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90
190. 후원하는 성좌가 되었다(4)
성유나가 싸늘한 눈빛을 했음에도 클랜 간부는 말을 이었다.
“저희 클랜의 이미지가 있어서요. 안 그래도 곧 있으면 상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터널 클랜은 중견 클랜이다.
보름 후에 상장까지 앞둔 클랜.
이런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퍼지면 보통 악재가 아니다.
“성유나 헌터를 낙오시킨 정찰대 놈들은 클랜 내에서 징계를 약속하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왜 그쪽의 말을 들어…….”
성유나가 발끈하려던 찰나.
“대신, 성유나 헌터가 잡은 몬스터 부산물을 전부 매입하겠습니다. 어떤 수수료도 없이요. 세금도 저희가 대납해 드리겠습니다.”
“댁들에게 팔 생각 없……!”
“거기에 보상금에 비밀 유지 대가까지 더해서.”
성유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클랜 간부가 계산기를 타다다닷 두들기더니, 성유나에게 계산기에 입력된 숫자를 보여 줬다.
“이걸로 되겠습니까?”
‘세상에! 0이 몇 개야? 이 돈이면 빚은 물론이고 새 장비에, 보육원 보수에, 이사까지 갈 수 있겠어!’
계산기에 있는 0을 본 성유나는 이터널 클랜에게 가졌던 모든 증오와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속물이었던가?’
성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클랜 간부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성유나 헌터를 위한 추천서도 써 주겠습니다. 전투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입니다. 지금 성유나 헌터는 2차 각성을 했음에도 D++급이네요. 이걸로는 이름 있는 클랜의 정규대원으로 가지 못하죠.”
보고서 대신 추천서라.
“심지어 등급 만능주의인 한국 시장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투 보고서가 있다고 해도 이 등급이면 사기꾼 소리나 들을 겁니다. 하지만 추천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런다고 제가……!”
성유나는 버텼다.
“심지어 이 추천서, 정부에서도 보증하는 특급 추천서입니다.”
클랜 간부 옆에 있던 정부 요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추천서만 있으면 국내 어느 클랜이든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단, 한 번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히 써야 합니다.”
“그…… 하아…….”
결국 성유나는 무너졌다.
정부와 클랜에서 이렇게까지 해 준다는데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그런데 저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죠?”
막대한 돈에, 정부가 인증한 추천서까지, 성유나는 왜 저들이 자신에게 잘해 주는지 궁금했다.
물론 입막음에 대한 대가라고 하지만 상대는 정부와 중견 클랜, D급 헌터 하나 정도는 묻어 버릴 수 있다.
“하하하하, 특별히 잘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협회에서 온 요원과 클랜 간부가 크게 웃는다.
“비록 성유나 헌터가 D급이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좌와 계약한 2차 각성자입니다. 그리고 2차 각성자는 아무리 등급이 낮아도 국가 전력입니다.”
“다른 2차 각성자들도 클랜이나 정부로부터 이 정도의 존중은 받아요.”
“무엇보다 성유나 헌터가 제출한 전투 보고서, 만약 사실이라면 등급은 낮으나 실전에선 강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유나 헌터를 사실상 C급으로 인정했습니다. 아마, 각성자 신분증을 갱신하시게 되면, D급이 아닌 C-급으로 표시될 겁니다. 물론 실적이 유지 안 되면 바로 다운되겠지만.”
‘헐…….’
다들 진정한 각성은 2차 각성부터라고 하더니, 진짜인 것 같다.
‘이게 바로 진정한 각성자들의 세계구나!’
성유나는 가슴이 뛰었다.
‘나, 대박 난 거야?’
막대한 보상과 정부가 인정하는 자신의 자질까지.
그리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도 있다.
끝까지 버티던 성유나의 자존심과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죠. 맞아요! 이터널 클랜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하하하, 말이 통하시는 분이라 다행입니다.”
“호호호호! 역시 이터널 클랜이네요. 통이 크세요.”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추천서를 통해 저희 클랜으로 오시겠어요? 서브 공격대의 딜러 자리를…….”
“싫어요.”
“아, 네…….”
돈과 추천서와는 별개로 사적인 앙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 한국각성자협회로 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터널 클랜이 거절당하자 옆에 있던 협회 요원이 은근히 제안한다.
“공무원은 좀…….”
공무원이야 비각성자들에게만 인기 직종이지, 헌터들 사이에선 기피 직종이다.
페이도 낮고, 사명감 없으면 할 짓이 못 된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느 클랜으로 가시겠습니까?”
협회에서 온 요원은 거절당하는 일이 흔한지 흔쾌히 물러났다.
“김세용 헌터가 있는, 검룡 클랜으로 가고 싶어요!”
성유나의 말에 클랜 간부와 협회 요원의 표정이 난감하다는 듯 변했다.
“그…… 아무리 특급 추천장이라고 해도 최상위 클랜의 정규 공대원은 되기 힘들 겁니다.”
“차라리 중견 클랜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검룡 클랜에 입사가 안 된다는 건가요?”
“입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C급 2차 각성자가 가 봤자 의미 있는 일은 하지 못할 겁니다.”
지금 상태에서 검룡 클랜으로 가봤자 용의 꼬리는커녕 털도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괜찮아요!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건 자신 있어요.”
하지만 성유나는 괜찮았다.
‘특급 추천서! 이거 한 번 쓰면 더 못 쓰잖아.’
성유나의 최애 중에 쵀애, 김세용 헌터가 있는 클랜에 들어가는 것은 오래전부터 꿈이었다.
비록 말단 공대원이 되겠지만, 깡촌에 있는 중소기업 정규직이 될 바엔 서울 중심가의 대기업 인턴 사원이 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그때 싸웠던 것을 생각해 보면 렌슬렛의 평기사는 최소 B급 이상이야.’
무엇보다.
‘내가 계약한 성좌, 뭔가 다른 성좌들과 달라. 등급이 오른다고? 성좌 포인트? 애초에 그런 게 있던가?’
성유나가 계약한 성좌는 뭔가 달랐다.
그녀가 지금까지 알음알음 알던 2차 각성 현상과 달랐다.
‘저 사람들에겐 말하지 말자. 애초에 믿지도 않겠지만.’
그녀의 전투 보고서도 반신반의하는 게 저들이다.
‘내가 굉장히 운 좋게, 간신히 몬스터를 무찔렀다고 여기는 놈들인데, 뭐.’
그래서 성유나는 자신 있었다. 실전에서의 실력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등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 알리겠어! 그리고,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성유나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헤에…….”
그렇게 점차 성장해서 1공격대의 메인 딜러가 되고, 김세용 헌터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게이트를 토벌하고, 그렇게 인정을 받고 사랑이 싹트고…….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2차 각성자라고 해도 C급은 1류 클랜에선…….”
“저 얼굴을 보세요. 저게 설득이 가능한 얼굴일지.”
그런 성유나를 보던 두 사람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보상금을 받자마자 성유나는 이사를 갔고, 일부는 보육원에 보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의뢰했다.
이어서 빚을 갚고, 부러진 검을 팔고는 새 장비를 구입했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중고지만 차까지 샀다.
트럭 택시에 올라타서 짐짝처럼 이동하는 것은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이 많은 돈을 다 써 버렸네, 헐…….”
그렇게 이것저것 사고 나니, 그녀의 수중에 남은 돈은 한 달치 생활비가 전부였다.
“아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유나, 파이팅!!”
하지만 성유나는 시무룩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과 설렘이 가득한 얼굴.
“아차, 첫날부터 늦으면 안 되지!”
왜냐면 오늘은 대한민국 최고이자 세계 일류 클랜인 검룡 클랜으로 출근하는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저어,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그리고 자신감 가득했던 성유나의 기분은 출근하자마자 혼란 속으로 빠져 버렸다.
“C급 각성자 아니세요?”
“네, C급 각성자예요.”
“네, 그래서 여기에 배치된 건데요?”
“하지만 여긴…….”
성유나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내부를 바라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책상.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수십의 사람들
타다다다탁타탁, 띠르르릉.
자판기 두들기는 소리와 간간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네, 경영지원실입니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서 말하는 사람들의 대사들.
‘C급, 그것도 2차 각성자인데 왜 내가 사무직을?’
아무리 그래도 잡몹이나 잡템을 줍는 일부터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자판 두들기고 전화 받는 화이트 칼라라니.
“아아.”
성유나를 안내하던 직원은 그녀의 표정을 보곤 대충 이해한 듯 입을 열었다.
“C급이라서 공격대원으론 불가능해요. 검룡 클랜의 공격대는 최소 A급 게이트부터 공략하기 때문에, B급 헌터부터 게이트에 투입돼요. 잡몹과 잡템 수거도 C+급 이상부터만 할 수 있어요.”
성유나의 등급은 간신히 C다. 그것도 임시 C등급. 사실상 C-급이다.
턱걸이, 반올림으로도 힘들다.
“그리고 경영지원팀이라고 해서 게이트에 전혀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요. 종종 부산물 분배 업무나 보험 평가 자료 구할 때, 게이트에 들어가니까요.”
직원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경영지원팀의 절반은 비각성자지만, 나머지 절반은 각성자들이에요. 유나 씨처럼 2차 각성을 했지만 등급이 낮은 C급 각성자도 일곱인가 있어요. 그분들은 다른 비각성자들보단 급여 부분에서 많이 받으니까 너무 상심치 마시고…….”
‘아니, 무슨 각성자를 사무직으로 굴려?!’
옆에서 직원이 뭐라 떠들어 댔지만, 성유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1류 클랜인 걸까?
각성자 인재 풀이 상상을 초월했다.
중소 클랜에선 현장에서 중역처럼 뛰었을 각성자가 이곳에선 화이트칼라로 일하고 있을 줄이야.
“자아, 여기가 유나 씨 자리예요.”
어느덧 성유나는 ‘성유나 헌터’가 아닌 ‘성유나 사원’ 혹은 ‘성유나 씨’로 불리고 있었다.
“어, 그, 제가 뭘 해야…….”
성유나는 무너져 가는 멘털을 잡으며 물었다.
“첫날부터 일을 시키진 않아요. 그냥 오는 전화 받으면서 조직도 보시면서 적응을 하세요. 자, 여기 업무 기본 매뉴얼이 있으니 참고 하시고…….”
안내 직원의 말을 들은 성유나는 사무실의 자리에 앉았다.
그녀 앞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는데, 더블 모니터로 되어 있었다.
바탕화면에는 검룡 클랜의 로고가 있었고, 컴퓨터 옆에는 전화기와 서류함이 배치돼 있다.
타다다닥, 띠르르르.
“감사합니다. 검룡 클랜 제1경영지원실…….”
“지난번 과천 게이트 부산물 건 어떻게 됐어? 왜 아직 결재가 안 올라와?”
숨 막히는 사무실의 공기.
성유나는 차라리 B급 게이트 안에서 단신으로 활약했던 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커, 컴퓨터, 이거 어떻게 하는 건데?’
컴퓨터는 켜져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마우스고, 이건 키보드인 것은 알지만.
‘태어나서 컴퓨터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있어야지.’
보육원에서 자라오다가 막 각성해서 몸으로 벌어먹던 그녀다.
대균열로 10년 넘게 정부와 공교육이 무너졌고, 보육원에서도 당연하겠지만 양질의 교육은 없었다.
기본 교재도 없는 판에 컴퓨터 수업은 상상도 못 했다.
“으으…….”
성유나는 패닉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둬?’
퇴사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어떻게? 하루도 못 버티고 갔다간 이쪽 업계에 쫙 소문 돌 텐데…… 특급 추천서까지 써놓고.’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관두면? 당장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건데? 일용직 일도 전처럼 쉽게 하지 못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차 각성을 하게 되면 최하급 헌터들이 하던 일용직 일을 하는 데 제한이 심했다.
세금과 수수료가 배로 뛰었다.
옛날에 골목상권 살린다고 대형 마트 규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거기, 신입인가?”
“네, 네!”
그때, 멍하니 앉아 있는 성유나를 향해 건너편의 한 여성이 말했다.
“이 자료 좀 보기 좋게 작업 좀 해 줄래? 메신저로 파일 보내줄게! 27번 컴퓨터군.”
그러면서 어떤 파일을 보냈다고 하던데, 성유나가 보고 있던 모니터에 메신저가 왔다고 작은 알람이 오른쪽 구석에 표시됐다.
‘아니, 첫날에는 일 안 시킨다며!’
성유나의 눈이 떨렸다.
“설마~ 특급 추천서로 온 C급 각성자라고 이런 쉽고 사소한 일을 못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들리는 여직원의 비꼬는 듯한 말투.
‘저거, 노린 거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떡하지?’
성유나는 초조했다.
[렌슬렛의 평기사가 당신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그때, 계약 이후 그동안 조용하던 성좌가 나타났다.
[렌슬렛의 평기사가 칭호 변경을 제안합니다] [변경 칭호 : 군주의 비서관] [소모 성좌 포인트 : 500] [현재 성좌 포인트 : 1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