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78
78. 그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3)
“흐읍!”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세이렌의 여왕은 멍하니 나를 보더니…….
방긋! 하고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정신 차리자.’
애써 경계심을 가졌다. 근래 너무 미인계에 잘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대를 여기서 빼내고, 드라센 놈의 멱을 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뻐금, 뻐금.
세이렌 여왕이 크리스털 안에서 나를 향해 뭐라 말을 한다.
하지만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크리스털 안에선 텔레파시도 통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배낭을 바닥에 던졌고 검을 뽑았다.
“때론 무식한 방법이 정석일 수도 있지.”
검날에 마나를 분배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여왕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저 아름다운 얼굴에 그런 표정이 그려지니 나름 볼만했다.
카앙!
마나를 가득 담은 검으로 몸과 심장을 연결하는 연결 부위를 쳤다.
크리스털로 된 비늘도 그렇고 수정 동굴 같은 몸속도 그렇고, 녀석의 몸에는 어떤 생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카앙, 카앙.
마치 탄광에서 광석을 캐는 느낌.
쾅쾅! 뻐끔뻐끔!
놈의 심장 안에 갇혀 있던 여왕이 다급한 얼굴로 나에게 뭐라 외친다. 물론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뻐끔뻐끔 외치는 것을 넘어서, 가녀린 두 손으로 자신을 가둔 크리스털을 쿵쿵 쳤다.
뭔가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는 듯한 표정.
‘왜 그러지?’
그녀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행동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 돼!!
때마침, 다급한 드라센의 텔레파시가 내 머릿속을 덮쳤다.
“크윽!”
놈의 전음이 어찌나 강력한지,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네 이놈!
드라센의 기함과 함께 그의 몸속 내부가 눈부시게 빛났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LED 전등이 밝혀지듯이, 사방이 환하게 빛났다.
그렇게 보게 된 드라센의 몸속은 내가 생각했던 모든 상상을 뛰어넘었다.
“미친…….”
드라센의 몸속에 박혀 있던 수정들은 평범한 수정이 아니었다.
“드라센 주변의 수많은 해양 몬스터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드라센 몸속의 수정들은 전부 몬스터의 마석들이었다.
놈은 드라센 일대에 있던 거의 모든 해양 괴수들을 죽이고 그 마석을 섭취했던 것이다.
‘잘못했으면 대재앙이 일어날 뻔했어…….’
이제야 왜 세이렌 여왕이 그토록 난리 쳤는지 알 것 같았다.
지구의 개념으로 치면, 드라센의 몸속은 원자력 발전소 내부였다.
여차하면 핵폭발 수준의 대폭발을 일으킬 시한폭탄.
그리고 여왕은 마석에서 나오는 불결한 기운을 정화해 주고 있던 것이다.
―가만두지 않겠다! 탈피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드라센은 역시나 죽어 가는 게 아니었다. 세이렌 여왕을 포함하여, 드라센 일대의 모든 해양 괴수들을 잡아먹고서 그 힘을 소화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정신 나간 이무기 새끼! 세이렌 여왕을 이용해서 심장을 통째로 정화 필터로 개조했어.’
생각, 생각을 해 보자.
‘뭘 어떻게 해도 죽는 건 똑같지 않나?’
하지만 추론되는 결과는 무조건 죽음이다.
놈의 심장을 떼어 내면 대폭발로 죽고, 그냥 냅둬도 놈의 분노에 죽을 것이다.
콰지지지짓.
“끄으읍!”
아니나 다를까, 놈의 몸속에 박혀 있던 마석들 중 일부가 스파크를 튀기며 나를 공격했다.
옷에 인챈트된 각종 방어막이 찢어졌고 번개에 맞은 것처럼 몸에서 연기가 난다.
‘이럴 바엔 같이 죽는 거다!’
내 눈에서 광기가 빛났다.
번뜩이는 내 붉은 눈동자를 본 세이렌 여왕이 흠칫하는 게 보였다.
“크크큭…… 크륵.”
낮게 웃고 으르렁거리며 검으로 놈의 심장을 공격했다.
까앙, 까앙.
―끄아아악! 안 된다 이놈!
촤지지지직!
그럴수록 드라센 또한 몸속의 마석을 더 많이 가동하여 나를 공격한다.
놈의 공격에 전신에 스파크와 함께 불이 붙었다.
내가 마법 저항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즉사했을 거다.
카앙, 카앙, 콰지지직, 촤르륵.
마침내 놈과 심장을 연결하던 모든 연결 부위가 깨졌다.
세이렌을 가두고 있던 심장의 빛이 꺼지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심장은 힘을 잃었는지 바닥에 추락하면서 얼음처럼 깨졌다.
―!!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드라센의 의지가 폭풍처럼 몰아쳤고, 할 일을 마친 나는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내가 들고 있던 검 또한 내가 주입했던 마나가 사라지자, 유리 부서지듯 가루가 되었다.
부서진 심장 잔해 속에서 세이렌의 여왕이 기어 나왔다.
“당신은…… 설마?!”
전라의 몸으로 기어 나옴에도 오히려 고결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성호를 그었다.
“믿고 있었습니다. 저를 다시 찾아와 구원해 주실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내 눈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는지, 서둘러 달려와 나를 안았다.
“기억을 많이 잃으신 건가요? 걱정 마세요!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켜 드릴 테니.”
쿠르르르.
세이렌의 정화 능력을 잃은 드라센의 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놈의 몸속에 박혀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마석들이 곧 터질 듯이 스파크를 튀기며 발광한다.
“마스터, 실례지만 당신의 권능을 빌리겠습니다.”
‘마스터?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여왕은 반라의 몸으로 죽어 가고 있는 나를 안았다.
“그럼, 저도 기억 못 하겠군요, 마스터. 이렇게 당신에게 제 소개를 다시 할 수 있어 기뻐요.”
그녀는 가슴에 내 정수리를 다소곳하게 품었다.
“제 이름은 세레나데.”
이와 동시에 온몸에 나 있던 화상이 치료되었다.
‘뜨거워, 그런데 기분이 좋아…….’
등에서 견디기 힘든 뜨거움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동굴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드라센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는 쓰러진 모양이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마석들이 발광을 멈췄다.
마석들은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마력을 천천히 배출하고 있었다.
배출되는 마력은 나와 세레나데를 통과한 후, 다시 섬과 해역 전체로 퍼졌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드라센의 거대한 몸이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루키엘이 이걸 보면 목놓아 울겠군.’
나는 피식 웃으며, 몽롱한 눈으로 나를 보는 세레나데를 보았다.
“혹시 나에 대해서 아나?”
어느새 나와 세레나데는 서로 부둥켜안은 자세로 반쯤 누워 있었다.
내 물음에 세레나데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나는 누구였지?”
내 물음에 세레나데는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
“세계의 제약 때문에 제 입으로 마스터가 누군지 감히 알릴 수가 없어요.”
“만약 강제로라도 알게 된다면?”
나는 답답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렇게 되면, 영영 힘을 되찾을 수 없을 거예요.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힘도 같이 떠올릴 수 있어야 해요.”
세레나데는 단호했다.
“마스터의 존재는 마스터가 직접 기억해 내야 해요.”
그녀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율카네스가 늘 지껄이던 세상의 축이니 뭐니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그나저나 세이렌 여왕씩이나 되는 존재가 마스터라고 부를 정도면 보통 존재가 아닐 것이다.
원작에선 어떻게 이런 존재가 등장하지 않을 수 있었지?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세레나데에게 추가로 물었다.
“혹시 내가 악황제나 라이오스와 관계가 있나? 예를 들어 마누스나 힌미르라든가.”
세이렌 여왕이 마스터로 모실 정도면 마누스나 힌미르 정도 되는 드래곤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말에 세레나데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둘 다 아닙니다.”
“예, 아니오로 답해 줘서 좋네. 뜬구름 잡는 소리였으면 혼내 주려 했는데.”
“혼내…… 주신다고요?”
내 말에 세레나데의 양 볼에 홍조가 일어났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드라센의 목 주변이 거의 다 녹았다.
녹아 사라지는 이무기의 몸을 헤쳐 나오니 처음 세이렌을 따라 상륙했던 해안이었다.
“일단 이걸 입고 있어.”
반쯤 걸레가 되었지만, 몸 정도는 가려 줄 붉은색 해상 제복 코트를 세레나데에게 입혀 줬다.
“마스터께서 기억을 잃으시니 이런 호사도 누려 보는군요.”
세레나데가 감동한 눈으로 내게 말한다.
그런 세레나데의 반응을 뒤로 흘리고 주변을 살폈다.
“제독님!!”
“무사하셨군요!”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살아남은 해적들과 세이렌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루키엘과 패가스 그리고 니콜라가 가장 앞서 달려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에!!”
루키엘은 내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녹아 없어지고 있는 드라센의 사체를 안으며 오열했다.
‘하여간 마법사 놈들은 정이 안 간다니까.’
루키엘이 울면서 품에 안은 드라센의 사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질 뿐이다.
“피해 상황은?”
뒤이어 도착한 니콜라에게 물었다. 루키엘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물어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제독님께서 드라센의 몸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놈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휴우~ 다행이군.”
간략한 보고를 마친 그들이 내 옆에 있는 여인을 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예술 작품을 처음 본 촌사람처럼 입을 멍하니 벌린다.
“이분이 혹시?!”
내 팔에 매달려 있는 세레나데를 본 니콜라와 패가스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 세이렌의 여왕 세레나데다.”
내 대답에 패가스가 환해진 얼굴로 기뻐했다.
“아하! 새 형수님이시군요!”
형수님? 그나저나 새 형수님은 또 뭔 뜻이야? 이러한 의문을 풀기도 전에, 모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럼, 드디어 할 수 있는 겁니까?!”
“만세! 세레나데 형수님 만세!”
“임자, 어디 있소! 임자아!!”
“흐어어엉……. 살아남길 잘했어!”
“제이슨, 먼저 간 네 몫까지 열심히 할게! 그것이 약속이니까…….”
해적들 모두가 광란의 함성을 질렀다.
“어머어머…….”
세레나데가 자신을 형수님이라 부르는 해적들의 태도가 기쁜지 손으로 입을 가린다.
손으로 가린 입은 기쁨의 미소를 피고 있었다.
“여왕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구릿빛 피부와 은발. 무엇보다 발달된 흉부가 인상적이던 세이나가 세레나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이나를 시작으로 수백의 세이렌들이 도미노처럼 여왕에게 예를 표한다.
“나도 다시 너희들을 보게 되어 기뻐.”
내 앞에선 부끄럼 많은 숙녀였던 세레나데가 세이렌들 앞에선 위엄 있는 여왕이 되었다.
“너희들의 여왕, 나 세레나데가 축복을 내리니!”
세레나데는 무릎 꿇은 세이렌을 향해 외쳤다.
“번식을 시작하거라!”
여왕의 축복 담긴 명령에, 세이렌들 모두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아앗!”
“우와아아앗!!”
마찬가지로 해적들 또한 광란의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을 시작으로 세이렌과 해적들 모두가 각자 짝을 이뤘다.
‘미친……. 이거 완전…….’
그 이상의 말은 생략하자.
이종족 세이렌의 문화라면 문화지만 참으로 혼란한 광경이다.
그때,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세레나데가 손가락으로 콕콕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 턱 끝으로 해안에 마련된 집처럼 생긴 빈 소라를 가리켰다.
아름다운 세레나데의 홍조 묻은 새침한 얼굴을 보자, 방금까지 고뇌하던 21세기 도덕적 관념 따위는 똥통에 처박혔다.
“그래! 일단 하고 봐야지.”
안 그래도 예전에 마을에서 하지 못했던 것이 한이 맺혔는데, 이번 기회에 풀어야겠다.
“세이나? 너는 번식을 하지 않고 왜 계속 여기에 서 있느냐?”
그렇게 빈 소라로 가려는데, 세이나가 여전히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저는…….”
세이나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힐끔 본다.
세이나의 의중을 알아챈 세레나데가 입을 열었다.
“셋이서라…….”
이윽고 세레나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랫동안 나 대신 일족을 이끄느라 수고 많았다. 그 보상으로 이걸 원한다면야…….”
세레나데는 그렇게 말을 흘리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야 뭐, 상관없긴 한데…….”
두 여자의 성욕 어린 눈동자에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참고로, 세이렌의 완력과 체력은 오크를 능가한다.
‘힘든 싸움이 되겠군.’
지금까지 해 왔던 어떤 싸움보다도 더 힘들 것 같았다.
꿀꺽.
아공간 가방에서 렌슬렛의 영약을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