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48
148. 심연 속에서(2)
요정의 숲으로 귀환한 마리아는 로니아드를 가급적 피했다.
그러면서도 로니아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가장 의심 가는 후보가 몇 가지 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마리아는 당시 아흐마흐에서 텔레포트할 장소를 요정의 숲으로 설정했다.
“아우레, 정말 로니아드에게 어떤 징후도 없나요?”
“그렇다. 그대의 부탁 때문에 몰래 세 번이나 더 검사했다. 대마녀도 함께했지 않았던가?”
아우레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남자는 여자를 좀 밝히는 것을 빼면 크게 걸리는 게 없다.”
“당신도 봤을 거 아니에요? 전장에서 그의 모습을. 그걸 보고서도 걸리는 게 없다니…….”
“그의 힘에 대해서 말인가? 오히려 헌스터와 이카본보다 더 깨끗하다.”
아우레는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는 그녀의 동생 테노바와 이야기를 나누는 로니아드가 있었다.
물론 테노바와 로니아드가 단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테노바의 주변에는 앨리스와 이소레타가 함께 있었다.
“복잡한 여자관계만 아니면 내 동생의 반려로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아우레의 말에 마리아가 깜짝 놀랐다.
“아니면 내가 그를 반려로 맞이해도 나쁘지 않겠어.”
마리아는 경악해 외쳤다.
“진담으로 하는 말인가요?!”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우레의 말에도 마리아는 아우레가 한 말의 진심을 의심했다.
베타적인 클라메니크의 엘프들은 이종족과의 교배를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여왕님과 테노바는 엘프, 그것도 하이 엘프입니다.”
그런 엘프 여왕의 입에서 파격적인 말이 나오니 마리아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그리고 로니아드는 엘프가 아닙니다. 아무리 그가 초인이고 오래 산다고 해도, 하이 엘프에 비해 10분의 1도 살지 못해요.”
“마리아, 차원을 이동한 네가 보기엔 저 로니아드가 인간으로 보이나?”
“……평범하진 않죠.”
“그는 인간이 아니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던가?”
“확실하진 않습니다.”
“나는 확신한다.”
아우레의 단호한 말에 마리아가 눈을 빛냈다.
혹시나 그녀가 뭔가 알아낸 게 있을까 해서다.
“물론 증거는 없다.”
빛을 내던 마리아의 눈이 순식간에 꺼졌다.
“나야말로 궁금하다, 마리아. 뭣 때문에 로니아드를 그토록 경계하는 것이지?”
“…….”
“그대가 온 종말 세계에서 그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독 그를 두려워하지?”
“그건…….”
아우레의 질문에 마리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 * *
아리아는 정말 오랫동안 잠을 잤다고 느꼈다.
스스로의 존재도 자각하지 못했다.
아! 죽음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라고 잠에서 깨어난 후 느꼈을 정도다.
“깨어났구나.”
“스승님?”
눈을 뜨자마자 그녀를 맞이한 사람은 오랜 스승인 율카네스였다.
“스승님, 얼굴이?”
굉장히 오랜만에 본 율카네스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쪽 얼굴이 흉측하게 녹아 있었고, 녹아 있는 얼굴 쪽은 실명까지 된 모양이다.
“크흘흘흘, 아무렴 너만 할까?”
율카네스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아리아는 연구실에 마련된 거울을 보았다.
마침 전신 거울이었다.
“이게 저라고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본 아리아는 기겁했다.
찬란한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가 특징이던 아리아의 외모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 제가 이렇게? 변신 물약이라도 먹은 건가요?”
거울 속에는 검은 눈에 회색 머리카락을 한 여성이 있었다.
그나마 미인이라 다행이었지만, 본래에는 더더욱 미인인 아리아였기에 지금의 모습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 인형의 기술을 이용한 인체 연성이다. 그것이 지금 너의 육신이야.”
“……예?”
“폭발에서 간신히 너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 몇 개를 구한 게 최선이었단다.”
“제가 죽은 게 맞군요?”
율카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을 이용해 사후 세계로 이동하려던 너의 영혼을 간신히 보관했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이렇게라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란다.”
아리아는 자신의 새 육신을 보았다.
허벅지 쪽에 색이 좀 다른 부위가 보였다.
아마 폭발에서 구한 살점이 이쪽 부위였나 보다.
“제가 죽었다는 건가요?”
“그래. 그나저나 기억까지 제대로 가지고 있다니 신기하구나. 뇌가 아닌 영혼에도 기억이 백업되는 건가? 그렇다면 신성의 마나도…….”
율카네스는 아리아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중얼거렸다.
“저를 왜 살리신 거죠?”
자신을 살려 줬다는 것에 아리아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스승 율카네스를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과거 자신의 각성을 위해 어머니 이노를 비참하게 희생시킨 장본인이었다.
“너의 신성의 섬광, 그것이 필요하니까.”
당연하게도 율카네스는 분명 이유가 있어서 폭사한 제자를 살린 것이다.
평소 그토록 혐오하던 흑마법까지 사용해서 말이다.
“저의 신성의 섬광이 악황제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실 텐데요?”
죽기 전 마지막 기억.
마지막 전투에서 신성의 섬광은 한계를 명확히 보여 줬다.
악황제는커녕 그의 수하인 사천왕도 간신히 상대했으니까.
“나도 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거야. 신성의 섬광을 품은 영혼과 육신만이 차원 이동에 유리하거든.”
“차원 이동이요?”
순백 달이라도 다녀오라고 시키려나?
아리아는 차원 이동과 관련하여 추가로 질문했다.
“철저하게 보안하고 있지만 혹시 듣는 귀가 있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려 주마.”
율카네스는 그 부분에서 말을 아꼈다.
“그럼, 일단은.”
율카네스는 연구실에 마련된 탁자에 앉았다.
염동 마법으로 능숙하게 차를 타서 탁자 위에 올렸다.
“와서 앉거라. 간만에 내 말동무나 되어 다오.”
“지금 상황이 어떻죠?”
“그래, 대화의 주제는 네가 죽고 지금까지의 일이면 되겠구나.”
율카네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자아, 어디서부터 설명해 줄까? 바로 현재의 상황을 얘기해 줄까? 아니면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시작할까?”
“후자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네가 죽어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을 떠돌면서 많은 진실들을 찾고 확인했지……. 최초의 사건은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율카네스는 옛날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해 줬다.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야기.
“자세히는 몰라. 그 당시의 당사자들은 전부 죽고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당시 라이오스와 악황제 그리고 사천왕은 아르미다츠 왕궁 지하에서 비밀리에 어떤 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에서 심연의 문이 열렸고, 태초의 대악마가 나왔다는 것이다.”
라이오스 국왕이 죽고 악황제가 병석에 눕게 된 이유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같은 용의 혈통을 공유하는 두 국가의 밀월 관계와 그들이 무엇 때문에 몰락했는지.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날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봤을 뿐이니까.”
대략적으로 설명한 이유는 율카네스 또한 대략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0년 정도 후에, 더욱 결정적인 사건이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고 말았다.”
율카네스가 말하길, 결정적인 징후는 아리아의 고향이기도 한 렌슬렛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렌슬렛에 한 사람이 있었다. 과거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 추정된다.”
이름도, 성별도, 신분도 몰랐다.
다만 그 사람의 몸속에 있던 존재가 어느 순간 깨어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보통은 검은 알이 되고 그 검은 알은 마인으로 태어나야 했지만, 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 것은 많이 달랐다.
그 존재는 숙주였던 육신을 차지했고, 곧장 짙은 회색의 날개로 날아올랐다.
“당시 렌슬렛의 외곽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회색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는 기록을 찾았지.”
“언제 기록된 거죠?”
“정확한 날짜는 몰라. 다만, 렌슬렛 공작 부인이 죽었던 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
율카네스의 말에 아리아는 굳은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율카네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날아오른 존재는 드라센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라센을 흡수했다. 그 과정에서 세이렌의 여왕과 세이렌 일족들도 덤으로 흡수했더군.”
악황제가 타는 해골용 드라센이 율카네스의 입에서 언급됐다.
“드라센의 사체를 놈의 레어에 봉인한 그 존재는 곧장 제국의 황궁으로 향했다.”
율카네스는 황궁을 말하면서 눈을 부르르 떨었다.
가뜩이나 흉측한 그의 얼굴이 더욱 흉해 보였다.
“그 존재는 악황제의 몸에 흡수되었다.”
“흡수당했다고요?”
아리아의 질문에 율카네스는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은밀하지만 빠르게, 제국의 황궁을 장악해 나갔다. 가장 먼저 악황제를 관리 중이던 타르타트와 이카본 그리고 폰셔를 지배했지. 이미 악황제를 이용해 그의 힘이 담긴 피와 살을 먹였기에 쉽게 지배할 수 있었지. 문제는 황녀 이소레타와 헌스터였다. 이소레타는 장벽으로 유배를 가는 식으로 지배를 피했어. 헌스터는 악황제의 피와 살을 먹지 않았고. 거기에 자신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 분명한 마누스의 적통, 로지스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지스트가 언급되자, 아리아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마지막에 그가 보여 줬던 한심했던 모습은 그녀에게 씐 마지막 콩깍지마저 벗겼다.
“흡수한 힘을 소화시켜야 했던 그 존재는, 당장 나서지 못했다.”
아리아는 로지스트의 근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묵묵히 율카네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환 교수로 온 데이지라는 교수를 통해 로지스트에게 간접적으로 정신 오염을 줬던 모양이더군.”
‘데이지 교수?’
기억난다. 그런데 그 교수와 로지가 가까웠던가? 그다지 가깝지 않았는데?
“데이지라는 여자는 너도 알겠지만 하프 엘프다. 정확히는 하프 다크 엘프다.”
그 말로 아리아는 대략 깨달을 수 있었다.
“어둠의 정령으로…….”
“그래. 알게 모르게 천천히 음식과 공기, 마나 등을 통해 로지스트의 정신력을 오염시켰을 거다.”
율카네스의 말에 아리아는 왜 로지스트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약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떠난 마음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뿐만 아니라 폰테임 후작가와 사천왕을 통해 수시로 로지를 방해하고 공격했다.”
그 사실은 아리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정보다.
그녀와 로지스트가 함께 그들의 집요한 방해를 이겨 냈으니까.
“그러던 중, 마침내 헌스터 또한 어찌어찌 악황제의 피와 살을 먹었다. 헌스터와 야만 군단마저 악황제의 몸속에 있는 존재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지. 야만 군단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이소레타는 다급히 장벽을 탈출했고, 룬-아르미 아카데미로 도망쳐 왔다.”
황녀 이소레타가 왜 갑자기 룬-아르미 아카데미의 교환 학생으로 왔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던 거였다.
‘그때는 앨리스에 이어 괜한 라이벌이 또 생겼다고 싫었는데…….’
참으로 어리석었다.
“스승님은 이 모든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거죠?”
율카네스가 알아낸 정보는 아무리 대마도사인 그라도 쉽게 알기 힘든 얘기였다.
“성녀의 투영 능력이 많은 도움을 줬지.”
“성녀라면 미샤를 말하는 건가요?”
답답하고 짜증을 유발했던 성녀를 떠올린 아리아가 눈을 찌푸렸다.
“그래, 그녀의 희생 덕에 알게 된 것들이다.”
“잠깐! 희생이라니요?”
“성녀는 이제 없다.”
아무리 좋게 보지 않던 성녀라고 해도, 죽었다고 하니까 아리아는 우울했다.
‘걔는 세상이 망해도 정의를 외치며 잘 살 거 같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