뜩잖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직접 앨리스에게 묻자니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
“부군, 나는 관대해.”
“뭐가 관대하다는 거야?”
이소레타는 진지한 눈으로 로니아드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부군…….”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는 조용히 물었다.
“어떤 자세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