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46
46. 영웅의 탄생
아까 오전에 있던 투모크와의 전투는 우리가 오해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도망쳐 나온 패잔병이었고, 도망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도망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작 항복을 하지, 왜 쓸데없이 결사 항전을 한 거요?”
마법사를 대하는 하몬의 말투가 점잖아졌다.
마법사는 고급 인력이다. 투모크가 망했으니 샹타페가 품어 줘야 한다.
“저는 몇 번이고 기사들에게 항복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지친 한숨을 쉬었다.
“기사놈들이! 몬스터한테 죽으면 죽었지, 샹타페 놈들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크흠!”
“아이고…….”
“쯧쯧쯧.”
마법사의 말에 천막 안에 모인 모두가 탄식했다.
‘어딜 가든 기사들이 문제군.’
샹타페와 투모크 두 도시 간의 사이가 나쁜 것은 예로부터 유명했다.
특히, 평소 샹타페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긴 경험이 있는 투모크는 유독 라이벌 의식이 심했다.
‘보나 마나 눈앞에 몬스터가 왔는데도 계속 싸우다가 각개격파 당했군.’
이쯤 되면 여기 기사들의 지능은 몬스터보다 낮다고 봐야 할 듯싶었다.
“시장님이 계신 본대는? 본대에 대해 아는 바 없소?”
“……마찬가지로 몬스터들에게 당했습니다.”
“아아!”
마법사의 말에 하몬이 탄식했다.
“그럼 샹타페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최소한 도시 성벽에 올라서 싸워야 승산이 높을 겁니다.”
하몬 주위에 앉은 하급 기사들이 다급히 말했다.
지금 같은 야영지에서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으면 전멸이다.
“루트파흐 주변 영주들은 뭘 한 거지? 듣기론 영지전을 멈추고 연합한다 했는데?”
그러던 중 한 용병대장이 의문을 표했다.
“설마, 그 연합군도 당했다는 건가?!”
“설마! 절망급이 아니라 종말급 몬스터 웨이브는 아니겠지?”
“종말급은 건국신화에서나 나오던 얘기잖아. 재수 없는 소리 마.”
분위기가 무겁고 싸해졌다.
“빌어먹을! 웨이브라 도망칠 수도 없고.”
“몬스터 웨이브와 싸우다 죽으면 제르다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고 천국으로 보내 준다잖아. 좋게 생각해.”
“괜히 이단 취급받으며 평생 도망치다 지옥 갈 바엔, 싸우다 천국 가는 게 낫지.”
하지만 용병들 중 어느 누구도 계약을 파기하거나 도망치려 하는 용병대는 없었다.
“날이 밝으면 바로 샹타페로 가겠소. 다들 야간 습격에 유의하시오.”
하몬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대몬스터 연합군이 전멸했다고? 거기에 투모크 시티도 무너졌고?!”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
프리미오 공작은 전령이 가져온 마법 통신에 인상을 구겼다.
“이런 시기에 몬스터 웨이브라니. 그것도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절망급이라니.”
프리미오 공작은 액자처럼 걸린 왕국 지도를 보았다.
“펠리오 놈들의 소행일 확률은?”
공작의 말에 그의 비서관이자 상급 마법사인 엔티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진즉에 대륙 북부를 평정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몬스터 웨이브는 자연 발생이라는 뜻이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 문제로 교단에서 나설 것 같습니다.”
“끄응…… 교단에서?!”
‘교단에서 나서면 귀찮아지는데.’
프리미오 공작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의 군대는 여기 수도에서 발을 빼기가 힘드니.
교국의 입김이 세지더라도 그들의 힘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끄는 게 최선이다.
거대한 액자에 걸린 왕국 지도를 보던 공작의 시선이 지도 북쪽에 있는 펠리오 왕국으로 향했다.
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빌어먹을 펠리오 놈들! 이 빚은 기필코 갚아 주지!’
저 원수 같은 펠리오 놈들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나라가 도탄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펠리오 놈들의 이간질로 2년 전부터 왕국 전체가 내전 중이네. 벌써 악티온과 페제는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지. 그 배후에 펠리오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공작은 한숨을 쉬었다.
“여왕께서는 무슨 의도인지 모르지만 그걸 방치만 하고 계시지. 그것도 모자라 귀족들과 척을 지셨고. 결국 나까지 반란에 동참하도록 했네.”
프리미오 공작은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하나 들었다.
책의 이름은 ‘순종에서 의심으로’, 저자는 ‘라이오스 마누스 룬 아르미다츠’다.
지금은 이 세상에 죽고 없는 이웃 왕국의 위대했던 군주였다.
‘우리의 여왕이 이 군주의 반이라도 닮았다면 목숨을 바쳤을 텐데!’
그 군주가 마지막에 집필했던 책은 프리미오 공작의 애독서다.
벌써 몇십 번을 읽고 또 읽는지 모른다.
“심지어 차기 여왕 후보인 공주는 군주의 자질이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달이고.”
그는 여왕의 방종을 참지 못하고 세력을 일으켰다. 그것이 불과 6개월 전이다.
펠리오의 수작을 저지하고 반항하는 영주들을 제압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의 세력은 수도 테오스카에서 왕궁을 포위 중이었다.
동부의 영주들을 시켜 공주를 잡으려 했다.
주교가 좀 걸렸지만 이미 출발한 마차였다.
처음 의도한 것은 이게 아니었지만.
어느새, 여왕을 죽이고 공주만 잡으면 오스카 왕국의 차기 국왕은 프리미오가 될 판이다.
“신께서 오스카를 버리시는 것일까?”
이런 와중에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라니. 정말 마가 껴도 보통 낀 게 아니다.
“…….”
프리미오 공작의 탄식에 엔티오 백작은 침묵을 지켰다.
“하긴, 당장 나부터가 왕실을 버렸지. 부디 신께서 왕실만 버리고, 이 나라 백성들에겐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군.”
엔티오 백작의 침묵을 해석한 공작은 피식 웃었다.
마법사 앞에서 신을 언급하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공주의 행방은?”
공작은 비서관인 백작에게 최근 지시한 가장 큰 사안을 확인했다.
“폴라라스에서 사라진 이후로 아직 추적 중에 있습니다.”
“주교께서 머리를 좀 쓰셨군.”
프리미오 공작은 집무실의 커튼을 쳤다.
창문을 가리던 커튼이 양쪽으로 쳐지자, 집무실 창문에 오스카 왕궁이 저 멀리 보였다.
순결한 순백의 색으로 도도하게 지어진 아름다운 왕궁.
저 순백의 왕궁은 테오스 대왕 때 지어진 왕궁이다.
또 테오스의 적법한 후손을 상징하는 오스카 왕실의 정통성 그 자체다.
그런데 그 왕궁 주변에 옅은 금색의 결계가 생성돼 있다.
“여왕이 왕궁에 친 결계는 언제쯤 없앨 수 있겠는가?”
“현재 테오스카의 모든 마법사들이 붙어서 연구 중입니다. 송구합니다. 여왕에게 그런 마법적인 재능이 있을 줄은…….”
엔티오 백작의 말에 공작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 계획대로 되는 게.”
* * *
투모크의 위치는 샹타페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즉, 투모크 다음은 샹타페라는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밤사이엔 몬스터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닭이 울자마자, 전 병력이 급히 샹타페로 움직였다.
샹타페에 도착하고서 얼마 안 돼, 도시에 나타난 것은 모두의 예상을 깬 존재였다.
“교단의 팔라딘이다!”
“사제들도 있어!!”
여전히 신성 시대의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옆구리에 신성력이 빛나는 메이스를 착용한 교단의 기사!
팔라딘들이 샹타페 도시로 달려오고 있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한-제르다!”
샹타페에서 결전의 각오를 다지던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환호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쫓기고 있는 거 같은데?!”
도시로 달려오는 팔라딘의 꼴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쫓기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 200여 마리의 몬스터가 따라붙었다.
“신성력을 다 썼나 보군.”
수비군을 지휘하게 된 중급 기사 하몬이 나직이 말했다.
눈에 보이는 팔라딘과 사제들의 수는 약 100여 명.
평소 신성력이 빵빵한 상황이라면 몬스터 1,000마리 정도는 우습게 잡을 전력이다.
하지만 저렇게 도망치는 것을 보니, 그 신성력을 다 쓴 모양이다.
팔라딘은 평소 신성력 연마에 훈련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따라서 신성력이 없으면 정예병 수준의 무력을 보이는 정도다.
“몬스터가 얼마나 많으면…….”
하급 기사 중 한 명이 질렸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그의 혼잣말에 투모크군 출신이었던 마법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답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몬스터는 처음 봤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뒤로하고, 하몬은 도시로 달려오는 민폐 객을 보며 한숨을 지었다.
“어찌 되었든 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쫓는 몬스터의 수도 그리 많지 않으니.”
손 하나하나가 귀한 순간이다.
지금은 신성력이 다해 추한 꼴이지만, 신성력이 충만한 팔라딘만큼 든든한 아군도 없다.
“레인저 용병대장 로니, 도와주시겠소?”
하몬이 정중하게 로니아드를 향해 부탁한다.
처음 일반적인 기사와 용병의 관계로 편히 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저 정도 실력의 사람이 용병을 하는 것은 분명 사연이 있는 일이다. 진짜 신분은 따로 있을 터!’
로니아드의 실력으로 추론한 합리적 의심이었다.
다른 용병대장이나 주변 기사들도 이런 하몬의 태도를 가지고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
“그렇게 하지요.”
활은 사거리가 길지만 대형 몬스터의 가죽을 뚫을 정도로 관통력이 강하지 못하다.
즉, 지금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부대는 레인저 용병대인 것이다.
하몬의 정중한 태도에 로니아드는 거절하지 못하고 돕기로 했다.
“레인저 용병대! 성벽 위로 정렬!”
나직한 목소리로 로니아드가 명했다. 하지만 저 끝에 있는 1인까지 들리는 마나가 담긴 목소리다.
어떤 명령이든 따르게 만드는 인품과 카리스마.
‘어쩌면 여기서 영웅이 탄생할지도?’
하몬은 묘한 기대감을 가지며 로니아드가 하는 바를 보았다.
이 젊은 용병대장은 지휘 능력도 뛰어났다. 종종 하몬과 기사들에게 자잘한 깨달음까지 주었다.
“루키엘! 저들에게 방어 마법을 잠깐이라도 걸어 줄 수 있나?”
“성직자에게 말입니까? 차라리 죽으려 할걸요?”
“어차피 신성력도 바닥인 놈들이다. 알아차리지도 못해.”
“끄응, 교단 놈들에게 해 주긴 싫지만……. 대장의 명령이니까 하는 겁니다.”
“고맙다.”
루키엘은 정말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한다는 표정으로 최소한의 방어 마법을 부여했다.
팔라딘과 사제들은 신성력도 바닥이고, 무엇보다 도망치느라 정신없었다.
덕분에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도시 성문으로 계속 달렸다.
“1열, 쏴!”
피슈슈슈슛, 피슛.
성벽도 높았고 전망도 넓게 트였다.
‘다행히 공중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군.’
로니아드는 하늘도 주시하면서 사격 지시를 했다.
“대장, 몬스터 스프레이 아티팩트를 사용할까요?”
“앞으로 엄청 쓰게 될 테니, 이번엔 대기하도록.”
성벽에 도열해 있던 레인저들이 전부 교대로 사격을 마쳤다.
다시 재장전을 마친 1열의 용병들이 사격을 하려 할 때는, 이미 몬스터 중 상당수가 쓰러진 상태였다.
팔라딘과 사제들도 성문 바로 앞까지 도착한 상황.
이윽고 성문에 도착한 그들이 다급히 문을 두드린다.
“팔라딘과 너무 가까워서 조준이 힘듭니다!”
“방어 마법도 이젠 시간이 다 됐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석궁으로 지원해 주기도 힘든 상황이다.
“성문을 열어 주시죠.”
“아직 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놈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면…….”
로니아드의 말에 하몬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하몬의 말에 로니아드는 성벽으로 달려오는 몬스터를 보았다.
석궁 공격으로 제법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50마리 정도가 남았다.
‘오크와 놀, 홉고블린이 50 정도. 그리고 트롤 한 마리인가?’
로니아드는 대충 견적을 내고는 통보하듯 말했다.
“저건 내가 잡지.”
“알겠……! 에?!”
그 말을 끝으로 로니아드는 성벽에서 성문 앞으로 단번에 뛰어내렸다.
번쩍!
번개가 연상될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가장 가까이 있던 홉고블린 다섯 마리가 감격에 맞아 순식간에 허리가 잘렸다.
서걱, 서거걱.
이어서 둔기를 휘두르던 오크의 상체를 대각선으로 베었다. 검격으로 인해 뒤에 있던 오크도 함께 잘려 나갔다.
중급 기사인 하몬의 눈으로도 로니아드의 움직임 중 일부는 놓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그가 뛰어내린 지 1분도 안 되어 50마리 중 절반이 목이 잘렸다.
“……저게 말이 되는 건가?”
“테오스 대왕의 재림이다!”
“용병왕 로니!”
“용병왕! 용병왕! 용병왕!”
“번개 검, 번개 검, 용병왕 로니다!”
갑자기 등장한 영웅의 무용에 성문을 두드리던 팔라딘과 사제들도 경악하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애타게 성문을 두드리던 손도 멈춘 채, 입을 떡 벌리곤 영웅의 위용을 감상하기 바빴다.
“쿠오오오오!!”
서거거걱, 지지지짓!!
마지막 남은 트롤이 쓰러졌다. 로니아드의 검에 양팔과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리면서 무너졌다.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트롤이지만 초 단위로 목과 심장이 썰리니 버틸 수가 없었다.
“아한-제르다.”
“제르다, 제르다의 화신이다!”
팔라딘과 사제들이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로니아드를 보며 성호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