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59
59. 오스카의 여왕들(2)
얼마 전, 로니아드 일행이 샹타페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로니아드가 아스카의 머리를 예쁘게 잘라준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
아스카는 두 달이 비추는 달빛을 맞고 있었다.
“흐응~ 흠흠~♬”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아스카는 거울로 자신의 머리를 보았다.
환한 달빛 덕에, 거울에 비친 아스카의 백금발이 은발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단발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벌써 수차례 거울을 보았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침울해 있던 아가씨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브리기트는 나의 대역으로 위험을 감수했으니, 내 전속 시녀로 삼아 줘야지.”
아스카는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필립은 돈을 잘 관리하니까, 재상직을 하사하고.”
내일이면 수도로 향한다.
아스카는 벌써 자신이 여왕이 되었을 때의 일들을 계획하고 있었다.
“레인저 용병대는 전부 왕궁 경비대로 배정해 주는 거야. 이 정도면 내 은혜에 감사하겠지. 그리고 로니아드 오빠는~.”
로니아드를 떠올리자 아스카의 얼굴이 붉어진다.
“로니아드 오빠에게는 왕실 근위 대장을 맡기는 거야! 그래서 평생 나와 함께 왕궁에서 사는 거야!”
참으로 그녀다운 단순하면서도 철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오빠랑 더 깊은 사이가 되면 어쩌지? 어차피 내가 여왕이니까 그 정도는 무시하자!’
점점 도를 넘는 망상이 아스카의 머릿속을 채운다.
‘근위 기사단을 잘생긴 기사들로만 뽑는 거야! 실력이야 어차피 로니아드 오빠가 있으니까.’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하렘의 나라가 펼쳐지고 있었다.
“카인 그 녀석은, 잘생기긴 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노예로 삼아 줘야지. 빠드득!”
잘생긴 노예 기사라니, 뭔가 흥분된다.
그렇게 아스카가 망상의 12차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야옹~.
그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검은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났다.
“고양이?”
아스카는 검은 고양이를 보았다.
오드 아이를 한 검은 고양이는 만약 달이 밝지 않았다면 보기 힘들 정도로 검었다.
“아이, 귀여워~. 넌 어디서 왔니?”
아스카는 검은 고양이를 반겼다.
고양이 또한 아스카의 관심을 피하지 않았다.
아스카가 검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고양아,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당연히 고양이가 말을 할 리 없다.
당연히 아스카도 고양이가 대답할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이 다가가 녀석을 쓰다듬기 위해 말을 건 것뿐이었다.
―저는 타르타트라고 합니다. 제국에서 왔고요.
“……?!”
지금 환청을 들은 걸까?
아스카는 고양이를 만지려다 말고 멈칫했다.
야옹~.
검은 고양이는 언제 말을 했냐는 듯 야옹거린다.
“요, 요즘 내가 좀 피곤했지……?”
아스카의 혼잣말에 검은 고양이가 아스카의 눈을 응시한다.
마치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 당신 이름이지요?
이어서 다시 들리는 고양이의 목소리.
정확히는 오드 아이가 빛나면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워, 원래 고양이가 말도 하고 그런 종족이었나? 수인족같이?!”
아스카의 말에 자신을 타르타트라 소개한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저었다.
―공주여, 저는 당신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괜히 호기심에 여기 왔다가 코가 꿰였군……. 으휴.
고양이는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당신의 여왕께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마나의 맹세로 말이죠. 그리고 여왕께서는 이번 일을 통해 그 빚을 갚으라 하시는군요.
“어머니? 오스카의 여왕을 말하는 거야?!”
타르타트의 말에 오스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언급되었다. 아스카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여왕께서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어디에 있는데?”
―여왕께서는 사정이 생겨 마법 통신조차 못 하십니다. 직접 이곳으로도 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대신 저의 도움으로 꿈속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타르타트는 그렇게 말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수도와 가까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은 힘들고, 수도 인근에 도착하면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저와 만난 것은 절대로 비밀입니다.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마치 잠깐의 꿈이라도 꾼 기분이다.
‘오빠에게 말해야 할까?’
방금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일을 로니아드에게 말할까 생각도 했었다.
‘…….’
하지만 이내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와 만난 것은 절대로 비밀입니다.
고양이가 마지막에 남긴 말에 마법이 담겼는지 아스카는 이상하게 말하기가 꺼려졌다.
그 일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수도 인근의 소도시 펜템에 도착하기 전날 밤, 타르타트가 아스카를 다시 찾아왔다.
―여기쯤이면 될 거 같습니다.
‘역시 꿈이나 환상 같은 게 아니었어.’
아스카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 검은 고양이를 맞이했다.
“타르타트, 너는 그럼 어머니가 다루는 패밀리어 같은 거야?”
―패, 패밀리어?!
다시 나타난 타르타트는 아스카의 질문에 벙찐 얼굴을 했다.
얼마나 황당해 했는지 고양이의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공주께서는 제 이름을 처음 들으십니까? 분명 제국에서 왔다고 소개했었는데…….
타르타트의 당황한 모습에 아스카의 태도는 순수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 정말로 모른다는 듯.
―이런 대우는 처음이라 당혹스럽군요.
타르타트는 속으로 ‘지능이 좀 낮은 건가?’라고 생각했다.
―설명할 시간도 없고 하기도 귀찮으니, 그런 셈 치죠. 지금 제 꼴을 보니 전혀 틀린 말도 아닌 거 같으니…….
한숨을 내쉰 타르타트는 오드 아이를 빛냈다. 그의 오드 아이가 아스카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스카는 뭔가에 끌리듯 검은 고양이의 오드 아이를 멍하니 보았다.
그렇게 수 초가 지났다.
―다 끝났습니다.
“벌써?!”
빛나던 타르타트의 오드 아이에서 빛이 꺼졌다.
이와 함께 아스카는 강한 수마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졸려…….’
어차피 아스카가 잠을 자려던 때를 노리고 온 것이라 상관없었다.
―내일 오전까지만 옆에 있어 주면, 그 아줌마와의 빚은 다 갚는 거군. 에휴~.
타르타트는 한숨을 쉬고는 아스카의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속에 아스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어머니 에르카네 여왕을 만났다.
―아스카.
“어, 어머니?”
늘 마법 통신으로도 직접 마주할 수 없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처음 본 아스카는 꿈속임에도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자신과 똑같은 백금발, 그리고 아스카의 붉은 눈동자와 다른 금색 눈동자.
아스카가 꿈속에서 만난 에르카네 여왕은 온몸에서 품위와 고귀함을 뿜어냈다.
진정한 고귀함은 마치 이런 거라고 과시라도 하듯.
그런 어머니이자 여왕을 본 아스카는 지금까지 그녀를 향해 가졌던 원망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너의 어머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스카를 보는 에르카네 여왕의 태도는 딱딱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부터 얘기해 주마.
그리고 이어진 여왕의 이상한 한마디.
―아스카, 너는 인간이 아니다.
* * *
아스카는 최근 있던 일들을 회상하며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왕궁 안을 걸었다.
처음 오는 순백의 왕궁이지만 아스카는 익숙했다.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로 가는 게 빠른 길인지 왕궁의 시녀들보다 더 잘 알았다.
로니아드와 로지스트는 말없이 아스카를 따랐다.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로지가 아스카를 은근히 시선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아스카도 그런 로지의 시선을 살짝 의식하는 듯했다.
딱 봐도 서로에게 묘한 호기심과 호감을 가진 듯한 핑크빛 분위기.
펜템에서부터 그랬던 거 같은데, 로니아드는 그 꼴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핑크빛 느낌 나는 교류를 뒤로하고 아스카는 묵묵히 넓은 왕궁을 앞장서 걸었다.
로니아드는 그녀에게 어떻게 왕궁의 길을 잘 아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굳은 표정만을 유지할 뿐이다.
“시간이 멈춘 거 같군.”
로지가 왕궁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왕궁 안에는 어떤 생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시녀와 시종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스카의 뒤를 쫓다 보니 어느덧 왕궁 가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이는 화려한 문.
여왕의 침실이다.
아스카가 여왕의 침실 앞으로 안내하자, 로니와 로지는 살짝 멈칫했다.
아스카의 엄마라는 에르카네 여왕은 평이 좋지 않다.
굉장히 문란하고 제멋대로며 사치스럽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솔직히 예전 아스카의 꼴을 보면 아주 틀린 말 같지도 않고.
여왕의 침실 문 앞에는 경계를 서던 기사와 대기 중이던 시녀들이 잠들어 있었다.
로지가 그들을 흔들어 깨웠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로니아드는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떠오르는군.’
그렇다면 저 침실 안에는 여왕이 잠들어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여왕을…….
‘에이, 설마.’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떨쳐 냈다.
부르르르르!
로지의 동전 모양 펜던트가 어느새 검게 변해 있었다. 검게 변한 펜던트는 어느 때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부르르 떨었다.
그걸 본 로지스트는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마침내 아스카가 침실 문을 열었다.
마법으로 만든 문인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자동으로 열린다.
“크윽!”
“흐읍……!”
침실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홍빛 기운이 로니와 로지를 덮쳤다.
두 사람의 몸이 뜨거워졌다.
얼굴에도 붉은 홍조가 생겼다.
일반적인 남성이었다면, 벌써 이성을 잃고 일을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로니아드와 로지스트 두 사람은 붉어진 얼굴로 인상을 찡그릴 뿐이다.
둘은 자신을 현혹하는 기운으로부터 이성을 지켰다.
침실 안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야릇한 드레스를 입은 채 침대 앞에 서 있었다.
백금발에 금안.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젊어 보이는, 20대 후반 같은 미모.
이노에게서 청초하고 지혜로운 매력을 느꼈다면, 눈앞의 여왕 에르카네에게선 치명적인 색기와 관능미를 느꼈다.
‘반지를 뺀 아스카보다 더 강렬해.’
전에 마을에서 반지를 빼고 있던 아스카가 생각났다.
지금 눈앞의 여왕은 그때의 아스카를 훨씬 뛰어넘는 요염한 매력을 뽐냈다.
“이해하거라. 지금 나는 내 힘을 제대로 억제할 수 없도다.”
여왕의 목소리는 살짝 허스키했다. 그녀의 관능미와 허스키한 목소리가 무척 잘 어울렸다.
한마디 들을 때마다 하체의 피가 가운데로 쏠릴 정도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다. 보통 사내였다면 벌써 이성을 잃고 발광했을 것이다. 대화는커녕 혈관이 터져 죽었을 것이야.”
여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너희도…… 한 번 해소를 해 주고서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왕의 말에 아스카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여왕이 몇 걸음 다가왔다.
그녀가 로지스트를 보았다.
“과연 용의 피를 이은 자란 말인가?”
여왕이 로지스트를 보며 말했다.
“그대의 아버지 라이오스와 많이 닮았구나. 순간 그가 다시 살아난 줄 알았다.”
라이오스를 회상하는 여왕 에르카네의 표정이 서글퍼졌다.
그녀는 서글픈 표정으로 로지스트를 보았다.
“으윽!”
여왕의 시선을 받은 로지스트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애써 그녀의 시선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로니아드, 그대의 정체는 나도 모르겠구나.”
이어서 에르카네 여왕의 시선이 로니아드에게 향했다.
“10여 년 전, 아르미다츠의 근위 기사였다고? 흐음, 그대 같은 기사는 보지 못했던 거 같은데…….”
로니아드는 로지와 달리 여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그녀의 시선을 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