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34
34. 공주는 회초리로 키운다 (1)
굳이 원작의 히로인들을 난이도로 구분하자면, 아리아는 튜토리얼, 앨리스는 어려움, 아스카는 헬이다.
현재 제국에 있을 세 번째 메인 히로인의 난이도는 보통 정도려나?
그리고 이것은 순전 그녀들이 처한 상황뿐만 아니라, 인성에 대한 부분을 난이도에 합친 것이다.
“전부 죽이라는 명령이시다!”
처처척, 스르릉.
아스카의 명령에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을 보며 난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기본적인 전술 개념도 없는 건가? 고작 기사 20으로 이 인원을 잡겠다고?’
약 200명이 넘는 인원이다. 이 중 7할은 정예로 쳐 줘도 부족함 없는 최정예다.
마법 아티팩트까지 던져 주면 두셋이서 하급 기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지급했던 아티팩트를 수거하지 않길 잘했어.’
어차피 징집이라 전쟁이 끝나면 보상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딱해 냅두던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 득을 보게 되다니.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을 하고 봐야 해.’
눈앞의 전력은 상급 기사 하나, 중급 기사 다섯, 나머지가 하급 평기사다.
“내가 상급과 중급 기사를 맡을 테니, 너희들은 하급 기사를…….”
의기양양하게 뒤를 보면서 명령하려 했다.
“아이고, 기사님. 살려 주십쇼!”
“흐어어엉~! 정말 억울하구만유, 지들은 카단 첩자가 진짜 아니에유!”
‘어?’
내가 알던 최정예 병사가 맞는지, 이놈들은 싸우기도 전에 무기를 놓고 항복하려 한다.
“이 새끼들이! 숲에서 싸우던 패기는 어디다 버리고 온 거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윽박질렀다.
“하지만 숲에선 기사들은 상대 안 했는데.”
몇몇 병사가 이상한 소릴 한다.
“뭔 소리야? 너희 그때 숲에서 기사들을…….”
가만 보자, 숲에서 기사는 거의 내가 잡았던가?
“카단의 기사들은 전부 기사님께서 각개격파하셨습니다.”
패가스가 내 기억의 오류를 수정해 주었다.
“전부?”
“예, 전부.”
“걔네 기사 숫자 꽤 되지 않았어?”
“하나둘씩 따로따로 잡으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많이 죽였다고?!”
“넵.”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다. 렌슬렛에서의 마지막 싸움 이후.
‘기사들, 그냥 혼자서 다 상대해도 되겠는데?’
나의 능력이 한 단계 크게 성장한 것을 이제야 체감한 기분이다.
“야, 너희도 할 수 있어! 기사 죽이는 거.”
“저희는 기사님들처럼 마나도 못 느끼는데 어떻게 무기를 들이댑니까.”
패가스마저 자신 없는 표정이다.
‘이건 정신적인 문제가 크군.’
태어날 때부터 형성된 인식이다.
이들은 나와 함께 숲에서 기적 같은 일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평생 이룩한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깨지진 않는다.
“에휴~ 니들은 나랑 함께 다닐 생각도 마라.”
나는 깊게 한숨을 쉬면서 검을 뽑았다. 한 손에는 만약을 대비해 마법을 준비했다.
근데 놈들의 수준을 보니 마법까지 안 쓸 것 같다.
지금 오직 나의 고민은 한 가지뿐이다.
눈앞의 기사들을 죽일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전치 10주 정도로만 패 줄 것인지.
“주인 없이 방랑하는 평기사 혼자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저기 병사들만도 못 하군.”
“그래도 방랑기사 주제에 용기는 가상하구나.”
기사들이 나를 비웃는다.
“게일 경, 저 방랑 기사와의 결투는 제가 하겠습니다.”
중급 기사 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입맛을 다신다.
게일이라는 상급 기사는 씨익 웃으며 중급 기사의 청을 허락했다.
“허락하네. 오텔 경, 최선을 다하여 공주님을 즐겁게 해 드리도록.”
“감사합니다.”
게일의 지시를 받은 오텔이 나서려 할 때였다.
“잠깐!”
아스카가 잠깐을 외친다.
“예, 공주님!”
뒤에서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던 아스카가 상급 기사 게일을 불러 뭐라 속삭인다.
“……알겠습니다.”
아스카의 지시를 들은 게일은 살짝 구겨진 얼굴로 오텔에게 말했다.
“저 기사를 가능하면 죽이진 말라 하시네. 공주님께서 마음에 드신 듯하니, 살살 해 주게.”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오텔이라 불린 중급 기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나를 향해 검을 겨누며 외쳤다.
“나는 브라칸 준남작의 차남 오텔 브라칸이다. 방랑 기사 또한 가문과 이름을 대시오!”
그들의 콩트에 나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한 손에 든 검을 휙휙 휘두르며 말했다.
“하아, 지랄하지 말고 전부 다 덤벼.”
“감히! 아무리 방랑 기사라지만 기사의 예를 갖……!”
“안 오면 내가 갈게.”
나는 1초라도 저 오텔이라는 놈의 헛소리를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무, 무슨?!”
재빨리 오텔의 앞에 도착하고선, 쫘아아악! 검면으로 오텔의 싸대기를 후려쳤다.
놈의 이빨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피가 터지고 흉측하게 부어오른 뺨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기절해 버렸다.
“어?!”
“저게 무슨…….”
“이딴 반응도 이젠 지겹다.”
기사들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공격을 이었다.
퍼억, 퍽!
쫘악, 쫙!!
“으악, 악!”
“끼에엑!”
차라리 베고 찌르는 게 나을 정도의 검면 구타가 계속되었다.
“저 녀석이!”
뒤늦게 정신 차린 상급 기사 게일이 검에 마나를 주입하곤 전력을 다해 보지만.
퍼어어억, 푹.
“꾸어어어억…….”
내 주먹에 명치를 맞고는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끄으응, 으윽.”
“으아아아, 숨을 못 쉬겠어. 우웨엑!”
“아흑, 괴, 괴물.”
제복에 인챈트된 마법 방어막까지 손쉽게 뚫은 나의 구타.
기사들은 쓰러져 신음하면서 나를 두려움 담긴 눈으로 보았다.
한편으론 이해되지 않는다는 감정도 섞인.
“다들 대가리 박아, 새끼들아.”
난 온몸에 짜증 가득한 기분을 풀풀 풍기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런 굴욕적인 지시는…… 꾸엑!”
퍼억, 퍽.
“아직 정신 못 차렸지? 그럼 더 맞자, 맞으면 돼!”
끝까지 반항하는 놈들을 손수 지르밟으니 어느새 20명의 기사들이 내 앞에서 머리를 박고 있었다.
“우리 기사님께서 혼자 저 기사들을 때려눕혔어.”
“방랑 기사 맞아? 아르미다츠의 기사들은 원래 다 저래?!”
“우와!”
그 광경을 뒤에서 병사들이 감탄하면서 본다.
왕실 시종이라던 필립과 폴라는 턱이 빠지기라도 한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너희들도 머리 박아라.”
나는 뒤에서 감탄하고 있는 놈들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네, 네?!”
“예?! 저희는 갑자기 왜?”
병사들이 반문하자 나는 놈들의 명치와 정강이를 패 줬다.
퍼억, 퍽.
“으억, 꾸억.”
“아악, 기사님 잘못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잘못했어요!”
“끄아악! 저희는 왜?!”
“왜냐고? 니들은 정신 상태부터 글러 먹었어. 어디 저 새끼들이 무서운지 내 구타가 무서운지 몸소 체험해 봐라!”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넓은 공터엔 200명의 병사들과 20명의 기사들이 나란히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 장대한 광경에 마치 훈련소 조교가 된 기분이다.
‘쟤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새파랗게 굳은 얼굴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공주 아스카를 보았다.
저 발암을 보니 원작의 고구마 같은 내용이 떠오른다.
기분이 심란하다.
‘쟤도 어쨌든 히로인은 히로인이야. 메인 히로인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서브 히로인이지.’
내가 기사들을 굳이 죽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기사는 물론이고 눈앞의 저 개념 말아먹은 공주의 목도 따 줄 수 있다.
하지만 걸리는 게 너무 많다.
‘만약에 이세계로 온 목적 중에 아스카의 비극적 운명을 바꾸는 것도 포함된 거라면?’
개발암에 성격도 개막장인 히로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결말을 맞이하진 않는다.
원작의 중후반. 여왕이 된 아스카는 사치와 향락 그리고 폭정을 펼친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폭정에 들고 일어난 백성들에게 돌 맞아 죽는다.
이세계판 마리 앙투아네트로 보면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억울하게 왜곡된 점이라도 있지, 얘는 순도 100퍼센트의 악녀라는 거지.’
앨리스가 소시오패스라면, 아스카는 그냥 싸가지 없고 멍청하고 개념과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악녀, 미친년, 버서커다.
‘만약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번 난이도는 헬이다.’
내가 아스카를 계속 말없이 응시하자, 아스카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나와 눈싸움을 한다.
가만 보니 저 애도 나처럼 흔하지 않은 붉은색 눈동자다.
“지구에서도 안 한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라는 건가?”
내 중얼거림에 아스카가 드디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엄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눈을 마주치려 하느냐!”
다른 이들에겐 굴욕을 줘도 자신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안 하니, 나름 용기 비슷한 게 생긴 모양이다.
아스카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당장 나에게 예를 갖추고 발에 입을 맞추지 못할까! 네놈이 천한 방랑 기사라지만, 실력과 생긴 것이 마음에 든다. 내 근위 기사로 임명하겠다! 영광인 줄 알아라!”
아스카의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좋겠군.’
그리고 적당한 것을 찾아 집어 들었다. 이어서 아스카를 향해 물었다.
“뭐 하냐, 넌?”
“뭐, 뭐?! 지금 나에게 너라고 한 것이냐? 이런 발칙한!!”
저벅, 저벅, 저벅.
나는 천천히 아스카에게 접근했다.
“안 되오! 그분은 장차 이 나라의 근본이 되실……!”
열심히 머리를 박고 있던 상급기사 게일이 자세를 풀고는 다급히 말했다.
“기사님, 절대 안 됩니다! 그분께서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셨다고 해도 자비를……!”
구석에서 병사들과 함께 머리를 박고 있던 필립도 자세를 풀곤 외쳤다.
“어쭈? 누가 자세 풀라고 했지? 니들 자세 풀 때마다 공주의 신변은 장담하지 못한다.”
나의 차가운 한마디에 두 사람은 다시 반듯한 자세로 머리를 박았다.
“네, 네놈!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가, 감히 나를 어떻게 하려고…….”
아스카와 나의 거리는 이제 2미터까지 좁혀졌다.
그녀는 내가 다가올 때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났지만, 이내 그녀가 타고 온 순백의 마차에 퇴로가 막혔다.
우로롱.
마차에 묶여 있던 유니콘이 그런 아스카를 재밌다는 듯 본다.
‘기사나 병사들처럼 구타를 했다간 죽겠지?’
구타는 일단 보류다.
아스카와 완전히 거리를 좁혔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
‘그나저나 진짜 이쁘네.’
아스카의 얼굴을 잠시 감상했다.
내가 가까이서 아스카의 얼굴을 응시하니,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내 시선을 피한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의 심장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뛰었다.
‘얼굴은 왜 붉어져 있는 거야?’
그나저나 이 애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중얼중얼.
아스카가 혼잣말로 뭐라 중얼거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반지를 괜히 빼고 왔어. 처, 처음이니까 부드럽게 해 주겠지? 사람 많은 곳은 부끄러우니 마차 안에서 하면 좋을 텐데. 그래도 첫 상대가 잘생기고 강한 남자라 만족…….”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나는 망상의 12차원에 빠진 아스카의 어깨를 잡았다.
이어서, 아스카의 분홍빛 드레스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렸다.
하얗고 매끈한 다리가 보였다.
흠칫!
아스카의 드레스에 달린 장식이 그녀의 떨림과 함께 찰랑거린다.
꿀꺽!
“…….”
“…….”
어느새 200이 넘는 사람들이 머리 박던 것도 잊은 채, 나와 아스카를 충혈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려 하자,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눈을 꾹 감는다.
“엎드려.”
마침내 떨어진 나의 한마디.
“허업!”
“제르다, 맙소사!”
병사와 기사들의 경악 섞인 감탄사(??)가 공터를 울렸다.
“어, 어어어, 엎드리라니! 어, 어떻게 말이냐?!”
아스카는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말한다.
“내, 내가 처음이니라.”
“…….”
그래, 늘 이런 식으로 오해 살 만한 짓을 한 내 업보요, 내 잘못이다.
나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것을 높이 올렸다.
팔뚝 길이의 얇고 탄력 있는 나뭇가지다. 누가 봐도 회초리처럼 생긴.
“일단 10대만 맞자.”
예로부터 말 안 듣는 애한텐 사랑의 매가 제격이라 했다.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