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64
164. 장막을 넘어
폰테임 후작령, 폰테임 후작가의 대저택.
저택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최근 율카네스가 한바탕 뒤엎은 뒤로, 대저택은 예전과 같은 분위기를 되찾기 어려웠다.
단순히 예전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것을 떠나 굉장히 이상했다.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고 삭막했다.
마치 이 넓은 저택에 살아 돌아다니는 생명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사람은커녕 개나 말조차도.
왕실과의 전쟁을 앞둔 폰테임이다.
적어도 후작을 따르는 귀족들이 쉬지 않고 방문해야 할 테지만, 저택의 외곽을 지키는 병사와 기사들은 어떤 이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히익! 흐읍! 끄악!”
시종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발버둥 친다.
이미 하체의 대부분은 무언가에게 뜯어 먹혔다.
상태를 보아하니 어떤 강력한 신성력으로도 살기 어려워 보였다.
“제, 제발! 끄아악!”
그럼에도 생존에 대한 욕구인지, 아니면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움직였다.
“타, 탈출해야, 여기서 당장……!”
남자는 남아 있는 양팔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기어서 중앙 저택의 정문을 나서려 했다.
촤르륵.
“흐어, 흐아악!”
하지만 남자의 발버둥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중앙 저택의 어두컴컴한 안쪽. 심연처럼 깊숙한 곳에서 덥석, 흉측한 촉수가 튀어나왔고, 탈출하려던 남자를 휘감더니 끌어당겼다.
우드득, 콰드득, 아그작!
그렇게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허무하게 끝났다.
덜덜덜덜덜…….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작은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저택 안에서, 그 청년은 몸을 벌벌 떨었다.
안경을 쓰고 서생 같은 이미지를 한 미청년, 폰테임의 삼남인 알렉스였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흐으으.”
알렉스는 두려움에 지쳐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바지 사이에는 오래전 지린 것으로 보이는 오줌 자국이 거의 말라 가고 있다.
“프, 프로스, 너냐? 네가 아버지를…….”
알렉스는 시종을 촉수로 끌어당겨 와구와구 씹어 먹는 존재를 향해 물었다.
―형한테 여전히 말버릇이 없구나, 알렉스. 이 귀엽고 가증스러운 동생아, 아들아.
온몸이 악마화가 되었고 등에서는 날개와 함께 검은 촉수 열 개가 꿈틀거린다.
―나는 프로스이기도 하고, 네 아버지 카라스이기도 하며, 아니기도 하다.
악마화된 존재의 외모를 가만 살펴보면 알렉스의 아버지 폰테임과 똑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 사람의 인상이 연상되는 특이한 이목구비다.
―이 필멸자들은 아무리 먹어도 성에 안 차는구나. 나는 심연에서 오랜 굶주림에 미쳤던 존재. 이 세계의 신조차 막지 못한 포식의 존재. ◆●○… □■◇를 먹어 치운 존재.
중간에 이 세상 것이 아닌 언어가 나왔으나, 그거까지 신경 쓸 정신은 알렉스에겐 없었다.
―이 세계의 필멸자들은 나름 머리를 쓴 것 같지만.
폰테임 후작의 몸을 한 존재는 끌끌 웃었다.
―그래 봤자, 귀여운 앙탈일 뿐. 드디어 육신을 얻었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알렉스는 어느새 다시 존댓말로 묻는다.
어찌 되었든 저 존재 속에는 자신의 아버지, 폰테임 후작도 있을 테니까.
―악황제 속에 있는 것도 나고, 여기 있는 나 또한 진짜다. 그리고……. 로지스트에게도 나의 일부가 있지.
그러든 말든 폰테임 후작의 몸을 차지한 존재는 말을 계속했다.
―포식을 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내 아들아.
폰테임이 알렉스를 ‘내 아들아’라고 부르자, 알렉스는 소름이 돋았다.
―가장 먼저 가까이 있는 로지스트부터 먹어야겠다. 과연 드래고니안의 몸속에 보관해서 그런지 군침이 도는구나.
“로, 로, 로지스트라면 지금 왕도에 있습니다. 제, 제가 직접 안내를……!”
알렉스는 짧은 시간에 계산을 마쳤는지, 당장은 눈앞의 아버지 같지도 않은 존재에게 봉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로지스트를 먹기 전까지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정확히는 이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없지.
폰테임은 고개를 저으며 알렉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의 나는 합일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지. 악황제보다 늦었으니 한시라도 더 빨리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러니 내 동생아.
폰테임 후작의 입에서, 과거에 죽은 프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아들아.
동시에 폰테임 후작의 목소리도 들렸다.
―네 육신을 내게 바쳐라.
“그, 그게 무슨!”
형과 아버지의 말에 알렉스가 경악한다.
―너를 통해 지금부터 있을 모든 속세의 일을 처리하겠다. 전쟁 준비를 마저 하고, 로지스트를 이곳으로 데려와야지. 그렇게 그놈에게 있는 힘부터 먹고, 최종적으로 악황제와 나머지 자투리 또한 포식하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악마화된 폰테임의 등 뒤에서 촉수 두 가닥이 알렉스에게 쏘아졌다.
―무엇보다 알렉스, 너는 나 프로스에게 큰 빚이 있지 않더냐?
키득, 키득, 키득.
“으, 으아악!”
알렉스가 비명 질렀다.
푸욱, 꾸륵꾸륵.
촉수 중 한 가닥은 알렉스의 몸을 붙잡았다.
―간만에 필멸자의 세상을 돌아다녀 보자꾸나.
나머지 한 가닥은 알렉스의 입속에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꾸역꾸역 주입시켰다.
“끄억, 꺼업.”
알렉스의 두 눈동자가 검게 변했다가, 몇 초 정도 지나 원래대로 돌아왔다.
알렉스를 잡았던 두 촉수가 이내 그를 놓아줬다.
그는 멍하니 그 자리에 몇 초간 서 있다가, 꼭두각시처럼 저택을 나섰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걷던 그의 걸음이 서서히 능숙해졌고 얼굴 또한 자연스러워졌다.
두려움에서 멍청함으로, 멍청함에서 평소의 표정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알렉스가 중앙 저택을 나오고 자신의 저택이 있는 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터덜터덜 이동했을 때.
푸다닥.
그의 앞에 갑자기 흰 부엉이가 날아왔다.
알렉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발걸음을 멈췄고, 흰 부엉이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알렉스를 보았다.
그러다가 흰 부엉이의 입이 열렸다.
―지금의 인격은 누구지? 프로스냐?
“프로스를 원하는 거 같으니까, 그걸로 해 주지.”
알렉스는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세피로스 형.”
오래전 죽었다고 알려진 둘째 프로스.
알렉스라는 껍데기만 제외한다면, 프로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알렉스의 성대에선 그의 목에선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프로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알렉스를 봤음에도, 세피로스는 크게 놀라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다만 살짝 질렸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와 알렉스까지 먹어 치우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아버지 건은 내가 먹힌 거야. 그렇게 참더니만 결국엔 힘의 유혹을 못 참고는 먹어 버렸지.”
―그럴 수밖에. 율카네스에게 어디 보통 당했어야지. 오죽했으면 악황제에게 넘기려던 너의 심장을 드셨을까.
“거기에 내가 수시로 꿈속에서 유혹했거든. 율카네스도 꼼짝 못 할 힘을 주겠다고. 키키키킥.”
세피로스는 폰테임이 왜 자살에 가까운 짓을 했는지 대충 이해했다.
―최근 율카네스가 오고 나서 드신 건가?
“아니, 그가 내 심장을 먹은 지는 좀 더 오래됐어.”
결과는 저렇게 자신의 아들이면서 아들이 아닌 존재에게 먹혀 버렸지만.
“언제였더라? 렌슬렛을 먹어 치우려던 계획이 로니아드라는 평기사와 율카네스에게 막혔을 때, 그때로부터 두세 달 후였지.”
보아하니 시간이 꽤 됐다.
―꽤 되었군? 그동안 숨기느라 고생했겠어.
“고생은 무슨. 새 육신에 적응하느라 안 그래도 힘을 쓰지 못했어. 마법이나 검술 하나 익히지 않은 몸이다 보니, 조금만 잘못하면 펑 하고 터질 것 같았거든.”
―그렇게 자기 안위 생각하느라 흑마법도 익히지 않았던 양반의 최후가 이렇다니…….
세피로스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담겨 있었다.
“세피로스, 이 아비에게 참으로 무례한 말을 하는구나.”
순간, 프로스의 인격을 보였던 알렉스의 목소리와 표정이 폰테임 후작과 일치해졌다.
―장난하지 마라.
“장난으로 보이느냐?”
여전히 폰테임의 목소리를 내는 알렉스이자 프로스.
―네놈이 프로스이면서 아버지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태고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세피로스는 눈 한 번 까딱하지 않았다.
―나는 편의상 앞으로도 너를 프로스로 부를 것이다.
“고치 상태로 변한 악황제를 너무 믿는 거 아닌가? 내가 그거까지 먹어 치우면 어떻게 하려고?”
세피로스가 말하자, 프로스가 비웃듯이 대꾸한다.
―과연 그럴까? 반대로 먹히지나 말거라.
“…….”
세피로스의 대답에 프로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형은 실망이군.”
다시 폰테임 후작에서 프로스로 변했다.
“제국에서 그렇게 살았으면서 심연의 힘이 굉장히 약하네?”
그리고 갑자기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마치 심연의 힘이 조금이라도 많았다면 바로 먹어 치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투다.
―나야 네놈에게 먹히기 싫으니까. 그래서 네놈이 이렇게 분리되어 나오길 기다렸던 것이고.
흰 부엉이는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이렇게 알렉스를 먹어 치우고서 뭘 하려는 거지?
“다 알면서 왜 그러실까? 나도 악황제 쪽에 있는 내 일부와 경쟁할 준비를 해야지.”
―왕도로 가겠다고?
세피로스의 질문에 프로스는 씨익 웃었다.
“아주 티끌만 한 조각이었지. ‘그놈’에게 일격을 당하자마자,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어린 왕세자에게 내 조각을 심었지.”
지금 말하는 내용은 프로스도 폰테임도 아닌, 본래 심연의 존재가 지닌 기억으로 보였다.
“그 조각은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무 작았으니까. 하지만 성장할 수는 있었지. 열등감과 무력감, 답답함을 느낄수록 무럭무럭 자라게 되어 있었거든. 한동안 그런 일이 없다가, 3년 전이었나? 강한 무력감과 질투 그리고 경쟁심을 느낀 모양이더군.”
로지스트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존재라면?
‘로니아드를 말하는 건가?’
세피로스는 왜 로지스트가 악황제의 알현을 청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그 마음의 틈을 이용해 계속해서 속삭였다. 그놈이 사랑했던 시녀의 모습을 하고서.”
“왕자님~ 구해 줘요~ 힘을 얻으려면 악황제를 만나야 해요오~.”
다시 알렉스의 목소리는 남자의 성대에서 나올 수 없는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마 방금 언급한 시녀의 목소리인 듯했다.
“너무나 쉬웠지.”
여전히 올리비아의 목소리를 한 상태로, 프로스는 악동처럼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심은 농작물이 악황제의 피와 살이라는 거름을 먹었고, 어둠의 정령의 도움까지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열매를 맺었지. 드래고니안이라는 토양 덕분인지 기대 이상이야.”
프로스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확하러 가야지. 엉뚱한 놈이 채 가기 전에. 더불어, 그 로니아드인가 하는 놈도 직접 봐야겠어. 아버지의 꿈속에서 그토록 로니아드 좀 데려와 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카디나와 앨리스를 팔아서라도 데려오라고 그토록 말했거늘……. 고집이 센 건지, 무능한 것인지.”
프로스는 쯧쯧 혀를 찼다.
―…….
세피로스는 그런 프로스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걸 보니 벌써 패밀리어의 마력이 떨어졌나 보지?”
―너는 말하는 패밀리어도 봤냐? 아바타와 패밀리어의 중간 정도 되는 것이다.
“그래 봤자 말하는 패밀리어지. 여하튼 정탐 끝났으면 어서 꺼져. 지금부터 나는 바쁘다고. 전쟁 준비도 해야 하고, 왕도에 열렸다는 룬-페스티아도 봐야 하고, 오랜만에 내 막내 여동생과 직접 대화도 나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