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25
25. 우리식 거리 두기
단순히 하이든만 죽이고 모든 게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세상 어디든 그렇게 간단히 끝나는 문제는 없다.
심지어 공작가의 가주를 바꾸는 문제다.
지금 나와 이스, 휘닉스를 비롯한 렌슬렛 공작 부인파의 원로급 핵심 인재들이 모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상속과 관련된 법은 신성 시대의 율법을 지키고 있어서 다행이야.”
“은의 시대니 뭐니 해도, 아직 바뀌지 않은 것도 많죠. 특히나 상속 같은 경우엔 더더욱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가장 먼저 법적인 문제, 상속 문제인데, 현재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신성 시대부터 이어 온 상속법을 따른다.
영주나 가주가 백날 유언을 써도 개인이 소유한 현물 정도만 상속 가능하다.
영지나 사업체 같은 것은 종교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즉, 가주가 죽으면 아내와 성인이 된 자녀 중 가세 증진에 기여한 자가 차기 가주가 된다. 이것이 신성 시대의 율법이라는 것이죠?”
“그래, 아내가 원치 않더라도 자식이 성인이 되지 않으면 임시로라도 가주가 되어야 해.”
이 세계의 법까지는 잘 모르기에 나는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 합리적인 거 아닌가?’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지. 내용을 끝까지 보게.”
대신 아내의 경우 가주가 된 후 재혼이 금지된다. 만약 결혼을 하려면 교단의 허락을 받고서 죽은 남편의 혈족과 해야 했다.
가주가 된 후에 교단의 허락 없이 사적으로 남성과 만나게 되면, 가주 자격이 박탈된다.
그리고 교단의 중재를 통해 죽은 남편의 가장 가까운 혈육에게 증여된다.
‘아니구나. 이걸 악용하면 진짜 골치 아파지네.’
상속법에 대한 내용의 뒷부분까지 보니, 이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용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가주가 된 아내에게 억압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나 교단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저는 교단 쪽은 잘 모르는데,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다행히도 교단은 걱정 안 해도 되네. 공작령에도 있긴 한데, 그리 크지 않아. 애초에 몬스터가 자주 창궐하는 영지에는 교단 사제들이 잘 오지도 않아. 와 봤자 돈 안 되는 병사들이나 치료해 줘야 하거든.”
“그리고 지금 렌슬렛에 계시는 주교님은 공작 부인과 사이가 아주 긴밀한 사제님이셔. 이걸 악용할 분은 아니야.”
휘닉스가 먼저 답했고, 뒤이어 이스가 부연 설명을 해 줬다.
“그렇다면 법적인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보고. 이제는 사람이 문제군.”
“국왕은 율카네스 님이, 하이든 공작은 우리가 담당한다면, 폰테임은 어쩌지?”
아까 내가 이곳에 폰테임의 영애가 왔다고 하니 다들 이 문제가 걸리는 모양이다.
“폰테임뿐만이 아니야. 요즘 들어 잠잠한 공작파 놈들도 대비해야 해.”
“그놈들이야 지금까지 믿고 따르던 주인이 자신들을 버렸으니 혼이 나간 상태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감시를 붙여야 합니다.”
회의는 밤새 이어졌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화 되었고, 상황에 따른 여러 시나리오가 써졌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지금 이렇게 만나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네.”
“다들 그날에 각자 맡은 역할을 해 주기 바라지.”
“무운을 비네.”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마지막에 결정한 방안으로 결전의 날 행동하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한 자들과 헤어진 후, 나와 이스는 저택으로 복귀했다.
휘닉스는 아직 치안대장의 업무를 해야 해서 함께 가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스, 아까 회의에 참석한 자들 중에 배신자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지?”
“뭐,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부른 것이지만, 갈등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긴, 그것까진 어쩔 수 없겠지.”
역시나 어딜 가든 사람이 문제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나 혼자서라도 이노와 제인 그리고 아리아만은 지킬 수 있게 대비를 해 놔야 했다.
저택에 복귀하자마자 비서관 업무를 진행했다.
이제는 내가 행정관인지 기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근래 얼굴 보기가 힘드네.’
아리아는 종종 보지만 공작 부인 이노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심지어 비서관인 내가 말이다.
‘내가 렌슬렛에 쭉 붙어 있을 순 없으니 이게 맞아.’
갑자기 장르가 영지물이 되지 않는 한, 나와 이노는 이제부터라도 거리 두기를 해야 했다.
그녀에 대해 서운했던 감정 또한 새벽 회의에서 본 상속법을 본 순간 싹 사라졌다.
‘아서라. 책임질 수 없으면 미련조차 두면 안 돼.’
이런 건 익숙하다. 지구에서도 늘 선택했던 마음가짐이다.
그렇게 서류를 정리하고, 집무실 옆에 마련된 비서관실을 나왔다.
비서관실에 나오자, 이노가 복도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갈색 머리에 검정색의 고운 눈동자. 창문을 뚫고 비추는 햇빛이 이노를 감싼다. 햇빛을 머금은 그녀가 눈부시다.
저벅, 척.
그녀는 걷다가 비서관실 문 앞에 선 나를 보더니 걸음을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걸었다.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애써 태연히 입을 열었다.
“로니아드 경, 잘하고 왔나요?”
밤새 했던 회의에 대한 물음이다.
“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노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자세히 보니 근래 얼굴이 많이 수척해진 듯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직접 그 소리가 나오게 할 순 없다.
“공작 부인.”
이노 또한 내게 뭘 말하려고 했지만, 내가 선수를 쳤다.
이노의 덜컹하는 심장 소리가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처억, 척!
나는 오른 주먹을 심장 쪽에 올리는 경례를 취하곤 말했다.
“이제 곧 결전의 날입니다. 기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비서관직을 사직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이노는 떨리는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인지, 갑갑함의 한숨인지, 슬픔의 한숨인지, 그녀만 알겠지.
“네, 비서관, 아니, 경의 말이 지당해요. 지금 이 시간부로 로니아드 칸브라만의 비서관직을…… 비서관직을…… 해제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주군이시여.”
나는 짧게 감사의 경례를 표하곤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멀리서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걸로 된 거다.
* * *
결전의 날이 왔다.
아리아의 생일로부터 불과 3일 전, 렌슬렛 영지의 남쪽 경계를 지키던 검문소에서 긴급 마법 통신이 왔다.
―공작의 깃발을 든 대규모 부대가 통과함.
―렌슬렛 공작 개인의 기사단과 마법 병단 그리고 사병들로 추정됨.
―중간중간 왕실 소속 기사들도 보임.
―폰테임 깃발은 보이지 않음. 숫자는 약 1천.
꾸깃.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마법 통신문을 한 손으로 구긴 휘닉스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런 휘닉스 옆에 담담히 서 있었다.
‘원작에서 휘닉스와 이스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어. 그렇다는 것은 원래 이들의 운명은…….’
나 한 명의 개입으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흐름은 크게 바꿀 것이다.
‘이놈의 몸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
무엇보다 나는 내 실력에 자신이 있다.
빙의 후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 몸의 능력이 처음 생각보다 더 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개 근위 기사 출신이 이 정도가 될 수 있나?’
말도 안 된다. 지난번 왕실 기사와 겨뤄 보지 않았던가?
물론 10년 전의 기사와 지금의 기사 수준이 많이 차이 난다지만, 기본적인 신체 스펙부터 너무 차이 났다.
“저택에 있지, 왜 공작성까지 기어 온 것이냐?”
딴생각에 잠겨 있던 나의 상념을 깨운 것은 휘닉스였다.
“공작 부인께서 마음을 잡으신 거 같아서요.”
내 말에 휘닉스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그래, 그게 그분의 뜻이라면. 이스 그 녀석이 잘해야 할 텐데.”
“아드님은 제가 아는 렌슬렛 기사들 중에 가장 뛰어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무렴 자네만 할까?”
전투의 초조함을 이기기 위해 잡담을 나눴다.
“온다!!”
“마법 통신에 의하면 기사는 약 150, 마법사 20, 병사 600, 나머지는 기타 보급 및 지원 인력이라 합니다.”
지금 나를 비롯한 일선의 결사대는 공작성에 나와 있었다.
공작성을 지나야 저택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병력이 전부입니까?”
“그래,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자들은 전부 북부로 돌렸네. 그곳에서 몬스터나 막고 있으라고.”
빠질 사람은 다 빠지고 결사대만 모으니 기사는 40, 마법사는 셋, 병사는 200명이었다.
만약을 위해 저택 수비에 배치한 100여 명의 병력까지 포함해도 열세다.
‘아무리 수비라고 해도 병력 면에서 차이가 심해. 특히 기사와 마법사가!’
“전투가 시작되면 저는 적진 한복판으로 달려가 공작의 목을 벨 것입니다.”
“……정말로 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전력으론 크게 불리합니다. 오히려 놈들이 용병까지 고용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입니다.”
부족한 전력차를 좁히기 위해 이노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이웃 영지에 지원도 요청해 보고, 용병단에 직접 방문해 고용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폰테임과 왕실의 입김 때문인지 아무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공격! 반란군 놈들을 죽여라!!”
“와아아아아!”
마침내 전투가 시작됐다.
스르릉.
나는 검을 뽑고는 휘닉스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 나를 휘닉스는 말없이 응시할 뿐이다.
“무쌍에 어새신 장르까지 섭렵해 보자!”
온몸에 마나를 잔뜩 분배했다.
지금까지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명치 속의 마나가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내 몸에서 회색 아지랑이가 일었다.
파밧.
단숨에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나는 이내 엄청난 빠르기로 공작의 깃발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누구냐!”
“반란군 기사놈이다!”
“잡아라!!”
아아, 저 진부한 대사들.
서걱, 채앵, 서걱.
빙의 후 처음으로 전력을 발휘한 상태다.
놈들의 움직임은 느렸고 나는 허수아비를 베는 느낌으로 놈들을 두 동강 냈다.
그들이 입은 기사 제복의 방어 마법도 마나를 가득 담은 나의 검에 허무하게 잘렸다.
곧장 공작의 깃발이 있는 곳 가까이 접근했다.
꼴에 기사 제복을 입고 투구로 얼굴을 가린 공작이 뻔뻔하게 서 있었다.
“막아라! 막아!!”
한 번의 착지. 내가 땅에 내려오자마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내게 달려든다.
부우우웅, 휘기기기긱.
검을 사방으로 휠 윈드 하듯 한 바퀴 크게 돌렸다.
“크아아악, 내 팔!!”
“내 다리, 내 다리!!”
사지가 절단된 병사들이 허전한 자신의 팔다리를 쥐며 절규한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점프.
멀리서 바짝 얼음이 되어 나를 보는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점프한 상태로 암살하기 편하게 쇼트 소드를 꺼냈다.
“마법사들은 뭐 하나!”
하늘 높이 뜬 나를 공격하기 위해 마법사들의 화염구와 전기 마법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퍼엉, 퍼엉, 파짓!
몇 번의 마법 공격이 나를 때렸다. 하지만 제복의 마법 방어막이 공격을 막아 줬다.
몇 번의 공격이 더 가해졌고, 결국 기사 제복의 방어막이 그 효능을 다하곤 깨졌다.
그사이 나는 공작에게 내리꽂혔다.
파지지짓, 퍼엉, 푸우욱, 촤랑!
공작이 입은 기사 제복 방어막이 마나를 가득 담은 나의 쇼트 소드를 막았다.
하지만 이내 못 이기겠는지 스파크를 튀기며 깨졌다.
그리고 나의 쇼트 소드는 무방비한 공작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크어어억!”
공작은 비명을 지르며 나와 함께 말 위에서 떨어졌고, 떨어지면서 그의 투구가 벗겨졌다.
“빌어먹을!”
투구가 벗겨진 그의 얼굴을 본 나는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너무 수준 미달이더니만, 여기가 용병이었군.”
내가 방금 심장을 찌른 공작은 가짜였다.
언제가 본 듯한 얼굴. 지난번 공작과 함께 따라온 기사인 듯하다.
잠시 멈칫한 나를 향해 용병, 기사, 마법사, 병사가 무기를 겨누고 포위해 왔다.
“미안하지만 네놈들은 저어기 공작성에서 상대해 주기로 했어.”
놈들은 방금까지 나의 위용을 봤는지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흐읍!”
나는 가장 거슬리는 마법사들을 향해 검격을 날렸고
“피해!”
“아아악!!”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작성 너머 저택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뭐야?! 벌써 해낸 것인가?”
성벽으로 복귀하는 나를 보며 휘닉스가 환한 표정으로 외쳤고, 나는 굳은 얼굴로 저택을 가리켰다.
“×발, 어서 가! 어서!!”
내 표정에 사색이 된 그가 전투 중임에도 길을 터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