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69
169. 마성의 그녀(1)
로니아드는 자신의 상태를 아스카와 소녀들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브리기트와 두 세이렌도 마찬가지.
율카네스도 로지나 데이지에게 말할 정도로 입이 싸진 않다.
‘로지와 데이지는 아카데미에 있으니까 우선 알렉스부터 찾자.’
제일 먼저 알렉스의 근황을 조사하기로 했다.
‘일단 그랑블루를 타고서 폰테임 저택을 정찰이나 해 보자.’
로니아드는 그랑블루를 소환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다.
“여긴 뭔데 유독 사람이 없지?”
그렇게 도심 내에 있으면서도 신기하게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을 어찌 찾았다.
“1왕비여! 부디 우리를 용서하소서.”
로니아드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인적이 드문 골목 어딘가에서 익숙한 대사가 들렸다.
‘연극을 따라 하는 아이들인가?’
연극이 인기가 있다 보니 종종 이렇게 흉내 내는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익숙한데?’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
로니아드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카론?”
그곳에는 카론이 홀로 연기 연습 중이었다.
“누, 누구요!”
로니아두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자신도 모르게 말한 ‘카론’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카론은 다급히 로니아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주인님~ 애들이랑 잘 놀아 주고 왔어!
그런데 마침, 실프가 날아와 로니아드의 품에 안겼다.
문제는 실프가 날아오면서 그의 로브가 바람에 벗겨진 것이다.
바람에 벗겨진 로브.
그 로브 속에 숨겨져 있던 로니아의 얼굴.
그 순간이 카론에게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마치 운명의 만남처럼.
“어…… 어,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로니아의 얼굴을 본 카론이 떨리는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레이디는 누구시오?”
카론은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으면서도, 그녀의 진홍 달 같은 붉은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실례했어요. 목소리가 들려서 그만. 카론 왕자님 맞으시죠? 요즘 왕녀의 복수 잘 보고 있답니다.”
로니아는 웃으면서 카론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저를 알아주시다니 영광이오, 하하하하…….”
로니아의 인사를 받은 카론은 지금까지 로니아드가 봤던 카론 중에 제일 환해 보였다.
“그나저나 왜 여기서 연습 중이세요?”
“그게, 연습 무대는 오후에나 들어갈 수 있어서 말이오. 지금은 각종 아티팩트를 설치한다고 못 들어가서…….”
무대에는 각종 마법과 아티팩트가 들어간다. 그래서 3일 주기로 개봉하는 것이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제가 알기론 카론 왕자님은 아카데미 학생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수업 시간이 아닌가요?”
로니아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하! 마침 담임 교수가 집안에 일이 있어서 자리에 없다고 하지 뭐요! 대타로 온 아서 학부장에게 말해서 조퇴했지.”
“흐응~ 그러시구나?”
‘내가 빠진 지 고작 하루 지났는데 벌써 개판이군.’
아서를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무리 교권을 강조한들 아서에겐 교권보단 왕권이 우선일 테니.
“그, 레이디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로니아라고 해요.”
“로니아!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군. 그대의 눈동자만큼이나.”
‘지랄하고 자빠졌네.’
로니아드는 속으로 피식거리곤 실프의 소환을 해제했다.
그녀 주변에 나부끼던 바람이 멈춘다.
“한번 제 앞에서 연기를 보여 주실래요?”
생각해 보니 카론 이 녀석이 제일 연기를 못했다.
루카스로 있을 때 여러 번 지적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왕자라는 신분 덕분인지 관객들 보는 앞에서 긴장하지는 않아 넘어갈 뿐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눈높이가 낮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왕자라는 신분 덕에 지적 못 하는 것이거나.’
지구였으면 발연기로 언론과 시청자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을 것이다.
“로니아 양 앞에서 말이오?”
카론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한다.
“네, 내일이 연극 날이잖아요? 저도 돕고 싶어요.”
‘그래, 오늘 오전은 이 녀석의 연기력 향상에 투자하자.’
“부, 부끄럽지만 한번 해 보겠소!”
카론은 목청을 흠흠! 다듬더니 아까 하려다 만 대사를 마저 이어 했다.
“1왕비여, 부디 우리를 용서하소서!”
‘못하네.’
약간의 감정이 들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책 읽는 어조다.
로니아의 표정을 본 카론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얘는 글렀네.’
저건 안 된다. 적어도 단시간에는.
“하지만 군주를 향한 나의 충성은 변하지 않는 법. 비록 부덕한 군주라도. 그것이 기사의 맹세요!”
그럼에도 카론은 이어서 대사를 했다.
‘생각해 보니까 카론이 내 얼굴을 알아 버렸으니. 오후에 극장으로 못 가겠네? 게다가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고.’
오후에는 원래 잡부가 되어서 무대 준비나 도우려고 했지만, 취소하기로 했다.
괜히 가 봤자 방해만 될 것 같았다.
‘특히 아스카나 앨리스 같은 애들이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고.’
그렇게 로니아가 오후의 일정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휴우, 아직 많이 모자르오.”
카론의 연기 연습이 끝났다.
반쯤 외면하고 있던 로니아도 짝짝짝, 예의상 박수를 쳐 줬다.
“그나저나 왕자님은 이 연극에 왜 이렇게 열심히세요?”
차마 잘한다는 말은 못 하겠으나 그래도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연습하는 것을 보면 노력은 하는 것 같다.
‘왕자라는 신분이 꽤나 거추장스럽기는 하겠어. 연습도 이렇게 외진 곳에서 몰래 해야 하고.’
로니아는 카론을 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감각을 집중하니 주변에 여럿이 잡혔다.
‘비밀 호위 20명이라. 실력을 보아하니 최소 상급 기사. 아니, 어새신인가?’
카론 주변으로 비밀 호위들이 지붕과 벽 뒤에 숨어 있었다.
어쩐지 이 주변에 지나치도록 인적이 드물다 했더니, 미리 세팅해 놓은 모양이다.
‘그런데 왜 내가 카론에게 오는 것은 제지 안 했지?’
로니아의 외모에 얼빠져서 미처 제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밀 호위들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왜 열심히 하냐라…….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려고 하오.”
로니아드가 주변의 전력을 가늠하는 동안, 로니아의 질문에 카론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가능성이요?”
“그래, 가능성, 내가 환상 군단의 인정을 받을 가능성.”
‘역시 얘도 노리고 있구나.’
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차반 체스카드 왕족 중에 그나마 카론이 왕족답긴 하네.’
막다른 길에 몰린 체스카드 왕가 입장에서는 환상 군단만이 마지막 희망일 수 있겠다.
‘롱페리우스 때, 마지막 기반까지 날려 먹었으니…….’
어떻게 보면 카론이 딱하기도 했다.
“왜 카론 왕자님만 환상 군단을 얻으려고 노력하나요? 다른 1왕자, 2왕자님은요?”
“내가 왕자 중에서 가장 혼령들과 친화력이 좋거든. 무엇보다 아버지와 형님들 모두 바쁘시고.”
카론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알아, 짜샤, 국왕이랑 너희 형들 전부 개막장인 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인데도 아마 왕궁에서 여자 끼고 노느라 정신없을 거다.
폰테임과의 싸움도 교단의 힘을 빌려서 이기면 된다고, 이미 전권을 교국에 위임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만약 이대로 폰테임과 싸우게 되면 이겨도 문제요. 교국에선 분명 자신들이 흘린 피 값을 어떻게든 받으려 할 테니까.”
카론의 시선이 로니아의 눈을 향했다.
“그래서 나에겐, 아니, 우리 왕실에는 환상 군단이 기필코 필요하오”
카론의 말을 들은 로니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카론과 눈을 맞추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만에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는지, 자신의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즘엔 그냥 차라리 아르미다츠 왕가를 복위시키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오.”
카론의 말에 주변에 숨어 있던 호위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 왕가라는 자리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카론의 속내를 들은 로니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니아의 미소에 카론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미소를 짓던 로니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는 그 짐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 계속 생각하다간 압사당할 테니까.”
로니아의 말에 카론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가볍게 생각해요. 환상 군단을 못 얻으면 그냥 타국으로 도망가자. 잘못은 다른 이들이 했는데 내가 왜? 이러면서요.”
그녀의 말에는 어떤 막힘도 없었다.
“체스카드 왕실이 없어도 백성들 살아가는 데엔 큰 지장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거의 반역에 가까운 발언. 하지만 로니아의 외모와 분위기 때문인지, 카론도, 그 주위의 호위들도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
“하아, 하하하하.”
카론이 한숨 섞인 웃음을 짓는다.
그 한숨 속에 그동안 쌓여 있던 무게가 일부 나온 모양이다.
“힘내라는 말은 안 하겠어요. 이미 힘내고 있는 분에게 그 말을 하면 무례 같거든요.”
로니아의 붉은 입술에서 촉촉한 목소리가 이어 나온다.
“그러니 힘 좀 빼세요.”
‘괜히 힘내서 변수 좀 만들지 마라.’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제인에게 왕위를 넘겨라. 너만 포기하면 왕실 충성파도 와해되지 않겠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포기하면 편해. 환상 군단도, 왕가도 그냥 다 포기해라. 내가 너 하나 이민 가는 거는 도와줄게.’
그녀의 속마음이 담긴 말들.
“…….”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카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름답다. 정말이지…….’
왕자의 앞인데도 당당히 말하는 모습, 진홍 달이 그대로 들어간 것 같은 요염한 눈동자.
천사의 예술품 같은 몸매. 순백 달처럼 환한 피부.
새벽녘의 하늘 같은 수려한 남색 머릿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상하게 로니아라는 여자 앞에 서면 마음이 편해졌다.
고민 중 일부를 털어놨음에도 압박하던 족쇄가 느슨해진 것 같다.
오늘은 어쩌면 간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연기 연습 잘하시고요.”
카론은 로니아가 간다고 하자,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딱 봐도 그녀가 보통 신분은 아닌 거 같길래, 무례하게 막지 않았다.
“걱정 마시오! 기필코 환상 군단이 나를 인정할 수 있게 할 테니!”
‘아니, 힘내지 말라니까.’
로니아는 다시 로브를 썼다.
끝내 미련을 못 버린 카론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혹시 당신의 가문을 알 수 있겠소?”
“가문이요?”
막 가려고 하는데 카론이 그녀의 가문을 물어본다.
‘만약 환상 군단도 얻고 모든 일이 잘 끝나면…… 로니아 양과 진지하게 만나 보고 싶다.’
로니아는 난감해졌다.
‘갑자기 성은 왜 물어보는데?’
아마 카론의 생각을 알았다면 더욱 어처구니없었을 터.
‘브라만이라고 말해? 아니면…….’
그렇다고 성이 없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성인 없다는 것은 평민보다 아래의 계층이라는 뜻인데, 그랬다간 눈앞의 카론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장담하지 못한다.
‘갑자기 보쌈해 갈 수도 있단 말이지.’
로니아는 잠시 고민했다.
“제가 몰래 나온 거라서요. 신분은 아무리 왕자님이라도 밝힐 수가 없어요.”
“몰래 나왔다라. 보통 신분이 아닌가 보군? 하지만 어떻게 호위 하나 없이?”
살짝 의구심이 든 모양이다.
화르르륵.
로니아는 급히 한 손에 화염구를 생성했다.
채채채채챙.
로니아의 손에서 마법이 발현하자, 숨어 있던 카론의 호위들이 바로 등장했다. 그들은 검을 뽑아 로니아를 겨눴다.
“멈춰! 검을 거둬라!”
카론이 급히 호위들을 말렸다.
“제 신분은 마탑과 연관되어 있어요.”
로니아는 화염구를 거두고는 미소 지었다.
차갑게 검을 겨눴던 호위들도, 이때만큼은 로니아의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풀었을 정도다.
“그랬군. 마법사였군.”
카론은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혹시 아리아드네라는 마법사와도 아는 사이오?”
“렌슬렛 영애요? 저와 친구 사이예요.”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아는 사이는 맞다.
“그랬군. 알겠소. 내 호위들의 무례는 대신 사과하지.”
카론은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런 카론의 모습에 호위들이 놀란다.
‘렌슬렛 영애와 친구라니까 나중에 그녀를 통해서 만남을 가져 보자.’
그렇게 생각을 마친 카론이 고개를 들었을 때, 로니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 무슨 꿈이라도 꾼 기분이군.”
그녀가 사라진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카론은 중얼거렸고. 그의 호위들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