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85
185. 결전(3)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싸움.
창조와 종말이 아닌 희망과 혼돈의 싸움이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이 벌어지는 검회색의 고공 속.
그곳은 두 존재가 무언의 합의하에 만들어 낸 별도의 장소, 오직 둘만의 싸움을 위해 만든 공허의 차원이었다.
우주인지 대기권인지 모를 거대한 공허의 공간, 검회색으로 가득 찬 작은 공허의 차원, 그곳에서 물리력을 초월한 셀 수 없는 충돌이 벌어진다.
쾅쾅, 카앙, 퍼엉!
마치 태초에 우주가 탄생했던 폭발처럼 두 존재의 충돌은 엄청난 충격을 만들었다.
1초를 백으로 나눈 속도로 두 존재는 부딪치고 베고 찌르고 쏘아 댔다.
서로를 너무나 적대하는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향한 멸의만 가득할 뿐이다.
번쩍! 번쩍! 번쩍!!
두 존재가 충돌할 때마다 검회색 공허 속의 낮과 밤이 바뀐다.
어떻게 아냐고?
소리의 속도를 뛰어넘은 충격파가 있을 때마다, 세상이 밝아지고 다시 캄캄해졌기 때문에 추측할 수 있었다.
세상이 밝아졌을 때는 태양 같은 섬광이 낮을 만들었고, 세상이 캄캄해졌을 때는 블랙홀 같은 구멍이 모든 빛을 흡수했다.
시공간의 개념을 아득히 초월한 싸움, 전투, 충돌, 격돌, 창조, 파괴!
빛의 날개를 단 인간 형상의 빛 덩어리가 우세할 때는 낮이 좀 더 길었다.
반대로 검은 날개를 달고 여섯 뿔이 난 검회색 인영이 우세할 때는 밤이 더 길었다.
피잉, 끼이이이이익!
시공간을 뛰어넘은 공허 차원에서도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충돌이 이어졌을 때, 마침내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번쩍!
낮과 밤, 태양과 심연이 균형을 이루며 나타나던 것이 어느 순간…… 어둠이 좀 더 오래, 자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비명이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빛의 날개를 단 인영이 주춤한 모습을 보이더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가만히 볼 심연의 존재가 아니다.
심연의 존재는 아까보다 더 강하게 공세에 나섰다.
빛의 형상은 필사적으로 발악하면서 틈틈이 심연의 존재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두근, 두근, 두근…….
육신이라는 족쇄를 벗어 던진 두 존재에게서 심장 박동 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그만큼 두 절대적인 존재가 지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피로를 빛의 약해지는 밝기와 연해지는 어둠의 깊이로 환산했다.
―크윽!
로니아드가 신음을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힘에서 밀리다니.’
아한을 흡수하지 못 하게 하고, 드라센과 세레나데도 흡수하지 못했고, 아한조차 흡소하지 못하게 했반쪽으로 나뉘었을 때 프로스라는 규격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심연의 군주는 강했다.
‘절대 합쳐지지 않았어야 했어.’
폰테임과 악황제가 합쳐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
그게 가장 큰 실책인 것 같았다.
―…….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가 눈앞의 검회색의 인영을 노려봤다.
―크흐흐흐흐.
심연의 군주, 프로스가 낮은 목소리로 비웃는다.
―네놈과 처음 싸웠을 때가 떠오르는군. 그 왕궁에서 두 드래고니안의 몸을 쓰고 있을 때였지.
프로스가 아한과 처음 만났던 반정 당시를 언급했다.
―제르다의 수작질과 차원 이동의 후유증으로 힘이 크게 부족했었지.
놈이 입을 열 때마다 공기가 지진 난 것처럼 진동했다.
―그때에도 아한, 네놈은 나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어.
프로스의 비웃음이 진해졌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제르다의 힘을 완전히 흡수했고, 이 차원에 적응도 잘했다.
로니아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프로스라는 이름으로 나를 이 세계의 격에 맞췄다고? 과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조롱하는 듯한 프로스의 어조.
―네놈은 그때 나를 없앴어야 했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촤자작!
프로스의 양손에 길쭉한 창검이 솟았다.
마치 포크와 나이프를 든 미식가를 보는 기분이다.
촤아아악.
프로스가 로니아드를 향해 달려든다.
―흐읍!
로니아드가 급히 놈의 공세를 막았다.
서걱, 퍼억.
하지만 이미 많이 지쳐 있던 로니아드는 반격은커녕 방어조차 버거웠다.
그의 몸에 상처가 생겼고, 상처에선 빛의 피, 성혈이 주르륵 흘렀다.
푸욱, 스르륵.
결국 프로스의 검이 로니아드의 복부와 허벅지를 쑤셨다.
―끄으끅!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오히려 프로스의 입맛만 돋워 줄 뿐이다.
―잘~ 먹겠습니다.
‘정녕 이것이 우리 차원의 운명이란 말인가!’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에 절망이 드리웠다.
콰드득.
프로스가 로니아드의 목덜미를 크게 한입 물었다.
마치 흡혈귀가 흡혈하는 것처럼.
―끄으윽, 끄으!
추릅, 추릅, 추르릅.
프로스가 무서운 속도로 로니아드의 성혈을 빨아 댄다.
로니아드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영혼과 격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로니아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로니아드의 머릿속에 들렸다.
‘로지스트?’
로지스트의 목소리였다.
―루카스 교수.
‘데이지?’
이어서 데이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한, 내 형제여.
‘제르다!’
현 차원의 제르다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그대가 로니아드, 아니, 대천사 아한인가?
힘없는 남자의 목소리도 작게 들렸다.
로니아드는 이 힘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악황제?’
―한때, 그렇게 불리던 때가 있었지. 그대의 붉은 눈동자, 심연의 군주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본 것 같군.
악황제 제로니어드가 로니아드를 반가워한다.
―과거 아르미다츠 궁에서 한 번, 그리고 고치가 되기 전에 한 번. 둘 다 몸을 빼앗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였지. 아쉬웠다.
제르다, 로지스트, 데이지 그리고 악황제.
각각의 존재들이 프로스의 몸속에 있었다.
‘제르다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존재들의 의지가 살아 있다는 것은?’
로니아드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형제여, 내 모든 것을 행하여 그대를 돕겠네.
다시 제르다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도 돕지. 세상에 진 죄를 이렇게라도 갚겠다. 이건 앞서 소멸한 라이오스의 뜻이기도 하다.
악황제의 목소리가 뒤이어 울렸다.
―마침 놈의 몸속에 자네의 성혈이 들어왔어. 이로써 회심의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됐네.
제르다는 굉장히 기뻐 보였다.
―대천사여, 그대는 우리의 신호 맞춰 선악검을 놈의 심장과 복부에 찔러 주면 되네.
악황제의 당부와 동시에, 프로스의 몸속에서 무언가 역류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으음?!
그러자 로니아드의 목덜미를 물고 있던 프로스가 멈칫했다.
―우웩……! 안 돼……! 이것은!
급히 빨고 있던 로니아드의 성혈을 토해 낸 프로스.
―으윽, 으읏!
방금까지만 해도 로니아드를 잡아먹으려 했던 프로스가 비명을 질렀다.
독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심연의 군주, 태초의 대악마를 소멸시킬 절호의 기회네!
제르다와 악황제의 확신 가득한 의지.
―……알겠네.
하지만 로니아드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놈을 소멸시키려면 그만한 대가가 따랐기 때문이다.
로니아드는 프로스의 몸속에 있는 두 존재를 향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내 형제 제르다여, 그리고 힌미르의 적통이여, 부디 영원한 안식을 취하길 바란다.
그리고 반쯤 내려놨던 선악검을 들었다.
검을 든 로니아드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있는 힘껏 프로스의 심장을 찔렀다.
푸우우욱!
우우우웅.
두 존재 사이에서 거대한 흐름이 이어졌다.
―나, 제르다와 제로니어드는 사라지지만 나머지는 굳이 소멸될 필요는 없지.
그 말을 끝으로 제르다와 제로니어드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화아아앗.
대신, 프로스의 검회색 몸이 내부로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아, 안 돼에!
프로스는 경악 가득한 비명이 들렸다.
―이게 무슨……!
급히 로니아드에게서 멀어졌다.
녀석은 로니아드의 선악검을 심장에 꽂은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억…… 허억.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숨을 몰아쉬는 것이 꽤 지쳐 보였다.
―이만 끝내지.
로니아드는 나직하게 말한 후, 손짓으로 선악검을 불렀다.
―끄아악!
선악검과 함께 프로스가 날아왔다.
―오, 오지 마아!
프로스가 급히 차원 이동을 하려 했지만.
―뭐, 뭐야! 왜!
마음대로 능력을 쓰지 못하는 듯싶었다.
―우, 우웨엑…….
오히려 급히 차원 이동을 하려던 부작용으로 헛구역질까지 한다.
―너는 너무 과식했어. 그게 패배의 요인이다.
로니아드는 심장에 있던 선악검을 뽑았다.
푸우욱!
다시 놈의 명치에 선악검을 찔렀다.
―끄어어억!
―지금의 너에겐 세레나데가 없지.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가 프로스의 검회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드라센이 괜히 세레나데를 정화 필터처럼 심장에 박은 게 아니란 말이지.’
제르다가 전해 준 프로스의 상태는 과도한 폭식에 의한 부작용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구토와 설사는 기본이고, 맹장염, 장염, 위염, 식중독 같은 모든 배앓이가 시작된 상태.
본래라면 정화의 능력을 가진 세레나데가 소화제처럼 이를 중화시켜야 했지만, 지금의 프로스에겐 세레나데가 없었다.
―만약 네가 내 피를 먹지 않았다면, 거기까진 소화가 되었겠지만.
놈이 로니아드의 성혈까지 먹음으로써, 제르다와 악황제는 자신을 희생하여 프로스의 몸속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사라져라!
로니아드가 신성력을 프로스에게 주입했다.
검회색이었던 녀석의 몸이 순백 달보다 더 밝게 빛났다.
퍼어어엉!
거대한 섬광과 함께 프로스의 몸이 터졌다.
* * *
훗날 회색 전쟁이라고 불릴 전쟁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다.
짧고 깊으며 거대했던 싸움.
많은 희생을 낳았고, 그만큼 희망을 낳았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꽤 많은 혼령이 하늘로 승천 중이다.
바로 프로스에게 먹혔던 환상 군단의 혼령들.
그들은 천사들의 정화 덕분에 각자의 업보에 따라 천계와 마계로 승천 중이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앨리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어서 빨리 결혼이라도 하게?”
아리아가 앨리스를 째려보며 물었다.
“흥! 족보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쫄리나 보지?”
하지만 아리아의 눈빛에도 앨리스는 위축되지 않고 도도하게 물었다.
“뭐래? 네가 로니아드 님과 결혼을 하든 말든, 너는 10년 동안 내 전속 시녀야!”
“치이……!”
“어쭈? 눈빛 봐라? 어쩌려고? 네 가문은 멸문했고, 그렇다고 네가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잖니~?”
아리아가 얄밉게 앨리스를 약 올렸고, 앨리스는 주먹을 꽉 쥐면서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로니아드 님! 부디 무사히 돌아오셔서 저를 구원해 주세요!’
과연 로니아드가 그렇게까지 해 줄지는 미지수지만, 현재 앨리스에겐 로니아드와의 결혼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물론 로니아드를 노리는 여자가 앨리스뿐만은 아니었지만.
‘대천사 정도인데 부인을 하나만 둘 수는 없지.’
앨리스는 크게 상관없었다.
로니아드가 오는 여자 거절 안 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
‘다들 하늘만 바라보기 바쁘네?’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천사와 마족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전장 정리에 바빴지만, 이노, 제인, 아스카, 이소레타, 테노바, 미샤, 두 세이렌 등 조금이라도 로니아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들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아리아 또한 종종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것도 중증이야.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앨리스는 아리아가 하늘을 보는 이유를 알았다.
로니아드가 아닌 다른 사람, 바로 로지스트를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로지스트가 살아는 있을까?’
감히 아리아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앨리스는 비관적이었다.
그냥 마왕도 아닌 심연의 군주에게 먹힌 거니까.
구르르르르.
그렇게 다들 각자의 염원을 담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
“드디어…….”
“오라버니!”
하늘의 일부를 차지하던 검회색의 공간이 빠르게 옅어지기 시작했다.
“로니아드!!”
“로니!”
로니아드의 여자들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대천사님이시여!”
“아한-제르다…….”
“오! 드디어 성전이 끝났도다!”
―끝났군.
―아한께서 승리하셨도다. 하지만 제르다께서는…….
그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로니아드의 이름을 외쳤다.
우우우웅.
찬란한 빛, 공기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빛의 날개를 펼친 존재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