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55
155. 그 교수의 여름방학(6)
“그나저나, 아스카의 의견은 안 물어봐? 가장 중요한 것은 걔의 의견이지.”
마지막으로 빠져나갈 여지를 확보하려 했다.
“여왕님이 로니아드 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냐는 투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미오는 마치 이것 때문에 여기에 온 것처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머무는 데 부족함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의 얼굴에 후련함이 가득하다.
“……그래, 잘 자고.”
프리미오가 사라지자, 로니아드는 뭔가에 홀린 느낌이다.
“도대체 뭐가 일어난 거야?”
마치 눈 뜨고서 보증 계약서에 인감 찍은 기분.
‘아스카라.’
걔랑 의남매 이상의 관계로 간다고?
“실감이 안 나는군.”
로니아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도 아니고. 그사이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프리미오가 물러나고 몇 분 뒤, 로니아드 또한 접객실에서 나와 침실로 향했다.
“간만에 힘 안 쓰고 편히 자겠군.”
어제까지 두 세이렌에게 쪽쪽 빨려서 그런지 혼자만의 숙면이 그리워졌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하지만 그런 로니아드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좋은 밤이에요, 로니아드 님.”
“그래, 브리기트. 그나저나 이 시각에 왜 내 침실 앞에 있는 건데?”
브리기트가 그의 침실 앞에 다소곳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내 시중을 들기로 한 거야? 밤 시중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로니아드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끄응, 그래도 세이렌보단 낫겠지.’
당장 브리기트가 입고 있는 옷 또한 맨살이 많이 보이며, 굉장히 얇은 옷이었으니까.
“설마 아스카가 보냈어?”
전체적으론 시녀복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녀복과는 많이 달랐다.
정확히는 과거 왕궁에 손님이 왔을 때, 하급 시녀들이 밤 시중을 들 때 입던 복장이었다.
아스카가 즉위한 후로는 완전히 사라진 제도이기도 했다.
“여긴 제가 몰래 왔어요.”
몰래 왔는데 주변에 얘 말고 아무도 없다고?
로니아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여기에 얼마 안 있다가 가신다고 들었어요.”
“응, 맞아.”
브리기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로니아드가 그런 브리기트를 응시한다.
“저……!”
로니아드와 비슷한 브리기트의 붉은색 눈동자가 꾹 감겼다.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작지만 단호하게 외쳤다.
“저, 로니아드 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브리기트의 외침에 로니아드는 멀뚱멀뚱 그녀를 보았다.
“아이?”
“……네.”
브리기트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으음…….”
단순히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도 아니니까.
문제는…….
‘나, 지금 봉인되어 있는데.’
난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임신이 안 되면 충격이 클 텐데.’
브리기트는 좋지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너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아.”
로니아드의 말에 브리기트의 얼굴이 밝아진다.
“처음도 아니잖아.”
다시 살짝 붉어진다.
“하지만 내 몸은 좀 특이 체질이라서, 지금은 안 생길 확률이 높아.”
“??”
브리기트의 두 눈동자에 물음표가 생겼다.
“말했다시피 특이 체질이야.”
경험이 많은 브리기트지만, 그런 체질은 처음 들었다.
“만약 안 생기더라도 절대 너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그것만 명심해.”
“네…….”
“지금 안 생겨도 실망하지 마. 나중에 몸 상태가 괜찮아졌을 때, 그때 다시 노력하면 되니까.”
브리기트는 지금 로니아드가 하는 말이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짜로 로니아드의 체질 때문에 그런 것인지 헷갈렸다.
“어쨌든 한번 노력해 보지.”
그는 브리기트를 공주님 안기처럼 들어 올렸다.
“꺅!”
브리기트는 붉어진 얼굴로 그의 품에 안겼다.
“떠나기 전까지 노력은 해 볼게. 그래도 안 생기면 나중에 내 몸 상태가 괜찮아졌을 때 다시 하자. 그땐 무조건 성공이야!”
사랑하는 님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쩌겠는가.
“네…….”
믿어야지.
로니아드는 침대 위에 누운 브리기트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스카도 협조했을 터.’
아스카와 브리기트가 서로 합심해서 벌인 짓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진짜로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생아가 되는 건가? 아니면 아스카가 양자로 입적하려나?’
보아하니 아스카는 자신이 마법 인형이라서, 불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브리기트에게 부탁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브리기트 또한 이에 흔쾌히 응했을 테고.
‘일단 생기면 고민하자.’
생각을 마친 로니아드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 * *
며칠 후, 렌슬렛 공작령.
“카디나 경, 잡았다고 하네요.”
카디나는 자신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카디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렇군요.”
이내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미남자가 부드러운 눈으로 카디나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눈앞의 남자는 렌슬렛 공작가는 물론, 공작령 주변 귀족 영애들의 마음까지 앗아 간 젊은 기사, 이스트라 한 포퓰렘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궁금한데요?”
이스의 눈이 부드럽게 휘면서 카디나를 응시한다.
카디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이스를 멍하니 감상했다.
참으로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다. 그녀의 마스터 로니아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던 게 오스카 순백궁이었나?’
당시 제인의 호위로 온 이스와 몇 차례 대련하면서 안면을 텄다.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때도 준수했던 실력이지만 지금은 더더욱 성장했어.’
대련은 늘 카디나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스는 여자인 자신에게 패배했음에도 어떤 질시도 보이지 않았다.
순수하게 그녀를 존중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
그런 참된 기사의 모습은 지금까지 만난 어떤 기사에게서도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외모도 인성도 모두 완벽한 남자.
그런 이스와 최근 한 달간 같은 임무를 하면서 매일같이 대련했다.
이스는 어떨지 몰라도, 카디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호감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잘난 남자가 왜 지금까지 결혼은커녕 연애 소문 한번 나지 않은 걸까?’
갑자기 강한 궁금증이 몰아쳤다.
그녀가 알기로 이스의 나이는 20대 초반이다.
이스 정도의 외모와 직업이면 결혼은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부인까지 만들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다른 기사라면 벌써 결혼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럼에도 눈앞의 남자는 도통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요지부동이다.
결혼은커녕 그의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여자의 구애를 애써 모른 척한다.
이스의 아버지 휘닉스도 이젠 포기했는지 사실상 방치 중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한 남자.
이것이 이스가 지닌 로니아드와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카디나는 문득 그런 이스를 보며 의심이 들었다.
‘설마,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망측한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런 멋진 남자가 그런 취향이면 참으로 슬플 것 같았다.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를 강한 답답함이 치솟았다.
“이스 경은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으십니까?”
결국 마음속에서 나온 말이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오고 말았다.
“갑자기요?”
카디나의 입에서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소리가 나오자, 이스가 물음표를 띄운다.
“아, 죄송. 너무 뜬금없었군요.”
카디나는 뒤늦게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는 카디나 경은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이스가 역으로 카디나에게 묻는다.
이스의 물음에 카디나는 살짝 처진 어깨로 작게 답했다.
“저처럼 선머슴 같은 여자를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습니까?”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남색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한 남자가 떠올랐다.
‘마스터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 애초에 사랑인 것 같지도 않고.’
처음에는 로니아드를 향한 마음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랑보다는 존경과 경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무엇보다 마스터가 나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
물론, 로니아드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면 카디나는 거부하지 못할 것 같다.
존경과 경외를 한 꺼풀 벗기다 보면 사랑과 호감이 분명 있을 테니.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카디나는 눈앞의 남자 이스를 보았다.
그녀와 똑같은 푸른색 눈동자가 가슴을 간지럽힌다.
“검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미 혼기도 지났고.”
하지만 동시에 씁쓸해지는 기분은 피할 수 없었다.
“나이도 많은 편에, 몸에 근육만 있고, 머리카락도 짧고, 애교 있는 성격도 아닙니다. 이런 저를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습니까.”
남자들에게 사랑보다는 질투와 경쟁심을 많이 받았던 카디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떤 남자든 좋아할 수밖에요.”
그리고 카디나의 자조적인 말을 들은 이스가 말했다.
“네?”
카디나가 당황해 반문했다.
“그러는 카디나 경은 어떤 남자가 이상형입니까?”
이스가 말을 이었다.
“저는…….”
갑작스러운 이스의 질문.
카디나는 평소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라 급히 생각해야 했다.
‘이상형이라.’
순간 다시금 한 남자가 떠올랐다.
“저보다 강한 남자?”
그녀의 시선은 이스에게 고정되었다.
“저런, 그렇다면 더더욱 노력해야겠군요.”
카디나의 대답에 이스가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인다.
이스와 카디나는 렌슬렛에서 종종 대련을 했다.
승패의 결과는 늘 카디나의 승리.
그래도 며칠 전부턴, 카디나 또한 진땀을 흘릴 정도로 이스의 실력이 향상된 상태다.
“참고로 저는 저보다 강한 여자가 좋습니다.”
“……?!”
이스의 말에 카디나는 멍하니 있다가 눈을 크게 뜬다.
“자아,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어서 가시죠. 반란 세력의 수괴가 잡혔다고 합니다.”
“자, 잠깐! 방금 그 말……!”
“늦었습니다. 어서 가요!”
그녀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스가 앞서 뛰어간다.
카디나는 멍한 눈에 살짝 홍조가 든 볼을 하고는 이스의 뒤를 쫓았다.
렌슬렛 공작성의 가장 깊은 지하실.
일명 지하 감옥이다.
자애로운 여공작 이노 폰 렌슬렛의 통치 중에는 거의 쓸 일이 없던 이곳이 요즘은 북적인다.
“끄아아아아!!”
“사, 살려줘어……!”
“으으……. 아아악!!”
“꺄아아악!”
지하 전체에, 온갖 연령대의 비명 소리가 안개처럼 자욱하다.
대부분은 남자지만, 일부 여자도 있다.
지하의 습하고 추운 공기가 데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묻겠다. 누구의 지원을 받았지?”
그리고 이런 비명의 안개 속에서 고고하게 서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렌슬렛의 여공작 이노였다.
“어차피 너는 살지 못해. 그래도 고통 없이 죽는 자비라도 받고 싶지 않나?”
심문하는 이노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없는 차가움 그 자체였다.
“말해. 나를 시해하려 하고 공작령에서 반란을 주도한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