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56
156. 그 교수의 여름방학(7)
고문을 받던 남자는 도도하게 서 있는 이노가 증오스러운지 발악하듯 외쳤다.
“여공작! 이 더러운 여자야! 배후는 바로 네년의 문란함이다!”
“이 ×발 새끼가!”
남자의 외침에 여공작의 옆에 있던 휘닉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간수 대신 직접 수레바퀴를 돌렸다.
키기기긱, 끼이익.
수레바퀴가 돌자, 남자의 사지를 구속하던 장치가 더욱 돌아갔다.
콰드드득!
고문 기구가 돌아감과 동시에 남자의 사지는 더더욱 기괴하게 뒤틀렸다.
“끄, 끄아아아악!!”
심약한 사람이 본다면 절로 실신할 것 같은 모진 고문이었다.
“아아악, 이 더러운 여자! 렌슬렛의 수치! 렌슬렛은 네년이 쉽게 넘볼 가문이 아니다! 기필코…….”
“닥쳐라, 이놈!”
“기필코 제대로 된 적통이…… 아아악!”
고문받는 중년의 남자는 악을 쓰며 여공작 이노를 저주한다.
“마법으로 확인 결과, 거짓이 아닙니다.”
고문 기구 옆에서 캐스팅을 하던 마법사가 조심히 이노에게 보고한다.
“하긴, 왕실도 폰테임도 지금 이곳에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겠지.”
마법사의 보고에 이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각하, 이놈의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휘닉스가 이노에게 걱정을 담아 말했다.
휘닉스의 우려에 이노는 소리 없이 미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직 숨은 붙어 있습니다. 처형 할깝쇼?”
간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휘닉스가 돌린 고문 기계로 반란 세력의 수괴 중 하나였던 남자는 의식을 잃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휘닉스의 물음에
“일단 가둬 놓으세요. 형식적이지만 재판은 받게 해야 할 테니.”
이노는 짧게 대답하고는 감옥 내부를 보았다.
단 1초라도 이 불쾌하고 끔찍한 장소에 있고 싶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라. 숫자도 많고.’
하지만 이노는 눈앞에 펼쳐진 잔혹한 광경보다, 방금 들은 말이 더욱 상처로 다가왔다.
‘사실이긴 하지.’
아무리 주교가 눈감아 준다고 해도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다.
지금 세상의 정세가 혼탁하지 않았다면, 여주교 베네사 또한 진즉에 교국으로 소환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막아 보려 했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이노는 씁쓸히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니아드와의 일들이 후회되진 않았다.
‘애초에 내가 로니아드와 사랑을 안 나눴어도 어떤 식으로든 소문을 만들어 냈을 것이야.’
안 하고 억울할 바엔, 하고서 뻔뻔해지는 게 낫다.
“내 행실과 하이든의 사생아들까지. 물 만난 물고기겠군요.”
이노가 의식을 잃고 감옥으로 질질 끌려가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그 남자와 함께하고 있는 반여공작 세력들에게 한 말이다.
과거 하이든에게 충성하던 관리, 상인, 기사 그리고 방계 귀족이 주축이다.
이노가 여공작이 되자,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긴 자들이기도 하다.
단순히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 가족 중 상당수는 그때의 비리로 감옥에 가거나 처형을 받았다.
이노에게 불만이 없을 수 없는 세력.
당연하게도 그녀의 행실과 관련된 소문들은 그들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
굳이 모략하지 않아도 절로 굴러들어 왔는데 안 쓸 이유가 없겠지.
그렇게 이노를 적대하는 세력은 서서히 무기를 갈고 닦아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막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다.
자신이 하이든의 사생아라고 밝힌 소년 소녀들이 하나둘씩 렌슬렛 공작령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든, 도대체 사생아를 얼마나 만든 거야?’
수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던 하이든에게 사생아가 감히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씨를 뿌리고 다녔는지, 근래 스스로를 렌슬렛의 피가 흐른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과장을 좀 보태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도 남았다.
생긴 것도 하이든의 은발과 보라색 눈동자를 하고 있어 마냥 무시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사생아들은 어디선가 지원을 받는 모양이었다.
개개인에게 호위와 수행원이 붙었고, 일부는 공공연하게 북부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서서히 이노의 명예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엔 일부가 대놓고 이노를 음해하고 다니다가 잡혔다.
그 사생아들을 심문하던 중, 렌슬렛의 방계 가문들이 대거 연관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그들은 이노를 시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한 음해에서 역모로 사건이 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공작 각하. 놈들의 세력은 굉장히 약합니다.”
휘닉스가 안절부절못하고 이노를 위로하려 한다.
“그나마 평소 하이든의 행실과 렌슬렛 영지에 대한 가난한 인식이 도움이 되었네요.”
이노는 휘닉스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이든은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애초에 하이든의 눈에 차는 귀족 가문에선 하이든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나니에 가난한 영지를 지닌 하이든에게 딸을 시집보낼 멍청한 귀족 가문은 이노의 레미앙 가문밖에 없었다.
이노의 말을 들은 휘닉스 또한 고개를 숙이면서 여공작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첩조차 만들지 않았으니. 아! 정확히는 못한 것이군요. 어떻게 보면 다행입니다.”
하이든이 워낙에 개차반같이 활동해서 그랬을까?
그의 눈에 찰 정도의 고급 창녀들 또한 누구도 하이든의 첩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생아를 만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아녀자들을 길가에서 범한 것일까요?”
휘닉스의 시선이 지하 감옥의 다른 동을 보았다.
그곳의 죄수들은 반란을 기획한 이들과는 달리, 고문은 받지 않고 조용히 독방에 갇혀 있기만 했다.
“정말, 여러 사람 불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던 인간이었네요.”
이노도 휘닉스의 시선이 간 곳을 보며 말했다.
저기 갇혀 있는 열댓 명의 사생아들. 전부 10살 전후의 나이다.
심지어 이것도 감옥에 갇힐 정도의 나잇대의 아이들만 추려 넣은 것이다.
이보다 어린애들은 밖에서 따로 관리 중이었고, 무엇보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저렇게 많은 사생아라면 얼마나 많은 아녀자들의 인생이 파탄 났을까?
하이든은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선을 심하게 넘었다.
그런 인간이 진즉에 죽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그가 싸 놓은 똥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악취를 풍겼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생아가 너무 많습니다.”
그때, 휘닉스가 자신의 의구심을 이노에게 말했다.
“하이든 그자가 아무리 발정 난 짐승 같았다지만, 여자 외모 보는 눈은 높았습니다.”
휘닉스의 말을 들은 이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사생아들 중에 일부는 하이든이 아니라 방계가 저지른 죄악일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네, 방계들이 싸 놓은 사생아들 중에서도 렌슬렛의 은발과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아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용서 못 하겠군요.”
이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것이지, 저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위험한 일에 동원하는 것일까?
저 아이들을 낳은 여인들의 불행한 운명은 또 어떻고.
“공작 각하.”
“여공작님.”
그때, 소식을 들었는지 지하 감옥으로 카디나와 이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너는 어디서 뭘 하길래 이제 오는 거야!”
휘닉스가 그런 자신의 아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카디나 경과 함께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이스가 당당하게 카디나 뒤에 숨어 휘닉스에게 외쳤다.
“어……. 카디나 양이랑?”
휘닉스가 카디나를 멍하니 보았다.
“아아, 늦을 수도 있지, 하하하하.”
곧바로 헤실헤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카디나 양. 우리 아들이 실수한 것은 없지요? 만약에 있다면 저를 대신해서 복부에 몇 방 쑤셔도 됩니다.”
“이스 경은 저에게 잘해 주십니다, 휘닉스 근위대장님. 그리고 카디나 양보다는 카디나 경이 편합니다. 말도 존대할 필요가…….”
카디나가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소립니까? 카디나 경은 카디나 양입니다, 허허허. 여하튼 우리 못난 이스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휘닉스가 오히려 손사래 친다.
“……네.”
카디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카디나 양도 저를 아주 편하게 대하세요. 그래!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부르시면 참 좋을 텐데. 그럼 저도 카디나 양을 좀 더 편하게 부를 것 같기도 하고…….”
휘닉스의 제안에 카디나가 난처한 표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님은…….”
“그런가요? 허허허, 좀 성급했죠? 그럼 우리 이스랑 어디까지 가면 아버님이라고…….”
그리고 이 광경을 보던 이스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휘닉스의 말을 끊었다.
“아오! 주책맞게! 보는 내가 부끄러워서, 진짜!”
“다 네놈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잖아! 이 고자야!”
“고자라니! 뭔 개똥 같은 소리를 하십니까?! 저 아침에도 야전 텐트 치고 그럽니다! 그것도 24인 병사용 텐트!!”
“미친놈아! 숙녀분들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숙녀분들 앞에서 먼저 고자 소리를 한 게 누군데 그래?!”
휘닉스와 이스 부자간의 다툼이 지하 감옥 안에 메아리쳤다.
카디나는 멍하니 두 남자의 싸움을 보았다.
전에도 몇 번 봤지만, 여전히 신선한 광경이다.
거칠지만 뭔가 보기 좋았다.
“카디나 경, 저 둘은 냅두고 우리끼리 먼저 올라가요.”
카디나와 함께 두 부자간의 싸움을 보던 이노가 작게 말했다.
이노의 표정은 아까보단 많이 풀어져 있었다.
풉, 하고 미소 짓는 것이 이스와 휘닉스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많이 풀린 듯 보였다.
“네, 각하.”
카디나 또한 조용히 대답하고는 이노의 경호를 맡기 시작했다.
“나도 곧 있으면 반백 살인데 아직까지 손주를 못 본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새장가 가라니까! 왜 청승맞게 그러셔? 무슨 순정 마초도 아니고!”
“그게 뭐 어때서?! 그러는 너야말로……!”
부자간의 말싸움이 지하 감옥을 메아리친다.
둘의 목소리를 기운 삼아 이노는 힘이 풀릴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고서 감옥 밖으로 나갔다.
사라지는 여공작에게 간수와 마법사가 조용히 예를 표한다.
“후아.”
감옥 밖으로 나온 이노는 따스한 햇볕을 보자마자 크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십니까?”
카디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네, 괜찮아요. 이럴 때일수록 힘내야죠!”
이노가 부드럽게 웃으며 카디나에게 말한다.
카디나는 그런 이노를 보면서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마스터가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분이다.’
저 작고 연약한 몸에 세상 누구보다 강인하고 지혜로운 심성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단둘이 있게 된 것은 처음이네요?”
이노는 빙긋 웃으며 카디나를 보았다.
처음 카디나가 아리아, 제인과 함께 렌슬렛에 왔을 때, 이노는 제법 놀랐다.
‘카디나라면 폰테임의?’
비록 사생아라 폰테임의 성을 받지 못했지만, 그 능력을 인정받아 방계의 지위를 누리던 기사.
심지어 여자임에도 그런 업적을 누린 것에 이노는 적이지만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랬던 카디나가 로니아드에게 감화되어 아군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제법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카디나를 보자, 카디나와 연관된 인물인 로니아드가 떠올랐다.
‘로니아드…….’
얼굴 한 번, 편지 한 번 안 주고는 한 달째 소식이 없는 남자.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방학 시작과 동시에 일이 있다면서 한 달 넘도록 연락이 끊긴 상태다.
“혹시 로니아드로부터 소식이 온 것은 없나요?”
“예, 저도 따로 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역시나다.
이노의 어깨가 축 처졌다.
‘나타나기만 해 봐라!’
오늘따라 그 남자의 품에 유독 안겨 위로받고 싶었다.
“공작 각하! 공작성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그때, 집사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를 올린다.
“손님이요?”
“네, 학자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귀족 영애로 보이는 레이디 네 분입니다.”
집사의 말에 이노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학자로 보이는 남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에 언급된 네 명의 여자가 거슬렸지만, 급한 것은 남자다.
“예, 맞습니다.”
이노의 표정을 보고 집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안내하세요.”
이노가 집사를 재촉했고, 카디나 또한 빠른 걸음으로 이노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