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64
64. 찰나의 추억(2)
결국, 카디나는 나에게 모든 것을 자백했다.
‘폰테임이라면 자백하지 못하게 정신 마법을 새길 줄 알았는데 의외네?’
사생아여도 딸은 딸이라는 건가?
아니면 개처럼 충직한 카디나가 감히 배신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걸까?
‘어찌 되었든 폰테임에서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거지?’
그것도 보복이 목적이 아닌, 포섭을 목적으로.
“앨리스 그년은 언젠가 만나면 따끔하게 혼을 내 줘야지.”
여기까지 카디나를 보낸 장본인이야 보나 마나 앨리스일 것이다.
“맞습니다. 앨리스 그 아이는 엄하게 혼을 한번 내야 합니다. 어? 그나저나 앨리스를 어떻게 아십니까?”
내 혼잣말에 카디나가 격한 반응을 보인다.
“다 아는 방법이 있다.”
“하긴, 렌슬렛이라고 놀고만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앨리스의 본모습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만족한 답을 들은 나는 카디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카디나, 네가 폰테임의 사생아고 나를 유혹하라는 명을 받은 거까지는 알겠어.”
방금 내게 기습 뽀뽀를 한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일까?
‘폰테임도 실수를 하는구만. 이렇게 검만 휘두르는 털털한 아가씨에게 미인계를 시키다니. 차라리 앨리스라면 몰라. 하긴, 걔는 너무 어리지.’
카디나의 하늘색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녀의 허벅지부터 엉덩이, 허리 그리고 가슴까지 이어지는 탄탄하고 볼륨 있는 몸이 유독 눈에 밟혔다.
“정황상 넌 이미 폰테임에게 마음이 떠난 것 같던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내 말에 카디나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의 눈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예, 맞습니다. 가문…… 아니, 앨리스는 저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을 줬습니다. 마치 저를 버리는 패 취급하듯이…….”
말을 하는 카디나의 얼굴은 침울 그 자체였다.
“실제로 로니아드 님의 무용을 직접 본 순간, 이 임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다 실토해 버렸다. 자연스러운 유혹 같은 것도 글렀다.
무엇보다 실력으로도 이젠 나에게 안 된다.
그렇다고 저 아가씨 성격에 독이나 계략 같은 건 못 쓴다.
“저는…… 로니아드 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샹타페 때부터 한 결심입니다.”
카디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치마를 거둬 올렸다.
그녀의 길고 탄탄한 허벅지가 가터벨트와 함께 보였다.
그 가터벨트 옆에는 작은 아티팩트 하나가 달려 있었다.
카디나는 그 아티팩트를 꺼냈다.
“폰테임에도 얼마 없는 휴대용 마법 통신 아티팩트입니다. 샹타페 전투 이후로 단 한 번도 폰테임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마법사를 시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그녀는 전혀 아쉬운 눈치 없이 통신 아티팩트를 나에게 건넸다.
‘이렇게 귀한 아티팩트를 준 것을 보면, 마냥 버리는 패로 쓴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카디나의 둔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다짜고짜 연락을 끊으면 더 피곤해진다. 분명 위치 추적 마법도 걸려 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폰테임의 앨리스는 카디나의 실력과 성격을 믿고 보낸 것일 수도 있어.’
실수가 있다면 내 실력이 폰테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
눈앞의 아티팩트가 아깝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이거 하나만 팔아도 작은 영지 하나는 얻을 거야.’
특히나 현자의 탑에서 만든 아티팩트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이 정도 아티팩트는 파는 것도 일이고, 버리는 것도 힘들다.
가지고 있는 것은 더 위험하고.
‘당분간 카디나와 이 아티팩트는 미끼다. 폰테임을 낚을 미끼.’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카디나 샤인 경.”
“아아, 로니아드 님!”
내가 카디나를 받아 주자, 그녀가 절망에서 구원받은 광신도처럼 나를 우러러본다.
쪼옥.
그러더니 치료를 위해 잠시 벗어 둔 내 발등에 입을 맞췄다.
“…….”
‘하여간 폰테임 쪽 피를 받은 애들 중에 제정신인 애는 없는 거 같아.’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나는 발에 입을 맞추는 카디나를 간신히 떼어 냈다.
그리고 발코니에 걸어 놓은 음 소거 아티팩트를 슬며시 껐다.
“그럼 이제 가 봐.”
궁금증도 풀렸으니 굳이 카디나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네? 같이 춤을 한 번 더…….”
내 말에 카디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같은 상대랑 두 번 이상 춤추게 되면, 더욱 깊은 관계를 나누겠다는 뜻이 되는데? 아직도 나를 유혹하려고?”
나는 이 털털한 여기사에게 무도회 에티켓을 하나 알려 줬다.
“더 깊은?! 그, 그게…….”
그런데 당연히 절대 부정할 줄 알았던 카디나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저야 로니아드 님께서 원하신다면야……?”
“…….”
‘완수하지 못한 미인계 임무에 미련이 남았나?’
더 이상 여기 있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알아서 놀다 와.”
나는 카디나의 마지막 말을 무시하고는 서둘러 무도회장을 나갔다.
나는 왕궁의 밤하늘 아래를 거닐었다.
‘아스카는 해결됐다. 이제 원작의 발암 느낌 나는 히로인은 앨리스를 포함해 두 명 남은 건가?’
아스카와 앨리스는 원작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다른 서브 히로인은 아니다.
‘아스카, 앨리스, 미샤. 이렇게 원작의 개노답 세 자매였지. 하지만 미샤는 원작에서도 마지막까지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신경 쓰지 말자.’
순백의 큰 달 악스와 진홍의 작은 달 리린이 반달 모양이 되어 떠 있는 한밤중.
‘차라리 황녀 이소레타와 하이엘프 아우레가 더 중하지.’
걸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로지가 한 달 후에 오면 적당히 납치해서(?) 율카네스에게 넘긴다.
그렇게 되면, 원작의 시작점인 룬-아르미 아카데미가 큰일 없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이소레타가 라-고이트 장벽으로 유배되는 것이 2년 후였던가?’
그사이 나는 제국의 라-고이트 장벽에서 몬스터와 혈투 중일 이소레타 황녀를 도울 것이다.
라-고이트 장벽 제일 위쪽에는 요정의 숲인 클라메니크 숲도 있다. 겸사겸사 하이엘프 아우레도 구원하자.
‘그래도 로니아드가 8년간 쓸데없이 방황만 하진 않았어. 요정의 숲에 인연을 만들어 두었을 줄이야.’
그 인연이 좀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생판 모르는 것보단 나았다.
이렇게 기억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왕궁을 걸으니, 어느덧 왕궁 외곽의 정원에 도달했다.
내가 굳이 여기까지 아무 이유 없이 온 게 아니다.
왕궁의 외곽 정원에는 누군가가 먼저 와 있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나?”
“아니에요. 달이 예뻐서 달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아스카와 똑같은 백금발에 붉은 눈동자. 아스카와 비슷한 얼굴. 그나마 닮지 않은 게 있다면 볼륨 있는 몸매와 분위기 정도일까?
불과 며칠 전까지 아스카의 대역을 훌륭히 수행했던 여인 브리기트.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는 보상은 정했나, 브리기트?”
나는 브리기트에게 보상을 물어봤다. 나라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약 수익금도 있고, 아스카 빽도 있지.’
돈과 권력으로 할 수 없는 게 과연 존재할까?
‘어찌 되었든, 원작에서의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아 다행이야.’
아스카가 본래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브리기트는 대역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됐다.
전에 아스카를 버리려 했을 때, 왜 머리가 빠졌는지도 이해했다.
아스카가 존재해야 원작의 브리기트도 구원받을 수 있던 것이다.
“원한다면 그대에게 하급 귀족의 작위까지도 줄 수 있다. 작은 장원도 함께.”
거기에 차기 여왕의 가호까지 더해지면 어느 누구도 브리기트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브리기트는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른 요구를 했다.
“아스카 님의 전속 시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게 보상인가?”
“예……. 왕족의 전속 시녀는 하급 귀족 이상만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그렇지만, 에르카네 여왕대에 평민으로 바뀌었다.”
“그, 그런가요?”
브리기트의 얼굴이 민망함에 붉어졌다.
“아스카에게 말하면 흔쾌히 허락할 거야. 그나저나 전속 시녀는 왜?”
로니아드의 물음에 브리기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야 당신을 가끔씩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왕족의 전속 시녀면 그래도 고생 없이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물론 입으로 나온 말은 달랐다.
“아스카에게 말해 둘게. 만약 아스카가 싫다고 하면, 렌슬렛 여공작의 전속 시녀 자리라도 알선해 주지.”
로니아드의 시원한 대답에 브리기트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건 보상으로 칠 수 없으니, 다른 것을 말해 봐.”
브리기트는 로니아드의 말에 살짝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설레는 기분으로 뭔가를 선택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그 많은 선택 사항에 로니아드와 평생 함께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브리기트를 로니아드는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그래 이제는 돈과 땅, 작위 중에서 선택하겠지?’
일은 일대로 하고, 뒤에는 걱정 없는 재산이 쌓여 있고.
지구식으로 치면, 설렁설렁 직장 다니는 로또 1등 당첨자 정도가 될 것이다.
마침내, 브리기트가 결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 단 하룻밤이라도 저와 함께 있어 줄 수 있을까요?”
“……?”
하지만 브리기트의 소원은 이번에도 로니아드의 예상을 벗어났다.
브리기트의 양 볼이 붉다.
“그게 소원인가?”
평소 브리기트가 자신에게 깊은 호감이 있다는 것은 로니아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 원한다면.”
이제야 브리기트가 왜 전속 시녀 얘기를 했는지도 눈치챘다.
로니아드의 수락을 들은 브리기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럼 여기서……?”
브리기트의 의미심장한 말에 로니아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편으론 딱하게도 여겨졌다.
‘하긴,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봤어야지.’
성 노예였던 브리기트의 과거를 생각하니, 눈앞의 이 여자가 매우 딱하게 느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브리기트.
로니아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한쪽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달도 밝은데, 춤이나 추자고.”
“네? 네!”
공주님 대역을 위해 간단한 춤 정도는 배웠는지, 브리기트는 어색하게나마 스텝을 밟았다.
두근, 두근, 두근.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정신적인 황홀함.
브리기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달빛을 받으며 브리기트와 춤을 두 번 정도 추었다.
“시내로 가자. 축제라 밤새 볼거리가 많을 거야.”
브리기트의 손을 잡고는 수도의 축제장으로 향했다.
나와 그녀는 서로 손을 잡고 마법 등으로 환하게 빛나는 시내를 걸었다.
마법으로 만든 불꽃이 수도의 하늘을 수놓았고, 광대들이 재밌는 묘기를 보였다.
집시들이 악단을 만들어 연주했고, 유랑극단이 도심 광장에서 촌스러운 연극을 이어 갔다.
좌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군것질거리들을 사 먹고, 귀족들만 이용한다는 고급 식당에서 브리기트와 식사를 했다.
‘제인은 잘 있으려나?’
문득 렌슬렛에서 비슷한 데이트를 했던 제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일생에 처음인 데이트다. 최선을 다해야지.
어느덧 브리기트에게 꿈처럼 황홀했던 밤이 끝나 간다.
밤을 잊고 놀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향했고, 나와 브리기트는 수도의 고급 여관에 방을 하나 잡았다.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게 아니다. 밤새 그녀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속삭일 것이다.
“정말, 너무 행복해요.”
고급스러운 방에 들어온 브리기트는 황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매력적이다.
나는 가방 안에서 포션을 하나 꺼냈다.
최상급 포션으로 제르다의 화신이라는 이름을 팔아 교단으로부터 구한 것이다.
“최상급 포션이야. 어지간한 흉터는 전부 없애 줄 거야.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발라.”
내가 준 뜻밖의 선물에 브리기트는 얼굴을 붉힌다.
“지금 발라 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내가 허락하자, 브리기트가 단추를 푼다.
“욕실에서 발라! 왜 여기서 바르려고 하는데!”
“하지만…… 혼자서 못 바르는 부위도 많아요…….”
하지만 브리기트는 각오를 단단히 했는지 내 말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다.
“혹시…… 발라 줄 수 있을까요?”
“……엎드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