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76
176. 뜻밖의 성전(4)
체스카드 왕국에서 성전이 터졌다.
성전의 목표는 악마에게 영혼과 영지민을 판 폰테임 후작.
이 소문은 연극이 끝나자마자 수도를 비롯해 왕국 전체에 퍼졌다.
다들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내 올 것이 왔군’ 하는 반응이었다.
“카론과 로지가 사라진 것이 설마?!”
“맞아요. 폰테임을 잡으러 갔어요.”
간만에 마리아와 율카네스 그리고 로니아드가 한자리에 모였다.
로니아의 정체를 모르는 루키엘은 부르지 않았다.
“그 모습도 얼마 후면 끝나겠네?”
율카네스가 로니아가 된 로니아드를 보며 피식 웃었다.
“……폰테임을 잡으러 같이 안 가도 되는 겁니까?”
로니아드는 율카네스를 무시하며 마리아에게 물었다.
“폰테임에게는 빛의 힘 같은 게 포함되어 있어서 선악검도 안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카데미였고 율카네스도 있고 해서, 마리아에게 존대를 유지했다.
“신성 연합군은 광신도들이에요. 마법사를 극도로 싫어하죠. 도와준다고 해 봤자 환영받지 못할 겁니다.”
“그러다가 혹시나 그들이 패배라도 한다면…….”
로니아드는 알렉스에게 납치당해 주던 때를 떠올렸다.
놈의 모습은 악마화 그 자체였다.
‘알렉스가 그 정도면 폰테임은 더하다는 것일 텐데, 로지스트 녀석, 괜찮으려나 몰라.’
괜히 로지스트가 놈들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들었다.
“폰테임이 로지스트를 흡수하거나 하진 않을까요?”
“신성연합군과 함께 갔으니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로니아드를 포함하여 세 사람은 한 가지 착각하고 있었다.
로지와 카론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에 로지스트가 신성 연합군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당장에 우리가 가서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고요.”
“그 시간에 다른 것을 준비하는 게 훨씬 나아.”
‘그때 들었던 주문을 말하나 보군.’
타르타트와 함께 준비 중이라던 주문 말이다.
“신성 연합군이 시간을 벌어 줄 동안 우리는 각자 준비를 최대한 빨리하는 게 답이야.”
율카네스는 고대의 주문을 준비하고, 로니아드 쪽은 환상 군단을 얻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아갔다.
“그러니 로니아드는 내일 있을 연극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
“환상 군단을 품은 영혼석이 드디어 아카데미에 모습을 드러냈어. 마지막 회차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더군.”
로지와 카론이 중도 하차한 지금, 환상군단을 받을 유력한 후보는 로니아드, 제인, 이소레타, 테노바, 아스카, 이렇게 다섯이다.
제인과 이소레타는 용의 혈통이고, 로니아드, 테노바, 아스카는 혼령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최근 제인이 성장통으로 잠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후보는 네 명이라고 봐야 했다.
“신성 연합군이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명색이 교국의 최후의 희망 같은 군대야. 제법 오래 버틸 거야. 어쩌면 이길지도 모르겠군.”
“확실히, 이길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되면 환상군단을 얻어도 교국과 협상할 때, 귀찮아지는데.”
두 사람은 최소한 교국이 쉽게는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통 늘 이렇게 태연하게 있다가 일이 터지던데.’
로니아드만 속으로 조마조마할 뿐이다.
“패밀리어 같은 거로 현장을 살필 수는 없는 겁니까?”
“안 그래도 이미 다섯 번 정도 해 봤네. 하지만 영혼석 때문인지 마법 통신도, 패밀리어와의 교신도 쉽지 않아.”
“공간 이동으로 살짝 갔다 오는 것은요?”
“사제 놈들은 분명 결계를 쳐 놨을 거야.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고.”
율카네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정 안 가는 교국이라고 해도 신성 연합군은 무능하지 않으니.”
불안해하는 로니아드를 마리아가 안심시키는 투로 달랜다.
‘그랑블루를 타고 갔다 와 볼까?’
연극이 끝나자마자 그랑블루를 타고 폰테임으로 가 볼까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상 군단을 얻는 것뿐이에요. 저는 루카스 교수님께 많은 기대를 걸고 있어요.”
마리아가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아주 엄청난 연기력이군. 뒤에서는 나를 못 믿겠다느니, 어쩌니 했으면서.’
마리아와 율카네스가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잘 아는 로니아드였다.
‘어쩌면 나를 감시하느라 엉덩이를 떼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들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긴 하지.’
두 사람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그 입장이었다면 더더욱 불신하면 불신했지. 신뢰는 안 했을 테니까.
‘오히려 환상 군단을 얻으라고 이렇게 지원해 주는 것이 어딘가. 절반의 감시와 절반의 지원. 나쁘지 않다.’
물론, 결정적인 상황에서 뒤통수를 치지 말란 보장은 없으나,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서로 함께 일할 수 없다.
“그럼 모임은 이것으로 마치고…….”
대략적인 방향은 정해졌다. ‘최대한 서두르자’가 결론이다.
그렇게 모임을 파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총장실의 유리창이 깨지더니 어떤 인영이 들어왔다.
와장창창.
방어 마법이 인챈트된 유리창이 깨졌기에, 율카네스와 마리아는 몸부터 반응하여 마법을 준비했다.
로니아드 또한 급히 양손에 전류와 화염구를 생성했다.
“끄으응, 착지에 실패했군요.”
“……세피로스?”
각자 공격과 방어 마법을 준비했던 세 사람은 난입한 사람의 정체를 알자마자 마법을 거뒀다.
물론 공격 마법만 거뒀고 방어 마법은 유지한 상태다.
끝까지 의심하고 대비하는 마법사다웠다.
“급히 전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본신으로 왔습니다.”
세피로스는 옷에 박힌 유리 조각을 털었다.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닌가 보지?”
“네, 엄청 긴급하고 중요한 정보입니다.”
깨져 버린 창문 밖 하늘에 와이번 한 마리가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 저 와이번은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저걸 타고 온 건가? 훈련은 잘되어 있고?”
마리아의 물음에 세피로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새끼 때부터 마법으로 세뇌하고 엄하게 훈련한 녀석입니다.”
아마 세피로스는 저걸 타고 제국에서 여기까지 전속력으로 날아왔을 터.
“명령이 없는 한, 절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가축은 몰래 잡아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랑블루와 비슷하군.’
그렇게 인사를 마친 세피로스의 시선이 로니아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에 계신 레이디는…….”
‘끄응, 조금만 참자. 이 짓도 얼마 안 남았다.’
“저는 루카스 교수의…….”
로니아드는 속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 해 오던 대로 자신을 로니아라고 소개하려 했다.
“아아, 로니아드 님이시군요!”
“에?!”
그런데 세피로스는 바로 로니아의 정체를 알아챈다.
“아무리 성별을 바꿔도 저의 코는 못 속입니다.”
―특히 당신의 영혼에 담긴 냄새는 절대로.
세피로스의 또 다른 말이 텔레파시가 되어, 로니아드의 머릿속에 전달되었다.
“……?!”
로니아드가 살짝 커진 눈으로 세피로스를 본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어서 말해 봐.”
마리아가 세피로스를 보챈다.
마리아가 세피로스를 대하는 태도는 영락없이 부하를 대하는 태도 같았다.
“네네! 바로 말씀드리지요.”
―저 마녀에게 져 주는 척하는 것도 거의 마지막이군요.
세피로스는 굽신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리아, 다루기가 참 까다로운 마녀죠. 의심도 많고 고집도 세고. 은근히 제 스승을 닮았다니까요.
동시에 로니아드의 머릿속에는 세피로스의 또 다른 말이 텔레파시로 전해졌다.
―그래도 저와 같은 동향 사람이니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뭐?’
세피로스의 생각지도 못했던 폭탄 발언.
경악한 표정의 로니아드가 당장이라도 세피로스를 심문할 기세다.
“지금 폰테임 쪽 전황이 매우 급박합니다.”
“폰테임에서 온 것인가?”
“성전이 터졌다는데, 마법 통신도 안 돼, 패밀리어도 안 돼, 결국 제가 와이번을 타고 뛰었죠.”
“그런데 급박하다니, 무슨 소리지?”
하지만 그런 로니아드의 기세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녀석이 현장을 목격하고 온 마법사라서?
아니다.
“신성 연합군이 패했습니다. 로지스트는 데이지와 함께 폰테임에게 먹혔고요.”
세피로스가 가져온 충격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어쩌면 로지스트가 폰테임을 먹은 것일 수도 있겠군요. 뭐,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지만.”
“신성 연합군이 패배했다고?!”
“삼왕자님은?”
“삼왕자가 문제여? 성녀님도 행방이 묘연하대!”
세피로스가 반나절 정도 빨랐을 뿐, 다음 날 점심이 되자 수도 전체에 패배의 소식이 쫙 퍼졌다.
“일개 후작이 어떻게 교국의 최정예군을 이길 수 있지?”
“폰테임 후작이 정녕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 분명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벌써 남쪽으로 피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생겼다.
수도는 물론 아카데미에서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있었다.
―혼령들과 상의한 결과, 이번 연극만 끝나면 심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도 그렇게 융통성 없는 놈들이 아니라서.
―아쉽다.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끔찍하고 거대한 것을 이기려면 어쩔 수 없지.
고위 혼령들이 저마다 빛을 내며 로니아드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렇게 다급한 와중에도 한 편이라도 연극을 더 보고 싶은가 보지?”
가자미눈으로 쳐다보는 로니아드의 시선.
그 시선을 받은 혼령들이 점멸한다.
살짝 억울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선택의 의식은 두 개의 달이 뜬 밤이 되어야 가능하다.
―어차피 기다릴 바에는 연극 한 편이라도 더 봐 두면 좋겠지.
“그래, 알았다.”
로니아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혼령들은 그 이후에도 연극 준비를 하는 로니아드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전쟁이 막바지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난 가는 와중에도 연극 연습은 계속되었다.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수천 년 전 인류를 위해 헌신한 혼령들을 위한 극이라고 해 두자.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러 저녁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도와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여전히 수도 사방에 상영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너도나도 아카데미에 있는 극장으로 모였다.
그렇게 네 번째 연극이 시작되었다.
* * *
신성 연합군의 패퇴.
그것도 보통의 패퇴가 아닌 궤멸에 가까운 패배다.
그 와중에 삼왕자 카론과 성녀 미샤, 추기경 크샤트, 이단심판관이자 팔라딘인 아고르는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끄으응, 다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아고르의 물음에 카론이 답했다.
카론의 대답과 달리, 모두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고 있던 옷은 전부 찢어지고 더러워졌으며, 몸 군데군데 흙과 자잘한 흉터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죽은 병사들과 비교하면 이 정도야.”
그럼에도 누구도 중상은 입지 않았고, 세 사람 모두가 고위 사제라서 중상을 입어도 곧바로 치료 가능했다.
“서둘러 왕도로 갑시다.”
잠깐 쉬었던 카론은 가장 먼저 일어났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카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해요.”
오히려 성녀가 나서서 빨리 가자며 재촉할 지경이다.
“저 괴물이 환상 군단까지 흡수해선 안 됩니다.”
아고르가 결심이 선 목소리로 말했고.
“악황제가 본신이 아니었다니…….”
크샤트가 질렸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왕도로 가면 마누스의 적통이 있습니다. 지금 믿을 것은 그밖엔 없어요.”
카론은 몇 번 주인이 바뀐 것 같은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로니아.’
한편으론 결국엔 구해 내지 못한 그녀를 애써 마음에서 잊었다.
이렇게라도 잊으려 하지 않았다간 미쳐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녀께선 가자마자 바로 로지스트에게 선악검을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 셋도 각자 원래 주인이 누구였을지 모를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걱정 마세요!”
성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외쳤고, 추기경 크샤트 또한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환상군단을 얻은 마누스의 적통과 선악검, 이 둘이라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