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62
62. 오스카의 여왕들(5)
철컥, 척.
“지금 죽여 주면 되나?”
여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지가 검을 뽑았다.
검 면에 비친 여왕의 얼굴에는 희열이 담겨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장은 곤란하다.”
여왕의 말에 로지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인수인계를 마저 끝내야 하거든.”
여왕은 그렇게 말하곤 아스카를 보았다.
“며칠 전 꿈속에서 내 경험과 힘 중 일부를 건네주었지. 덕분에 이렇게 그대들을 볼 수 있게 되었어.”
아스카가 펜템에서 꾸었다는 꿈을 얘기하는 듯했다.
“자, 나의 나머지 경험들을 받거라. 내…… 아이야.”
에르카네는 아스카 앞에 섰다.
“잠깐, 그렇게 되면 아스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로니아드가 두 여자를 멈춰 세웠다.
그의 의문에 여왕은 별것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어차피 역소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힘은 더 분배할 필요가 없다. 그저 2,000년간 나라를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 중 일부를 전수할 뿐이야.”
힘은 주지 않고 경험만 물려준다는 뜻이다.
“……그 경험과 기억을 아스카가 받으면 아스카의 인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꿈속에서 받은 일부 경험으로도 인격이 크게 변한 아스카였다.
그런 아스카에게 더 많은 기억과 경험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로니아드, 그대의 우려는 잘 이해했다. 하지만,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나라를 운영하지 못할 것이다.”
여왕의 말에 로니아드는 예전의 아스카를 떠올렸다.
‘……확실히.’
로니아드가 아무 말도 못 하자, 아스카가 로니아드를 은근히 째려본다.
여왕은 그러든 말든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아스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여왕의 말에 로니아드는 아스카를 쳐다보았다. 아스카는 작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선택이 그렇다면…… 알았다.”
로니아드는 순순히 물러섰다.
‘어차피 평생 오스카에 붙어 있을 수도 없어.’
무엇보다 아스카의 눈동자에서 커다란 욕심을 보았다. 야망이라고 불러야 할 거대한 목표를.
‘차라리 이게 나아.’
프리미오 공작이 있지만, 재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지금의 오스카는 난세다. 경험 많은 군주와 총명한 재상 둘 다 필요해.’
로니아드가 물러나자, 에르카네와 아스카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리고 두 여인의 입술이 깊게 닿았다.
“?!”
“!!”
생각지도 못한 백합물에 로니아드와 로지스트는 당황했다.
“푸하.”
두 여인의 입맞춤은 얼마 안 있다 끝났다.
“허억, 허억…….”
입맞춤이 끝난 뒤, 두 여인의 상태는 상이했다.
아스카는 상기된 얼굴로 눈을 감고 뭔가를 음미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내 힘까지 빼 가다니……. 욕심이 많구나, 딸아.”
반대로 에르카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식은땀을 흘린다.
“타르타트, 이 뼈다귀는 도대체 뭘 만든 거야?!”
그러더니 자리에 없는 타르타트를 씹는다.
눈을 감고 에르카네의 경험과 힘을 음미하던 아스카는 눈을 뜨고는 여왕을 바라봤다.
“……잘 먹었다.”
초연한 아스카의 붉은 두 눈동자. 그 눈 안에는 감정 하나 없는 고요함이 가득하다.
‘내가 알던 지랄 맞던 아스카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일단 머리카락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로니아드는 이상하게 기분이 썼다.
“그럼 이제 죽여도 되나?”
로지가 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에르카네에게 검을 겨눈다.
아스카에게 많은 힘을 빼앗긴 에르카네 여왕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처럼 숨을 죄어오는 듯한 기운을 뿜어내지 못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을 발산했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아스카는 순식간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본래 15세 정도였던 외모는 성숙한 여인의 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아스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
아까 에르카네에게서 받았던 분홍빛 기운이 휘몰아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협하지도, 유혹하지도 않았다.
아스카의 손에 끼여 있는 무욕의 반지가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아스카가 에르카네로부터 받은 힘을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카디아에서 얻은 힘은 이카디아에서 나고 자란 영혼과 어울린다, 이건가?”
에르카네가 그런 아스카를 부럽다는 듯 보았다.
“허무해……. 나는 3,000년 가까이 여기서 뭘 한 거야…….”
에르카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탈한 여왕의 얼굴은 어떤 의미로 평온해 보였다.
‘잠깐! 그러면 아스카가 엄청 강해졌다는 뜻이잖아?!’
3,000년 묵은 서큐버스의 힘을 거의 강탈해 갔다.
최악의 경우 율카네스를 능가하는 세계관 최강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후후후후…… 후하하하하!”
난데없이 아스카가 웃기 시작한다. 예전과 같은 철없어 보이는 웃음이다.
하지만 그녀를 받드는 기운 때문에 마왕의 웃음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연기하느라 힘들었다. 방심의 대가가 어떠냐, 이 마족아!”
아스카가 사악한 표정을 짓고 에르카네 여왕을 노려봤다.
“그래, 장하구나.”
그리고 여왕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게 다야?!”
원통해 하는 에르카네를 기대했던 아스카였다.
하지만 여왕은 원통해 하기는커녕 아스카를 보면서 웃어 보였다.
“나의 힘, 나의 경험을 모두 물려받았으니, 진정한 내 딸이 되었구나.”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오히려 아스카가 당황한다.
“이리 오렴, 이제 어미랑 못다 한 이야기나 하자구나.”
에르카네는 힘에 부치는지 침대에 앉았다.
“갑자기 태도가 너무 바뀐 거 같은데?”
로니아드가 그런 에르카네의 태도 변화에 의구심을 품었다.
“힘을 전부 잃으니 정말 의미 있는 것이 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되다니. 정말 의미 없던 세월이야.”
에르카네는 부드러운 미소로 로니아드에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함정일 가능성은 낮아.’
칼자루는 오히려 우리가 쥐고 있다.
수틀리면 로지가 에르카네를 역소환하지 않으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커 왔고, 여기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얘기를 들어 보고 싶구나.”
여왕은 그렇게 말하며 아스카에게 손짓했다.
“……그, 그게!”
아스카가 망설이자,
따악!
“끼에엑!”
로니아드가 아스카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뭐, 뭐냐!”
“시간 없어. 조금이라도 더 얘기를 나눠 봐.”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로니아드는 쓸데없는 의심과 망설임으로 아스카가 크게 후회하길 바라지 않았다.
“…….”
로니아드의 말에 아스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에르카네에게로 조심히 걸어갔다.
“로지 경, 미안하지만 시간을 좀 더 줘야겠군.”
에르카네의 시선이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아스카를 고정했다. 그러면서 입은 로지를 찾았다.
“……얼마나 더?”
“지금 몸 상태를 보니까 한 달 정도?”
여왕의 말에 로니아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 달? 아씨, 괜히 분위기 잡았네.’
곧 여왕의 수명이 다할 줄 알고 아스카에게 꿀밤까지 줬던 것인데.
“…….”
에르카네의 말을 들은 로지는 의외로 덤덤했다.
“한 달 뒤에 오겠다.”
“고맙네.”
막 여왕의 침실을 떠나려던 찰나, 로지가 고개를 돌렸다.
“혹시, 마족의 저주에 대해 잘 아나?”
로지의 말에 여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주?”
“가슴에 어떤 방법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기는 저주다. 점점 생명력을 뺏어 가고 마지막에는 흉터가 꿈틀거리면서 검은 연기를 뿜는 저주.”
“흐음~? 그런 저주는 잘 모르겠군. 직접 봐야 알 것 같은데?”
“……알겠다.”
로지는 그 말을 끝으로 침실을 나섰다.
‘가만? 내 가슴에 난 흉터와 살짝 비슷한데?’
방금 로지가 물어본 흉터에 대한 얘기가 심상치 않다.
나도 로지를 따라 침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침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아스카를 슬쩍 보았다.
‘지금 아스카의 저 인격은 진짜일까? 아니면 유희를 위한 연기일까?’
솔직히 말해, 아까 아스카의 꿀밤을 때릴 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아스카는 예전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내게 크게 반항하지 않은 것이다.
‘나를 진짜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 걸까?’
그녀가 나를 오빠처럼 여긴다는 것은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가족 없이 커 온 것에 대한 결핍일지 모른다.
‘오빠라고 봐준 거냐?’
나는 피식 웃으며 침실을 나왔다.
침실 문을 닫고 나오니, 로지가 복도 저 멀리 앞서 걷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뭐 할 건데?”
급히 달려서 로지의 옆에 섰다.
“무엇보다 아까 말한 마족의 저주는 또 뭐고?”
나와 로지는 어느덧 왕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탁 트인 전망과 소름 돋게 푸른 하늘을 보니 당장 어디로 떠나고 싶었다.
“그쪽이 알 바 아냐.”
로지는 그 말을 끝으로 왕궁 밖으로 사라졌다.
아까부터 작정한 것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떠난 것이다.
“저 싸가지 보소. 원작에서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사춘기라 그런가?”
하긴 저때가 한창 중2병이 돌 나이이긴 하다.
‘율카네스에게 로지스트를 찾았다고 말해야겠군.’
로지는 내가 쫓을 새도 없이 전속력으로 왕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한 달 후에 다시 왕궁으로 올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왕궁을 덮고 있던 옅은 금색의 결계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있었다.
“끄으응…… 삭신이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잠들어 있던 왕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로니 대장님! 잘 해결된 것입니까?”
“여왕은 어떻게 되었소?”
내 일행들과 프리미오 공작이 왕궁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방금 막 잠에서 깬 왕궁 경비대와 근위 기사들은 저들의 행렬을 막을 만한 정신이 없었다.
‘또 뭐라고 약을 팔아야 하나?’
저 멀리서, 신앙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교단의 성직자들을 느꼈다.
“크흠! 여왕 폐하와 왕궁은 사악한 흑마법사의 저주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 이왕 약 팔 거 제대로나 팔아 보자.
“하지만 나와 로지가 힘을 합쳐 그 흑마법사를 무찔렀다. 로지는 그 사체를 정화하러 잠시 여정을 떠났다.”
“오오! 역시나!”
“아한-제르다.”
내 말에 성직자들이 너도나도 성호를 그었다.
나는 기세를 몰아 말을 이었다.
“이제 오스카 왕국은 안전하다!”
이어서 추가적인 서비스다.
“지금부터 오스카 왕국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자는 전부 악마의 하수인이다!”
“!!”
내 말에 프리미오 공작이 감사를 담은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스카는 다음 날 아침까지도 여왕과 함께 있었다.
점심쯤이 되자, 아스카와 여왕이 모두의 앞에 나왔다.
“여왕 폐하를 뵙습니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수도와 수도 인근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왕궁으로 모였다.
거의 십 수년 만에 직접 뵙는 여왕의 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오스카 왕실을 만만히 보지 않았다.
여왕의 딸이자, 차기 오스카의 여왕이 될 아스카 때문이다.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
그녀에게서 역대 여왕들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기품과 강렬한 카리스마가 풀풀 풍겼다.
그 기운이 넓고 깊게 퍼져 좌중을 압도했다.
“나, 에르카네 테오스 데 오스카는 몸이 좋지 않아 국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런 이유로 공주인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에게 양위하려 한다.”
생각보다 이르지만 여왕의 입에서 양위라는 말이 나왔다.
“여왕의 뜻대로 하소서.”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여왕의 양위 선언에 수긍했다.
그들도 여왕이 지금까지 했던 실정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왕실이 회복되고 왕국이 안정된 것이 기쁘도다. 무엇보다 내 딸, 아스카의 왕위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왕궁에서 무도회를 열고자 한다. 날짜는 3일 뒤다.”
너무 빠꾸 없는 직진이었을까? 양위 선언도 모자라, 에르카네는 이를 축하하는 무도회 날짜까지 그 자리서 정해 버렸다.
귀족들은 웅성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여왕의 뜻대로 하소서.”
나는 여왕의 선언에 패닉에 빠진 왕궁의 시종과 시녀들을 보았다.
필립과 폴라도 시종들 사이에서 영혼이 나간 얼굴을 했다.
‘못난 여왕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3일 안에 무도회를 준비하라니……. 나 같으면 자살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3일 만에 예법에 맞는 성대한 무도회는 준비하지 못 한다.
말 그대로 형식만 갖춘 약식의 무도회가 왕궁에서 개최되었다.
귀족들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이 정도의 소박함(?)은 넘어가 주는 듯했다.
오히려 그들의 관심사는 새 여왕 아스카의 배필이 누가 되느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