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8
18. 공작 부인은 왜 평기사에게 영약을 먹였을까? (1)
렌슬렛 공작령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첫째로 엄청나게 넓은 영지의 크기다.
어지간한 왕국보다 넓은 영지를 가졌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거나 개척한 땅은 2할도 되지 않는다.
둘째는 척박한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가 중요한데, 대륙 8대 마경 중 한 곳인 마누스 산맥과 맞닿은 영지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몬스터의 침략에 시달려야 한다.
물론 아카데미의 수많은 학자들은 렌슬렛 공작령이 가진 잠재력만큼은 높게 평가했다.
넓은 영토와 마누스 산맥에 분포된 귀한 광물들, 무엇보다 대륙 북부에서 동방 항로와 가장 가까운 땅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역대 렌슬렛의 선대 가주들 또한 이 사실을 잘 알았다.
그들은 대대로 없는 살림을 아끼고 아껴서 꾸준히 몬스터를 토벌하고 북부를 개척했다.
선대 렌슬렛 공작 부부 또한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을 정도다.
몬스터 토벌과 영지 개척은 렌슬렛에서 태어난 모두의 숙명 같은 거였다.
물론, 망나니 하이든이 렌슬렛의 가주로 있는 현재는 개척은커녕 가지고 있던 개척지도 몬스터에게 내주는 꼴이지만.
원작에선 훗날 섬광의 마녀이자 렌슬렛의 여공작이 된 아리아가 그 몬스터들을 전부 토벌하고 렌슬렛의 부흥을 열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얘기다.
나는 이 먼 훗날의 일들 중 일부를 좀 더 앞당기기로 했다.
“우리 렌슬렛에서 가장 많이 나는 자원이 뭘까요?”
“……없어요.”
나의 물음에 이노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내가 가볍게 안아 주면서 간신히 토닥여 달래 줬지만, 아직 그녀의 목소리엔 물기가 촉촉이 남아 있다.
“아닙니다. 몬스터라는 자원만큼은 어느 영지에 비해도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
내 말에 이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호감도가 최상인 내가 이런 말을 했으니 넘어가는 것이지, 다른 인간이 했다면 능멸했다는 죄로 지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나는 분위기가 더 우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는 렌슬렛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방랑 기사였습니다. 방랑 기사로 대륙을 떠돌면서 여러 가지 문물을 접했습니다. 동방에도 잠깐 다녀온 경험도 있습니다.”
“동방! 정말요?!”
내 입에서 동방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노의 눈이 새 장난감을 본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해진다.
하긴, 동방 항로가 개척된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20년 동안, 동방이라는 미지의 세계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당장 여기 이노의 집무실만 해도, 동방 관련 서적이 한쪽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지.’
물론 내가 동방에 다녀왔다는 것은 ‘구라’다.
원래 몸의 기억대로라면 렌슬렛에 오기 전에, 약 8년 동안 모험가 노릇을 하면서 대륙을 떠돌아다니긴 했다.
하지만 그 기억 중 어디에도 동방에 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원작을 읽었던 몸이지. 동방 상행 경험이 있는 북대륙 상인보다도 동방에 대해 잘 안다고.’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깨끗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노를 보았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처럼 원작을 통해 알고 있는 동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동방에도 우리 이카디아 대륙처럼 몬스터가 삽니다. 심지어 그 종류도 더 다양합니다. 동방에선 몬스터를 요괴라고 부르지요.”
그 요괴에게도 각종 부산물과 마석이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요괴의 부산물을 각종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 데 쓴다.
하지만 마석의 경우 사용 용도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마석을 먹는다.
“마, 마석을 먹는다고요?”
내 말에 이노가 깜짝 놀랐다.
‘하긴, 아직 동방에 대한 정보가 중구난방인 시기이긴 하지.’
동방 항로로 오가는 데에만 수년이 걸린다.
제대로 된 정보는 없고 대부분 뜬구름 잡는 정보뿐이긴 하다.
“하지만 마석은 먹는 게 오히려 낭비 아닌가요? 중급 마석만 해도 일반 기사 제복 스무 벌은 인챈트할 자원인데.”
물론 마석은 동방뿐만 아니라 이곳 이카디아에서도 쓰일 곳이 많다. 마치 지구의 석유처럼.
그리고 렌슬렛의 주력 생산품이 몬스터 토벌을 통해 얻는 몬스터의 부산물과 마석이다.
하지만 내가 그걸 모르고 이런 말을 꺼냈을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중급 마석부터만 쓰임새가 많은 것이지, 최하급 마석은 사실상 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고블린이나 임프 등 하급 몬스터에게서 나온 하급 마석은 보통 땔감으로 쓰인다.
이조차도 나무보다 화력이 약하다.
얼마나 화력이 약하냐면 마법 횃불의 충전용으로도 못 쓰는 것이 태반일 정도다.
그렇기에 하급 마석 중에 절반을 차지하는 최하급 마석은 늘 버려진다.
오죽하면 고블린 뼛조각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있을까?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귀족들도 부담스러워하는 고급 영약이 아닌, 부유층 정도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최하급 마석으로 만든 보급형 영약이다.
“동방 사람들은 그런 최하급 마석을 여러 개 모아서 영약을 만들어 먹습니다. 물론, 한 번 먹는다고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꾸준히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더군요.”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늘 고질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던 이노에겐 내 말이 금화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저에게 이 말을 했다는 것은 그 영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노의 간절한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적인 재료와 제조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아무래도 마법사들, 특히 고위 마법사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이 보급형 영약 제조법은 원작에서도 몇 번 언급되었다.
주인공 로지스트가 돈을 벌기 위해 했던 방법이다.
로지스트는 아리아와 함께 동방에서 온 사악한 주술사를 해치우고 우연히 이 제조법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마법을 좀 할 줄 안다고 해도 이론 부분에선 약하다.
나는 엄연히 실전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검사 계열이다.
“고위 마법사라면 한 분 계시지만, 그분은 속세에 관심이 없으셔서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으세요. 이번엔 이례적으로 아리아가 관련되어 있으니 나선 것이고요.”
내가 고위 마법사를 언급하자 이노는 율카네스를 떠올렸는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마도사 율카네스 공도 이 영약에 대해 알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나는 원작을 읽은 덕에 율카네스라는 마도사에 대해 제법 아는 편이다.
직접 등장하진 않았지만 그에 대해 언급되었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그자가 어떤 자인지 파악할 수 있다.
‘속세에 관심이 없다고? 그거 아주 개소리지.’
* * *
“동방에서 사용하는 영약 비법이라고?”
일단 마법사라는 종족은 호기심이 남다르다.
특히나 동방에 대한 호기심은 귀족들보다 마법사들이 더더욱 강하다.
그런데 동방에, 그것도 동방의 주술사들이 사용한다는 영약 제조법이라면?
현자의 탑의 현타 오신 마도사께서도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호오~ 그래, 흥미롭긴 하군. 그래서? 일단 내 제자를 도와준 것과 동방의 주술에 대해 알려 준 점은 고맙게 생각하지. 이 정도면 내가 자네와 티 타임 한 번 정도는 가져 줄 만하겠군.”
하지만 율카네스는 비싼 몸이다.
‘아주 속물 중의 속물이구만.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속세에 관심 없는 척 연기를 해 왔는지 몰라.’
마법사란 경지가 높을수록 이기적이고 속물 그 자체가 된다.
‘애초에 속세에 관심이 없었다면 아리아조차 제자로 거두지 말아야지. 무엇보다 원작에서 그가 했던 행동을 보면…….’
정확히 말하면 행동보단 방관에 가깝지만.
“그러고 보니 이 영약이 가지는 효능을 말씀 안 드렸군요.”
“잔병치레를 없애 주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고? 기사나 마법사에겐 필요 없을 거 같고, 상인이나 귀족 들이 좋아하겠군. 근데 그거 꾸준히 먹어야 한다며? 게으른 귀족들이 과연 꾸준히 먹을까? 꾸준히 이걸 먹을 바엔, 비싸더라도 한 번 먹으면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다른 약들을 먹겠지.”
한마디로 돈이 안 된다는 그의 말.
그러더니 율카네스는 시간이 다 됐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몸을 틀었다.
“합당한 지적입니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율카네스의 행동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래 봬도 한때 회사 공보팀에서 PR 업무도 했다 이거지.’
나는 지구에서의 특기를 살려 율카네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약의 효능 중에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것이 있는데, 그 ‘기운’이 어떤 ‘기운’인지 아십니까?”
“??”
내 의미심장한 말에 율카네스의 귀가 더 커졌다.
“이 영약 말입니다, 다른 것보다 ‘정력’에 엄청 좋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입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크흠! 그걸 왜 내게 말하는지 모르겠군. 속세엔 딱히 관심이 없다니까.”
“물론 율카네스 님은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모르잖습니까? 보통 마법사가 기사에게 늘 지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보니…….”
“지긴 누가 진다고 해!!”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낸 율카네스.
물론 이카디아에도 정력에 좋은 음식이나 영약은 있다.
하지만 음식은 효과가 미미하고 영약은 앞서 말했듯이 더럽게 비싸다.
‘세상 누구보다도 속세를 즐기고 계신 양반이.’
렌슬렛은 몬스터의 침략이 잦다. 당연히 과부가 많다.
나는 이 작자가 산맥의 기운을 느낀다고 싸돌아다니면서 한 짓들을 원작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변신 마법으로 변신해서 돌아다니니, 아무도 율카네스인지 모르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엘프처럼 천 년을 사는 존재면 속세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도 못 사는 짧디짧은 시간을 누리는 인간이 세상을 등지고 산다고?
세상에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나 지금은 오랜 신성 시대가 끝나고 옛 황금시대를 잇는다는 은의 시대가 열린 시기다.
속세를 떠난 엘프도 호기심에 관심을 가질 때란 말이다.
“에헴! 일단 한번 소일거리 삼아 해 보지. 비율은 4 대 4 대 2인가?”
“네, 렌슬렛이 2를 가지고 저와 율카네스 님이 4를 가집니다.”
“내가 6, 나머진 자네와 공작령이 알아서 나누게. 자네가 준 제조 공식은 너무 허술해. 보완할 것도 많고. 고작 이렇게 주워들은 것으로 4할을 요구하는 건 과욕이야.”
“……알겠습니다.”
‘노인네가 욕심만 많아 가지고!’
짜증이 났지만, 율카네스가 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연금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제조법과 재료를 대략 안다고 바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율카네스 혼자서 내가 준 아이디어와 힌트를 가지고 연구해서 만든다고 봐야 했다.
이럴 바엔 아이디어 값만 받고 물러나는 게 맞을지도.
‘괜히 세계관 4대 최강자에게 따지다 죽을 바엔 2할이라도 보장받는 게 낫지.’
율카네스 말고 다른 마법사에게 의뢰하자니 이곳 렌슬렛 마법사들의 실력은 솔직히 못 미더웠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마법사를 초빙하자니 초빙할 돈도 없고.
“아! 율카네스 님, 그럼 6을 가져가는 김에 여기에 서명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몫을 크게 뺏겼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보상을 받아야 했다.
“서명?”
난데없이 서명을 해 달라는 내 요청에 율카네스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역시나 지구나 이 세계나 서명해 달라는 말엔 다들 민감하구나.
“지금 당장 해 달라는 것은 아니고, 영약이 만들어졌을 때 효능을 확인하시면 이에 대한 소견을 마도사님의 이름으로 알렸으면 합니다.”
“……자네 기사 맞나? 상인처럼 영악한 면이 있어. 그래, 만약 기운을 세워 줄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역시 그는 내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이것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니 허락한 것이겠지만.
그 말을 끝으로 율카네스는 이 하급 마석으로 영약을 제조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 * *
공작이 다녀간 뒤로 며칠이 지났다.
율카네스는 내가 알려 준 재료와 공식으로 영약을 제조했고, 듣자 하니 어제 시제품이 나왔다고 들었다.
“자, 여기요!”
“이게 뭡니까?”
어제 시제품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딱 봐도 그 시제품처럼 생긴 영약을 이노가 들고 온 것이다.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지구에서의 몸이라면 엄~청 필요했겠지만, 이 세계로 빙의한 나에게 이런 영약을 권유하는 것은 수치다!
“아직 재정이 부족해 좋은 무기는 못 만들어 드려도 이런 영약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나의 거절 의사에 이노가 살짝 풀이 죽은 모습으로 쩔쩔 맨다.
“가, 감사합니다.”
공작 부인께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받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공작 부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영약을 받았다.
“먹어 보세요!”
“나, 나중에…….”
“율카네스 공 말로는 효과가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동방보다 여기 몬스터가 약발이 더 잘 들어서 효과가 더 좋다고 하네요. 뭐라고 하셨지? 한 단계 더 위로 경지가 올라갔다고 했나? 그러니 어서 먹어 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율카네스로부터 뭔가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효능을 설명 들은 것 같다.
‘어서 먹고 강해져서 지난번처럼 위험해지지 마세요!’라고 하는 듯한 눈빛이다.
폰테임 여기사와의 결투에서 내가 밀렸던 것이 계속 가슴에 남았나 보다.
“잘 먹겠습니다.”
결국 나는 영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꿀꺽.
먹자마자 몸속에 뜨거운 기운이 몰렸다.
‘이 양반은 도대체 뭘 만든 거야?!’
보급형 영약이라도 마도사의 손길이 닿으면 뭔가 다른 듯했다.
‘이세계판 비아그라야? 이래서 6할을 요구했던 건가?’
심지어 지구의 비아그라보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더 좋은 거 같다.
‘단순히 정력에도 좋은 건강 보조 식품을 생각했던 것인데.’
난 예상외로 엄청난 대박이겠다고 느끼며 이노에게 말했다.
“저, 정말! 효과가 좋네요! 너무 좋아서 굳이 자주 먹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간신히 말하곤 엉거주춤한 자세로 검을 휘두르러 밖으로 나갔다.
문제는 공작 부인께선 이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셨는지, 그 후 공작 부인께선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이 영약을 아침 식사와 함께 제공해 주셨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훗날의 이야기지만, 이렇게 탄생한 정력에 좋다는 보급형 영약으로 세상 사람들은 렌슬렛 몬스터는 정력에 좋다고 인지하게 되었고, 원작보다 더 일찍 렌슬렛의 오랜 염원이던 몬스터 토벌과 대개척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렌슬렛 공작령의 한 평기사가 의도한 날개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