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33
33. 진상 규명
저편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키야아아앙~
몬스터쯤이야 혼자였다면 쉽게 상대 가능했을 터,
하지만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통솔하면서 상대하기엔 피곤하다.
이 정도까지 해 줬으면 각자도생하라며 버리고 갈 수 있겠지만.
그사이 전우애 같은 게 들었는지 그러기가 싫었다.
“자, 어서 숲을 빠져나가자!”
내 말에 그 누구도 의문을 던지지 않고 숲 밖으로 빠져나갔다.
숲 밖으로 나가면서 용병과 병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신도 눈에 띄었다.
“사제? 사제도 있었나?”
“아이 씨, 실수로 사제를 죽인 게 아닌가 몰라.”
백정처럼 살육을 즐기던 놈들이 사제의 시체를 보더니 갑자기 찝찝해 한다.
저들의 심정을 대충 아는 나는 사제들의 시신을 살폈다.
“우리가 죽인 게 아니다. 맹수에게 당한 상처야.”
“휴유~ 다행이다.”
“아한-제르다. 사제님, 부디 편히 잠드세요.”
병사들은 성호를 그으며 안도했다.
실제론 저놈들이 쏜 눈먼 화살에 맞아 즉사한 것이지만.
‘선의의 거짓말은 원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법이지.’
대충 눈치챈 패가스만이 애써 외면할 뿐이다.
앞서 행했던 일들이 터무니없는 난이도여서 그럴까?
밝은 날에 숲을 나오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처음 그들을 옥죄던 카단 자작의 군대도 말끔히 사라진 상태.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은 이 숲을 위한 괴담을 만들어 퍼트리겠지.
마침내 숲 밖으로 나왔다.
나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그토록 밝을 수 없다.
병사들은 신이 나는지 노래를 부른다.
[적진으로 진격 명령화살 세례에 굳어 버리고
가족 생각하며 용기 내려니
가족 생사 알 길 없는데
무엇을 지키려고 싸우는지
살기 위해 싸우는데 죽으라 하네~]
옆에서 들으니 음도 그렇고 가사가 재밌다.
“이게 자네들 군가인가?”
나는 병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패가스에게 물었다.
“하하하, 오래전부터 병사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노랩니다. 본래 장교들 있을 땐 부르면 안 되는데, 애들이 긴장이 많이 풀렸나 봅니다. 당장 주의 주겠습니다.”
확실히 장교들이 들으면 좋아할 노래는 아니다.
패가스가 새파래진 얼굴로 주의 주려는 걸 내가 막았다.
“괜찮네. 재밌군. 다른 노래도 있나?”
패가스는 눈앞의 기사를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눈을 했다.
“예, 있기는 한데…….”
패가스가 망설였다.
[병사들은 붉은 옷을 입었네~피로 물든 군복을~
그것이 우리의 수의라네~
윗분들은 흰옷을 입었네~
아무것도 안 한 깨끗한 흰옷~
그것이 그들의 명예라네~]
어느새 다음 곡으로 넘어갔는지 병사들이 좀 더 위험한 수위의 노래를 부른다.
“저 새끼들이!”
패가스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병사들을 노려본다.
‘군가는 여기 군가가 더 재밌군. 딱히 한국군의 군가를 소개해 줄 필요 없을 정도로.’
가사부터가 ‘멸공의 횃불’보단 정감이 갔다.
나는 그런 패가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안심시켰다.
[추위 떨며 행군하니마주친 아가씨들
우리 꼴을 비웃는구나]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건가?”
병사들이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
“헉! ×발.”
“그러고 보니 저분 기사였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병사들이 멍한 얼굴을 했고, 내 옆에 있던 패가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
[집 지키는 똥개 취급멸시 가득 담은 시선
남지 않은 자긍심 공허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노래를 이어 불렀다.
내 행동에 눈치 보던 병사들이 서로를 힐끗 보더니 다시금 노래를 부른다.
[허풍 가득 무용담 자랑술 깨고 나니 허무만 남고
돌아갈 길 없는 허무한 걸음
몇 명 죽여 봤냐는 철없는 질문에
내가 죽을 뻔했다 대답해 주랴~]
기사와 병사들이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 * *
저 멀리 폴라라스 영주성이 보였다.
남작령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크진 않다. 어차피 실제 생활은 저택에서 하겠지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꿈을 꾼 거 같아.”
“탈출도 모자라 카단군을 이기다니…….”
패가스와 필립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폴라라스 영주성을 보면서 말했다.
“기사님! 감사했습니다.”
“마치 제르다 님의 화신 같았습니다!”
“테오스 대왕의 환생이십니다!”
병사들은 마치 신을 영접하는 것처럼 나를 찬양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것도 모자라 평생 자랑할 만한 전공까지 이루게 해 줬으니까.
“기사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패가스가 조심히 물었다.
“찾는 사람이 있다. 오스카 전역을 돌아다닐 것 같아.”
오스카 왕국이 전국 시대 수준으로 난장판이 된 지 2년이 조금 안 됐다.
그래서 로지스트의 정확한 행방을 모른다.
‘일단 오스카 왕국의 수도로 가야겠지?’
로지스트의 마지막 편지가 거기서 끝났다고 하니 말이다.
“요즘 오스카 왕국은 돌아다닐 곳이 못 됩니다. 물론 기사님의 무용과 지략이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기사님, 혹시 길 안내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오스카 전역까진 모르지만, 동부는 눈감고도 갈 수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짐도 많을 텐데, 제가 짐꾼 경력이 제법 됩니다. 당나귀도 기르고 있고요.”
병사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히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인다.
혼자가 편할까? 여럿이서 가는 게 편할까?
일장일단이 있다.
물론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지만.
“필립.”
“네, 기사님?”
덥석!
나는 다짜고짜 필립의 멱살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왜, 왜 이러십니까? 기사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병사들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야.”
필립의 멱살을 잡은 채로 짐 마차까지 끌고 갔다.
“상식적으로 여기에 있는 마법 아티팩트와 장비들! 일개 전쟁 상인이 가지고 다니기엔 지나치게 양이 많지 않나?”
품질은 둘째치고 양과 품목이 너무 많았다.
고작 남작령의 군대가 가지고 있기엔 말도 안 될 정도로
“그, 그게! 전에 말했다시피 상회의 지분도 있다고……!”
“그래, 그런데 세상 어느 정신 나간 전쟁 상인과 상회가 패배할 것이 뻔한 남작령의 군대에게 이만한 지원을 하지?”
원래 화장실 가기 전과 나온 후의 마음이 다르듯이, 쓸 때는 정말 잘 썼지만 다 쓰고 나니까 수상쩍다.
이대로 그냥 갔다간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든다.
“말해라, 필립! 애써 구한 목숨 여기서 버리기 싫으면.”
“케엑, 켁! 그, 그게!”
역시나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이 틀림없다.
스르릉.
내가 허리춤에서 쇼트 소드를 꺼내 필립의 목에 가져다 댔다.
“여왕님! 여왕님이 하사하신 군수품입니다!”
필립의 입에서 상상도 못 한 존재가 거론되었다.
“오스카 여왕이? 참나, 일단 믿도록 하지. 그럼, 여왕님이 왜 이런 변두리의 남작령 따위에 직접 군수품을 하사하신 거지?”
“여기 폴라라스 남작령의 영애가 여왕님의 딸이십니다!”
“제르다, 맙소사!”
필립의 말에 나는 지구에서도 믿지 않았던 신을 이세계에서 찾으며 신음했다.
“저게 뭔 소리래?”
“그럼 우리 남작님이 여왕님이랑 그 짓을 했다는겨?”
“아니, 그분 그렇게 안 보였는데 대단하시네!”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놀랐다.
“오스카 여왕은 독신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폴라라스 남작과 관계를 맺어 태어난 사생아 같은 건가?”
“그게, 좀 틀립니다. 폴라라스 남작은 그냥 그분의 따님을 양녀로 받아 키워 주기만 하신 분입니다. 공주님의 아버님이 누군지는 저도 진짜 모릅니다!”
필립은 다 포기했다는 듯 술술 불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 거 같다.
‘가만?! 폴라라스에 여왕의 딸이라고?’
굳이 원작 정리집을 열어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설정 부분은 대충 읽어서 정리집에도 이건 나와 있지 않을 테니.
“그럼 지금 폴라라스 남작의 영애 이름이 뭐지?”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 속으론 ‘제발, 제발, 제발 그 애가 아니라고 해 줘!’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스카 폴라라스 영애이십니다. 이젠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 공주님이 되시겠네요.”
“아오~ 빌어먹을!”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
원작에서 서브 히로인 위치 있던 인물이다.
메인 히로인은 아니지만 거의 메인 히로인의 분량까지 넘보던 여자다.
문제는.
‘그 발암 덩어리를 어떻게 한다냐!’
이 서브 히로인의 인성이 문제다.
원작에선 앨리스를 능가하는 발암 중에 초발암인 히로인이다.
‘그랬군.’
이렇게 좋은 군수품에, 병사 한 명 한 명이 레인저 수준인데도 연전연패를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어? 어! 영주성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이 넘는 무장한 인원이 성 근처에 얼씬거리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럼 난 이만 가도록 하겠다. 다들 잘 있도록.”
가능하면 그 발암과 엮이고 싶지 않기에, 나는 재빨리 짐을 챙기곤 빠져나가려 했다.
“안 됩니다! 왕실의 비사를 알게 된 순간부턴 절대~! 못 가십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십쇼!”
그런 내 발목을 필립이 잡더니 놔주지 않는다.
“폴라, 뭐 하냐! 어서 이 기사분을 잡지 않고!”
“아니, 그걸 왜 말씀하셔 가지고!”
필립의 옆에 늘 두던 청년도 내 남은 다리를 온몸으로 붙잡았다.
“셋 셀 동안 놔라. 안 놓으면 죽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예, 절 죽이셔도 됩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참고로 제 진짜 신분은 왕실 시종장입니다.”
“저는 왕실 시종이고요!”
어쩐지 일개 상인의 고용인치곤 이상하게 똘똘하다 했다.
“참고로 왕실 시종을 여왕님의 허락 없이 죽이면 왕국의 공적이 됩니다!”
“아오! 안 들은 걸로 할 테니까 제발 좀 놔라!”
“그럼 귀와 혀를 자르고 가십시오!”
“이 새끼가 돌았나!”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도 기사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거기! 뭐 하는 놈들이냐?!”
20명의 되는 기사들이 200이 넘는 병사들을 포위했다.
숫자가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도 전혀 꿀리지 않는 기백!
‘저 기백을 카단과의 전투에서 썼으면 한 번은 이겼겠다.’
이미 늦은 거, 나는 달아나려는 것을 포기하곤 기사들을 맞이했다.
“기, 기사님! 저희는 카단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살아 돌아온 병사들입니다.”
“맞습니다! 폴라라스 숲에서 간신히 카단군과 싸워 이기고 이렇게 왔습니다.”
병사들이 너도나도 기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흐음, 네놈들 얼굴은 본 적이 있다. 전에 우리와 함께 싸우던 병사들인 것 같구나. 저 전쟁 상인의 고용인들도 안면이 있고.”
기사 중 한 명이 다행히도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나저나 네놈들이 카단군을 무찔렀다고?”
“예! 여기 방랑 기사로 오신 기사님께서 저희를 지휘해 주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개 방랑 기사 혼자서 천한 네놈들을 이끌고 카단군을 상대했다고? 어디서 거짓말을 내뱉느냐!”
“지, 진짜입니다요.”
병사들은 자신들의 공훈을 믿지 않는 기사들 모습에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왜냐면 아직 최종 보스가 등장하지 않았거든.
“어떻게 할까요?”
기사 중 제일 높아 보이는 기사가 뒤를 보곤 물었다.
뒤에는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백금발에 붉은 눈동자를 한 귀족 영애가 있었다.
유니콘 두 마리가 끄는 순백의 마차를 타고 나타난 소녀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외모는 거의 아리아와 맞먹는군. 아니, 뛰어넘나? 물론 싸가지는 앨리스를 능가할 테고.’
나이는 대충 15세 정도로 제인과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얼굴과 천사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뜻은 차가웠다.
“나와 너희도 못 당한 카단 자작군이다. 그걸 일개 병사와 방랑 기사 하나가 어떻게 이겨? 날 능멸하려는 놈들의 수작이도다!”
백금발에 붉은 눈동자를 한 공주 아스카.
그녀는 나와 병사들을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짓고는 명령했다.
“전부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