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53
53. 두 공주의 보디가드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여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카디나의 경우 검이 그런 기능을 했다.
누군가와 대련을 하거나, 목숨을 건 싸움에 임할 때, 평소 털털하고 덤덤한 그녀의 성격은 검을 잡는 순간 변한다.
공격적으로, 유희적으로.
고오오오.
갑작스러운 기세의 역전.
“뭐, 뭐 이런…….”
대련을 맡기로 한 샹타페의 하급 기사가 당황한다.
타다다닷.
카앙, 캉! 챙.
곧바로 엄청난 속력으로 돌진하는 카디나.
그녀의 검격에 하급 기사는 다섯 합도 못 견디고 검을 놓쳤다.
챙그랑!
카디나의 맹공에 하급 기사의 검이 두 동강 나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최상급 기사!!”
로니아드를 제외한 면접장의 모두가 벌떡 기립했다.
반면 카디나는 기겁한 기사들과 달리 조용했다.
‘한심하군. 너무 하찮아서 역겨울 정도의 실력이야.’
아니, 속으론 혐오감이 가득 찼다.
‘고작 이딴 실력으로 로니아드 님과 함께 있다니! 신성모독이야, 신성모독!!’
팔라딘 아고르와 어떤 의미론 코드가 맞을 것 같다.
‘죽여 버리고 싶다!’
로니아드를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하찮은 놈들은 모두 죽이고 싶었다.
‘살기?’
그런 그녀의 기세를 심상치 않게 여긴 로니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련 장소로 나왔다.
그는 따로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땅에 떨어진 부러진 검을 들었다.
‘부러진 검…….’
로니아드는 부러진 검을 보다가 눈앞의 붉은 머리 용병을 보았다.
갑작스러운 로니아드의 등장에 카디나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간만에 제대로 된 대련을 해 볼까? 어때, 해 보겠는가?”
“영광입니다. 검을 뽑으시지요.”
카디나의 말에 로니아드가 피식 웃었다.
“난 이 부러진 검으로 하지.”
명백한 도발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카디나는 얼굴을 붉히곤 대련을 받아들였다.
할짝.
습관적으로 그녀의 혀가 붉은 입술을 핥았다.
―어디 부러진 검에 뒷구멍이나 뚫려 봐라!
그러자 로니아드의 머릿속에 어떤 대사가 떠올랐다.
‘기억났다! 그때 폰테임의 여기사였군.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기사 제복이 아닌 용병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바로 못 알아봤다.
빙의 후 만난 인간 중에서 율카네스 다음으로 강했던 자다.
‘인간 중에선 칼과 로지스트, 이소레타 다음일지도?’
잠시 원작 인물들이 떠올랐다.
잠깐 떠오른 잡념을 물리치고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재미있군.’
당시 끝내지 못한 대련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로니아드의 손에 들린 부러진 검을 보니 그때에 이어서 대련하는 기분이다.
“세 개의 칭호를 가진 입장에서 선공을 양보하지.”
로니아드의 등장으로 누그러졌던 카디나의 기세가 다시 흉포해졌다.
“후회하실 겁니다.”
하지만 아까 보였던 살의는 없다. 오직 전투 그 자체를 즐기는 무인의 투지만 보였다.
‘그때 이후로 내 검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어.’
눈앞의 여기사는 당시에도 최상급이었다. 천재 중 천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당시엔 마법을 쓰지 않고서 살짝 밀렸지.’
타다다닷.
카디나가 엄청난 속도로 로니아드에게 달려왔다.
로니아드니까 그녀가 달려온다고 느낀 것이다.
이 대련을 보고 있을 일반 하급 기사들은 아니다.
그들은 카디나가 순식간에 로니아드 앞에 나타난 것으로 착각했을 거다.
카디나가 로니아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진짜 죽일 기세로 검을 찔러 넣으려 한다.
로니아드를 향한 신앙에 가까운 신뢰가 없으면 하지 못할 일.
그런 카디나의 귀에 로니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느려.”
이어서 그녀의 찌르기를 끊는 부러진 검.
카앙, 퍼억, 콰가가각.
검을 놓치고 명치를 맞고 뒤로 튕겨지기까지, 그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남들의 눈에는 그저 두 사람이 쾅! 하고 격돌한 후, 카디나가 튕겨 나간 것으로 보일 것이다.
“콜록, 콜록!”
바닥에 누운 카디나가 간신히 호흡하면서 콜록거린다.
그런 그녀를 향해 로니아드가 다가와 손을 내민다.
“당연한 말이지만 합격이다.”
‘이놈의 몸은 도대체 얼마나 성장한 거야?’
겉으론 태연했지만, 속으론 로니아드도 놀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전성기의 로지스트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카디나는 그런 로니아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오를 알리는 태양이 로니아드를 비춘다.
로니아드의 머리에서 후광이 발산하는 거 같았다.
“여, 영광입니다.”
카디나는 몽롱한 눈으로 로니아드가 내민 손에 입을 맞췄다.
쪼옥.
“……?”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건넨 손에 입을 맞추는 카디나.
자신의 손에 낯선 이의 입술이 닿자, 로니아드는 기분이 심란해졌다.
‘이노와 제인이 그립다. 아리아도. 여기서 만난 여자들은 정상인 애가 하나도 없어…….’
아스카, 브리기트 그리고 눈앞의 카인인지 샤인인지 하는 애까지……. 로니아드는 가슴이 갑갑하다.
오스카의 일이 끝나면 렌슬렛에 한 번 방문하기로 결심한 로니아드였다.
* * *
카디나는 중위라는 계급을 받았다. 용병대에서 로니아드를 제외하면 제일 높은 계급이란다. 패가스보다도.
패가스를 포함해 그 누구도 카디나의 처우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도 면접장에서 봤기 때문이다.
‘기사 출신이라 아깝지만 만약을 위해서 용병대엔 넣지 말자.’
무엇보다 로니아드가 카디나를 레인저 용병대를 지휘하는 간부 자리에 배치하지 않았다.
카디나가 배치된 곳은 바로 아스카와 브리기트의 호위 자리였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이 있다.
지구의 어느 고전 영화에서 본 대사다.
‘저 정도 되는 기사가 폰테임을 나와서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폰테임 하면, 앨리스가 있다. 앨리스만 생각하면 로니아드는 지금도 회초리가 마렵다.
종종 꿈속에서 그 요망한 소녀를 찰싹찰싹 때려 주는 꿈을 꾸기도 한다.
‘무슨 수작인지 어디 한번 해 봐라!’
지켜보고 있다!
만약 폰테임의 앨리스라면 로니아드 주변의 약점을 이용할 것이다.
렌슬렛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걸 고려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아스카와 브리기트였다.
카디나의 임무를 정한 로니아드는 그녀를 데리고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두 여자에게 카디나를 소개했다.
“이제부터 공주님과 스카이의 호위를 맡을 카인 샤인 경입니다. 스카이, 말 잘 들어라.”
‘어디 눈앞에 너희가 노리는 먹잇감을 놨다. 무슨 의도로 왔는지 한번 해 보시지?!’
로니아드도 함정을 파 놓은 상황.
그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카디나를 두고 천막을 떠났다.
물론 루키엘이 만든 각종 아티팩트로 오만 가지 대비를 해 놨다.
그의 오감도 여기에 집중한 상태다.
로니아드가 대뜸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기사처럼 생긴 용병을 두고 갔다.
호위라면서 말이다.
“…….”
브리기트는 말없이 카디나를 조심스레 스캔만 했다.
‘호오~.’
아스카는 대놓고 카디나를 훑었다.
카디나는 두 여자의 시선에, 익숙하면서도 싫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무료하게 있던 두 여인에게 로니아드 외의 꽃미남의 등장은(겉으로는 미소년 용병이다)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다.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말이다.
‘여자애들 관리는 싫은데…….’
반면, 카디나는 로니아드로부터 받은 지금의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자신이 원했던 것은 로니아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전장을 달리는 것이다.
물론 공주를 호위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가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쁜 게 맞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 두 소녀를 관리하는 건 싫었다.
“이름이 카인이라고? 헤에~.”
가장 먼저 카디나에게 말을 건 것은 스카이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그렇습니다. 로니아…… 로니 님의 동생분인 스카이 양이시죠?”
처음에 못된 오해로 의심을 했던 소녀다.
카디나는 아스카에게 괜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래, 로니는 내 오빠다! 너, 우리 오빠랑 대련했다가 발렸다고 들었다.”
“하하하…….”
아스카의 오만하고 거침없는 말에 카디나는 웃어넘겼다.
‘로니아드 님이 동생을 너무 오냐 오냐 하셨군.’
이어서 현재 공주 역할을 하고 있는 브리기트가 카디나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네. 나는 오스카 왕국의 적통인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주마마.”
브리기트의 인사에 카디나는 기사의 예를 갖춰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는 경례했다.
“푸웁!”
그런 두 사람을 아스카가 비웃는다.
아스카의 비웃음은 브리기트의 귀에 들렸다.
무엇보다 카디나의 귀에도 들렸다.
“크흠!”
브리기트는 아스카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 못했다.
단지 아스카에게 보안을 지켜 달라는 의미의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스카이 양께서는 왜 왕족과 기사의 예를 보고 비웃는 것이죠?”
반면 카디나는 좋지 못한 표정으로 아스카를 노려봤다.
“가죽 갑옷 입은 용병 주제에 기사도는 무슨! 흉내 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방랑 기사가 천박하게.”
카디나의 표정에 발끈한 아스카도 옛 버릇대로 말을 해 버렸다.
“지금 뭐라 하셨죠?”
골수까지 기사도에 빠져 있는 카디나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어머~ 눈빛 봐라? 한 대 치겠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아스카는 자신의 본래 신분을 말하려다가, 로니아드의 회초리를 떠올리곤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카디나가 입을 열었다.
“압니다. 스카이 양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로니…… 님의 여동생이지요.”
카디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브리기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만류했다.
“저…… 카인 경, 경의 충정은 알았으니, 화를 식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괜찮다네. 아, 스카이 양도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니…….”
“공주님! 공주님께선 지나치게 자애로우십니다. 저런 개념 없는 아이는 정신을 차리게 혼쭐을 내야 합니다!”
다들 아슬아슬 정체의 선을 지키며 대치했다.
“뭐? 허 참! 내가 개념이 없다고?! 이게!”
간만에 아스카는 예전처럼 성질을 냈다.
짜악!
카디나의 뺨을 때린 것이다.
물론 최상급 기사에게 여리디여린 소녀의 뺨은 볼 뽀뽀보다도 타격이 없다.
하지만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데에는 훌륭한 효과가 있다.
‘이 꼬맹이가 감히 죽으려고!’
순간, 카디나는 눈앞의 백금발의 소녀와 자신의 이복동생 앨리스가 겹쳐 보였다.
동시에, 앨리스의 싸가지 없는 모습에도 뭐라 하지 못했던 울분이 아스카의 도발과 함께 폭발했다.
쫘아아악!!
순간, 카디나의 손바닥이 아스카의 뺨을 후려쳤다.
아스카는 비명도 못 지르고 천막 구석으로 날아갔다.
“으아아…….”
브리기트가 그 모습을 보곤 덜덜 떨었다.
분명 기분은 좋은데 후환이 두려웠다.
“너, 너! 내 뺨을…… 흐윽……. 오빠아!! 으아아아앙!!”
아스카는 카디나에게 뺨을 맞고도 기절은 하지 않은 모양이다.
대신 맞은 볼이 크게 부어 있었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뺨만큼은 태어나서 처음 맞아 본 아스카다.
그녀는 분노보단 황당함에 엉엉 울었다. 엉엉 울면서 오빠를 계속 찾았다.
하지만 카디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스카이! 너는 로니 님의 동생이라는 사실에 감사해라! 다른 여자였으면 진즉에 죽였다.”
카디나는 아스카의 뺨을 후려치고는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사, 살려……! 살려 줘!! 오빠!!”
카디나가 검을 뽑고 아스카에게 다가가자, 아스카가 애절하게 로니아드를 부른다.
그리고 로니아드가 마침내 등장했다.
“무슨 일이지?”
이미 아까부터 천막 안의 상황을 보고 있던 로니아드다.
지켜보다가 카디나가 아스카를 죽일 거 같아서 급히 개입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소중하니까.
“로니 님, 실은…….”
카디나가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로니아드에게 고했다.
이미 밖에서 그 내용을 알고 있던 로니아드다.
그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곤 카디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칼로 뭘 어떻게 할 거지, 카인 경?”
로니아드의 물음에 카디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잘라서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요.”
‘폰테임의 훈육 방법도 만만치 않구나.’
카디나의 말에 이렇게 생각했다.
“스카이, 기사도와 왕족을 모독하는 것은 대역죄다. 카인 경이 이 정도에서 선을 지켜 준 것을 고맙게 여겨.”
“오, 오빠?!!”
로니아드의 말에 졸지에 머리카락이 잘리게 된 아스카는 좌절했다.
“왜! 내가, 내가 진짜 공……!”
그리곤 로니아드에게 자신의 신분을 얘기하려 했으나.
고오오오오.
“…….”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가 아스카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마치 그걸 말하면 진짜 목을 썰어 버리겠다는 듯이.
“흐윽, 흐아아앙, 잘못했어요!”
결국 아스카는 울면서 잘못을 빌 수밖에 없었다.
“그래, 스카이 양.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물론 카디나는 그런 아스카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싹뚝, 싹뚝, 머리카락을 잘랐다.
한동안 레이디 스카이는 용병대의 누구보다도 베레모와 후드를 열심히 쓰고 다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