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86
186. 필멸자들의 신
1년 후, 룬-아르미다츠 왕국의 수도 아르미.
때앵, 때앵.
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청량한 종소리가 왕도 전체를 울렸다.
오늘은 이카디아 대륙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날.
“오늘인가? 새로운 제국 건국과 황제 폐하의 결혼식이?”
“아마 그럴 거야. 한 달 전부터 축제라서, 날짜가 긴가민가하니까.”
왕도를 오가는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평화가 가득했다.
“그렇다면 우리 룬-아르미다츠가 제국이 되는 건가?”
“그건 아니라고 하더군. 기존 라-고이트 제국을 대신할 새로운 제국이 건국된다고 하더라고.”
“그럼 우리 왕국은? 그리고 칸브라만 대공국은?”
“어차피 두 여왕님 모두 새 황제 폐하의 황비가 되실 테니까…….”
“뭐여?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
하지만 누구도 걱정이나 우려를 표하진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순백 달에서 오신 대천사님께서 인류의 황제가 되기로 하셨는데, 어떻게든 잘해 주시겠지.”
바로 오늘, 즉위식과 결혼식을 동시에 할 존재를 강하게 믿기 때문이다.
아한 로니아드 칸브라만.
순백 달의 주인이자, 새벽녘의 대천사이자, 이제는 이카디아의 모든 필멸자들의 수호자.
새롭게 즉위하는 황제가 바로 그였고, 라-고이트 제국을 대신해 세운 아한 제국 또한 바로 그가 건국한 것이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앞으로도 늘 요즘처럼만 이어졌으면 좋겠어.”
“맞아, 맞아!”
대화를 나누던 두 시민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천사들이 빛의 날개를 펄럭이며 오늘을 축복하고 있었다.
룬-아르미다츠 왕국의 왕궁.
과거 반정 당시 아한과 심연의 군주와의 싸움으로 초토화되었지만, 체스카드 왕실의 짧은 통치 기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어느 정도 복구한 왕궁이었다.
그 왕궁에 이카디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축하드립니다, 대천사 폐하!”
칸브라만 대공국의 기사 제복을 입은 이스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축하를 건넸다.
“그냥 폐하로만 불러. 대천사 폐하는 무슨.”
“알겠습니다!”
“카디나도 오랜만이야. 배 속의 아이는 잘 있지?”
“네, 마스터.”
늘 기사 제복을 입던 카디나는 볼록한 배 때문에, 여느 귀부인들처럼 드레스를 입은 상태다.
“나보다 빨리 결혼하다니.”
“저는 폐하처럼 신부가 많지 않으니까요, 바로 결혼이 가능하죠. 으하하하!”
이스는 반년 전에 이미 카디나와 결혼을 했다.
‘참 신기한 놈이야.’
렌슬렛의 평기사 때 만난 녀석이지만, 이스 같은 성격은 지구에서도 보기 힘들다.
눈앞에 대천사이자 황제가 있음에도 예전처럼 굴다니.
‘처음에는 2회차거나 빙의자인 줄 알았지만, 아니란 말이지.’
혹시나 하고 대천사의 눈으로 봤지만, 그냥 매사에 유쾌하고 긍정적인 인간 기사였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이스와 함께 루키엘이 등장했다.
루키엘 또한 혼자 오지 않고 마리아와 함께 등장했다.
“오랜만이야, 루키엘, 마리아도.”
“축하드려요, 대천사님?”
“그냥 폐하라고 불러.”
마리아와 루키엘은 연인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등장했다.
둘의 관계를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이젠 신기하지도 않다.
“율카네스는?”
“그는 이번엔 진짜로 속세를 떠난다고, 저보고 대신 축하해 주라고 하던데요?”
“속세를 떠난다고?”
그걸 믿나?
“듣기론 용의 대륙으로 간다는 거 같으니까…… 아주 빈말은 아닌 거 같아요.”
“5년 내로 다시 온다에 영지 하나를 걸지.”
“저도 같은 의견이라서, 내기는 성립되지 않겠네요.”
여자 좋아하고 돈 밝히는 양반이 퍽이나 속세를 떠나겠다.
“데이지는 어때?”
이어서 마리아에게 데이지에 대해 물었다.
“현재는 요정의 숲에서 정화 중이에요. 나중에 정화가 끝나면, 야만 군단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야만 군단? 하긴, 거기엔 하프 다크 엘프가 좀 있을 테니까.”
엘프도 그렇지만, 다크 엘프들도 혼혈에겐 배척이 심하다.
“여하튼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역사적인 현장인데요.”
그렇게 루키엘와 마리아를 보낸 후, 로니아드는 계속해서 많은 방문객을 맞이해야 했다.
그 와중에 헌스터가 인간 기준으로 건설된 왕궁의 문과 벽들을 부숴 먹은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제국의 새로운 수도는 이 왕궁보다 더더욱 크게 지으셔야 합니다!”
헌스터가 머리에 난 혹을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이 새끼 때문에 쪽팔려서.”
그런 헌스터 옆에 선 이카본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크흠, 축하드립니다, 폐하.”
타르타트는 여전히 로니아드가 꺼려지는지, 헌스터의 다리 뒤에 숨어 인사를 건넸다.
새벽부터 정신없는 방문객 맞이가 끝나고 정오가 되었다.
“좁군.”
로니아드는 왕궁 전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중에 옛 황도 고이트를 재건하게 되면, 그때 더욱 크게 짓도록 해……요!”
그의 옆에 있던 이소레타가 로니아드의 혼잣말에 답했다.
그녀는 로니아드를 향해 존댓말을 쓰는 것이 아직 어색한 듯 보였다.
“그래.”
로니아드는 이소레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위식과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제국 재건에 돌입해야지.’
본래 즉위식과 황비들을 맞이할 결혼식은 옛 라-고이트의 황도 고이트에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방문한 고이트는 아무도 살지 못하는 폐허 그 자체였다.
본래 터는 좋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이 모일 테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20년은 걸릴 듯싶었다.
“다른 황비들은?”
“곧 올 거……예요.”
굳이 존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황실의 예법을 지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니 뭐니, 하면서 저렇게 굴고 있다.
“예쁘군.”
이소레타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처럼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상태였다.
“고, 고마워요! 폐하.”
제일 먼저 준비가 끝나서 일등으로 로니아드에게 온 것이다.
“왔군.”
이소레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랜드 홀의 문이 열렸다.
“폐하!”
“오래 기다리셨나요?”
오늘 결혼을 하게 될 황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혼란하구만, 혼란해.’
아무리 자신이 대천사이고 명백한 신성의 황제라고 해도, 한번에 이렇게 많은 여자들과 결혼식을 치러야 하다 보니 낯이 뜨겁다.
심지어 여자들 한 명, 한 명이 보통 신분, 보통 종족이 아니다.
로니아드는 그랜드 홀로 막 입장한 신부들을 보며,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이노.”
“네, 로니아드.”
이노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리아는 잘 지내?”
“로지스트와 어울리느라 정신없어요. 도대체 언제 철들는지.”
참고로 프로스를 없앤 후 로지스트와 데이지는 구해 올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흡수된 거라서 살릴 수 있었다.
‘지금 데이지가 없어서 더더욱 로지와 자주 만난다고 하던데……. 끄응, 골치 아프겠군.’
곧 아리아의 새아빠가 될 예정이라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어서 로니아드는 다른 신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인.”
“네, 로니아드 폐하.”
제인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제인의 양 볼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앨리스.”
“네, 폐하!”
앨리스가 방긋 미소 지었다.
“세레나데, 세이나.”
“네, 마스터!”
“로니아드 님!”
인간의 드레스가 신기한지 연신 만지작거리는 두 세이렌이 눈웃음 짓는다.
“테노바.”
“으응…….”
테노바가 부끄러운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브리기트.”
“네…… 흐윽.”
“왜 울고 그래?”
“너무 기뻐서…….”
브리기트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스카.”
마지막으로 아스카를 불렀다.
“응, 여보!”
“……그래.”
‘테노바도 그렇지만 아스카는 더더욱 적응이 안 되는군.’
아직 아스카가 이성으로 와 닿지 않는 로니아드다.
그럼에도 로니아드는 아스카를 황비로 맞이했다.
‘전에 말했던 소원권을 이걸로 쓸 줄이야.’
아무리 봉인된 기억 상태로 했던 약속이지만, 대천사의 약속이다.
‘덕분에 마왕들과 조약을 수월하게 체결할 수 있었지만.’
로니아드는 아스카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보았다.
아스카와 놀랍도록 비슷한 외모.
현재 진홍 달의 고위 마왕이기도 한 에르카네였다.
―내 딸 울리면, 그땐 신마 전쟁이에요.
―……명심하지.
에르카네가 텔레파시로 보낸 살벌한 경고에, 로니아드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간에 사위와 장모의 관계가 돼 버렸다.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은 새로운 제국 아한의 건국식.
―……따라서 또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나, 순백 달의 대천사 아한이 직접! 이카디아를 통치하겠다.
대천사의 형상을 한 로니아드가 날아올라 외쳤다.
“와아아아!”
“아한 제국, 만세!”
“룬-아르미다츠 왕국, 천세!”
“대천사님, 제국과 왕국을 수호해 주소서!”
왕궁과 왕도 전역에 몰려든 사람들이 로니아드와 그가 세운 제국을 연호했다.
이것은 왕도 사방에 설치된 마법 아티팩트로도 방영되었다.
“새벽녘의 대천사이자, 위대한 신성 아한 제국의 황제 폐하께 교국의 신성과 믿음을 바칩니다.”
제국을 선포한 로니아드 앞에 성녀 미샤가 무릎 꿇었다.
“아한-제르다.”
그리고 로니아드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본래의 즉위식이나 건국식 때에는 성녀나 교황이 국왕이나 황제에게 월계관을 하사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어떻게 감히 일개 필멸자가 대천사를 무릎 꿇리고 월계관을 하사할까?
―교국의 믿음을 허한다.
로니아드가 미샤를 내려다봤다.
“감사합니다, 대천사님!”
미샤가 기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로니아드를 올려다본다.
그러다가 로니아드 옆에 주르르 선 황비들을 보았다.
“황비 자리 하나 정도 더 남겨 주세요. 곧 저도 저기에 서고 싶어요.”
미샤가 작은 목소리로 로니아드에게 말했다.
그리고 앙큼한 표정으로 윙크를 한다.
로니아드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미샤는 개의치 않고 다른 쪽 발에 입을 맞췄다.
아한 제국의 건국을 선포한 로니아드는 아펜젤에게 천계에서의 자신의 권한을 위임했다.
―아펜젤 순백 달을 부탁한다.
―맡겨 주소서.
아펜젤은 순백 달에서 그를 제외하곤 가장 지위가 높은 천사였다.
―그럼, 진홍 달과의 새로운 조약 때문에 이만 순백 달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아펜젤과 천사들은 그 말을 끝으로 하늘 높이 사라졌다.
천사들을 보낸 로니아드는 아직 남아 있는 진홍 달의 마족 엘카란, 또 다른 이름으론 에르카네이자, 현재 로니아드의 장모가 된 마왕을 보았다.
―엘카란, 그대의 딸을 대리인으로 이카디아에 남기는 것에 후회는 없나?
―전혀. 그쪽이야말로 후회하지 말라고.
―나도 후회 안 해.
―그렇다면 된 것이지.
엘카란이 피식 웃으며 마찬가지로 진홍 달로 사라지려 했다.
그런 에르카네를 아스카가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한 가지 궁금하군. 왜 이렇게 천계와 순순히 합의하는 거지?
엘카란이 가기 직전, 로니아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무리 내가 마족이라고 해도 미안함은 느끼거든.
그의 물음에 엘카란은 막 들어가려던 악마 문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마계로 보내려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일 테니까…….
엘카란의 눈에 쓸쓸함이 담겼다.
―라이오스, 제로니어드, 엠마누엘, 그들을 위한 속죄이기도 해.
스으윽.
그 말을 끝으로 엘카란은 악마 문 속으로 사라졌다.
―마음의 빚이라…….
심연의 존재를 소멸시킨 직후, 천계와 마계는 며칠 동안 긴 회의를 가졌다.
―이번엔 이렇게 해결되었다고 해도,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펜젤의 말에 마왕들 또한 부인하지 않았다.
―천계와 마계에서 각각 한 명씩 이카디아에 상주하여 필멸자들을 관리합시다.
―드래곤들이 가만있겠소?
―그들이 가만히 있어서 이런 사달이 일어난 것 아닌가?
―이카디아의 용들은 누구들 덕분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죠.
말을 하는 천사들의 눈빛이 매섭다.
―지난 대전 때 힘을 너무 많이 쏟아, 아직도 용의 대륙에서 잠들고 있소.
너희 진홍 달 놈들 때문에 이카디아의 조율자인 드래곤들이 잠들어 있다고 책망하는 눈치다.
―……크흠, 최소한 드래곤들이 동면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이카디아를 관리합시다.
―맞소. 드래고니안만으로는 불안하오.
―이번 일도 드래고니안에 의해 벌어진 것이기도 하고.
용의 숫자는 적다.
이카디아는 마누스와 힌미르가 관리했고, 그 외 다른 용들은 동방이나 남대륙, 중앙 대륙 등에 퍼져서 조율자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 암흑시대의 전쟁에서 이카디아를 맡았던 두 용이 오랜 동면에 빠졌다.
그들을 대신하여 드래고니안이 있었던 것인데, 아무리 용의 적통이라고 해도 필멸자의 한계는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뭐, 2,500년 동안 버텼으면 필멸자 치고는 잘한 셈이지.
그렇게 천계와 마계는 회의를 거쳐 각자 이카디아에 누가 남을지를 정했다.
―천계에서는 대천사 아한께서 남으실 겁니다.
―……대천사께서? 그렇다면 우리는…….
예상 못 한 천계의 통보에 마족들이 당황했다.
―마계에서는 엘카란의 딸, 아스카가 남을 것이네.
이때를 틈타, 엘카란이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존재의 격과 힘의 비율이!
―용의 피와 나의 피가 섞였다. 대천사만큼은 못하지만 적어도 너희보다는 내 딸이 격이 높아.
힘이 지배하는 마계다 보니, 마족들의 반발은 엘카란의 엄포에 쑥 들어갔었다.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로니아드의 상념을 아스카가 깨트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야.
“흐흐흐, 이 많은 황비들과 첫날밤을 보내려니까 미치겠지?”
아스카가 음흉한 눈으로 로니아드를 본다.
‘……생각해 보니 순번을 정해야 하나?’
아스카의 말에 로니아드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그건 일단 결혼식부터 치르고, 그 이후에 결정하자, 여보!”
아스카가 피식 웃으며 로니아드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제국의 선포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결혼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