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47
47. 화신, 재림 그리고 용병왕
황금시대 말기, 마도사들의 만용으로 악마 문이 대륙 전역에 열렸다.
지옥이 현세로 그대로 넘어왔고, 찬란했던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 100년 동안을 후세 사람들은 암흑시대라 불렀다.
대륙에 종말급 몬스터 웨이브가 월 단위로 발생했던 시기.
인간뿐만 아니라 요정, 거인족, 난쟁이, 수인족 등 모든 지성체들이 멸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이를 딱하게 본 신이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강림했다.
그 인간의 이름이 바로 ‘제르다’.
제르다는 엄청난 무용으로 악마와 몬스터를 무찔렀다.
마계에서 올라온 마족과 악마들을 신성으로 소멸시켰고, 마족들 스스로가 악마 문을 닫고 마계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제르다는 30년간 대전쟁을 치렀고, 마침내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다.
제르다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지금의 성력(聖曆)이 만들어졌고 신성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르다는 ‘신성 제르다 교국’을 건국하고 초대 교황으로 등극했다.
그 후, 인간의 생을 마친 후에 승천하였다.
그 당시 제르다를 그린 그림을 보면, 그는 늘 몬스터와 악마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신성 시대 초기에 그린 그림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림의 배경엔 몬스터의 시체가 바닥을 장식했다.
시체 위에는 피를 뒤집어쓴 제르다가 당당히 몬스터와 악마의 시체를 밟고 서 있다.
그런 제르다의 머리 위에는 후광이 환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후광을 받는 제르다를 중앙에 두고, 좌우로 여러 인물들을 그렸다.
당시, 함께 동맹을 맺고 싸우던 천계와 대륙의 지성체들이었다.
제르다의 뒤에는 천계에서 내려온 새벽녘의 천사 아한이 빛의 날개를 휘날리며 로브를 쓴 채 검을 들고 있다.
옆에는 오스카의 건국왕 테오스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각 세력의 구전에서 볼 수 있는 신화적인 존재들, 인간, 용족, 수인족, 요정, 난쟁이, 거인족 영웅들이 함께 있었다.
당시를 그린 그림들은 대체로 이러한 구도로 대대로 그려져 왔다. 이는 이카디아 사람들에게 예언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2,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아한-제르다.”
“제르다의 화신을 뵙습니다.”
팔라딘과 사제들이 로니아드를 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고 몬스터의 시신 위에 당당히 선 로니아드.
그 모습은 그림에 묘사된 제르다의 화신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성당에서 본 신성 시대 그림들.
기억 속의 그림과 지금 로니아드의 모습은 주변에 이종족이 없는 것을 빼면 너무나 똑같았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성직자로부터 이런 대우는 결단코 사절하고픈 로니아드다.
괜히 집중받는 것은 정말로 싫었다.
‘괜히 나댔나?’
후회가 밀려온다. 그깟 성직자 몇 죽게 내버려 둘걸.
“아니, 나는 일개 용병대장으로 화신 같은 게 전혀…….”
언제부터 용병대장이 일개로 표현됐는지는 모르지만, 제르다의 화신보단 별거 아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때맞춰 노을이 졌다.
노을의 빛이 시체를 밟고 올라선 로니아드의 머리를 비춘다.
“오오! 후광! 헤일로가!!”
“새벽녘 천사 아한의 축복이야.”
“아한-제르다!”
더 이상 변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오! 착각계는 아스카 하나로도 피곤하다고!’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의 호감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를 써야 했다.
“어쩐지! 그렇게 많은 화살이 날아왔는데도 단 한 명도 맞지 않았습니다. 역시 제르다의 가호가…….”
“아니, 그거 마법사가 방어 마법 걸어 준 겁니다.”
“오! 원래 신성력과 마법은 상극인데, 제르다의 가호로 마법 방어를 받을 수 있었군요!”
“아니, 그건 당신들이 신성력이 없는 상태라…….”
“아한-제르다. 겸손하기도 하셔라.”
“…….”
‘젠장, 말이 안 통한다. 뭘 어떻게 말해도 알아서 눈, 코, 입, 귀에 피어싱을 하고 있어.’
이 광신도들은 채우라는 신성력은 회복 안 하고 로니아드 주변을 서성인다.
“곧 몬스터가 올 텐데 신성력 준비들 안 합니까?”
보다 못한 하몬이 한마디 했다.
“제르다의 화신 옆에 있으면 신성력도 당연히 회복됩니다!”
근거 없는 확언을 했다.
‘무슨 유사 신성이냐?’
괜히 저들을 구한 게 아닌가 후회하는 하몬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로니 님은 번개 검을 쓰는 용병왕이라니까요!”
“무슨 소리냐! 테오스 대왕의 재림이시다!”
“신성모독이다! 제르다의 화신께 무슨 망발이냐!”
도시 안에서 기사, 용병, 성직자들 간의 말싸움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것도 나를 주제로.
물론 신분제의 벽으로 용병 쪽은 목소리가 작았다.
대신, 기사와 마법사가 지지하는 테오스의 재림설과 성직자들이 주장하는 제르다의 화신설이 도시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몬스터의 침공을 앞두고 잘하는 짓이다.’
이세계의 인류가 저러고도 멸종 안 한 것이 미스터리다.
“로니 님! 로니 님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결국 테오스파와 제르다파가 나에게 물었다.
“테오스의 재림!”
“당연히 제르다의 화신이죠!”
“……번개 검 용병왕.”
용병들은 구석에서 조용히 내가 용병왕이라고 선포하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냥 제르다나 테오스 중 하나 선택해서 사기 좀 쳐 봐?’
살짝 이런 유혹이 들긴 했다.
‘아서라, 괜히 그랬다가 걷잡을 수 없게 끌려다니게 된다.’
오히려 역으로 이용당하고 먹힐 수 있다.
“저는 테오스의 재림도, 제르다의 화신도 아닙니다. 용병일 뿐입니다.”
“마, 말도 안 돼!”
내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나라 잃은 애국지사 얼굴이다.
용병들은 구석에서 “예스!”를 외쳤다.
하지만 의외로 팔라딘과 사제들의 얼굴은 담담하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
“이해합니다. 제르다의 화신이시여!”
“지금의 교단은 많이 부패하여 당신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많습니다.”
“저희가 더욱 쇄신하여 당신께 어울리는 교단이 되겠습니다.”
“후훗, 저 믿음이 부족한 기사와 마법사놈들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화신님의 말도 제대로 해석 못 하는 것들이.”
‘아니야. 해석은 너희들이 병신같이 하고 있어.’
이것이 광신의 힘인가?
뭘 어떻게 말해도,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져도 자기 꼴리는 대로 믿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저들은 아마 내가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해도 마녀를 찾아 없앴다며 찬양할 놈들이다.
“일단 곧 전투가 코앞입니다. 성직자분들은 신성력 회복에 전력을 다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그러시다면.”
“최선을 다해 다가올 고난에 대비하겠습니다.”
아까 하몬이 말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자들이 내 한마디에 순한 양처럼 따른다.
옆에서 하몬의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몬스터와 하루 종일 싸우는 게 편하겠어.’
저 광신도와 몇 마디 나눴음에도 심력 소모가 장난 아니다.
‘교주 짓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지구에서 종교 가지고 장사해 먹는 성직자들을 욕한 적 있는데, 다시 보게 되었다.
믿음을 이용해 먹는 것은 양심과 상식을 팔아먹는 일과 같았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잠시 쉬기 위해 임시로 친 막사로 향했다.
여관도 있지만, 거긴 성벽과 거리가 멀다.
임시로 급히 친 곳이라 다른 용병대와 우리 용병대의 천막이 섞여 있다.
‘아스카?’
우리 천막 쪽으로 가니 아스카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심각해 보인다.
‘뭐야, 저 새끼들은?’
가까이 가 보니, 다른 용병대의 용병대장 셋이 아스카를 음흉하게 보면서 음담패설을 하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지?”
내가 등장하자, 세 명의 용병대장이 나를 향해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하하하, 로니 대장님. 아까 무용은 잘 봤습니다.”
“용건부터 말해.”
내 태도에 그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듣자 하니, 저 여자가 대장님의 전속 창×라고 들었습니다.”
‘뭔 헛소리지?’라고 생각했다가 “아!” 하고 생각났다.
지난번 루키엘을 포획(?)할 때 있었던 얘기가 와전되어 퍼진 모양이다.
거기에 10쿠퍼 심부름도 시켰으니 놈들이 오해할 만하다.
“자세히 보니, 백금발에 붉은 눈이 매력적인데, 어떻게 오늘 밤은 제 아이와 바꿔 보시겠습니까?”
“제 애첩도 꽤 이쁩니다.”
저들 딴에는 나와 친목을 다지자는 취지에서 한 제안일 것이다.
용병들 사회 자체가 원래 깨끗하지 못하다.
뭐, 귀족들도 자기네 애첩들 서로 돌려 먹으니 비슷하구나.
부들부들.
그들의 말에 아스카의 얼굴이 치욕으로 붉게 물든다.
반지 모양 아티팩트를 어찌나 어루만졌는지 반지 낀 손가락 주변이 붉었다.
“훌쩍!”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공주님인데, 이건 그냥 넘어가선 안 되지.
“뭔가 오해를 했나 본데.”
나는 몸에서 살기를 일으키며 놈들에게 말했다.
“저 아이는 내 사촌 동생이야.”
“허업!!”
“딸꾹! 딸꾹!”
내 말에 용병대장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이상하다. 부, 분명…….”
그러다가 놈들은 내 눈동자 색과 아스카의 눈동자 색을 보았다.
둘 다 흔치 않은 붉은색 눈동자.
“!!”
그들의 표정이 더욱 새하얘진 것은 당연하다.
“댁들도 잘 알잖아? 원래 뜬소문 중에 믿을 만한 소문 없다는 거. 하물며 용병대장이라는 자들이…….”
채르릉.
나는 검을 뽑았다.
내가 검을 뽑았으나, 저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도 못 냈다.
그들도 아까 내 무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뜬소문으로 큰 실수를 하면 되겠어?”
“죄, 죄송합니다!”
“레이디 스카이께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용병대장들이 나와 아스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를 땅에 박으며 빌고 또 빈다.
명분도 있겠다, 죽이려면 흔쾌히 죽이겠지만,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괜히 일을 만들 순 없지.
“모르고 그랬고, 용병 사회에선 나름의 호의니 이번은 넘어가지.”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살기를 풀풀 풍기며 놈들에게 명령했다.
“앞으로 다른 놈들이 와서 비슷한 짓거리를 하면, 그놈도 죽고 네놈들도 죽여 버린다. 그러니 가서 제대로 된 소문을 퍼트려라. 명령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개 같은 소문 낸 놈들을 찾아서! 제가 직접 죽여 버리겠습니다!”
“레이디 스카이께서 용병왕 로니 님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겠습니다!!”
내 말에 용병대장들이 연신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내가 꺼지라고 손짓을 하자, 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다.
용병대장들이 도망치면서 그들에게 이런 정보를 준 몇몇의 이름을 씹듯이 외쳤다.
아마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용병 몇이 맞아 죽을 거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고, 상처 입었을 아스카를 조심스레 봤다.
하지만 아스카는 상처는커녕, 크게 감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스카는 ‘드디어 출생의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갔어!’, ‘사촌이면! 역시 이복 남매인 것인가?’라는 등의 이상한 혼잣말을 씨부린다.
그리고 나를 슬그머니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도 돼?”
“…….”
내가 말없이 아스카를 노려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라버니?”
그래, 너 잘 만났다. 얘한테 스트레스 좀 풀어야지.
“오냐, 어디 오빠의 사랑이 담긴 헤드록 좀 받아 봐라!”
나는 그런 아스카의 머리를 한 팔로 감았다.
꽈악!
그리고 헤드록을 걸었다.
“끼에에에에엑!!”
아스카의 처절한 비명이 막사 안을 울렸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아스카는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면서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저, 오빠.”
이젠 나를 오빠로 부르기로 멋대로 정한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불러라. 내가 얘보단 나이가 많으니.
정체를 숨기는 것에도 도움이 되겠네.
“뭔데? 공주님.”
내가 별말 없이 받아 주자 아스카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표정 변화 쩐다. 얘는 지구에서 연예인을 해야 했어.’
아스카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말해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스카가 꿈 내용을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는 꿈을 꿨어.”
아스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은연중 겁을 먹고 있었구나.
하지만 뒤이어 들리는 말에 내 입꼬리가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