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78
178. 최초의 천사
어깨를 으쓱한 세피로스는 미소 지었다.
―그랬군.
갑자기, 세피로스의 몸이 환한 빛과 함께 작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 이때를 위해 존재했던 것이었구나. 본신의 안배를 따라서…….
세피로스는 빛의 형상을 한 부엉이가 되어,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로니아드와 영혼석을 삼킨 검은 장막을 향해 돌진했다.
촤르륵.
검은 장막은 세피로스를 냉큼 집어삼켜 버렸다.
―맛.있.군.
모든 것을 삼켜 버린 검은 장막에서 이 한마디가 뱉어졌다.
로니아드와 영혼석 그리고 세피로스를 삼킨 검은 장막은 거대한 검은 공의 모양을 취했다.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포식을 한 뒤 느긋하게 소화시키는 뱀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죠?”
루키엘이 멍하니 마리아에게 물었고, 마리아 또한 별 방법이 없었다.
“……폰테임이 본체였다고?!”
그렇다면 악황제는 미끼였던 것일까?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허탈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방이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녀가 왔던 세상의 분위기가 서서히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를 내놔아!”
아스카가 발악하면서 화염 마법을 난사했지만, 검은색 구체는 오히려 디저트를 먹듯이 아스카의 마법을 먹어 치울 뿐이다.
“흐윽…… 흐으…….”
힘을 다 쓴 아스카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앨리스를 비롯한 다른 소녀들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중 유독 두 사람만은 평온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마스터…… 드디어 은혜를 갚게 되었군요.”
“일어나세요. 우리의 노래를 듣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세요.”
두 세이렌, 세레나데와 세이나는 하늘에 떠 있는 순백의 달을 보았다.
둘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백 달의 빛 아래서내게 새벽을 안겨 준
당신은 최초의 천사였죠.]
바다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는 노래와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교단에서 부르는 찬송가에 가깝다.
[그대는 우릴 보고 있었죠최초의 흰 날개가 어둠을 씻었을 때
전장의 영웅들 위에서 후광을 비췄던 것도]
아늑하고 서글픈 노래가 아카데미를 너머, 도시 전체에 퍼졌다.
[당신이 순백 달로 돌아간 후나는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봐요
아아아-
긴 시간마저 그리움을 못 지웠네.
아아아-
당신은 최초의 천사였죠.
내게 새벽을 안겨 준
순백 달의 빛 아래서]
세레나데와 세이나의 노래에, 로니아드를 삼킨 검은색 구체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어요, 마스터.
세레나데의 두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슬픔이 아닌 감동과 기쁨 가득한 눈물이었다.
[아아아♬]로니아드의 귀에 세레나데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건?!’
의식을 잃었던 로니아드가 숙취 비슷한 기분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그래서 고집을 피워 남으려고 했었구나, 세레나데.’
노래를 들으니 서서히 봉인되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흐윽, 흐윽.
암흑시대 당시,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던 세레나데가 보였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세레나데가 눈물을 흘리며 그가 펼친 새하얀 날개에 안겼던 장면이 재생됐다.
―순백 달의 은총을 기억하거라, 어린 세이렌이여.
―기억할게요, 영원히. 당신의 은총을 잊지 않을게요!
다시 장면이 전환되었다.
바다에서 땅에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수많은 악을 무찔렀다.
‘암흑시대의 기억이군.’
그의 주변에는 늘 영웅들이 있었다. 셀테라네, 테오스, 젠휘스, 마누스, 힌미르 그리고 제르다.
그는 그들을 늘 후광으로 축복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함께 싸우기도 했다.
이후로 기억은 한 편의 장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펼쳐졌다.
―이제 서서히 잠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이 혼란스러워. 둘 다 나라를 세워서 통치를 도와주게. 제르다가 세울 교국을 견제해 줄, 그런 나라가 필요해.
힌미르와 마누스가 잠들려고 하자, 조금만 더 세상을 통치하라고 말했던 때도 떠올랐다.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세계수의 아이가 아닌 당신의 아이를요!
엘프 여왕 셀테라네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때도 생각났다.
―꼭 순백 달로 가야 하나요? 당신과 함께 이 숲을 거닐고 싶어요.
인간들은 제르다를 찾았지만, 엘프를 비롯한 이종족들은 그를 더 좋아했다.
―부디 저와 우리 일족에게 당신의 새벽을……!
―미안하다. 순백 달과 진홍 달의 새로운 맹약 때문에 대천사인 나는 이곳에 더 있지 못해.
세상의 모든 인연과 추억을 뒤로하고 그는 순백 달로 올라갔다.
―흐으윽, 흑.
떠나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눈물 흘리는 세레나데가 보였다.
―기다릴게요! 꼭!
기필코 기다리겠다고 맹세하는 셀테라네가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 미안함 때문에 기억을 잃었음에도 셀테라네를 어떻게든 만나려 했던 것일까?
시간은 흐르고 흘렀고, 순백 달로 올라와 차원의 균형을 조율하고 있을 때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 파동은?! 제르다여,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인간 세계에서 금지된 의식을 행했도다.
보통의 파동이 아니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았던 그의 가장 깊은 기억 속에서 볼 법한 끔찍했던 파동이었다.
―강림해야 하나?
―아니. 다행히도 힌미르의 후손이 잘 막아 냈다.
―그렇다면 된 것이 아닌가? 친구여.
―문제는 그 존재가 우리 세계를 발견해 버렸다는 것이지.
―그 존재라면? 아주 오래전 그대와 내가 진홍 달의 종자들과 힘을 합쳐 봉인한 존재 말인가?
그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기억의 봉인이 해제된 지금도 생생했다.
―심연의 마왕이 탈출했다고?
그의 오랜 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와 심연의 차원에서 우리 차원의 등댓불을 발견했어. 놈은 등댓불이 보였던 방향으로 쉬지 않고 올 것이야.
창세기 때의 끔찍했던 존재, 간신히 무한한 차원의 미로에 봉인했거늘.
―내가 직접 놈을 막으러 가겠다. 녀석이 우리 세계에 오면 승리한다 해도 피해가 너무 커.
―혼자서? 위험하다. 함께 간다.
―아니. 그대는 남아서 순백 달과 이카디아를 돌봐 주게. 진홍 달 놈들이 정화된 세계를 어지럽히지 않게 해 줘.
―혼자서 가능하겠나?
―녀석은 방황하느라 힘이 많이 빠졌어. 충분하다.
창세기 때부터 한 몸 같았던 형제이자 친구의 부탁.
그는 결국 그는 승낙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무리해서라도 함께 갔어야 했다.
이카디아가 다시금 암흑시대를 맞이한다고 해도, 감당해야 했었다.
―아아, 이제야 깨달았군.
모든 기억과 힘을 깨달았다.
눈앞에 촤악, 하고 어떤 상자가 등장했다.
―그래, 기억을 되찾았으니 힘도 해제해야지.
은빛 소나무로 만든 단순한 형상의 나무 상자.
그 나무 상자의 가운데에는 열쇠 구멍이 보였다.
―열쇠, 열쇠가 필요해.
로니아드는 멍하니 중얼거렸고,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열쇠에 관한 기억은 아직인가?
난감했다. 열쇠를 찾고 힘의 봉인을 해제해야 여기를 나갈 수 있다.
그때였다.
―오랜만이군, 아한.
빛의 형상을 한 부엉이가 로니아드 눈앞에 등장했다.
한때, 세피로스라 불렸던 존재.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존재.
―제르다, 그대는 심연의 존재를 막다가 먹히지 않았나?
―시간이 없네. 자세한 것은 나를 흡수하고서 내 기억에서 찾게.
―뭐라고? 그대는 설마…….
―그래, 나는 제르다가 마지막까지 숨긴 영혼의 편린, 오직 지금을 위해 안배된 화살이야.
부엉이가 로니아드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로니아드는 어느새 여성의 몸이 아닌 남성체의 몸이 된 상태다.
무엇보다.
―오염됐던 마나가 모두 정화되었군.
회색을 띠고 있던 그의 마나는 이제 순수한 빛이 되었다.
동시에, 그의 가슴에 나 있던 흉터 또한 눈에 띄게 옅어지고 작아졌다.
―열쇠의 기억이 그대였군.
―열쇠뿐일까? 상처 입은 그대를 치료하는 역할도 한다네.
―심지어, 제르다 자네의 영혼만 있는 게 아니었어. 이건!
―그래, 익숙한 것도 함께 있지?
―그랬군. 그랬던 것이었어. 제르다여……. 이것이 마지막인가?
―맞아. 나는 완전한 소멸을 하겠지.
―저기서 느껴지는 자네의 마나는?
그가 저 앞에서 영혼석을 포식 중인 심연의 존재를 가리켰다.
―그것은 나의 시체이자 부산물일 뿐, 순수한 내 영혼은 오직 이것뿐이야.
제르다의 말에 아한은 오랜 형제를 잃는 기분을 느꼈다.
―힘들게 만든 희망의 세계선이네. 부디 잘 지켜 줘.
―반드시 그리하겠네.
―그나저나 그대는 이제 아한인가, 로니아드인가?
뜬금없는 제르다의 물음.
그 물음의 의미를 이해한 아한은 피식 웃었다.
―둘 다네. 하지만 지금은 로니아드가 편하겠어.
로니아드의 말에 제르다가 웃었다.
제르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필멸자의 삶이란 언제나 질리지 않지. 제르다 때도 그랬고.
제르다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잠깐이었지만 세피로스의 삶도 재밌긴 했어.
로니아드에게 흡수되면서 서서히 소멸의 절차를 밟고 있는 듯했다.
―잘 지내게, 로니아드.
―형제여, 부디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드디어 안식인가.
제르다이자, 세피로스였던 존재가 사라졌다.
로니아드에게 흡수되었지만, 흡수된 것은 기억과 특정한 힘뿐이다.
어디에서도 제르다의 영혼은 찾을 수 없었다.
로니아드는 잠깐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묵념을 마친 후, 그는 곧바로 빛으로 된 열쇠를 만들었다.
이어서 은빛 상자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폰테임이라 불러야 할지, 프로스라 불러야 할지, 심연의 존재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로지스트라 불러야 할지 모를 존재가 소리 지른다.
―……●!◆○?! ……▲◆◇-!!
오직 경악과 경악과 경악, 그 자체인 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괴음이 세상을 울렸다.
꽈지지직, 파콰악.
새의 알이 깨지듯 검은색 구체의 절반이 부서졌다.
찬란한 날개를 펼친 천사가 태어났다.
구체의 절반을 부수고 나온 존재.
“아한-제르다…….”
지상의 모두가 성호를 그었다.
제르다를 불신하는 마법사들도 이때만큼은 멍하니 성호를 그었다.
“심연의 존재가 아니었군.”
율카네스가 감탄한 눈으로 깨어난 존재를 보았다.
“성스러운 존재께 크나큰 불경을 범했네요.”
마리아도 허탈한 눈으로 빛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제르다, 제르다이신 겁니까!”
아고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외쳤고.
“아니에요. 저분은 제르다가 아니에요.”
성녀가 아고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한-제르다. 새벽녘의 대천사여…….”
크샤트는 멍하니 계속해서 성호를 그을 뿐이다.
찬란한 빛이 사라지고, 이윽고 아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례자의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하얗고 빛나는 날개를 휘날리며, 머리에는 순백 달의 후광을 비추는 존재.
깊게 눌러쓴 후드 속에서는 진홍 달 같은 붉은 눈동자가 빛난다.
“우리가 어찌 저 모습을 잊겠나이까!”
크샤트가 결국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제국은 물론 북부 전체에 저 모습을 기록한 그림이 수두룩하다.
늘 제르다와 영웅들 위에서 후광의 축복을 내려 주던 존재.
최초의 천사.
새벽녘의 대천사.
순백 달의 등대지기.
천계의 집행관.
제르다의 형제.
늘 순례자처럼 후드를 눌러쓰고 하얀 날개와 후광을 비추던 존재.
“아한-제르다…….”
그리고 늘 성호를 그을 때, 제르다보다 먼저 부르던 존재.
대천사 아한이 그대로 세상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