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7
17. 상황 파악을 못하면 개구리가 되어라
“하이든 공작! 얘기는 들었소. 아리아는 그대의 딸이기도 하지만, 내 제자이기도 하오. 그런데 나와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하다니.”
갑자기 난입한 율카네스의 기분은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비록 이젠 속세와 연을 끊었다곤 하지만,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현자의 탑 소속 후배들이 많소. 공작의 행동은 나뿐만 아니라 제국 현자의 탑을 무시하는 행동이라 봐도 되겠소?”
“유, 율카네스 공, 그게, 그것이……. 안 그래도 공과 상의하려고 이렇게 급히 온 것인데…….”
늘 난봉꾼처럼 눈에 보이는 게 없던 하이든이 이례적으로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내 제자의 결혼 문제로 상의하러 온 것이라면 나의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오! 훗날 대마도사가 될 뛰어난 인재를 정신 나간 변태 국왕의 성욕 해소용으로 희생하고 싶진 않군.”
과연 제국 현자의 탑이다.
현자의 탑 마도사 정도 되니, 한 나라의 국왕을 대놓고 비하할 수 있는 것이겠지.
“네 이놈! 감히 국왕 폐하를 모독하다니! 다들 뭣들 하시오? 저 정신 나간 노인네를 역모죄로 처형하지 않고!”
그때, 어디서 굴러온 것인지 모를 눈치 없는 기사 하나가 율카네스에게 소리쳤다.
기사 제복을 보니 왕실 소속의 왕실 기사였다.
‘참나, 폰테임 후작가에 왕실까지. 많이도 주렁주렁 달고 오셨네.’
저 왕실 소속 기사의 외침에도 주변의 어느 누구 하나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같이 ‘넌씨눈’을 가득 담은 심정으로 외면할 뿐이다.
“흥! 그깟 현자의 탑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내가 직접 국왕 폐하의 위엄을 보이겠다!”
그 기사는 기어코 율카네스에게 검을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기사의 검은 율카네스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율카네스는 그런 기사를 보더니 작게 주문을 읊고는 마법을 걸었다.
“개구리가 되어라.”
마도사가 발동한 마법이 왕실 기사에게 작렬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그 기사가 입고 있던 모든 옷이 흘러 내렸다.
“허업!”
“맙소사.”
제복 사이에서 청개구리 한 마리가 개굴거리며 튀어 나왔다.
“자아, 또 나의 언행에 불만이 있는 자는 말하시오. 이번엔 쥐새끼로 만들어 주겠소.”
그 이후로 만찬장에서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하이든과 폰테임의 기사들은 물론, 같은 편인 이노조차도 언행에 조심, 또 조심했다.
깊은 침묵이 생기자 마침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만찬장은 혈흔과 엎어진 음식 등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난장판을 존재 자체로 종결시킨 장본인을 훔쳐봤다.
‘저자가 바로 대마도사 율카네스!’
원작에서 직접 등장한 인물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대사 중에 종종 언급하는 주요 인물이었다.
원작의 세계관에서 대륙의 4대 최강자 중 1인으로 설정된 존재.
그 존재가 지금 나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같은 이미지를 예상했는데 많이 다르네?’
율카네스는 겉모습만 보면 마법사라고 부르기 힘든 외모였다.
짧게 스포츠로 자른 백발의 머리, 깔끔하게 다듬은 턱수염과 콧수염은 1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듯 보였다.
눈동자는 황금색 눈동자를 하고 있어서 오래 보고 있으면 흠칫하게 만들 인상이다.
체격도 마법사보단 기사가 어울릴 정도로 탄탄하고 크며 근육질이다.
옷 또한 그런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싶은지, 마법사들이 흔히 입는 로브가 아닌 귀족들이 사냥할 때 입는 비단으로 된 활동복을 입었다.
‘무슨 힘법사냐?’
아까 짧은 주문 한 번으로 사람을 개구리로 만든 것을 못 봤다면 힘법사로 오해해도 할 말이 없는 외모였다.
“그렇다면 공작, 볼일은 다 끝난 것인가?”
“뭐, 뭐가 말……입니까?”
율카네스의 물음에 하이든이 위축된 상태로 반문한다.
그런 하이든을 율카네스는 벌레 보듯 보면서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볼일 없으면 꺼지라 이 말일세!”
율카네스의 어조는 평범했지만, 마도사의 기운이 섞여서인지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을 지리도록 만들었다.
“아니, 여기는 나의 영지입니다. 내 영지를 떠나든 말든 내가 결정할 문젭니다!”
그리고 그런 율카네스 앞에서 낑낑거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하이든을 보고 있자면 어떤 의미론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영주의 의무조차 행하지 않는 놈이 권리를 외치다니. 시원한 열사의 사막 같은 소리 하고 있군. 볼일 다 봤으면 어서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수도로 꺼지게. 수도에서 계집질이나 마저 하다 성병 걸려 뒤지게나!”
율카네스의 독설에 하이든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율카네스! 당신이 아무리 제국 현자의 탑 출신이라 해도 왕국 하나를 적으로 두면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리아의 결혼 문제는 이미 국왕 폐하께서 결정하신 문젭니다. 조만간 다시 올 때는 지금처럼 조촐하게 오진 않을 겁니다!. 이잇! 다들 가자!”
저들이 만약 율카네스의 진정한 실력과 정체를 알았다면 저러지 못했을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이다.
‘원작에서 내가 얼핏 읽은 설정만 해도 보통 인물이 아닌데.’
율카네스의 본래 정체와 실력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하고 엄청나거든.
지금 사람들에게 율카네스는 그냥 제국 현자의 탑에서 짬 좀 제법 먹은 실력 좋은 마도사 정도다.
그리고 그들이 아는 수준의 마도사라면 왕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보유 중이다.
어찌 되었든 불청객들은 제2의 개구리가 되기 싫었는지, 하이든을 선두로 빠르게 저택을 나갔다.
‘잠깐? 이렇게 되면 3일을 밤새워 만든 장부들이 소용없게 된 거잖아?’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허탈함을 느껴야 했다.
“자네가 그 유명한 로니아드 경인가?”
그렇게 내가 소용없어진 장부를 떠올리고 있을 때, 율카네스가 나를 보며 아는 체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율카네스 공. 렌슬렛의 기사이자, 비서관인 로니아드 칸브라만이라 합니다.”
나의 공손한 인사에 율카네스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 후, 나를 무슨 소고기 등급 매기듯 훑어봤다.
“뭐, 적당히 잘생겼군. 요즘 이 저택의 우두머리부터 말단 시녀까지 자네를 보고서 가슴앓이를 한다던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율카네스 공!”
그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있던 이노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런 이노를 율카네스는 딱하게 보았다.
이노의 뺨은 아직 하이든에게 맞은 후로 복구되지 못했다. 크게 부어오르고 입술 주변에 피가 고여 있는 것이 보기 안쓰러웠다.
율카네스는 이노의 뺨을 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자네가 해 줄 건가?”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애써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상처에 대마도사의 마법을 받는 것은 크나큰 낭비입니다. 이건 제가 알아서 치료하겠습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이노가 율카네스에게 침착히 말했다.
율카네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제자가 많이 놀란 거 같으니 내가 달래 주러 가야겠군. 내 친손녀한테도 이렇겐 안 했는데 말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율카네스가 사라지고, 엉망이 된 만찬장을 치우는 시종들과 이노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일단, 할 말도 많고 의논해야 할 것도 많겠지만, 다들 3일간 수고해 줬으니 쉬도록 해요. 렌슬렛 안주인의 명입니다. 지금부터 이틀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최대한 휴식을 가지세요. 바로 쉴 수 없는 경우엔 적당히 순번을 짜고서 쉴 수 있도록 하고요.”
이렇게 기꺼운 명령을 어느 누가 거절할까?
이노의 명을 받자마자 다들 기뻐했다.
“마님, 그 전에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녀장이 조심스레 이노에게 걱정 어린 어조로 물었다.
“알았다. 바로 치료받도록 하겠다.”
“그럼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최근에 괜찮은 치료 아티팩트를 얻었으니, 이참에 한번 써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이노의 말에 시녀장이 공손히 물러났다.
시녀장이 물러나자, 이노는 옆에 서 있던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눈짓으로 집무실 방향을 가리켰다.
‘그 치료 아티팩트가 나였구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녀를 집무실까지 안내했다.
집무실 안.
아마 아리아로부터 내가 마법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노 앞에서 별 망설임 없이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자, 여기 손수건이요.”
“아, 그때의 그 손수건이었군요.”
치료를 하기 전에 앞서 이노가 내게 녹색 손수건을 건넸다.
깨끗이 빨아서 좋은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린 듯한 손수건이었다.
그 손수건을 받은 나는 알맞게 접어서 이노의 부은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치료의 염원을 가슴 깊이 담고서 손가락 끝과 손수건에 마나와 함께 그 염원을 섞어 분배했다.
“…….”
공작은 아침에 왔지만 그가 떠나고 이런저런 뒷정리를 하니, 어느덧 집무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와 이노는 말없이 그 노을을 보았다.
어느덧 얼굴의 부기는 싹 사라졌고 찢어졌던 입술도 이젠 핏자국만 남아 있다.
내 녹색 손수건엔 그녀의 볼과 입술에서 난 피가 묻었다.
“그 손수건, 제가 다시 빨아서 줄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째 거절하면 안 될 거 같아 다시금 그녀에게 내 녹색 손수건을 건넸다.
“그나저나 다친 곳은 괜찮아요?”
“네, 제복에 걸린 마법 덕분에 지금은 멀쩡합니다.”
“다행이에요.”
“뭐, 군납에 엄격하신 공작 부인 덕분이죠.”
“그, 그런가요?”
“네, 만약 이런 부분에 소홀했다면 치료 마법도 제대로 못 받아 위험했을 겁니다.”
내 말에도 이노의 표정은 크게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그, 폰테임의 여기사와 싸울 때 검이 부러졌잖아요.”
“그건 절대 공작 부인의 탓이 아닙니다. 애초에 폰테임 기사의 검은 특별 주문 제작을 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검일 겁니다. 저희 기사들이 지금 지급받는 검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안해요. 공작령의 예산이 없어서 좋은 무기도 못 드리고.”
난감하다. 말을 할수록 이노의 얼굴이 슬퍼진다.
어느새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바보같이!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저는 로니아드 경에게 아무 도움도 못 주고, 흐윽, 훌쩍, 엉터리 검이나 줘서 위험하게 만들기만 하고……. 그러면서 늘 돈 없다고 변명만 하는데!”
하아, 우리 공작 부인께서 이번 일로 상심이 크신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이노의 어깨와 등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더 나아가 공작령에 뭔가 도움이 될 법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렌슬렛이 잠재력이 많은 영지기는 하지만, 그건 먼 훗날에야 가능한 일들이야. 당장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여기가 그나마 많이 나는 게 몬스터 말고 뭐가 있지? 가만, 몬스터?!’
그러다가 문득 생각 난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