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43
143. 준비 끝
“뭔 소리야! 이 미친 황녀가, 진짜!”
“아니야?”
“아니야! 그딴 취미 없다고!”
황궁에서 성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다행이다. 가능하면 내가…….”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뭘 한다는 거지?”
청각이 좋은 하이 엘프 테노바가 이해 가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이 해괴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멈췄던 훈련을 재개하기로 했다.
“자, 정령검이나 다시 펼쳐 봐, 이소레타.”
“부인이라고 불러라. 나는 계속 부군이라고 하는데…….”
이소레타의 입술이 삐쭉 나왔다.
“부군? 원래는 부마 아니었나?”
이 와중에 부군으로 호칭이 바뀐 이유가 궁금한 그였다.
“내가 좀 더 잘하기로 했다.”
“하아…….”
이소레타의 말에 로니아드는 한숨을 쉬었다.
내친김에 호칭 정리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인이니 부군 같은 호칭 말고 서로 애칭으로 부르자.”
이소레타의 계획은 개학 후 아르미 아카데미로 편입하는 것.
마리아가 있으니깐 거의 된다고 보면 됐다.
문제는 그곳에서도 지금처럼 부마니 부군으로 불리는 것은 곤란하다.
“애칭?”
“그래.”
“본 적 있어. 시녀들이 읽던 책에서.”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런 책 보지 마.”
“부군이 원한다면.”
이소레타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애칭이라니 좋다. 오히려 부군, 부인보다 더 친밀한 것 같아.”
“앞으로 나를 로니라고 불러. 내 애칭이야.”
“무슨 뜻인데?”
“그냥 이름을 줄여서 편하게 부른 거야.”
“그게 무슨 애칭이야?”
“긴 이름을 편하게 줄인 것도 애칭에 포함돼. 아니, 오히려 그게 일반적인 애칭이야! 그놈의 책에서는 보통 뭐라고 애칭을 붙이는데?”
제국이 성적으로 개방된 설정이었던가? 아니, 이 정도면 개방이 아니라 문란이잖아!
“그런 책 절대! 다신! 읽지 마. 그런 책 읽는 시녀가 있으면 궁에서 쫓아내!”
“걱정 마. 그 시녀들 전부 기미 보다가 독에 중독돼서 죽었어.”
“…….”
머리가 띵하다.
“어쨌든! 앞으론 부군이니 부마 말고 로니라고 불러.”
“로니, 로니…….”
이소레타는 로니아드의 애칭을 몇 번이나 입에 되새겼다.
“로니, 로니…….”
‘얘는 왜?’
옆에 있던 테노바도 언니를 따라 하는 동생처럼 그의 애칭을 중얼거린다.
“그럼 로니는 나를 뭐라고 부를래?”
“전에 쓰던 가명인가, 이스릿이라고. 그거 괜찮더만?”
“싫어. 로니가 다시 지어 줘.”
‘애도 아니고…….’
로니아드는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소렛은 어때?”
“소렛? 무슨 뜻인데?”
“이소레타의 소레타를 한 번 더 줄인 거.”
“소렛, 괜찮은 거 같아.”
마음에 든 눈치다.
“소렛? 소렛, 소렛!”
혼잣말로 그가 만들어 준 애칭을 계속해서 부른다.
“……나는?”
그리고 이소테라 옆에 있던 테노바가 기대 섞인 눈으로 로니아드를 바라본다.
“너? 테노바에서 뭘 또 줄여?”
“……그럼 나는 애칭 없는 거야?”
테노바의 얼굴이 굳어진다.
‘빌어먹을.’
로니아드는 본능적으로 피곤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노바로 해 그럼.”
급히 테노바의 애칭을 지어 줬다.
“노바?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쁘진 않네.”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이제 그만 좀 시달리고 싶다.
“노바라…….”
테노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다가, 로니아드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시 내렸다.
“로니아드 경, 뭐 하고 있어요?”
그때, 길을 걷던 앨리스가 연무장에 있는 로니아드를 발견하더니 다가와 물었다.
“쟤네들이랑 훈련 중.”
“흐응~ 그렇군요.”
앨리스가 묘한 눈으로 이소레타와 테노바를 본다.
“로니와 한창 뜨겁게 대련 중이었지.”
이소레타가 앨리스에게 말했다.
“그치? 로니.”
“그래.”
“난 로니라고 불러 줬는데?”
그러면서 그에게 자신의 애칭을 불러 달라는 듯 대놓고 어필한다.
“그래, 소렛. 열심히 훈련 중이었지.”
기어코 그의 입에서 그녀의 애칭이 나오자 만족한 얼굴이다.
“로니.”
“너는 왜?”
옆에 있던 테노바도 은근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검술 중에 이해 안 가는 게 있어, 로니.”
“……뭔데?”
테노바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노바.”
급히 그녀의 애칭을 덧붙였다.
테노바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는 거 같다.”
그의 입에서 애칭이 나오자, 둘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소렛? 노바?”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흐응~.”
그러다가 대충 알겠다는 듯 피식 웃는다.
“저도 그럼 앞으로 로니라고 불러도 되죠?”
“……맘대로 해.”
로니아드의 승낙을 받은 앨리스는 두 여자를 힐끗 보았다.
“참고로 저는 애칭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자신의 붉은 입술을 쓰윽, 혀로 닦았다.
“……?”
“마음에 안 들어, 쟤.”
이소레타와 테노바가 앨리스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명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앨리스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어, 그래.”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묘한 향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뭐지? 분명 뭔가가 있어.”
이소레타와 테노바는 앨리스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봤다.
“그럼 다시 훈련을…….”
앨리스가 사라지고 훈련을 다시 하려고 했다.
“여기에 있었군요.”
뒤이어 다른 두 사람이 나타났다.
마리아와 아우레였다.
둘 다 연무장에 세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다들 훈련에 열심이군요.”
그녀는 이소레타와 테노바에게 웃으면서 말했고, 이어서 로니아드를 보더니 “……색골.”이라고 작게 한마디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뭐지? 둘 다 대마녀랑 하이 엘프라서 애칭 얘기하는 것을 멀리서 들었나?’
“…….”
정말 억울하고 뜬금없이 욕을 먹었지만, 이상하게 화를 내지 못했다.
이어서 함께 온 아우레도 마리아를 따라가기 전에 로니아드를 보면서, “……짐승.”이라고 한마디를 하고서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황당했다.
‘애칭이면 애칭이지, 왜 그런 걸로 내 애칭을 지은 거야?’
그러고 보니 오고 가는 방향이 앨리스와 같다.
방금까지 앨리스와 함께 있었던거 같다.
‘앨리스, 얘가 설마 이상하게 소문내고 다니나?’
이따 앨리스를 만나면 기필코 확인을 해 봐야겠다고 로니아드는 다짐했다.
“색골? 짐승? 로니 말고 다른 애칭이 있었어? 로니보다 이 두 개가 더 마음에 든다.”
테노바가 재밌다는 듯 짐승과 색골을 중얼거린다.
“로니 말고 짐승이라고 부르면 안 돼? 읽었던 책에서 종종 나오던 애칭인데.”
이소레타는 짐승이라는 애칭이 마음에 드는지 그에게 조른다.
“……너, 그 책 앞으로 떠올리지도 마.”
이상한 쪽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다시 검을 들고 대련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다시 한번 정령검을 휘둘러 봐. 이번에는 불의 정령검으로.”
“알았어.”
“쉴 만큼 쉬었으니.”
두 여자도 쉴 만큼 쉬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검을 들었다.
화르르릇.
이소레타가 든 검에 불의 정령이 뱀처럼 감겨 있다.
‘벌써 이렇게까지 정령검을 쓰다니, 보통 천재가 아니군.’
확실히 드래고니안이라서 그런가, 이소레타는 며칠도 안 돼 바람과 불의 정령과 계약했고, 두 정령을 이용한 정령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제인도 여기로 데리고 와야겠어.’
데이지의 서투른 실력과 가르침에 재능을 썩히는 제인이 떠올랐다.
요정의 숲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정령과 관련된 분야는 확실히 엘프들이 월등했다.
“좋아, 다시 한번 겨뤄 보자고.”
로니아드가 날이 없는 연습용 엘프 검을 들었다.
“이번엔 안 봐준다.”
“각오해.”
이소레타와 테노바도 진지한 눈으로 그에게 무기를 겨눴다.
* * *
체스카드 왕국에서 국왕보다 더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닌 자라고 하면 열이면 열, 폰테임 후작을 꼽을 것이다.
심지어 국왕에 충성하는 왕실 근위 기사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폰테임 후작령의 후작가 대저택은 유구한 역사와 화려함 그리고 웅장함을 가졌다.
저택 내의 예술품은 대륙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의 저력을 대변해 주었다.
완전히 무너져서 옆에 재건한 현 왕궁과 비교하면, 오히려 폰테임 후작가의 대저택이 마법으로 급조한 왕궁보다 더 왕궁처럼 보였다.
“쿨럭……! 끄으으으…….”
하지만 지금 이런 후작가의 대저택은 엉망진창이었다.
각종 마법으로 인챈트되었음에도 저택 대부분의 유리창이 깨졌고, 각종 예술품과 기둥, 벽 등이 금 가고 부서지고 무너졌다.
“아무리 대마도사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소!”
무엇보다, 왕국 최고의 실세인 카라스 폰 폰테임 후작의 엉망진창 몰골이 지금 후작가가 처한 위기를 말해 줬다.
“늘 세계의 균형이니 어쩌니 하더니만, 웬일로 이렇게 행동하실까?”
“피떡이 되어서도 입을 살아 있구나. 걱정 마라, 이젠 세계의 균형이니 뭐니, 필요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폰테임 후작의 몰골은 율카네스의 말처럼 피떡이 되었다.
옷은 찢어지거나 피, 먼지투성이였고 몸의 뼈는 최소 다섯 군데는 부러진 것 같았다.
대마도사의 일격이라 몸에 걸치고 있던 아티팩트도 효과 없었다.
“빌어먹을, 저주가 담긴 일격이군. 이거 다 회복하려면 반년은 외부 활동을 못 하겠어…….”
심지어 치료 마법으로도 회복이 힘든 저주가 담긴 일격이다.
이렇게 고통과 치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폰테임 후작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굴, 개굴.”
“찍찍찍, 찍찍.”
대신 늘 청결함이 생명이었던 폰테임 후작의 집무실에 수십의 개구리와 쥐가 돌아다닐 뿐이었다.
개구리와 쥐는 기사와 시종, 병사가 허물 벗듯 벗어 둔 것 같은 옷들 위에서 방황하듯 울고 있었다.
“끄응…… 원하는 게 뭐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폰테임은 결국 율카네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검은 알, 어디 있나?”
“검은 알? 그거 세피로스 녀석이 다 가져갔어! 진짜라고!”
율카네스는 폰테임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뱀처럼 그의 눈을 본다.
“으으…….”
폰테임은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온몸이 얼어 꼼짝 못 하고 벌벌 떨 뿐이다.
‘거짓은 아니군.’
아마 방금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마법을 쓴 모양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요? 아는 한 다 말해 주겠소.”
“과거 네놈이 반정을 일으킬 때 어떻게 왕궁이 무너지자마자 바로 군사를 이끌 수 있었던 거지?”
“운이 좋았소. 왕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본래 반정을 계획 중이었거든.”
“마누스의 적통에게?”
“실패할 확률이 높았던 것은 알았소. 심지어 알려진 것과 달리 제국에도 거절당했었지.”
폰테임은 반쯤 포기했는지 율카네스에게 주저리주저리 사실들을 털어놨다.
“하지만 반정을 일으키나 일으키지 않거나, 우리들의 몰락은 뻔했어. 발버둥이라도 치려 했고, 하늘이 도왔는지 일이 그렇게 되었더군.”
“검은 알도 그때 얻은 거고?”
“그렇소. 왕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처음에는 정보를 확보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억류했던 것이었지만…….”
율카네스의 황금색 눈동자가 계속해서 빛났다.
‘거짓이군.’
하지만 율카네스는 폰테임에게 더 이상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일단 살려는 주지.”
그 말을 끝으로 율카네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
율카네스가 사라지고, 폰테임 후작은 30분 정도 숨죽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으하아…… 아아……!”
30분이 지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긴장이 풀려서 그랬을까?
“안 돼. 아직 그 노인네가 지켜볼지도…… 으,으악!”
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검은색 기운이 발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빛과 함께 그의 몸의 모든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었다.
분명 대마도사에게 맞은 상처는 치유되기가 어려웠음에도 말이다.
―빌어먹을 노인네! 기필코! 기필코! 죽여 주마!!
폰테임의 목소리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울렸다.
그의 눈동자 또한 검은색 빛으로 활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