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47
147. 심연 속에서(1)
당연히 로니아드는 자신이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리아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다크 스타를 찌를 때 봉인됐던 기억 중 일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거, 말했다간 이상해질 것 같단 말이지. 다크 스타가 일부러 져 줬어.’
어둠의 정령왕 본체씩이나 되는 존재다.
아무리 첫 전투에서 로니아드와 헌스터에게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지만, 허무하게 역소환될 정령왕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로니아드는 다크 스타의 심장을 찌를 때 찰나의 순간, 다크 스타가 준비한 심연 속에서 대화를 나눴고 다크 스타로부터 그가 일부러 져 줬다는 것을 확인했다.
‘뜻하지 않게 귀중한 기억을 얻었어.’
정확히는 기억이라기보다는 편린에 가까운 이미지였지만.
로니아드는 앞에서 뚱한 표정을 짓는 마리아를 보면서 다크 스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잠깐, 그대로 막 죽이면!”
푸욱.
마리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로니아드가 망설임 없이 다크 스타의 심장에 검을 찔렀을 때였다.
‘……뭐야?’
그가 검에서 심장을 찌른 촉감을 느끼자마자, 세상이 멈췄다.
화르르륵.
사방이 암흑으로 휩싸였다.
다크 스타의 짓 같았다.
로니아드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뭔 수작이지?
‘!!’
말을 한 로니아드는 자신이 언령으로 말을 하는 것에 놀랐다.
그가 그렇게 어리둥절해 있을 때였다.
―위대하고 고결한 분이시여,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젊은 청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언령이 로니아드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다크 스타?
―맞습니다.
―아까와 달리, 말을 잘하는군?
―고결한 당신께서 저의 족쇄를 부숴 주셨으니까요.
유아적이고 단편적인 언어 소통밖에 하지 못했던 다크 스타가 유창하게 말을 한다.
―너는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저는 어둠의 정령. 눈앞의 어둠이 바로 접니다.
로니아드는 사방을 감싼 어둠을 보았다.
이 어둠의 정령왕은 어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싶었다.
―나를 아나?
―물론입니다.
―내가 누군지 말해 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고결하신 분.
―존귀? 고결? 리린이나 심연과 관련된 존재인가?
―아닙니다. 그런 순수함과 정반대입니다.]
―혹시 이 몸에 용의 피가 흐르나?
그동안 추측했던 온갖 가정을 물었다.
―죄송하지만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다크 스타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유는,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 세레나데가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직접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는 거지?
―맞습니다.
―왜 나에게 네 심장을 찔러 달라고 한 거지?
―제가 원했으니까요.
―원했다고? 내가 느끼는 것이 정확하다면, 너는 지금 역소환이 아니라 완전한 소멸 중이야.
―맞습니다. 소멸, 영원한 안식이죠.
―도대체 왜? 오랜 세월 살다 보니 사는 게 지겨워졌나?
―정령들의 시간 개념은 필멸자와 다릅니다. 정령들은 시간을 영위하기보단,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너는 지금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거야?
―당연하죠. 저는 순수한 어둠의 정령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심연의 족쇄에 묶인 어둠 같지 않은 어둠이었죠.
―첫 번째 전투에서도 너는 나와 헌스터를 가두기만 했다. 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했지. 그것도 소멸당하기 위한 행위였나?
―그렇습니다. 본래라면 날뛰어야 했지만, 당신에게서 느껴진 ‘이겨 낸 신성’을 보고 저는 필사적으로 공격성을 죽였죠.
한마디로 다크 스타는 본체 그대로 강림했음에도 최대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를 구속하는 족쇄가 그의 영혼을 괴롭혀도 기적적으로 만난 희망을 보곤 최대한 버텼다는 거다.
―덕분에, 그날의 상처로 저를 구속했던 심연의 족쇄에 금이 갔습니다. 결국 이렇게 큰 저항 없이 소멸을 맞이할 수 있었죠.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너와 심연의 족쇄를 소멸시키지 못해?
―용의 마나, 신성의 섬광, 제르다의 신성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당신보단 못합니다. 특히 저에게 족쇄를 채운 존재는 심연의 군주. 일반적인 심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죠.
―내가 뭐길래?
―당신은 ‘이겨 낸 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를 뒤져도 이것을 가지고 있는 자는 드뭅니다.
―내가 심연의 존재에게 타격을 준다고?
처음 듣는 소리다. 이겨 낸 것은 뭐고, 어째서 그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 몸이 선악검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 선악검도 과거 당신이 만들어 낸 무기입니다.
―……?!
충격적이면서 알 수 없는 말이 다크 스타에게서 나왔다.
―나, 인간은 아니지?
드라센에서 세레나데가 그녀와 로니아드의 인연이 수천 년을 넘었다고 얘기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영혼의 윤회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빙의자인 자신의 영혼과 본래 로니아드의 육신과 영혼이 합쳐진 정도로 추측했었다.
‘하다못해 순수 인간은 아니더라도 인간종의 일종일 줄 알았는데.’
최근에 들어 그런 생각조차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해 봐. 적어도 내가 어떤 종족인지는 알고 싶어.
―죄송합니다. 봉인의 문제가 아닌, 심연으로부터 보호를 위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다크 스타는 대답을 회피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진홍 달 리린의 정령 군주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전혀 다른 주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욕심과 호기심이 화근이었죠.
사방이 어두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연의 힘을 탐한 결과, 저는 어둠의 정령왕이 아닌 심연의 정령이 되었고요.
하지만 다크 스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심연 군주의 종 노릇을 뜻했습니다.
놈의 목소리에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심연의 군주라면? 태초의 대악마를 말하는 건가?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나 보군요. 무……엇이…… 되었든 그의…… 진명은 아……니지……만.
다크 스타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저와 당신이 가진…… 중복된 기억을 하나……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로니아드는 궁금한 게 아직 많이 남았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크 스타에겐 시간이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제……게 영원한 해……방과 안식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부디…… 당신……에게 씐 오염…… 족쇄…… 완……전히 제거하고…… 최초의 ……이자, 순……의 주……이여, 부디 뜻을 이루소서…….
다크 스타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마지막 의지를 로니아드에게 남겼다.
화아아아앗!
다크 스타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되자, 번쩍! 로니아드의 눈앞에 커다란 섬광이 번쩍였다.
섬광 때문에 로니아드는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눈을 감았음에도 머릿속에서는 생생한 꿈속을 탐험하는 것처럼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처음 보지만 한편으론 분명 본 것 같은 장면이다.
쿠오오오!
순백 달과 진홍 달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과 드래곤이 하늘에 떠 있었다.
순백 달의 모든 천사들과 용의 대륙의 모든 용들이 집결한 것 같은 장관이었다.
마찬가지로 진홍 달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마족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천사와 마족.
마족과 용.
용과 천사.
그들은 각 세계의 수호자를 자청하면서 대치했다.
그 대치 사이에서 각 원소의 정령들 또한 비명을 지르며 어디에 설지 다퉜다.
서로 뱀 꼬리처럼 물고 물어뜯는 각축전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언제야? 신화 시대 이전 같은데.’
마누스나 힌미르 같은 용들도 잘 모를 법한 초고대의 사건 같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긴장이 달과 달 사이에 흐를 때였다.
쿠오오오오!
순백 달과 진홍 달 사이에서 블랙홀 같은 구멍이 생성됐다.
심연의 구멍.
그 구멍에서 심연의 존재들이 흘러나왔고, 마침내 심연의 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의 정령 중 일부가 그 심연 쪽으로 향하는 것도 얼핏 보였다.
심연의 횡포가 두 달을 삼키려고 했고, 천사와 마족 그리고 용이 심연의 존재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파앗.
그것으로 장면은 끝났다.
‘뭐 이런……!’
다크 스타가 안식의 대가로 준 선물 같았다.
‘녀석과 나의 중복된 기억이라고?’
기억 속에서 로니아드는 천사일 수도 있었고, 마족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드래곤일 수도 있었다.
암흑시대는 물론 황금시대와 신성 시대보다 더 오래전의 기억 같았다.
환상 속의 심연의 군주를 본 로니아드는 소름이 돋았다.
‘저게 지금 고치 안에 있다는 거야?!’
단순히 기억이었음에도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존재.
츠즈즈즈.
그를 감싸던 장막이 걷혔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시간이 다시 흘렀음에도 로니아드는 정신적 충격을 정리하느라 몇 초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3초의 정적 직후에, 로니아드의 몸에서 연한 회색빛의 후광이 발현됐다가 사라졌다.
―그랬군.
그의 입에서 마나를 가득 담은 언령이 나왔다.
―심연이라.
그가 언령으로 뱉은 혼잣말과 함께.
“끼하하하핫.”
어린아이의 순수한 웃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순수하게 기뻐하고 자유로워하는 다크 스타의 마지막 흔적이 웃음으로 사라졌다.
“……제 말 듣고 있나요? 로니아드.”
회상에 빠진 그의 귀에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했지?”
로니아드의 반응에 마리아가 얼굴을 굳혔다.
명백한 무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해 죄송하다는 황당한 감정이 든다.
‘정신 차려!’
마리아는 정신을 집중했다. 저 남자에게서 나오는 무형의 카리스마가 이 현상의 원인이다.
“심연이라고 언령으로 말한 거, 정말 기억 안 나세요?”
마리아는 로니아드를 경계했다.
특히 다크 스타를 해치운 직후의 로니아드는 더더욱 광오해 보였다.
하지만 그 광오함과 카리스마가 너무 당연한 거 같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군.”
그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어도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처음부터 그리했던 것처럼.
‘굳이 얘기할 필요를 못 느끼겠어.’
로니아드는 마리아에게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귀찮았고, 이런 것까지 말해 줄 정도로 마리아를 신뢰하지 않았다.
로니아드는 답답함이 얼굴에 대놓고 드러나는 마리아를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단 말이지.’
로니아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리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에게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려 줬어요.”
“정말로 그래?”
로니아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게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해 주게 된다면.”
로니아드의 붉은 눈이 마리아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한다.
“그 정보의 가치에 따라 나도 그에 걸맞은 기억이 날지도?”
“……당신, 로니아드 맞아요?”
마리아가 어깨를 잘게 떨었다.
가뜩이나 정체불명의 남자는 잠깐 사이에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이것이 내 본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로니아드 또한 자신의 인성이 광오해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광오하다? 아니, 공정해졌다가 맞아.’
점차 봉인된 기억과 힘이 풀릴수록, 로니아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낯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