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61
161. 새 학기의 시작은 룬-페스티아와 함께(3)
어느덧 로니아드는 교수실 책상에 바로 앉았다.
그리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지구에서 봤던 각종 자극적인 소재가 끝없이 떠올랐고, 그 소재를 알맞게 이을 영감이 계속해서 샘솟았다.
“로지와 제인, 이소레타를 주연으로 하자.”
이 막장 드라마의 주연으로 모든 용의 적통들을 넣어 준다.
‘이소레타의 말처럼 용의 혈통이면 다 가능할까? 확실치 않지만. 일단 질러 보지, 뭐.’
그렇게 개요에 이어 학생들에게 대략적인 등장인물을 지정했다.
“그러고 보니 3왕자 카론도 마누스의 혈통이지?”
로니아드는 고민하다가 이내, 카론은 가장 비중이 없는 역할에 배정했다.
괜한 변수는 만들기 싫었다.
로니아드는 그렇게 점심도 거르고 시놉시스와 인물 관계도를 썼다.
중간중간 수업 때문에 교수실을 나가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이 일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노을이 질 즈음.
“어디 이것도 참을 수 있는지 보자고, 유령들아.”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의 컬처 쇼크에 용의 혈통만 넷이고 심지어 그중 셋은 적통이다.
이걸 어떻게 참아.
‘너무 감동해서 최초의 영광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원작의 로지도 최초의 영광 수준의 지원은 받지 못했다.
로지의 연기는 꽤 볼만했지만, 작품의 스토리가 문제였다.
틀에 박힌 무난한 스토리는 뛰어난 연기력마저 무난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로니아드는 자신이 쓴 대본을 보며 씨익 웃었다.
* * *
아르미다츠, 그것도 수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달리 유령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
휘이잉, 위잉.
왜냐면 룬-페스티아 시즌이 되면 도깨비불처럼 생긴 것들이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바로 영혼석(또는 봉인석이라고도 부른다)에서 나온 혼령들이다.
우웅, 우웅.
비록 격이 낮아 정령들처럼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풍기는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혼령들 또한 점멸의 횟수나 밝기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응응, 그랬구나. 참으로 무서웠겠어.”
테노바가 도깨비불처럼 생긴 혼령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저 혼령들의 말을 알아듣는 거야?”
그것을 본 아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나도 노바처럼 대화까지는 못 나누지만, 그래도 무슨 감정을 전달하려는지는 알 거 같은데?”
제인도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오는 혼령들을 쓰다듬는다.
“흐음~ 밤에 마법 횃불 대용으로 쓰면 되겠는데?”
이소레타에게도 제인 만큼은 아니지만 다섯 정도의 혼령들이 소환수처럼 따라붙었다.
‘재능의 차이가 아닌 종족의 차이인가?’
아리아가 신기하다는 듯 엘프와 두 용의 적통을 보았다.
‘아닌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반면, 로지에게는 어떤 혼령도 감히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혼령들은 마누스의 적통인 로지가 오히려 무섭다는 듯 굴었다.
그가 다가오면 쏜살같이 도망친다.
“……이것들이.”
누구보다 환상 군단의 지원이 필요한 그의 입장에선 짜증 날 노릇이다.
“하하하! 그만 좀 따라와라. 이러다 화장실까지 올 것이냐?”
그때,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로지가 고개를 돌려 보니 3왕자 카론에게도 혼령 둘 정도가 다가와 그를 따르고 있었다.
“올해는 유독 나를 더 따르는구나. 지난번 페스티아 때는 너 하나만 따라오더니, 친구라도 데리고 온 것이냐?”
“…….”
로지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졌다.
그런 로지를 본 아리아가 테노바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노바, 혹시 혼령들에게 왜 로지를 피하는지 물어봐 줄 수 있겠어?”
아리아의 부탁에 테노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혼령들과 대화를 했다.
혼령들이 깜빡깜빡 빛을 점멸해 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금지된 어떤 힘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봉인석의 타락도가 다시 올랐다고 하는데?”
“금지된 힘?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지. 덕분에 자신들의 사령관이 엄청 화가 났다고 해.”
룬-페스티아는 영혼석에 봉인된 혼령들의 타락을 희석시키기 위한 축제.
이것은 아리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로지가 받아들인 금지된 힘 때문에 타락도가 다시 깊어졌다니.
“거기에 최근에 이 도시에 심연의 병사가 나타나기까지 해서, 봉인석 내부의 세계는 지금 엄청 혼란스럽다고 하네?”
“심연의 병사? 방학 전에 나타난 마인을 말하는 건가?”
아리아의 말에 테노바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고개를 갸웃했다.
아리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손짓을 했고.
테노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혼령들과 놀았다.
‘룬-페스티아가 갑자기 앞당겨진 것도 이런 이유였을까?’
현재 아리아 일행은 과거 방학 전처럼 늘 모이던 인원들끼리 모여 있었다.
아리아, 제인, 앨리스, 로지, 카론, 테노바, 이소레타, 거기에 새로 추가된 두 소녀까지.
그들은 함께 아카데미를 거닐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혼령들이 몇몇 이들에게 소환수처럼 계속 따라다닌다는 차이 정도.
아카데미의 광경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는데, 룬-페스티아 초반이라서 그런지 당장 관광객은 별로 없었다.
무언가를 건설하고 꾸미고 있는 인부들과 상인들이 많았다.
“세상에 나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
테노바에겐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녀가 무심히 입을 열어 감탄했다.
“세상? 그럼 그전에는 어디에서 살았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3왕자 카론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아아, 노바의 영지는 마누스 산맥에 근접한 영지였거든.”
급히 앨리스가 테노바가 한 말을 잡아 줬다.
“호오, 그래서 혼령들이 좋아하는 건가?”
카론은 여전히 뭔가 미심쩍은 눈치였지만, 그러려니 넘어가는 반응이다.
“어쩌면 위대하신 선조의 가호를 운 좋게 받았을지도 모르고.”
카론이 대충 넘어가자, 앨리스는 테노바를 노려봤고 테노바가 주의하겠다는 투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앨리스와 테노바가 그러든 말든 개학 전부터 카론의 신경은 온통 다른데 쏠려 있었다.
‘갑작스러운 낙하산 전학생 둘도 의심스럽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게 있으니.’
그것이 카론이 대충 넘어간 이유기도 했다.
지금 그에겐 이 의문의 전학생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마누스 산맥과 가까운 영지라면 렌슬렛도 있었지?”
카론이 은근슬쩍 마누스 산맥을 핑계로 아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렌슬렛은 워낙 넓어서 공작성은 산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답니다.”
카론의 말에 아리아는 퉁명스레 답했다.
“음, 그래 보이는군.”
아리아에게 딱히 호감도 적대감도 보이지 않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혼령들을 보며 카론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짧게 대화를 나눈 후에도 카론은 계속해서 아리아를 쳐다봤다.
“저에게 호감이라도 생겼나요, 3왕자 전하?”
그런 카론의 시선에 짜증이 난 아리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개학 첫날부터 대놓고 아리아를 수시로 힐끔 봤으며, 계속해서 그녀와 단둘이 대화할 상황을 만들려는 행동을 취했다.
“뭐,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그럼 그냥 물어보겠소.”
물론, 카론이 아리아에게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아리아를 포함해 주변의 모두가 잘 알았다.
오히려 카론이 왕자답지 않게 소심하게 행동했을 뿐.
“렌슬렛 영애, 렌슬렛은 정말 독립을 할 것이오?”
결국 단둘이 대화를 나눌 상황을 만들지 못한 카론은 남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아리아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렌슬렛 영애는 이번 학기에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을 줄 알았소.”
어쩌면 적진일 수도 있는 곳. 적국의 수도 한복판에 아리아가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 왕실은 혼란에 빠졌다.
과연 렌슬렛의 의도가 무엇인지.
“독립은 어머니의 일이다 보니 저는 딱히.”
“어머니의 일이라도 차기 렌슬렛의 군주가 되실 분이니 아주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믿소만?”
카론의 어투는 정중했다. 학생 대 학생도 아니고 왕족 대 귀족의 관계도 아니었다.
왕족 대 왕족의 관계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독립하면 체스카드 왕실에서는 어떻게 나오게요?”
아리아가 카론의 눈을 응시한다.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하아,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소이까?”
그런 아리아의 태도에 카론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공작께서 워낙 기습적으로 행하신 일인 데다.”
그의 시선이 아리아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앨리스에게로 향했다.
“무엇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치고 있어서 말이오. 폰테임 후작은 안녕하시오, 폰테임 영애?”
카론은 앨리스에게도 말을 걸었다.
렌슬렛과 마찬가지로 폰테임의 영애를 대하는 태도 또한 격을 차린 대화다.
차이가 있다면 렌슬렛은 존중의 의미로, 폰테임에게는 거리감을 두기 위한 의미 정도다.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깝게 대하기가 힘들었겠지.
“글쎄요? 본가에 안 간 지 너무 오래돼서 잘 모르겠네요.”
가문의 얘기가 나오자 앨리스 또한 퉁명스레 카론에게 대꾸했다.
‘폰테임 영애는 왜 또 저래?’
뜬금없이 냉랭한 앨리스의 태도에 카론은 의아했다.
지금까진 늘 가면을 썼지만 웃으면서 반응을 해 줬던 앨리스였기 때문이다.
‘3왕자도 내가 폰테임에서 가출한 사실을 모르나?’
반면 앨리스도 의아한 심정으로 카론을 보았다.
‘아버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나 본데?’
아직 앨리스가 정략결혼에 반발하여 폰테임에서 가출했다는 소문은 돌지 않은 듯 보였다.
‘왜지? 그러고 보니 나를 잡으러 오지도 않고. 무슨 의도일까?’
그녀의 정략결혼 상대가 악황제였다는 사실도 말이다.
“뭐, 현재 왕실 입장에선 기왕 렌슬렛이 독립한다면 인정해 주고, 대신 함께 공동의 적과 맞서자는 의견이 많소.”
카론은 말하면서 앨리스의 반응을 살폈다.
공동의 적이라 하면 누가 봐도 폰테임 후작이다.
일부 신앙심 강한 교인이 들었다면 제국과 악황제를 떠올렸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 렌슬렛을 사냥개로 쓰겠다는 의향으로 보이는군요? 그렇게 공동의 적을 제압하고 나면, 그 후에는 구워 드실 겁니까?”
“구워 먹다니? 구워 먹으려다 오히려 역으로 잡아먹힐 테지.”
카론은 과장된 동작으로 손사래 친다.
“오히려 어르고 달랠 것이오. 괜찮은 짝을 맺어 줄지도 모르고. 아마 저번에 제안한 것을 더욱 집요하게 요청할 것이오.”
카론은 방학 전에도 제안한 아리아와의 정략결혼을 언급했다.
당연하게도 아리아는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휙 저었다.
고개를 휙 저으며 자신도 모르게 이 모든 광경을 말없이 보고 있던 로지에게 시선이 잠깐 갔다.
방학 사이 로지는 전보다 더욱 어두워지고 음침해진 느낌이었다.
‘하아, 환상 군단은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낮아 보이고.’
과거부터 일부 혼령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알았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품었던 그였다.
하지만 노바, 소렛, 제니 등 자신보다 혼령들과 친화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절로 자신 없어졌다.
‘차라리 망명할 준비라도 해야 하나.’
카론은 아리아의 시선이 로지에게 잠깐 멈칫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3왕자인 그가 봐도 작금의 체스카드 왕실은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