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35
35. 충격과 공포
찰싹, 찰싹, 찰싹.
“아흑, 아악!”
백금발의 천사 같은 소녀가 엎드린 상태로 종아리를 맞는 광경.
“두 대, 세 대, 네 대.”
찰싹찰싹 찰진 회초리 소리.
순백의 여린 피부가 피멍이 들고, 그 살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른다.
그럼에도 아스카가 버티는 것은 2대에 한 번씩 치료 마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0대를 다 때렸다.
아스카는 종아리를 만지면서 흐느껴 울었다.
“흐으으윽, 흐윽.”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아픔과 공포 그리고 치욕.
아스카의 붉은 눈동자가 눈물과 함께 이글이글 타오른다.
“내 순정을 짓밟다니. 개자식! 기필코 죽여 버리겠도다! 가만 안 둘 것이야!”
그녀가 깊은 증오를 담아 나를 저주한다. 물론 대놓고 말은 못 한다.
그저 멀찍이서 째려보며 중얼거린다. 그나저나 순정은 왜 나오는 건데?
“너, 내 욕하고 있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앞으로 셀 수 없이 맞을 텐데, 고작 이걸로 발광하면 곤란하지.
“그래도 저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오.”
“뭐가 다행이오?! 이 치욕을 어찌해야 할꼬!”
이 모든 광경을 본 기사들은 안도와 울분을 삼켰고, 병사들은 다들 아쉬운 반응이다.
“아, 뭔가 아쉽다.”
“우리 기사님이 공주님이랑 아이 만들면, 나중에 기사님이 국왕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럼 우리는 국왕 폐하를 모시는 병사가 될 텐데.”
저 바보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가 막 정리되려 할 때,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어째 하도 안 와서 직접 왔더니, 굉장히 난해한 광경을 봐 버렸습니다.”
그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노인이 등장했다.
“할아범~! 으아아앙!”
“폴라라스 남작! 마침 잘 오셨소!”
노인이 나타나자 아스카를 비롯한 기사들이 반색한다.
“할아범, 저 기사가 말이다. 감히, 히잉, 나를 막 때리고, 만지고…….”
폴라라스 남작이라 불린 노인에게 아스카가 달려가 이른다.
들어 보니 나를 아주 성폭행범처럼 소개 중이다.
“흐음, 그랬군요. 많이 놀라셨군요.”
“당장 저 방랑 기사를 죽여야 한다! 재수 없는 병사들도 같이! 어서 수도에 얘기 좀 하거라~.”
발광하는 아스카에 비해, 노인 폴라라스 남작은 침착했다.
‘처음부터 지켜봤거나, 아스카의 평소 행실을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군.’
아니면 둘 다거나.
“일단 성으로 가서 얘기를 나눌까요? 기사님.”
“그러죠. 병사들은?”
“비록 작은 성이지만 이 정도 병사들이 머물 병영은 있습니다.”
폴라라스 남작이라는 노인은 마치 성직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갑시다.”
폴라라스 남작이 뜻밖의 반응을 보이자,
“할아범!”
“남작, 저 방랑 기사는…….”
아스카와 기사들이 표정을 굳혔다.
만약 아스카와 마찬가지로 개념 없는 노인네였다면 이렇게 협조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노인이랑은 품격부터가 다르군.’
그 노친네가 눈앞의 노인을 반이라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 * *
“푸엣취!”
“스승님, 감기 걸리셨어요?”
율카네스가 갑작스레 재채기를 하자, 옆에 있던 아리아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대마도사가 감기에 걸릴 수가 있겠느냐? 심지어 매일 영약을 먹는데.”
“그럼 방금 재채기는 다른 징조라는 것인가요?”
“그래, 이 재채기는 누군가 나에 대해 뒷담화를 깔 때 나오는 재채기란다.”
율카네스의 말에 아리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가 스승님에 대해 뒷담화를 하나요? 세상을 위해 속세를 떠나신 분을요.”
“아니, 한 명 있긴 하다.”
율카네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청년을 떠올렸다.
‘이놈은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거기서도 내 욕을 하는 거야?’
아직도 놈이 새벽에 털어 간, 아공간 가방이 눈에 아른거리는 율카네스였다.
* * *
의외로 폴라라스 남작은 저택에서 생활하지 않았다.
요즘 귀족들 중에서 굉장히 드물게 성에서 생활하는 자였다.
“그랬군요. 이해했습니다.”
무엇보다 폴라라스 남작은 내가 했던 말들을 바로 믿어 줬다.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럼, 저에게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믿으시기에…….”
내 말에 폴라라스 남작은 쓰게 웃었다.
“아스카 공주님께선 이번에 너무나도 큰 실책을 연이어 벌이셨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폴라라스의 모습이 자식 농사 잘못 지은 부모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아실지는 모르지만 저는 원래 튤페 항의 주교입니다. 본업은 성직자지요. 여왕님과의 의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실 직할령 영주도 겸업하고 있지요.”
아스카는 현재 오스카의 여왕 에르카네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래서 아스카는 태어나자마자 이곳 폴라라스 영지로 버려지듯 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사생아지만 여왕께서는 공주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작은 남작령에 왕실 소속 시종과 왕실 셰프, 파티셰를 주기적으로 보내 줄 정도로요. 물론 철없는 공주님께선 전혀 알려 하지 않으시지만.”
폴라라스 남작은 마지막 말을 작게 덧붙이더니 설명을 이었다.
“앞서 말했듯 저는 튤페 항의 주교입니다. 튤페는 오스카에서 가장 큰 항구이고요. 왕실 직할령 폴라라스 남작령이 최근 영지전을 치렀습니다. 일개 자작 따위와 말이죠.”
남작의 말에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반란이라도 일어난 겁니까?”
“반란은 이미 2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오스카 전역은 하루도 쉴 새 없이 전쟁이 벌어지는 난세의 지옥입니다.”
그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창밖에는 아스카를 위해 지어진 작지만 화려한 저택이 보였다.
“최근 수도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마법 통신도 1주일 전에 끊어졌고요. 마지막 내용이 아스카 공주를 수도로 보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말을 저에게 한다는 것은?”
어차피 수도로 가야 한다.
저 발암 덩어리와 같이 가야 해서 귀찮을 뿐이지.
“기사님의 무공은 저도 방금 다른 정보통으로 들었습니다. 패잔병들을 이끌고 다섯 배가 넘는 적을 전멸시키셨더군요. 테오스 대왕의 환생을 보는 듯합니다.”
참고로 테오스 대왕은 룬-아르미다츠의 마누스처럼 오스카 왕국의 시조 되는 인물이다.
“올해 초,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여왕께서는 폴라라스 영지로 무리하면서까지 군수품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공주께선 이것을 전쟁놀이처럼 여기시더군요.”
풍부한 군수품에 정예 병사들까지 있으면서 왜 연전연패를 했는지 이유가 밝혀졌다.
아스카가 원인이다.
“교단의 교리 때문에 직접 전장에 나서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였습니다.”
고위 성직자는 일반 사제들과 달리, 함부로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
정 참가하려면 교단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곧 성인이 될 나이고 하니 믿고 맡겼는데, 도대체 같이 간 기사들은 뭘 한 건지…….”
하긴 남작도 어이없었을 것이다.
몇 번 전투에서 졌다고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한 아스카가.
병사들과 귀한 군수품을 버리고 성으로 돌아온 차기 여왕이.
“심지어 자신이 버린 병사들이 간신히 승리해 돌아오자, 그들을 죽이려 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역시나 멀리서 지켜봤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살 나라의 국왕 후보가 저 모양이면 나 같아도 이민 충동 일어났을 거야.’
남작의 우려는 합리적이었다.
원작에서 결국 오스카는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되니까.
“아마 공주님께서 이번에 수도로 가면 그대로 여왕의 자리에 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여왕이 되면 이 왕국은 끝장입니다.”
“그…… 훈육을 해도 된다는 겁니까? 제가 아까 했던 그 회초리를?”
“필요하다면.”
“허허.”
남작의 단호한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더하여, 수도까지 가는 길 또한 반란군의 습격이 우려됩니다. 또 근래 심해진 몬스터의 준동도 문제입니다. 저 팔푼이 기사들은 솔직히 못 믿겠습니다.”
튤페 항의 주교이자, 폴라라스 남작령의 남작인 노인의 부탁에 나는 팔짱을 꼈다.
“공주를 조련, 아니, 훈육하고 수도까지 안전히 호위해 달라고요. 그렇게 해 주면 제가 얻는 게 뭐죠?”
그래, 겸사겸사 해 주지. 근데 나도 재미를 봐야 할 게 아닌가?
“본래 수도까지 가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로니아드 칸브라만 경.”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제가 누군지 알고 계셨습니까?”
“신성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제르다 교단의 정보력은 제국을 능가합니다. 적어도 북부 왕국에서만큼은.”
“그럼, 제가 누굴 찾는지도 아시겠군요.”
“최근 렌슬렛에 옛 아르미다츠의 왕녀께서 살아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렇다면 여기 오스카에 왕세자가 계신다는 뜻이겠군요?”
“바로 맞췄습니다.”
역시 연륜은 못 속인다.
“저희 교단이 그 왕세자를 찾는 것을 도와주겠습니다. 더불어 교단에서 드릴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 * *
“꺄아아아! 빌어먹을! 할아범도 결국 한 패였어!”
쨍그랑, 우당탕탕!
“고, 공주님! 부디 진정하세요.”
“닥쳐! 네가 뭘 아느냐! 천한 것이!!”
짜악.
아스카의 손이 시녀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시녀가 엉망이 된 바닥에 넘어진다.
제법 많이 때려 본 것인지, 연약한 손으로 때렸음에도 소리와 타격이 제법이다.
“너희도 속으론 날 무시하고 있겠지!”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아스카를 모시는 시종과 시녀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눈을 보면 ‘또 시작이네’ 정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최근 전쟁놀이하느라 잠잠했는데, 다시 저 지랄 발광이 도진 것이다.
‘봐봐! 모두 또 저런 눈으로 날 보고 있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지만, 사실 아스카는 누구보다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아버지도 없이 정당하지 못하게 태어난 사생아.
할아범은 자신을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볼 뿐이다.
귀족들은 멸시와 성욕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보았고, 아랫것들은 자신이 뭘 하든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오히려 아스카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과장되게 행동 중이었다.
“후우, 후우, 후우.”
방 안의 이것저것을 집어던지니 화가 좀 가라앉았다.
“그래서, 할아범이 뭐라느냐? 그 기사놈을 어떻게 처벌하겠다더냐?”
아스카의 물음에 주변의 시녀와 시종 중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내가 물으면 알아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아스카는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시녀의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덥석.
그때, 누군가가 아스카의 손을 잡았다.
“어떤 천한 것이 내 몸에!”
자신의 손을 잡은 자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히익!”
“나다.”
“히끅, 히끅,”
다시 타오르던 그녀의 화가 순식간에 식었다.
“어, 어째서 그대가 여기 있는 것이냐?”
“그게, 공주님 대부의 부탁으로 담당 선생직을 맡게 되었어.”
“담당?! 누굴?”
“당연히 공주님이지~.”
“!!”
아스카는 자신과 똑같은 붉은 눈을 보았다.
그 눈을 한 기사의 눈에서 관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자신만을 향한 진지한 관심이었다.
‘싫어어어어!!’
하지만 이런 식의 관심은 진심으로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