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9
19. 공작 부인은 왜 평기사에게 영약을 먹였을까? (2)
화려하고 품격 있는 어느 대저택의 집무실 안.
집무실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평민 1년치 소득을 아득히 넘을 정도다.
심지어 이곳에서 일하는 시종, 시녀가 입는 옷 또한 어지간한 하급 귀족이 입을 법한 품질의 옷이었다.
단순히 크기만 큰 렌슬렛 대저택과는 차원이 달랐다.
“확실히 마도사 율카네스가 렌슬렛의 영애를 총애하는 것 같았습니다. 왕실 기사 한 명이 눈치 없이 행동하다가 개구리가 되었고요. 공작의 기사 한 명도 공작 부인의 기사에게 당했습니다. 사실상 렌슬렛은 내전 상태라 보시면 됩니다.”
붉은 머리의 여기사 카디나는 오랜 임무를 마치고 간만에 폰테임 후작가의 대저택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한 일은 카라스 폰 폰테임 후작에게 렌슬렛의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멍청한 국왕에게 어울리는 멍청한 기사다운 최후군. 그나저나 렌슬렛의 안주인에게 그런 뛰어난 실력의 기사가 있었나? 기사단장은 좌천시키지 않았나?”
“……처음 보는 기사였습니다. 듣자 하니 좌천당한 기사단장이 좌천된 치안대에서 발굴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잠깐 겨뤄 봤는데 실력도 상당했습니다.”
“네가 그렇게 평가하는 기사는 드문데 정말 실력이 괜찮은가 보군. 휘닉스 그 작자는 좌천당해서도 일을 한단 말이야. 참 골치 아픈 인사야.”
국왕마저도 사석에서 편히 흉보는 남자, 카라스 폰 폰테임 후작은 눈앞의 여기사 카디나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졌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아주 비슷했다.
“카디나, 너는 내 자식 중에 나를 가장 닮았다. 비록 여자이고 사생아라는 걸림돌이 있지만, 그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의 여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정말 대견하게 여긴다.”
“……과찬이십니다.”
갑작스러운 폰테임 후작의 칭찬에 카디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젠장, 또 무슨 이상한 일을 시키려고.’
속으론 기쁨보단 걱정이 더 컸다.
카라스가 이런 말을 하고 나면 꼭 뒤에 귀찮고 난해한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멍청한 국왕과 병신 같은 하이든으론 부족할 것 같다. 마도사 한 명만으로도 힘든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사놈이 등장해 버렸으니까. 로니아드라고 했나? 기사단장 휘닉스를 치우니 난데없이 또 이상한 놈이 튀어나오고. 하여간 렌슬렛, 그 동네는 쓸데없이 운이 좋다니까.”
폰테임의 후작 카라스의 말에 카디나는 얼마 전 결투를 했던 그 젊고 잘생긴 기사를 떠올렸다.
뛰어난 실력에 자신의 주군을 챙기는 매너 있는 모습은 10년 전에 전멸한 옛 왕실의 근위 기사를 연상시켰다.
카디나 또한 어릴 적 왕궁에서 보았던 근위 기사에게 반해서 여기사가 된 것이니 말이다.
‘반쪽 난 검을 들고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 나이에 비해 실전 경험이 많은 게 분명해.’
카디나의 얼굴은 포커페이스였으나 심장은 로니아드를 떠올린 후 빠르게 뛰었다.
‘아쉽군. 그가 렌슬렛이 아닌 폰테임의 기사로 왔다면 좋은 동료가 되었을 텐데.’
카디나는 곧 폰테임 후작 카라스의 입에서 나올 명령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해서, 다시 렌슬렛으로 가 줘야겠다. 올해 말에 있을 거사를 치르기 전에 사전 작업을 좀 더 세심하게 해야겠어.”
‘보나 마나 새로 나타난 로니아드라는 기사를 암살하라는 명령이겠지.’
카디나는 굳은 얼굴로 후작의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카디나, 지금부터 머리카락을 기르고 귀족 여식들의 예법을 배워라. 보름을 주겠다.”
“……예?!”
하지만 후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을 뒤엎는 말이었다.
“너 정도의 외모면 조금만 꾸며도 어지간한 남자들은 유혹할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늘 후작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카디나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황당이라는 감정이라는 틈이 생겼다.
“자아, 우리의 가장 큰 걸림돌은 마도사 율카네스다. 하지만 그 노인네야 공작 영애만 보장해 준다면 가만히 있을 거야. 거슬리긴 하지만 다룰 방법은 많아. 문제는 렌슬렛의 공작 부인이지. 그런데 그런 공작 부인에게 가까이 두는 젊고 실력 있고 잘생긴 기사가 갑자기 생겼어. 듣자 하니 10년간 공석이었던 비서관 자리를 차지했다고? 그건 검술 실력뿐만 아니라 행정 능력도 탁월하다는 거야. 무엇보다 그 까다롭고 철벽같은 공작 부인을 공략할 정도로 침대 위에서도 뛰어나다는 뜻이다.”
과연 후작인가 보다. 렌슬렛에 최근 갔다 온 카디나보다 실제로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다.
특히 침대 위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카디나는 로니아드와의 결투에서 들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땐 상대의 음담패설을 받아치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한 것이지만, 만약 그게 진담이었다면?
‘부러진 검으로 진짜 할 수도 있는 건가? 어, 어떻게?’
순간 카디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본 카라스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저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처녀구나.’
“네 표정을 보니 그 로니아드라는 기사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나 보구나?”
“네? 전혀 아닙니다!”
“그 정도 능력을 가진 기사라면 나는 찬성한다. 비록 몰락한 국왕파 남작 가문의 후손이라지만, 후작가 사생아에겐 딱 맞는 배경이지.”
폰테임 후작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구나, 내가 너에게 시키려는 임무와 모든 감정, 상황이 맞아떨어지니 그야말로 맞춤형 명령이라 할 수 있겠다.”
카디나는 이 황당한 상황이 꿈같았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감히 후작의 말을 자를 생각도 못 했다.
“렌슬렛으로 가라! 가서 그 로니아드라는 기사를 꼬셔라! 덮쳐도 좋다! 렌슬렛의 공작 부인 이노로부터 그 기사를 뺏어라. 최소한 로니아드라는 놈이 이노와 너를 두고 양다리라도 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작 부인이 아끼는 남자를 꾀어 내 공작 부인의 멘털을 박살 내고 폰테임은 유능한 인재를 얻는다.
그것이 임무의 궁극적 취지였다.
“그, 그게…….”
카디나는 처음으로 막막함을 느꼈다.
이건 자신이 태어나면서 느꼈던 신분과 성별보다도 더 큰 막막함이었다.
‘차라리 암살하라거나 불구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려 주시지.’
그랬다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서 어떻게든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이라니? 덮치라니?!
“너의 신부 수업은 앨리스에게 이미 얘기해 놨다. 지금 바로 앨리스가 머무는 저택으로 가거라.”
“시, 신부 수업이라뇨! 후작 각하,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카디나의 혼란 섞인 발악에 후작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집무실에서 내보냈다.
그렇게 후작의 집무실에서 반강제로 나온 카디나는 집무실 문 앞에서 이미 대기 중이던 시녀들의 반강제적인 안내를 받으며 앨리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언니, 기다리고 있었어요! 드디어 언니도 선볼 준비를 한다면서요?”
그리고 앨리스의 저택에는 그 저택의 주인이기도 한 앨리스 폰 폰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디나 샤인이라는 어머니의 성을 쓰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폰테임의 성을 쓰는 폰테임 후작가의 후작 영애.
“남자라니! 무슨 큰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아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언니 정도면 어떤 남자라도 반할 거예요!”
아버지의 붉은 머리카락 대신 동방의 흑비단처럼 윤기 나는 흑발에, 사파이어를 박은 듯한 푸른색 눈동자를 지닌 앨리스는 같은 여자인 카디나가 봐도 고혹적이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카디나는 해명하는 것도 잊고(솔직히 해명 못 한다고 보는 게 맞다) 앨리스의 외모를 순수하게 칭찬했다.
“앨리스, 너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누가 너를 13살이라고 하겠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그리고 렌슬렛의 공작 영애도 저와 같은 나이라고 들었어요. 심지어 국왕 폐하께서 초상화만 보고 반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고요.”
앨리스의 말에 카디나는 ‘그 변태 국왕의 눈에는 안 띄는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만약에 렌슬렛과 폰테임의 처지가 반대였다면 국왕의 타깃은 아리아가 아닌 앨리스였을 테니.
이 어리고 여린 아이에게 벌써부터 세상의 타락을 알려 주긴 꺼림칙했다.
“저도 얼핏 들었어요! 로니아드라는 렌슬렛 공작가의 기사라고요? 남색 머리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검술 실력도 출중하고 행정 능력도 뛰어나서 비서관 업무도 하는 데다 엄청 잘생겼다니. 와아! 저도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얘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듣는 거야?’
카디나는 의구심 짙은 얼굴로 앨리스 주변에 있는 시녀들을 보았다.
시녀들이 카디나의 눈총을 느끼곤 흠칫한다.
‘시녀들의 정보력과 전파 속도는 정보 길드를 능가한다더니.’
카디나는 시녀들을 탐탁지 않게 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역으로 시녀들이 카디나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본다.
“머리카락이 보름 동안 얼마나 자랄까요? 너무 짧은데.”
“정 안 되면 가발을 붙여야지. 문제는 손이야. 세상에! 무슨 손에 굳은살과 상처가…….”
“꺄악! 이 피부에 이 상처, 뭐예요! 이런 고운 피부에 상처라니! 세리야, 당장 포션을 준비해!”
“일단 지급 입고 있는 기사 제복부터 벗겨야겠어요.”
“카디나 님에게 맞는 드레스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드레스만 문제가 아니에요. 속옷도 무슨 거적때기 같은 걸 입고 계시네요.”
시녀들은 카디나가 태어나서 처음 본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녀를 만지고 벗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카디나가 반항하려 했다.
“언니! 가만히 계세요. 이것은 아버님의 명령이기도 해요.”
이복동생이지만 친자매 못지않게 아끼는 앨리스의 엄포에 카디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 *
서걱, 푸슛!
마나를 담은 검이 두껍고 거친 가죽을 깊숙이 찌른 다음 베었다.
깊숙이 들어간 상태서 무식하게 벤 것이라, 몬스터의 굵은 허리는 두 동강이 났다.
“휴우~.”
설원 오크의 허리를 두 동강 낸 나는 숨을 휴우 하고 내쉬곤 전장을 둘러보았다.
딱히 전장이라고 부르기도 뭐했다. 늘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던 몬스터 토벌이었으니까.
‘간만에 이렇게 몸을 푸니 좋군. 그 영약의 에너지를 훈련으로 해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말이지.’
렌슬렛 공작령에선 매해 가을마다 몬스터 토벌을 한다.
대부분의 렌슬렛의 기사라면 당연히 이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노의 비서관 업무를 하는 나는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몬스터 토벌에 거의 조르다시피 하여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마다 그 영약을 먹으면서 훈련으로 해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아침마다 공작 부인께서 내게 하사하는 영약.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영광이었지만 막상 해소할 곳(?) 없는 나에겐 고문이었다.
그렇다고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다. 어찌 되었든 주군께서 하사하신 거니.
‘율카네스 그 영감은 내가 처한 상황을 즐기고 있어, 분명히!’
율카네스를 찾아가 영약의 효능을 공작 부인에게 정확히 다시 알려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게.”
라는 의미심장한 말만 하고 사라져 버렸다.
듣자 하니 요즘 아리아를 가르치는 것도 많이 줄이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어딜 싸돌아다니는지는 너무 명확해서 추측이라 할 것도 없다.
‘가만. 설마 공작 부인께서도 알면서 나에게 이 영약을 주는 것일까?’
보온 마법이 인챈트된 기사 제복 덕분에 마누스 북부 산맥의 냉기에도 끄떡없던 나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순간, 소름 돋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에이~ 설마.’
내가 무엇 때문에 자진해서 몬스터 토벌을 하러 나왔는데.
공작의 다음 방문과 국왕의 욕망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 회의를 불참하면서까지 북부로 왔는데.
“와우~! 기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로니아드 기사님, 만세!!”
“우리가 이겼다!”
그런 나의 혼란한 심정을 모르는지, 몬스터 토벌에 참가한 병사들이 나의 무용을 찬양하면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나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약의 기운을 느끼며 진지하게 고뇌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