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66
66. 도와줘요, 율카네몽!
이튿날, 나는 아스카를 시켜 비밀리에 소집했다.
패가스, 프리미오, 루키엘 등 꼭 필요한 인원만 비밀리에 모았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떳떳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알아 봤자 좋을 게 없는 일입니다.”
내 말에 모두의 얼굴이 진중하다.
“저는 지금부터 펠리오의 무역로를 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군력이…….”
프리미오가 반론했다.
“굳이 힘들게 배를 만들 필요는 없소.”
내가 그의 많을 끊었다.
“배는 원래 약탈한 후 빼앗는 것이오.”
“……해적 짓을 하겠다는 겁니까?”
개소리 같지만 어째 일리 있는 내 말에, 루키엘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산적도 있는데 당연히 이세계에도 해적은 있다.
하지만 지구의 해적처럼 역사가 길지도 않고, 위협적인 규모나 업적을 낸 적은 아직 없다.
기껏해야 어선이나 작은 상선을 터는 정도다.
무엇보다 현재 바다엔 해적과 다를 바 없는 펠리오가 있다.
“하지만 해적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루키엘의 반론에 나는 씨익 웃었다.
“만약 그 해적들이 레인저 용병대처럼 마법 아티팩트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면?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면?”
내 말에 루키엘은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펠리오의 중형 이상 되는 항해선에는 각종 인챈트와 아티팩트 그리고 마법 포가 달려 있습니다.”
“아아, 그건 걱정 말라고. 우리에겐 아스카 여왕님이 계시고, 루키엘 자네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마도사가 있거든.”
놈들이 아무리 마법 아티팩트를 배에 발라 놨다고 해도, 잘 만든 대마도사의 아티팩트 하나를 못 이길 것이다.
율카네스가 만들었던 아공간 가방과 영약 등을 보고 든 확신이었다.
‘아티팩트 제작만 의뢰하는 것이니 힘의 균형 같은 헛소리도 통하지 않겠지.’
무엇보다 로지스트를 납치(?)해 간 펠리오다. 율카네스를 부려 먹을 명분은 충분하다.
“대마도사 말입니까?”
대마도사라는 얘기가 나오자 루키엘의 얼굴에 놀라운 표정이 번진다.
“내가 미처 얘기를 못 했군. 곧 여기로 올 때가 되었는데?”
우우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루키엘이 놀라 방어 마법을 캐스팅한다.
아스카는 나를 믿는지 살짝 긴장한 모습일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공간 이동 마법진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 빛 속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백발에 단정하게 다듬은 수염, 차가운 금색 눈동자.
율카네스가 먼저 나타났다.
‘도와줘요개소리 같지만 어째 일리 있는 내 말에, 율카네몽!’
나는 환한 접객용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율카네스 뒤에는 두 사람이 등장했다.
“로니~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늘 쾌활한 이스와 못 본 사이 더욱 성숙해진 제인이 함께 온 것이다.
세간에는 여왕 에르카네가 펠리오에서 온 자객에게 죽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로지에 관한 얘기는 교단에서 퍼지지 않도록 막았다.
그들의 신성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세자 로지스트가 펠리오로 납치됐다고?”
따라서 율카네스 또한 로지스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이렇게 와서야 알게 되었다.
“네, 있었는데 없습니다.”
“…….”
내 말에 율카네스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펠리오의 상인 군주라……. 크라운이 벌써 군주가 되었군.”
“펠리오의 상인 군주에 대해 아십니까?”
현재 펠리오의 군주는 역대 펠리오 국왕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
상인 군주이자, 모든 선장들의 제독이자, 무역로의 항해사라는 칭호를 가진 자다.
“크라운 하이어스. 놈이 아카데미에 다닐 때 잠깐 본 적이 있다. 벌써 30년 전이지. 그 녀석을 굳이 정의하자면…… 으음…….”
율카네스는 눈을 감더니 옛 기억을 떠올렸다.
“폰테임! 폰테임 후작과 비슷하겠군.”
안 좋구만.
“혹시 율카네스 님과 친분이 있으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율카네스를 떠봤다.
“그 녀석, 나 안 좋아해. 예전에 걔한테 돈 빌리고서 갚지 않은 게 있어서…….”
“……?”
살다 살다 세계관 최강의 대마도사가 돈을 빌리고서 갚지 않다니.
나는 어떤 의미론 존경을 담은 눈으로 율카네스를 봤다.
“최근 영약 사업으로 돈이 좀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가서 이자까지 갚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 제안에 율카네스는 떨떠름한 얼굴이다.
“그게…… 그때 갚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으로 접근 금지의 서약을 했다. 마나를 걸고.”
“…….”
이 인간, 도대체 과거에 뭘 하고 다닌 거야?
아무리 세계관 최강자라 해도 마나의 맹세는 무서운 듯했다.
“뭐, 별수 없지요. 그럼 직접 만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가능할까요?”
“나를 드워프처럼 굴리겠다는 뜻인가?”
하여간 노친네, 눈치 하난 더럽게 빨라요.
나는 무언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래,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어? 감사합니다?”
몇 번 정도는 튕길 줄 알았던 율카네스가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어떻게 펠리오로부터 왕세자를 데려올 건데?”
율카네스의 질문에 나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해적질로 펠리오의 무역을 막고, 이를 통해 펠리오로부터 로지스트를 받아 낸다고.
“해적질? 놈들의 해상을 봉쇄한다고?!”
내 설명을 들은 율카네스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비웃는다.
“네놈다운 발상이구나.”
살짝 기분 나빴지만, 율카네스는 그 이상의 딴지는 걸지 않았다.
“좋아, 도와주지.”
‘이 노인네가 죽을 때가 다 됐나? 뭔 꿍꿍이야?!’
율카네스의 태도에 나는 어떤 의미에선 불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럼 그렇지!’
“네, 말씀하십시오.”
율카네스의 조건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펠리오에 황금시대의 아티팩트 중 하나인 마법 함이 한 척 있을 거야. 그 마법 함을 가져와라.”
“마법 함……? 그게 왜 펠리오에 있습니까? 제국이랑 체스카드 왕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법 함. 고대 황금시대에 만든 전함이다.
황금시대에도 결전 병기로 쓰였을 정도로 황금시대의 모든 마도력이 집중된 배였다.
현재 제국에 두 척, 체스카드(구 아르미다츠)에서 한 척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율카네스는 그 마법 함 중 한 척이 펠리오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카실, 그 저능아 변태 새끼가 팔아먹었어.”
“카실이라면, 현 체스카드의 국왕 말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100년간 임대해 주는 조건이긴 하지만, 사실상 팔아먹은 걸로 봐야지. 마나나 신성의 맹세도 안 하고 거래한 것이니.”
“아니! 팔 게 따로 있지!!”
또 원작과 내용이 달라졌다.
‘이건 또 뭐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냐…….’
원작에서 로지스트의 커다란 무기가 되는 것이 마법 함이다.
로지스트가 왕실을 재건했을 때에도 마법 함은 아르미다츠에 있었다.
애초에 용의 피를 이은 적통만이 그 마법 함을 제대로 다룰 수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걸 팔았다고?
“끄응……. 국왕놈이 최근 겁을 많이 먹은 모양이더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율카네스가 이유를 설명해 줬다.
“전에 내가 왕실로 쳐들어가 왕실 기사들 여럿을 개구리로 만들었거든. 거기다 최근 오스카에서 종말급 몬스터 웨이브도 발생하니깐, 그런 비상식적인 짓을 벌인 거 같아. 적통이 아니면 제대로 쓰지도 못할 배를 팔고, 그 돈으로 왕궁과 수도에 온갖 방어 아티팩트를 바른 모양이야. 나도 현자의 탑에 있는 후배들에게 뒤늦게 안 사실이다.”
바다를 포기하고 육지를 선택했다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어안이벙벙하다.
“근데 체스카드 왕실이 그렇게 돈이 없습니까? 나라 꼴을 보면 꽤 많이 착복한 거 같은데?”
“크흠! 왕궁으로 쳐들어갔을 때 교통비로 왕실 보고에서 수금을 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좀 많이 가져온 듯해.”
‘너 때문이잖아!!’
진심으로 율카네스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론 나로 인한 나비효과인가?’
율카네스의 왕궁 깽판이나, 종말급 몬스터 웨이브 모두, 전부 나로 인해 생긴 원작과의 간극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금시대의 유물을 팔다니……. 정신 나간 새끼 같으니라고.’
지구로 치면, 미국의 최신 핵 항모를 중국에 팔아 치운 셈이다.
“알겠습니다. 마법 함을 보게 되면 최대한 나포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율카네스 님은 마법 함을 가져서 뭐 하시려고요?”
마법 함이 교활한 펠리오나 멍청한 체스카드 국왕 손에 있는 것도 안 좋지만, 저 음흉한 마도사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꺼림칙했다.
내가 수상쩍은 눈으로 보자, 율카네스가 이내 억울했는지 노기를 띤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악황제의 제국군과 싸울 때 쓸려고 한다! 겸사겸사 연구도 좀 하고!”
맞다. 저 인간 악황제 바라기였지?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군요.”
꽤나 합리적인 사유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율카네스와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식사 시간이 되었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니, 식사를 대접하겠다.”
아스카가 율카네스를 보면서 떨떠름하게 말했다.
나와 율카네스가 대화를 하는 중에, 둘을 제외한 모두가 병풍처럼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여왕님을 앞에 두고 너무 우리끼리만 얘기를 했군. 무례함을 용서하시오, 꼬마 여왕님.”
율카네스가 뾰로통한 아스카를 어린 손녀 달래듯 했다.
“율카네스, 그대가 무례한 것은 나 또한 잘 안다. 나잇값 못하는 것도 잘 알고.”
전승된 기억 중에 타르타트를 핍박했던 율카네스의 이미지가 있었는지, 아스카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어린 여왕께서 상당히 도전적이시군.”
그리고 이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 율카네스는 당연히 발끈한다.
아무리 여왕이라도 아스카의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을 가만 넘길 쿨한 위인은 결코 아니지.
“하긴~ 대대로 그 리치놈을 후원한 왕실의 피가 어디 안 가지. 교단은 지금까지 뭘 했나 몰라.”
율카네스의 유치한 도발에 여왕 아스카는…….
“그 리치놈은 오래전에 악황제의 소유가 된 지 오래다. 그 악황제가 무서워 속세를 떠난 척하는 속물 마도사 주제에.”
당연히 맞받아 주었다.
“……뭐라 하셨소? 여왕께서도 속세를 떠나 개구리로 지내 보는 것도 좋은 경험 같소만?”
율카네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진짜로 양손에 마법 주문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잇값 못하는 마도사야말로 치매가 온 모양이구나. 구렁이가 되어 평생 생각 없이 기어 다니게 해 주마.”
율카네스의 태도에 아스카 또한 그녀 특유의 분홍빛 기운을 일으킨다.
“그렇게 기어 다니다 보면, 악황제가 깨어나도 그대를 발견 못 할 것이야~ 오호호호홋~!”
“이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가!”
“뭐래? 나잇값 못하는 치매 노친네가!”
치지지직, 치짓!
아스카와 율카네스 사이에 강렬한 스파크가 튄다.
아스카의 분홍빛 기운과 율카네스의 마력이 이곳 회의장 안을 짓눌렀다.
‘말려야 하나?’
하지만 무슨 수로? 둘 다 나보다 세 보이는데.
괜히 고래 싸움에 꼈다가 등이 터지는 게 아니라 뱀개구리 같은 키메라로 변할 것 같았다.
내가 난감한 기분으로 두 사람의 기 싸움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팔꿈치를 두들기는 것을 느꼈다.
“잘 지냈어요?”
고개를 돌려 보니, 제인이 나를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