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23
23. 깨지기 쉬운
지금 내가 보는 제인의 모습은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확실히 제인의 변화에 내 존재가 많은 영향을 준 모양이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니 왕녀냐고 묻기가 꺼려지네.’
그녀가 과거는 잊고 평범하게 사는 삶을 원한다면, 그리될 수 있게 축복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간만에 둘만 있게 되었는데도 나는 좀처럼 제인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제인의 오해는 더 깊어 가겠지.
“식사 안 했으면 식사나 같이 할래요?”
나는 아까 제인이 가려다 못 간 고급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긴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저택서 돈을 많이 안 들고 온 제인에겐 부담이 됐다.
“제가 살 테니 걱정 마세요. 저는 렌슬렛의 기사이자 공작 부인의 비서관입니다. 급여도 배로 받아요. 무엇보다 어떻게 기사가 시녀에게 얻어먹겠습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도 있는데.”
실제로 급여를 더블로 받진 않지만, 비서관 일도 겸하기 때문에 수당을 좀 더 받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 영약이 이제 막 팔리기 시작해서 이로 인한 자잘한 수익도 제법 됐다.
“으음~ 정 그게 마음에 걸린다면.”
제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말이지만, 나에게 진 빚이 많은 제인은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은가 보다.
“그렇다면 조만간 제가 필요한 거 하나만 선물로 사 주세요.”
“선물요? 어떤 선물을?”
당장 내게 없으면서 종종 쓸 것 같고 제인에게 부담 안 될 만한 물건을 생각했다. 답은 이내 곧 나왔다.
“손수건이나 괜찮은 것으로 선물해 주세요.”
이노도 그렇고 아리아도 그렇고, 아직 내게 그 손수건을 돌려주지 않았다.
두 사람도 최근 경황이 없다 보니 이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겠지만.
“최대한 이쁘고 좋은 것으로 구해 볼게요!”
내 말에 제인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나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 * *
“바보 언니, 그러게 저택에서 버티지 또 내 말에 넘어가서는.”
방금 휴대용 마법 통신구에서 온 전보를 본 앨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휴대용 통신구는 제국 현자의 탑에서 만든 최신 아티팩트다.
왕국에선 현재 폰테임 후작가만 가지고 있는, 전략 무기에 가까운 아티팩트였다.
통신구 값도 값이지만 1회 사용 시 소모되는 마석량도 장난 아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마치 편지 쓰고 받듯이 이 휴대용 통신구를 사용했다.
현재 가문의 세가 왕실을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폰테임 후작가이기에 가능했다.
‘이래서 우리 언니, 시집이나 가겠어?’
앨리스는 혀를 찼다.
거의 한 달 전에 카디나와 함께 어렵사리 렌슬렛으로 왔다.
폰테임 후작의 반대가 있었지만, 카디나가 호위하기로 했고 렌슬렛 시는 몬스터로부터 안전했기에 결국 허락을 받았다.
앨리스는 부유한 상인 가문의 여식으로 위장하여 간신히 여행 삼아 올 수 있었다.
“보아하니 우리 언니는 임무 실패인 거 같고, 나라도 임무를 수행해야 아버지가 삐지지 않으실 텐데.”
딸에게 후작령 밖으로 외유를 보내 주면서 “잘 놀러 오렴”이라고 손수건 흔들어 줄 폰테임 후작이 아니다.
그런 성격이었다면 반정을 주도하고 왕국 최고의 귀족이 될 수 없었겠지.
당연히 카디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앨리스에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앨리스 너에겐 옛 룬-아르미다츠 왕가의 왕자와 왕녀를 찾는 일을 맡기마. 마지막 기록이 렌슬렛에서 끊어졌으니, 간 김에 흔적들을 조사해 보렴.”
고작 13살의 소녀에게 주어진 임무.
카라스도 10년 가까이 후작가의 정보력으로 조사했으나 결국엔 찾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남들 모르게 후작의 꾀주머니 역할을 하던 앨리스였기에 후작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언니를 북부 산맥으로 보낸 사이에 열심히 찾아봤지만, 으음~ 정말 못 찾겠단 말이지.”
앨리스는 식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초상화를 보았다.
초상화의 인물은 5세 정도의 여자아이로, 약 10년 전에 수도에서 유행했던 최고급 드레스를 입었다.
연갈색 머리에 에메랄드 같은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 ‘제인 에어 마누스 룬 아르미다츠’.
왕세자 로지스트 마누스 룬 아르미다츠도 있지만, 너무 어렸을 때라 초상화를 구할 수 없었다.
“크면 꽤 예쁘겠네?”
앨리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혼자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왕녀의 어릴 적 사진을 감상했다.
당시 왕국의 이름난 궁정화가가 그린 것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슬슬 들어가야 할까? 아랫것들이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약 먹을 시간도 다 된 것 같고.’
모처럼 아무 시선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지금의 여유를 포기하기 아쉬웠다.
이 순간을 위해 비싸디비싼 각종 마법 아티팩트를 몸에 두르고 온 것이 아닌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평범한 성인 여성으로 보이게 해 주는 변장 아티팩트와 시선을 분산시켜 주는 아티팩트 등, 후작가 정보부에서 귀하게 쓰는 아티팩트를 구하느라 보통 고생을 한 게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점심이 지나서 그런지 한산하군. 괜찮은 자리가 있나?”
“네, 경치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민하던 중에 두 사람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내부는 한산했기에, 두 사람은 앨리스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이렇게 평범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지 않고 남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운 앨리스는 그 두 사람을 관찰했다.
‘남자는 잘생겼고 여자는 예쁘네? 되게 잘 어울린다!’
늦은 가을. 감수성 예민한 13세 사춘기 소녀의 가슴에 두 사람은 묘한 흥미와 흥분을 주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러던 중,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어디서 본 느낌이다.
‘남색 머리에 붉은색 눈동자? 붉은색 눈동자가 흔하지는 않지?’
무엇보다 저 여자.
앨리스는 식탁에 놓인 초상화와 눈앞의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연갈색 머리에 에메랄드 빛의 녹색 눈동자.
이목구비가 초상화의 인물과 너무도 닮았다.
무엇보다 몸에서 풍기는 기품이 저 여자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렸다.
‘헐.’
그토록 힘들게 찾았던 대상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그리고 남자 쪽은 남색 머리에 붉은 눈에 넓은 어깨와 잘생긴 얼굴. 그 유명한 로니아드 비서관인가?’
로니아드를 본 앨리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만약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저 남자는 한 손엔 공작 부인을, 다른 한 손엔 왕녀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앨리스가 봤을 때, 반정으로 왕국을 전복한 자신의 아버지 카라스 폰 폰테임보다 눈앞의 남자가 더 대단해 보였다.
‘언니는 끝났네.’
카디나가 뭘 어떻게 하기엔 경쟁 상대가 너무 강하다.
“그렇다면 왕녀가 맞는지 최종 확인을 해야 하는데.”
앨리스는 식탁 위에 놓인 초상화를 숨겼다.
작은 핸드백처럼 생긴 가방에 초상화가 쏙 들어간다.
이 가방 또한 마찬가지로 제국에서 사 온 공간 마법 가방이다.
초상화를 넣은 앨리스는 이어서 가방 안에서 뭔가를 다시 꺼냈다.
고급스러운 원판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과거 반정 당시에 내가 왕궁에서 훔쳐, 아니, 전리품으로 가져온 아티팩트다. 왕실 가보로 마누스의 피를 이은 아르미다츠 왕족을 판별하는 용도지. 의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까이 접근해서 사용하거라.”
폰테임 후작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앨리스는 천천히 디저트를 음미했다.
그러면서 두 눈은 로니아드와 제인 두 사람을 관찰했다.
“손수건은 동방의 비단 손수건으로 선물할 거예요!”
다짜고짜 내가 부탁한 선물에 대해 입을 연 제인을 보면서 나는 방긋 웃었다.
“동방의 비단은 굉장히 비쌀 텐데,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나의 우려에 제인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시녀 일 하면서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이 꽤 돼요! 지금 돈이 모자란 이유는, 저택에서 많이 안 들고 온 것도 있지만 여분의 돈주머니를 잃어버려서…….”
당당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는다.
보아하니 내가 그녀를 발견하기 전에도 몇 번의 소매치기를 당한 듯하다.
‘무슨 보물 고블린도 아니고.’
막상 본인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평생 공작성에서만 살다 보니 이 아가씨도 세상 물정에 어둡다.
“공작 부인께선 잘 챙겨 주시나요?”
“네, 고아였던 저를 거둬서 지금까지 키워 주신 분이세요. 거기다 저를 좋게 보셔서 따로 챙겨 주시기까지 해요.”
“잘됐군요.”
“네! 참 감사한 분이세요.”
하긴 이노의 성정에 매몰차게 대하진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왕녀가 아닌가? 추후에 정치적으로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서라도 별도 대우를 해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제인과 고급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나왔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할 거 같아요.”
제인은 디저트를 빠르게 먹으며 말했다.
시간이 촉박해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일까?
“하긴, 곧 저택 통금 시간이군요.”
입에 조각 케이크의 크림을 묻히며 말하는 제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도도한 왕녀님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어 간다.
일반적인 시녀라면 휴가 중에 집에 갔다 올 수라도 있겠지만, 고아인 제인은 저택에서 숙박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요. 저택까지 안내해 드릴 테니 어서 가요.”
나는 레스토랑에 배치된 냅킨으로 제인의 입술 주변을 닦아 줬다.
내 손길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레스토랑을 나선 나는, 아까 식사를 하면서 느꼈던 시선을 의식하며 제인을 에스코트했다.
‘저 여자인가?’
뒤에서 평범한 인상의 여성이 따라오고 있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몇 분 지나면 기억나지 않을 인상이었다.
‘마법이군.’
미행하는 여자로부터 마법의 냄새가 났다.
“빨리 가면 좋을 테니 골목을 이용하죠?”
나의 제안에 제인이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누가요?”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고, 내 얼굴을 본 제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건달들이.”
골목에 들어서면서 굴러다니는 각목을 하나 들었다.
퍼억, 퍽! 쿠엑!!
“자, 잠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한눈에 딱 봐도 건전한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놈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다짜고짜 쥐어팼다.
그렇게 던젼을 도는 모험가처럼 렌슬렛 시의 골목을 주파했다.
제인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으면서 내 뒤를 잘 따라왔다.
“허억, 헉. 아니 무슨 저런 식으로…….”
앨리스는 그런 로니아드와 제인을 쫓았다.
하지만 운동이라곤 평생 승마 정도만 간신히 했던 그녀다.
기사의 체력과 노동으로 단련된 시녀의 체력을 따라갈 순 없었다.
‘눈치챈 건가?!’
앨리스는 강한 아까움을 삼켰다.
‘어쩔 수 없지. 지금 파악한 정보로 일단 만족을, 허억…….’
쿠웅―.
이만 돌아가려던 앨리스는 갑자기 시작된 가슴 통증에 주저앉았다.
“하필이면 지금 발작이! 끄윽!!”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병사들도 잘 안 가는 골목에서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로니아드의 각목에 맞아 쓰러진 건달들이 언제 깨어날지 몰랐다.
‘이렇게 죽으면 오빠들이 날 엄청 비웃을 텐데!’
두 청춘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아주 경솔한 짓을 해 버렸다.
쓴웃음이 났다.
그렇게 의식이 희미해질 때였다.
“비서관님, 무슨 일인데 갑자기 되돌아가세요? 어머!”
앨리스가 쫓던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로니아드라는 남자의 실루엣이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아아아!!’
죽음의 문턱에서 앨리스는 태어나서 처음 환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