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41
41. 히로인은 고쳐 쓸 수밖에
몬스터 웨이브.
아직 어떤 마법이나 종교적 관점으로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현상이다.
평소 먹고 먹히는 몬스터들이 갑자기 무리를 이뤄 인간을 공격하는 재해의 일종.
“루트파흐 영지에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는 절망급의 웨이브로 추정됩니다.”
“……×발.”
절망급이면 어지간한 영지 두세 개는 초토화시킬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인근의 영주들이 영지전을 멈추고 연합 중에 있다고 합니다.”
마을 촌장과 인근을 지나다니는 상인을 통해 취합한 정보들이었다.
몬스터 웨이브 등급은 총 네 가지가 있다.
고통, 악몽, 절망, 종말.
고통은 자잘하게 한 종의 무리가 무리를 이뤄 쳐들어오는 것.
악몽은 두 종 이상의 무리가 쳐들어오는 것.
여기까지는 영지에 피해가 다소 가더라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절망 등급은 세 종 이상의 몬스터가 중대형까지 포함되어 쳐들어오는 것이다.
일개 영지의 군사력으로 막지 못하는 등급이다.
최소 주변 영지들이 연합하거나 국가 차원에서 토벌 가능한 수준이다.
그 이상의 등급이 종말급이다.
종말은 영지가 아닌, 나라 몇 개가 사라지는 웨이브다.
다행인 것은 종말급 몬스터 웨이브는 신성 시대 초기 이후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현재 사실상 가장 높은 웨이브 등급은 절망급 몬스터 웨이브다.
최근 루트파흐 영지에서 발생했다는 몬스터 웨이브도 이 등급이다.
“차라리 그냥 무시할까?”
“……그러면 공주님은?”
“지 팔자지.”
내 말에 부사관급 용병들이 머리를 긁적인다.
굳이 사선으로 가지 않아도 돼서 좋긴 하다.
무엇보다 그 철없고 성격 더러운 공주님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뭔가 찜찜한 그들이었다.
그들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자, 나도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서브 히로인 한둘쯤은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리 나라도 절망급 몬스터 웨이브 속으로 들어가는 건 꺼림칙하다.
“그럼 돌아간…….”
그렇게 돌아가려고 하는데,
―머머리.
‘응?!’
문뜩 머릿속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가 번뜩 떠올랐다.
‘설마?!’
이세계로 빙의하면서 들은 징벌 사항.
빙의 당시에 들었던 무시무시한 그 단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던 그 단어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나는 심란한 기분으로 머리를 긁고 있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공포스러운 무언가를 느꼈다.
손을 보니 나의 남색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있었다.
“…….”
“대장?”
“무슨 일이십니까?”
용병들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청명하고 푸른 하늘을 보았다.
“야, 이 개새끼야!!”
신인지, 원작의 작가놈인지 모를 놈에게 진심을 담아 쌍욕을 뱉었다.
용병들이 갑작스레 살기 어린 내 모습에 찔끔 겁을 먹었다.
“간다!”
“어딜…….”
“공주 구하러! 이럇!!”
나는 이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말을 몰면서 바람에 휘날리는 내 머리카락이 계속 신경 쓰였다.
* * *
눈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아스카를 보았다. 착잡한 심경이다.
그녀는 내 눈을 보더니, 나에게 뛰어온다.
“로니아드~!”
그녀가 내게 안기려고 달려왔으나, 휘익.
“!!”
나는 아스카를 휙 하고 피했다.
아스카는 내가 갑자기 피하자, 앞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충격받은 얼굴로 뒤돌아 나를 봤다.
그런 아스카를 무시하고 짐 마차에 있는 짐들을 살폈다.
“휴우, 짐들은 무사하군.”
내 모습에 아스카는 충격을 받은 것 같다가도 이내 회복하더니, 짐 마차 앞에 선 나에게 다시 달려든다.
그러더니 내 다리에 매달려 애원했다.
“흐어엉! 내가 잘못했다. 나를 버리지 마라. 제발, 으아아앙!”
그녀를 보곤 한숨을 깊게 쉬었다.
“에휴, 이따가 각오해라.”
“으응! 고맙다. 날 버리지만 말아 다오.”
다리에 매달린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발작하듯이 애원하던 그녀가 내 손길에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빠르게 튀어야 하니, 짐 마차는 버려야 해!’
최대한 많은 양의 아티팩트와 짐들을 내 아공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아공간 가방에 달린 중급 마석의 마력이 빠르게 닳았다.
‘대형종 잡으면서 얻은 중급 마석을 이렇게 써먹는군.’
“대장님, 놈들이 물러납니다!”
“갑자기?!”
패가스의 보고에 나는 주변을 살폈다. 정말로 놈들이 물러나고 있다.
“도망친 기사 한 명이 쓰러져 있습니다.”
놈들이 물러난 자리에 게일이 있었다.
“아직 살아 있나?”
과연 상급 기사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다. 이 상태론 포션을 부어도 살기 힘들다.
최소 최고위급 치료사나 사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엔 없다.
“미안하오…… 쿨럭! 공주는 잘못 없소. 우리가 억지로…….”
게일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신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게일을 애도할 틈도 없이 주변을 살폈다.
“젠장! 다들 방어막 아티팩트 전부 꺼내!”
놈들이 물러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슈슉, 파바바바밧.
놈들이 포위 대형을 구성하더니, 원거리로 공격을 시작했다.
수백 개의 투창이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나는 아스카를 품에 안고 가지고 있던 일회용 방어막 아티팩트를 전부 땅에 던지듯 박았다.
용병들도 나를 따라 똑같이 했다.
카강, 캉캉캉캉 파앗.
방어막에 맞아 투척한 창들이 막혔다.
투창 공격이 끝나자마자 아스카를 안고서 말에 올라탔다.
“연막탄 투척, 몬스터 스프레이도 같이 섞어!”
“네!”
내 지시에 용병들이 가지고 있던 일회성 아티팩트를 추가로 사용했다.
연막이 몬스터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몬스터의 접근을 억제하는 스프레이가 후각을 괴롭혔다.
그 틈을 타서 우리는 재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다.
“흩어져! 다들 흩어져서 샹타페 시티에서 모인다! 알겠나!”
“무운을 빕니다, 대장님!”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아티팩트가 있으니 목숨은 건질 것이다.
무엇보다.
‘저 새끼들은 왜 나만 따라오는 거야?!’
몬스터들이 주로 나만 쫓는다.
휘익, 휙, 푸숫!
뒤에서 놈들이 던지는 창이 아슬아슬하게 빗맞는다.
내가 잠시 뒤에 시선을 판 순간!
“로니아드! 앞에, 앞에!”
아스카가 다급히 외쳤고.
그 외침을 들은 나는 바로 앞을 보았다.
“?!”
히이이잉.
눈앞에 커다란 낭떠러지가 있었다.
말이 가속을 못 이기고 절벽으로 달렸다.
“꽉 잡아!”
나는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 아스카를 안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꽈악, 콰가가각!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 몸이 땅이 아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급히 한 손에 마나를 분배해 벼랑을 붙잡았다.
“꺄아아악!”
실수로 놓친 아스카의 손을 잡기 위해 남은 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미처 붙잡지 못했고, 떨어지는 아스카와 나의 남색 머리카락이 겹쳐 보였다.
‘안 돼! 내 머리!!’
덥석!
나는 다급한 심정으로 그녀의 손이 아닌 다른 걸 잡아 버렸다.
꽈아악.
내 손에 아스카의 백금발 머리카락이 한가득 잡혔다.
“으갸갹!!”
머리끄덩이를 잡힌 아스카는 머리가 뽑힐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스카의 머리끄덩이를 잡고는 들어 올렸다.
머리가 잡힌 아스카와 나의 시선이 교환됐다.
“…….”
“…….”
그녀의 붉은 눈과 나의 붉은 눈이 서로의 얼굴을 담는다.
그녀의 얼굴이 또 붉어진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아스카를 내 등에 업었다.
“키에엣!”
“키약, 우쿠오!”
벼랑 위에서 몬스터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와 아스카는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오감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히 절벽 위로 올라온 나는 가방에서 바로 거울부터 꺼냈다.
그리고 아까 한 움큼 빠졌던 머리 부위를 보았다.
다행히도 머리카락이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한-제르다.”
나는 성호를 그으며 신 또는 작가놈을 찬양했다.
그런 나를 아스카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무사하다고 저렇게 안도 하다니.’
아스카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하자마자, 크게 안도하고 기뻐하는 로니아드를 보았다.
어찌나 기쁜지 그는 성호를 그으며 신까지 찾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경험.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쁨이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크게 뛰었다.
‘로니아드, 당신은 도대체?’
나를 정말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전날 밤, 그렇게 무방비였던 자신을 외면한 남자다.
아스카는 그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끝내 기사들을 따라간 이유에는 그때의 반발 심리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날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서 왜 나를 위해 저토록 진심인 거야?’
진실을 말하자면, 아스카가 아닌 로니아드 본인의 머리카락을 위해 진심인 거지만, 알 리가 없지.
그리하여 다시 가동된 망상의 12차원!
―이런 식으로 형님께 도움을 청하다니, 면목이 없군.
―그래. 형님과 내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니…….
그러다 문득 죽은 게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망상의 12차원에서 연성된 그녀의 망상.
‘설마?! 로니아드가 내 오……빠?’
아스카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아버지라고 보기엔 너무나 젊다.
잘생긴 외모, 무엇보다 자신과 똑같은 붉은색 눈동자!
‘아아!!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리하여 아스카의 망상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사랑 소설에도 이런 스토리는 없었다.
‘내 오라버니였던 거야, 로니아드가!’
여왕의 배에서 같이 나온 혈육인지, 아니면 배다른 남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스카와 로니아드가 피로 이어진 남매라는 것!
……이라고 아스카는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선 로니아드가 지금껏 보인 행동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상황이 진정되자, 로니아드가 주변을 살핀다.
“말은 저 아래로 떨어졌고. 걸어야겠군. 가까운 마을까지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리려나?”
로니아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스카를 보았다.
아스카가 조용히 눈을 깔고 얼굴을 붉힌다.
‘하아, 얜 또 왜 이러니?’
지랄 맞던 애가 갑자기 이러니까 무서워진다.
‘그래, 죽을 뻔했으니까 정신적으로 충격이 크겠지. 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공주님, 여러 사람 고생시킨 대가를 치러야지?”
“네…….”
오라버니.
아스카는 부끄럽고 기뻐서 차마 뒤의 말은 하지 못했다.
“공주님, 갑자기 왜 존대를 쓰는데? 머리라도 맞았어? 그냥 서로 편하게 가자, 제발!”
로니아드의 애원에 가까운 말에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는 격식 없는 남매 관계를 선호하는구나!’라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그럴게. 그…… 옵…….”
여전히 뒤의 오빠라는 말은 용기가 안 나 확실히 말 못 하겠다.
“??”
로니아드는 그런 아스카를 원래도 이상하게 봤지만, 더 이상하게 보았다.
“그런다고 안 봐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계략을 파악했다는 듯 표정을 바꿨다.
‘얘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리고 회초리를 꺼냈다.
“종아리 대라.”
“…….”
“서로 피곤하니까 10대만 맞자.”
“그, 그래!”
오라버니께서 훈육의 목적으로 매를 드셨다.
나 잘되라고 하는 거다. 사랑의 매야!
“……?”
아스카의 바뀐 태도에 혼란스러운 로니아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