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31
31. 조져 봐요, 귀신의 숲 (1)
물론 지구의 현대전이, 마법과 냉병기로 싸우는 이세계의 전투와 같을 순 없다.
하지만 군 복무 시절의 경험과 시간 날 때마다 읽은 이세계 병법서가 만난다면?
‘대형도 안 짜고 산개해서 오는군. 상대편도 개병신이야.’
말을 타면 쉽게 발각될 거 같아 두 발로 빠르게 주변을 순찰했다.
‘이런 바보들에게 당해서 도망치다니, 도망간 장교들은 얼마나 더 병신인가?’
다행히 숲이 사방을 막고 있어 적들의 진격이 정체되었다.
“이렇게 숲까지 도망친 것은 누구의 계획이었지?”
“저, 접니다! 여기 병사들 모두 어릴 적부터 다니던 숲이라 익숙해서 그랬습니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잘했다. 패가스, 자넨 이제부터 원사다.”
“예에…….”
대답하는 패가스의 표정은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그게 뭔데, 씹덕아!’라는 표정과 유사하다.
“기사님, 고참 병사들을 전부 불러 모았습니다.”
패가스는 이상한 소리나 해 대는 나를 보며 미심쩍은 얼굴을 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이곳의 유일한 기사인데.
“자네들이 이 부대에서 가장 짬, 아니, 제일 경험이 많은 병사들인가?”
“예! 맞습니다. 다들 최소 8년 이상 징집 경험이 있습니다.”
“징집? 상비군이 아니라?”
“상비군? 그건 또 무엇인지?”
“병사가 직업이 아닌가?”
징집병치고는 다들 무장도 그렇고 허우대가 멀쩡했다.
“군역도 겸사겸사 지고는 있지만, 평소에 저는 사냥꾼이 직업입니다.”
“지는 짐꾼이 직업입니다요.”
“가끔 자경대 일도 합니다.”
이제 원사가 된 패가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왕국에서 오신 기사님이시군요. 어째 억양이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래, 체스카드에서 왔다.”
“체스카드? 아르미다츠 말씀이시군요. 거긴 참으로 발전이 잘된 나라라고 들었지요.”
패가스를 비롯한 병사들은 다른 왕국에서 온 나를 신기하다는 듯 보면서 설명을 해 줬다.
“여기 있는 우리는 폴라라스 영지의 자유민입니다.”
“저희는 평상시에 생업에 종사하다가, 월 단위로 자경대 일도 돌아가면서 합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전쟁이 터지면 징집도 됩니다.”
향토예비군 같은 느낌인가?
“그렇군. 이해했다. 평상시 경험이 있어서 군인 느낌이 났군.”
“하하, 저희 영지가 농사를 짓기엔 좋지 못하다 보니, 다들 사냥이나 길 안내, 짐꾼 일을 생업으로 삼습니다.”
“이게 또 하나같이 군역과 연관되는 일이다 보니, 여러모로 익숙한 편입니다.”
“주변 영지에서도 폴라라스 출신이라 하면 인정해 주지요!”
그렇게 인정받는 놈들이 왜 연전연패를 당해 여기에 고립된 거냐, 라는 의문이 샘솟았다.
‘어딜 가든 윗놈들이 문제지.’
뭐, 답은 바로 추론 가능했지만 말이다.
“무장도 자네들이 직접 준비해 오나?”
나는 병사들이 들고 있는 무기와 가죽 갑옷을 보며 물었다.
자세히 보니, 규격도 품질도 제각각이다.
딱히 조잡하거나 품질이 낮은 건 아닌데, 뭐랄까? 군용으로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달까?
“네, 맞습니다!”
자랑스럽다는 듯 해맑게 웃는 패가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징집되는 것도 억울한데 무기와 갑옷도 개인이 준비하다니. 이게 바로 중세 감성이군.’
중세에서 이제 막 벗어난 세계에 뭘 바라겠는가?
그나마 다들 생업으로 쓰던 거라 전반적으로 관리는 잘되어 있다.
‘이노가 확실히 깨어 있는 귀족이었구나.’
나는 렌슬렛의 군사 시스템을 떠올렸다.
상비군 체제에 말단 병사부터 기사까지 등급별로 지급되는 통일된 무기와 방어구.
렌슬렛의 이노가 대단한 것이다.
“짬순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도록.”
“기사님? 짬은 또 뭘 뜻하는 겁니까?”
무의식적으로 지구에서의 단어를 써 버렸다.
“……군 경험.”
나는 아차, 하면서 어색하게 이 말도 안 되는 단어를 해석해 줘야 했다.
“아하!”
“요즘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말인가 보네?”
“뭔지 모르지만 어째 혀에 착착 감기는데?”
“아르미 기사들이 쓰는 거니까 뭔가 좋은 단어겠지.”
패가스를 비롯한 고참 병사들은 내 입에서 나온 짬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곧장 자기들끼리 쓰기 시작했다.
“야! 네가 왜 내 옆에 서는데? 나랑 짬도 반년씩이나 차이 나는 게?”
“짬을 기간으로 따지면 섭하쥬. 지는 징집만 여섯 번 당했슈!”
“…….”
서로 자기가 몇 번, 또는 얼마나 어릴 적에 징집당했나로 티격태격하고 있다.
‘전국 노예 자랑하냐?’
자유민 맞아? 참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고참병에게 각자 하사, 중사, 상사의 계급을 부여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부사관이다. 쉽게 말해 장교와 병사의 중간에 위치한 허리 같은 존재지.”
내 말을 들은 고참 병사들의 표정이 상기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신분이 오른 기분이다.
“지금 총원이 몇이지?”
“헉! 패가스, 너 숫자 셀 줄 알잖아?”
“젠장! 난 90 이상 세 본 적이 없다고!”
“…….”
숫자 계산이 나오자 고참 병사들은 ‘그게 뭐예요? 먹는 건가요?’라는 얼굴을 한다.
나는 점점 피부로 다가오는 중세 감성에 혀를 끌끌 찼다.
‘뭐 이번 일만 끝나면 헤어질 사이니.’
결국, 내 질문에 병사가 아닌, 전쟁 상인의 고용인이었던 필립이 보고했다.
“기사님까지 해서 총 217명입니다. 저를 포함한 비전투원 47명을 포함한 수입니다.”
필립의 보고를 들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적들은 어느새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다.
“패가스, 너희들은 이 숲의 어디까지 깊숙이 갈 수 있지?”
“커다란 검은 떡갈나무가 있는 곳까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은 저희도 자신 없습니다.”
“검은 떡갈나무? 여기서 먼가?”
“그렇게 멀진 않습니다. 점심을 천천히 네 번 먹으면 도착합니다.”
그건 또 무슨 시간 계산법인가?
‘대략 두 시간 정도려나?’
대충 계산 후 추가로 질문을 했다.
“지금 이 인원을 전부 데리고 간다면?”
“전에 길 안내도 해 봐서 아는데, 넉넉히 반나절은 걸릴 겁니다.”
“몬스터는?”
“거기까지가 딱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 경계입니다. 물론 맹수는 종종 출몰합니다.”
패가스의 말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필립에게 말했다.
“필립이라고 했나? 전쟁 상인이 가진 짐을 전부 열어 보도록.”
“예에?! 하지만 이 짐은 죽은 전쟁 상인뿐만 아니라 상회의 지분도 있는 짐입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패가스! 짐을 열어 봐라!”
“네!”
나는 필립의 말을 무시하곤 병사들을 시켜 전쟁 상인의 짐을 전부 열었다.
“멍청한 소리는 이번 한 번만 봐주겠다, 필립. 물건 장부를 가져와!”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나는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병사들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패닉 상태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마법 횃불을 비롯한 발광 아티팩트만 전부 꺼낸다. 나머지는 다시 덮도록.”
곧 사방이 어두워질 것이다.
‘카단 자작의 군대 또한 밤에는 숲에 못 들어와.’
아무리 멍청해도 본능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
“서, 설마?! 기사님, 밤을 이용해서 숲을 탈출하시려는 겁니까?”
패가스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 밤사이에 네가 말한 검은 떡갈나무까지 들어간다.”
내 말에 패가스와 필립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 * *
“도, 도착했다!”
“말도 안 돼! 이게 된다고?”
“길 안내 20년 하면서 밤에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야. 헛살았군, 허허허.”
길 안내 일을 해 본 병사들이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그들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뭐 마법 아티팩트가 없었다면 힘들었겠지.’
나도 전쟁 상인의 짐에서 마법 아티팩트들이 나오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짓이었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마법 횃불을 전부 꺼내 다섯 명당 하나씩 주었다.
10인대 별로 서로의 몸을 줄로 이어 낙오자 발생을 줄였고, 중간중간 섬광 아티팩트를 터트려 등대로 이용했다.
나 또한 눈에 마나를 분배하여 뒤처지는 자들을 챙겼다.
겸사겸사 맹수가 나오면 처리도 하고.
“맹수에게 당한 여덟 명을 제외하곤 모두 무사합니다.”
“다들 수고 많았다.”
필립의 보고를 들은 나는 그러려니 했다.
200 넘는 인원 중에 저 정도 손실이면 기적에 가까운 거다.
“모두 피곤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하고서 쉬자!”
내 말에 병사들이 피곤과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피곤하긴 하지만 저 별종 기사가 또 어떤 신기한 일을 벌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가슴 깊이까지 땅을 판다!”
병사들 눈에 담겼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 * *
날이 밝고 점심쯤이 되었다.
밤새 집결을 끝낸 카단 자작군이 숲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사이에 숲속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밤에? 숲속으로?! 미친 거 아닌가?”
“우리 카단 자작군의 무서움에 이지를 상실했군.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줬을 텐데.”
카단 자작군을 이끄는 상급 기사 아놀드는 폴라라스 패잔병의 흔적이 남은 숲속의 공터를 훑었다.
“어떻게, 이대로 냅둘까요?”
옆에 있던 하급기사 켐벨이 묻자 아놀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별동대를 조직하여 놈들을 추적한다. 이대로 둬서 살아남는다면 산적이 되어 두고두고 치안을 어지럽힐 거야.”
“알겠습니다! 내가 호명하는 자들은 이동 준비를 해라!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켐벨이 바로 시행하려 하자, 아놀드가 만류했다.
“지금 당장은 말고, 오늘은 푹 쉰 다음에 내일부터 준비하게. 오랜 추격으로 쉬지도 못했지 않은가? 티타임도 가지고 귀족답게 여유를 가지게.”
아놀드는 혈기 왕성한 하급 기사 켐벨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게나. 내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지. 자네가 전공을 세워야 내가 자네 아버지 볼 면목이 서니까.”
“감사합니다!”
아놀드는 이 소탕 임무를 이 하급 기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번 영지전은 너무 쉬웠다.
덕분에 눈앞의 하급 기사 켐벨은 지금까지 전공을 세우지 못한 기사였다.
풀이 죽은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라도 챙겨 주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 * *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알포인트?”
“예?”
“아니다. 문구가 아주 그럴싸하군.”
그럴싸하게 무서운 문구를 짜 보라 했더니 필립이 써 온 문구였다.
‘사람 생각은 어딜 가나 비슷한가 보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이대로 글을 파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곤 검은 떡갈나무 옆에 있는 바위에 글을 파기 시작했다.
단검에 마나를 담으니 스푼으로 푸딩을 푸듯 돌이 깎였다.
그렇게 준비된 글을 새긴 후에, 맹수에게 죽은 전사자의 피를 조금 챙겨서 글 위에 잔뜩 칠했다.
“기사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완성된 간판(?)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뒤에서 패가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을 검게 칠하고 옷 군데군데에 나뭇가지와 녹색 천을 붙인 병사들이 보였다.
다들 석궁을 들고 있었고 허리에는 쇼트 소드를 착용했다.
‘다들 사냥꾼 출신이라 석궁을 다룰 줄 알아 다행이야.’
이세계는 맹수도 지구의 맹수보다 가죽이 두껍다.
그래서 사냥꾼들도 활과 석궁을 같이 썼다.
추가로 병사들의 벨트와 배낭에는 마법 아티팩트가 챙겨져 있었다.
각각 은신, 섬광, 해독, 치유, 방어막 등이 인챈트된 일회성 아티팩트였다.
전쟁 상인의 짐에서 챙긴 군수품들이다.
충전식 아티팩트보단 훨씬 저렴하지만, 누구도 병사들에게 이걸 지급하진 않는다.
병사들의 무장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참호로 향했다.
‘귀신의 숲 테마 파크 개장이다.’
물론 입장료는 목숨이다.
* * *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뭐야, 이건?”
카단 자작군의 하급 기사 켐벨은 검은 떡갈나무 옆에 새겨진 불길한 문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의 피 같습니다.”
고참 병사 한 명이 글 위에 칠 된 피를 맛보고는 말했다.
“뭐라고 쓴 거야? 너, 글 알잖아?”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라고 쓰여 있는데?”
“아이, ×발. 장난 치지 말고!”
“지, 진짜라니까!”
순식간에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켐벨이 별동대로 함께 데려온 병력은 200명이었다.
“이딴 거에 겁먹지 마라! 신께서 잡귀 따윈 접근도 못 하게 막아 주신다! 아한-제르다!”
“아한-제르다!”
켐벨은 동요하는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앙을 이용했다.
그의 말에 병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성호를 그리며 안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켐벨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으려 행동했다.
“어디서 잡귀 따위가! 그래, 나 손에 피 ×나 많이 묻혔다!”
제복의 바지춤을 내리곤 비석 앞에다 오줌을 갈겼다.
훗날, 세계적인 공포 괴담으로 퍼지게 될 ‘폴라라스 숲의 악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