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40
40. 사람은 못 고쳐 쓰지만
그토록 빌고 또 빌었지만,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오히려 적중한 것을 넘어섰다.
“오, 이런…….”
“…….”
“…….”
검게 그을린 루트파흐 자작성이 반쯤 파괴되어 있다.
자작성 근처의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졌다.
순백의 루트파흐 저택도 본래의 색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검게 타 버렸다.
게일이 태어나서 가문을 나올 때까지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
마치 자신의 인생 절반을 도둑질당한 느낌.
“제르다이시여!”
지금 이 순간 그는 신 외에 의지할 존재를 생각지 못했다.
“시체는커녕 유골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는 것은…….”
“빌어먹을, 몬스터다!”
방금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자작령으로 오려 했던 기사들이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것이냐?!”
자작령의 모습도 그렇고 기사들의 태도도 하나같이 심각하다. 아무리 눈치 없는 아스카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다.
“여봐라, 내가 묻지 않느냐!”
아스카가 불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낀 아스카에게 관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니아드…….’
그 순간 아스카는 로니아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티팩트를 끼나 안 끼나 자신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주었던 남자.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아스카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어서 여길 떠나야 하오!”
중급 기사 오텔이 다급히 말을 뒤로 몰려 했으나, 말의 상태가 이상하게 좋지 않았다.
말이 벌벌 떨면서 말을 듣지 않는다.
질퍽, 질퍽.
“이놈의 말이 왜 이래?!”
오텔이 말 주변을 살피자, 말이 무언가를 밟고 있었다.
진흙처럼 생긴 배변이었는데 그것을 따라가 보니, 성문 뒤편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담장 높이로 쌓인 거대한 배변이 있었다.
가까이 가니, 악취가 심하게 났고, 뜨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기다란 나뭇조각으로 안을 살짝 파헤쳐 보았다.
“우웩!”
보이지 않았던 사람의 시체들이 그곳에 있었다.
시체들은 소화액에 덜 부식된 상태로 몬스터의 배변 찌꺼기가 되어있었다.
“우읍! 우웩!”
엉겁결에 그 광경을 본 오스카도 구역질을 했다.
“빌어먹을, 오거가 이 근처에 있다!”
“오거라고?!”
“오거만이 아니야! 트롤, 놀, 오크, 리저드맨, 사이클롭스…… 몬스터란 몬스터는 다 모였어!”
다른 기사가 주변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며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대규모 웨이브일 줄이야.”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고?!”
“그것도 중대형 몬스터로 이뤄진 웨이브야. 등급은 영지 하나가 없어졌으니 절망급이군.”
“여기 있는 건 미친 짓이야! 어서 여길 떠나야겠어!”
기사들이 너도나도 말에 올랐다.
경기를 일으키는 말을 연신 채찍질한다.
짐 마차도 챙기지 못했다. 자신이 올라탄 말 한 마리 다루기도 벅차다.
생존의 다급함에 침착함도, 이성도 잃었다.
기사들은 서로를 챙겨 줄 겨를도 없다. 당연히 그들이 지켜야 할 공주는 안중에도 없다.
아스카도 급히 말에 올랐다.
“나도 같이……!”
히이잉!
“꺄악!”
겁먹은 말이 날뛰면서 아스카를 내팽개쳤다.
“으윽!”
말에서 떨어진 아스카는 떨어지면서 팔과 다리를 삐었는지 부어올랐다.
우우웅.
그녀의 가죽옷에 달린 마석들이 빛을 내면서 치유 마법을 발동한다.
쿠오오오.
키야아아아악.
우오오오오!
이윽고 사방에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히이잉.
아스카를 내동댕이친 말이 발광하면서 도망친다.
겁먹은 얼굴의 아스카가 저 앞에 도망치는 기사들을 망연히 본다.
“쿠오오오!”
“크와아아아!”
정신없이 도망치던 기사들이 더 앞으로 가지 않고 멈췄다.
아스카가 갑자기 생각나서? 그럴 리가.
사방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폐건물 사이에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아직 대형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놀, 오크, 리저드맨 등 비교적 작은, 3미터 이하의 몬스터들만 등장했다.
이 정도 몬스터면 기사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아니, 잡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무슨 놈의 숫자가……!”
“몬스터 군단이라도 된단 말인가!”
동쪽으로 도망치려던 기사들이 한곳에 모였다.
아스카는 기사들의 무리에 끼지 못했다. 그저 폐건물 구석에 있는 짐 마차에 바들바들 떨며 숨었다.
“빌어먹을 몬스터! 다 죽이겠어! 다 죽이겠다!!”
기사들 무리에 끼지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게일 경?’
바로 자신의 혈육과 고향을 잃은 상급 기사 게일 루트파흐였다.
스르릉, 우웅.
게일은 검을 뽑더니, 검에 자신의 마나를 담았다.
“죽어!!”
그리고 단신으로 몬스터 무리를 향해 돌격했다.
서거걱, 푸욱, 퍼억!
“끼에엑!”
“꾸오오!”
“죽어, 쓰레기들아!”
과연 상급 기사. 괜히 용병과 병사들이 기사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늘 로니아드에게 눌려 쉽게 본 것일 뿐.
지금 몬스터 무리 속으로 들어가 검을 휘두르는 게일을 보면, 그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날 정도다.
서걱, 푸욱, 퍼억.
“크억!”
하지만 몬스터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게일 주변에 몬스터의 시체가 쌓일수록 그의 몸에도 깊은 상처가 하나둘씩 쌓였다.
“허억, 허억.”
가죽 갑옷에 넣은 마석도 어느 순간 방전된 것 같다. 방어막이나 회복 마법이 언제부턴가 발동되지 않았다.
“게일 경이 희생하기로 했다!”
“게일 경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
“그가 만든 틈을 뚫고 탈출하자!”
나머지 19명의 기사는 자신들 멋대로 게일의 행동을 해석했다.
게일과 함께 싸워도 모자랄 판에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차지!”
“돌격!!”
게일도 저버린 그들이 평소 귀찮게 여겼던 아스카를 챙길 리 만무하다.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겠지.
19명의 기사가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들은 검에 입을 맞췄고, 이어서 검에 자신들의 마나를 최대한 담는다.
가죽 갑옷에 장착한 마석을 강제로 작동시켰다. 그들 앞에 돌진용 방어막이 형성됐다.
“우오오오!”
“이럇! 이럇!!”
기사들이 기합을 지르며 몬스터의 벽을 뚫었다.
퍼버버버벅.
콰앙, 푸억푸억푹!!
기사들의 차징에 무시무시하던 몬스터가 육편이 되어 터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뚫었다!”
“살았다, 드디어 살았어!”
두터웠던 몬스터의 장벽을 뚫고 나왔다.
중급 기사 오텔이 고개를 돌려 경례를 올렸다. 난도질당하고 있을 게일을 향해.
“게일 경, 당신의 희생은 잊지 않겠…….”
퍼억!
하지만 게일을 향한 인사는 오히려 오텔 본인의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주먹에 오텔이 맞은 것이다.
차지로 힘을 받고 있던 그가, 비슷한 힘으로 날아온 주먹과 부딪혔다.
푸드득, 퍼억, 파닥.
그러자 말과 함께 몸이 터졌다.
부서진 말의 사체와 조각난 오텔의 시체가 섞여, 햄버그스테이크처럼 하나의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다른 기사들이 그 주먹의 정체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 오거다! 모두…….”
퍼억, 퍽!!
오텔의 근처에 있던 기사가 경고 하기도 전에, 그 기사 또한 옆에서 날아온 발차기에 몸이 터져 버렸다.
“키으아아아!”
외눈에 오거 못지않은 거대한 체구, 사이클롭스였다.
“으아악!”
“이대로 죽긴 싫어!!”
“제르다여, 부디!”
“살려 줘! 살려…….”
퍼억, 퍽, 콰악!
연이어 등장한 대형 몬스터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기사들을 사냥했다.
“쿠오옹!”
“쿠오…….”
쩝쩝, 우걱우걱, 우드득, 우드득.
순식간에 19명의 기사가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대형 몬스터들이 그렇게 차려진 한 끼를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씹어 삼켰다.
“우오오옴!”
미노타우로스가 그들을 전부 삼키고서 만족한 울음소리를 냈다.
푸욱.
“우움?!”
그런데 그때, 작은 무언가가 미노타우로스의 목에 박히더니, 이내 퍼엉! 하고 터져 버렸다.
“…….”
성대가 파괴된 미노타우로스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쿵! 하고 쓰러진다.
하지만 최상위급 대형 몬스터다. 치명상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타다다닷, 파앗.
사이클롭스의 눈으로도 쫓기 힘든 놀라운 속력으로 작은 인간 하나가 달려들었다.
서걱, 스스스슷.
이어서 번개 같은 속도로 빛나는 검이 휘날린다.
머리부터 심장 부근까지 미노타우로스는 잘게 조각났다. 방금 자신이 포식한 기사처럼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크와아!”
“쿠흠?!”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지자, 뒤늦게 눈치챈 대형 몬스터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피슉, 피슉.
퍼엉, 콰앙.
아까처럼 석궁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일부는 몬스터의 몸에 꽂혔다.
몬스터의 가죽을 얇게 파고든 화살은 이내 퍼엉 하고 터지며 깊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몬스터의 몸이 아닌 주변 바닥에 박힌 화살도 있었다.
그것들 또한 파앙! 터졌다.
터지면서 폭발과 함께 연막이 뿜어 나왔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매우면서 강렬한 연기가 몬스터의 감각을 저하시킨다.
“크오오오!”
“키약, 키이…….”
몬스터들이 정신 못 차리는 상황에, 아까 미노타우로스를 다진 인간이 빠르게 검을 휘두른다.
마나로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회복력이 강한 트롤 같은 몬스터는 고기로 다졌다.
그 외의 몬스터들은 급소만을 노렸다.
그렇게 대형 몬스터를 잡았다.
“와 씨, 진짜로 대형종을 잡을 줄이야.”
“우리 기사, 아니, 대장님, 진짜 대단하시다.”
“제르다의 화신이 맞아. 확실해!”
얼마 안 가, 말을 타고 온 부사관급 용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한 손에 석궁을 들고 있었다.
“잡담은 나중에! 당장 저쪽으로 간다.”
대형 몬스터의 피로 피칠갑을 한 로니아드는 용병들에게 지시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중형종 몬스터들이 가득한 쪽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꺼리거나 겁먹지 않았다.
“저놈들은 네놈들이 늘 숲에서 사냥하던 사냥감이다! 그냥 두 발로 서 있는 맹수라고 생각해!”
“이 아티팩트와 함께라면 자신 있습니다.”
“오늘 사냥감은 풍년이군.”
온몸에 일회성 아티팩트를 두른 최정예 레인저들.
심지어 그들은 10년 이상 맹수를 사냥한 자들이다.
로니아드는 저들에게 그저 인식의 변화만 주었을 뿐이다.
덜덜덜덜.
아스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망을 보았다.
로니아드에게 매를 맞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죽음이 코앞에 왔을 때의 느낌!
희망은 사라지고 오직 절망만이 가득하다.
살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어리석게 살지 말아야지.’
자신의 기분대로 했던 모든 일들이 부끄러웠다.
함부로 독설을 뱉고 손찌검을 한 모두에게 미안했다.
“로니아드.”
하지만 우습게도 최후의 순간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번이라도 죽기 전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의 진심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텐데.
“크르르르.”
“키에에엣!”
게일에게 몰렸던 몬스터들의 관심이 서서히 아스카에게로 쏠렸다.
이제 곧 그녀의 차례다.
아스카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쿠오오오!”
“키야야야!”
몬스터 중 리저드맨 세 마리가 아스카에게 달려들었다.
서거걱, 서걱.
차갑게 가죽과 근육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
소리와 함께, 리저드맨들의 하체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다리와 꼬리, 허리가 순차적으로 잘렸다.
“아아아아, 아아.”
마침내 아스카의 발아래에 도달한 리저드맨의 신체는 생명 잃은 머리뿐이었다.
그리고 아스카는 보았다.
붉은 눈동자를 활활 내뿜는 남색 머리의 남자를.
그가 자신을 노려봤으나 아스카는 무섭긴커녕 기뻤다.
아스카는 울음을 터트렸다.
“흐윽, 흐애애앵~!”
고마움과 미안함, 후회가 가득한 울음이었다.
로니아드 뒤엔, 지금까지 천하게 여겼던 용병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